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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밤

취재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다뤄야 할까. 대대적인 봉쇄령에도 사람들은 일상을 지속한다. 베란다에서 글을 쓰고,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고, 저항과 논쟁을 이어가고, TV 쇼에 문자 투표를 한다. 팬데믹 시대에도 라이프스타일은 지속된다. 세계 12개 도시의 기자들이 팬데믹 시대의 삶을 전해왔다. <모노클> <뉴욕타임스> <아이콘> <TAZ>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그넘> 기자들이 전해온 21세기 가장 암울한 순간의 민낯과 희망의 기록이다. 지금 세계는 이렇다.

UpdatedOn June 09, 2020

 Berlin
베를린의 밤
클럽은 비어도 음악은 끊이질 않는다. 베를린 청년들은 이제 클럽에 가는 대신 스트리밍 공연을 즐기고, 극장에 가는 대신 전설적인 공연을 온라인 극장에서 관람한다. 매주 일요일 오후 6시, 베를리너들은 발코니에서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부른다. 이 비극 속에서도 잊어선 안 될 또 다른 비극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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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클럽 문화를 다루는 저널리스트로서 코로나19는 무엇보다 내게 한 가지 의미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른 밤’이다. 베를린처럼 파티가 끊이지 않는 도시에서 이는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나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 8시 정각이 되면 책상 앞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프리랜서로서 집에서 일하는 건 새롭지 않지만, 전염병은 확실히 일에 영향을 주었다. 아티스트들과의 인터뷰는 늘 힙스터로 붐비는 카페 ‘크로이츠베르크’ 대신 화상 채팅을 통해 이루어진다. 한때 활기찼던 클럽과 공연장, 문화의 중심지가 이제는 유령 박물관처럼 느껴진다. 벽은 결코 열리지 않을 파티와 공연 포스터들로 가득하다. 이러한 시대에는 새로운 방향으로 문화에 대해 글을 써야 한다. 나는 예술적 생산에서 생존 전략으로 초점을 바꾸었다. 수많은 기관들은 폭풍우를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그들이 유지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는 중인가? 그들이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건 무엇인가?

심지어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도, 근무가 끝나면, 청년들은 그저 즐겁게 놀고 싶어 할 뿐이다. 평소라면 이는 베를린의 테크노 클럽들 중 한 곳을 가거나 베를린의 수많은 공연 중 하나에 간다는 뜻이겠지만, 이제는 베를린 클럽 신이 시작한 ‘United We Stream’ 캠페인의 일환으로 디제이 3명이 스트리밍 공연을 한다는 걸 의미한다. 매일 밤, 디제이들은 서로 다른 클럽의 텅 빈 댄스 플로어에서 공연한다. 누구든 영상 링크를 통해 공연을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자는 클럽 신을 유지하기 위한 돈을 기부한다. 목표 액수는 한화로 약 1억원으로, 많게 들릴 수 있지만 베를린의 3백 개 클럽이 나눠 가질 경우, 바닷속 한 방울만큼의 가치일 뿐이다. 지금까지 그들은 절반 정도 벌어들였다. 또한 베를린의 클럽 문화는 정치적 이슈에도 관여한다. 이 수익의 8%는 지중해를 넘어 안전한 곳으로 가려는 난민을 구출하는 프로젝트에 기부될 것이다.

또 다른 밤에는 온라인으로 연극 공연을 보기 위해 채널을 맞춘다. 이 기획 덕에 나는 초창기 ‘샤우뷔네 극장’의 페터 슈타인 감독처럼 위대한 사람들의 전설적인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뮌헨 카머슈필레’에서 베오그라드에 있는 유고슬라브 극장에 이르기까지, 절대 볼 수 없을 것만 같던 유럽 전역의 다양한 작품들도 접할 수 있었다. 독일의 가장 유명한 연극 축제인 ‘테아터트레펜(Theatertreffen)’의 블로거로서, 팬데믹 현상에도 불구하고 올해 할 일이 산더미다. 그 축제의 퍼포먼스와 패널 토론은 온라인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블로깅 팀으로서 극장의 디지털화에 대해 토론하고 또 토론해왔다. 찬성과 반대에서 모두 격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만한 주제다. 내 의견은 찬성 쪽으로, 공연 스트리밍은 엘리트주의 연극을 모든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공연 문화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위기는 크리스토퍼 뤼핑이나 오카다 도시키 같은 일부 감독들에게 새로운 온라인 극장 형식 관련 작업을 시작할 기회를 제공했다.

클럽 신에서 연극계에 이르기까지, 나는 역경 앞에서 우리의 회복력과 적응력에 놀랐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그립다. 공연 후 와인 한잔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 음악을 통해 공감하는 일면식 없는 사람들, 그리고 현란한 댄스 플로어의 에너지와 꽉 찬 극장의 모습이 그립다. 문화는 사람을 통해 살아간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 상황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동시에 종종 잊히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부 독일인은 매주 일요일 오후 6시, 발코니에서 유럽연합의 국가인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부른다. 지금도 수만 명의 난민이 유럽연합 국경의 과밀 수용소에서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다. 현재 팬데믹 상황에서도, 문화는 우리의 관심을 국경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들로 이끌 수 있으며 또 이끌어야만 한다. 예술은 정치적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극장과 클럽 신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이에 대해 절실히 고민하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WORDS & PHOTOGRAPHY 니콜라스 포터

Nicholas Potter 니콜라스 포터
공연, 클럽 문화 전문 칼럼니스트로 <TAZ> <데어 프라이탁> 등의 매체에 정기적으로 기고한다. <엑스베를리너 매거진>에서 공연 전문 에디터로 일했고 현재는 독일의 가장 큰 연극 축제인 테아터트레펜(Theatertreffen)의 블로그 팀으로 일하며 팬데믹 시대에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연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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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이예지, 김성지
GUEST EDITOR 정소진
ASSISTANT 김인혜

2020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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