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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육아일기

On June 11, 2020

취재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다뤄야 할까. 대대적인 봉쇄령에도 사람들은 일상을 지속한다. 베란다에서 글을 쓰고,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고, 저항과 논쟁을 이어가고, TV 쇼에 문자 투표를 한다. 팬데믹 시대에도 라이프스타일은 지속된다. 세계 12개 도시의 기자들이 팬데믹 시대의 삶을 전해왔다. <모노클> <뉴욕타임스> <아이콘> <TAZ>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그넘> 기자들이 전해온 21세기 가장 암울한 순간의 민낯과 희망의 기록이다. 지금 세계는 이렇다.

 Singapore
싱가포르 육아일기
거주 노동자들이 사라지자 드러난 싱가포르의 민낯. 그리고 사회를 떠도는 각종 괴담과 한국 라면의 매운맛이 공포를 부추기고 있다.

싱가포르는 코로나19 사태 초반만 해도 세계가 주목하던 모범적인 방역국이었다. 하지만 이후 급격히 상황이 악화되면서 늘어나는 감염자를 막기 위해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 4월 첫 주부터 서킷 브레이커(식료품 매장을 제외한 모든 상점과 공공시설의 폐쇄)를 발표했다. 대부분의 일상이 봉쇄된 상황에서 싱가포르만의 독특한 상황도 조금씩 드러난다.

제일 큰 문제는 외국인 노동자의 처우다. 싱가포르는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높은 편이지만 빈부 격차가 극단적으로 심한 나라다. 한국도 그렇지만 싱가포르 역시 힘들고 험한 일은 대부분 미얀마나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저개발 국가 노동자가 담당한다. 이들의 상당수는 건설 현장, 조선소, 청소 현장에서 일한다. 최저임금 같은 건 없다.

30만 명에 달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흔히 도미토리라고 하는 작은 기숙사에 모여 사는데 한 방에 많게는 40여 명이 거주하면서 같은 화장실과 세면대, 샤워실을 쓴다. 도미토리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나면서 문제가 심각해진 것이다. 최근까지 싱가포르에는 하루 1천 명이 넘는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는데 이 중 90% 이상이 도미토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니까 싱가포르의 코로나 사태는 싱가포르 사람의 문제라기보다 저임금 노동자 중심으로 일어난 비극에 가깝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들을 별도의 격리 시설에 수용하고 치료에 집중하고 있지만, 상황이 금세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거리 풍경에서 격리된 도미토리 거주 노동자의 빈자리를 체감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거리는 일본 이상으로 깨끗한데, 이 결벽증적인 싱가포르의 거리가 최근 조금 지저분해졌다. 싱가포르의 청결하고 미래적인 이미지를 지탱하던 건 바로 저임금 노동자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정부의 행정력이 강력한 나라답게 코로나19 이후 각종 규제도 생기고 있다. 최근 싱가포르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외출 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약 3백 싱가포르 달러(약 27만원)의 벌금을 물린다. 다만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당되지 않는 한 가지 경우가 있는데 바로 러닝처럼 격렬한 운동을 할 때다. 물론 운동 후에는 즉각 마스크를 써야 한다지만 다소 황당한 규정일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가 대부분 비말을 통해 감염되고, 러닝 등 운동 시에는 더욱 넓은 범위로 퍼진다는 걸 감안하면 말이다. 지금 내가 사는 콘도에서도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조깅하는 이들은 마스크를 벗고 있다. 어려운 시기라 그런지 각종 괴담도 떠돈다. 한동안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한국인 아주머니가 친구들 불러서 밥 해 먹다가 이웃의 신고로 1만 달러 벌금을 물었다더라’ ‘갑자기 사복 경찰이 와서 비자 보여달라고 하더니 집에까지 따라와 가족들 비자를 다 확인하더라’ 같은 괴담이 떠돌았다. 상식적이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당시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소문을 꽤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코로나19 사태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싱가포르 정부가 강압적으로 돌변하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다 헛소문임이 밝혀졌지만 ‘부유한 북한’이라는 싱가포르의 별칭을 떠오르게 만든 장면이었다.

한국 제품의 저력을 보여준 장면도 있다. 처음 코로나19 경보 단계가 위험 수준으로 격상됐을 때 싱가포르도 마트의 식료품 코너가 동이 났다. 라면 종류는 특히 사재기가 심했는데 오직 불닭볶음면만이 남아 있었다. 나의 싱가포르 친구는 불닭볶음면을 먹고 나서는 ‘Korean Evil Noodle’이라고 표현했는데, 실제로 많은 싱가포르 사람이 불닭볶음면을 경험하고 나서는 공포에 떤다. 텅 빈 라면 코너에 홀로 남아 있던 불닭볶음면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차마 못 먹겠다’는 싱가포르 사람의 강력한 의지였다. 덕분에 나는 쉽게 생필품을 비축할 수 있었다.
WORDS & PHOTOGRAPHY 이기원

KiWon Lee 이기원
<아레나 옴므 플러스> <노블레스> <젠틀맨> 등에서 에디터로 일했다. 최근까지 모 기업의 브랜드 콘텐츠를 만들다 육아휴직 후 싱가포르에 거주 중. 뭐 좀 재미있는 일 없나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프리랜스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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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이예지, 김성지
GUEST EDITOR
정소진
ASSISTANT
김인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