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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일본이 변하고 있다

On June 12, 2020

취재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다뤄야 할까. 대대적인 봉쇄령에도 사람들은 일상을 지속한다. 베란다에서 글을 쓰고,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고, 저항과 논쟁을 이어가고, TV 쇼에 문자 투표를 한다. 팬데믹 시대에도 라이프스타일은 지속된다. 세계 12개 도시의 기자들이 팬데믹 시대의 삶을 전해왔다. <모노클> <뉴욕타임스> <아이콘> <TAZ>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그넘> 기자들이 전해온 21세기 가장 암울한 순간의 민낯과 희망의 기록이다. 지금 세계는 이렇다.

 Tokyo
일본이 변하고 있다
정부의 뒤늦은 대처에 정치에 무관심하던 일본인이 눈을 뜨고 있다. “우리의 설 곳을 지키자”는 목소리가 ‘세이브 아워 플레이스’ 운동으로 발전했고, 팩스나 종이 서류 날인 등 낡은 관습이 조금씩 사라져간다. <뽀빠이> 컨트리뷰팅 에디터 히라이는 이제 일본인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발언하는 새로운 삶이 찾아올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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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끝나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일본은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시즌을 맞이한다. 나카메구로는 벚나무가 늘어선 작은 강 주변으로 세련된 식당이 즐비한 곳이다. 꽃놀이철이 되면 주변 식당들은 샴페인과 스파클링 와인 등을 내놓으며 화사한 핑거 푸드를 제공한다. 벚꽃과 식사, 술, 환담을 즐기는 사람들로 거리는 축제를 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작년까지의 이야기다. 3월 말경부터 발생한 코로나19로 인해 일본 정부는 꽃구경 자제를 발표했고, 벚나무 아래서 모이는 것도 금지했다. 사람들이 집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나카메구로의 벚꽃은 남몰래 피어났다. 조용히 꽃잎이 흩날리는 모습은 예년과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지만, 벚꽃이 다 져도 코로나19는 끝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판단이 늦었다. 충분한 보상에 대한 설명도 없이 출근과 가게의 영업은 각자의 양심에 맡겼다. 사람들은 자기만의 답을 알아서 찾아야 했다.

하지만 이 사태는 반드시 나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낡고 녹슨 화석 같은 여러 습관(예를 들면 아침과 저녁에 밀려드는 살인적인 만원 전차, 팩스나 종이 서류에 찍는 무의미한 날인, 쓸데없는 회의 등)이 조금씩 없어지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출근할 일이 없어지고, 또 도쿄 작은 맨션의 방은 사무실이 되었다. 도쿄에서 정원을 가진 집은 아주 적지만, 사람들은 작은 방 안을 조금이라도 쾌적하게 만들기 위해 관엽 식물을 구입했다. 한 꽃집은 평소보다 3배 이상의 손님이 가게를 찾고 있다고 한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이고 말이다.

나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원래 자유롭게 일했지만, 밤에 외식을 하거나 클럽에 나가는 휴식을 취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택에서 즐겁게 보낼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키우는 관엽식물을 늘리고 꼬박꼬박 물을 주는 습관이 생겼고, 조리 도구를 더 사서 요리의 레퍼토리를 늘리기도 했다. 아웃도어 체어와 내추럴 와인, 작은 스피커와 함께 테라스에서 지내는 시간은 그리 나쁘지 않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축제인 ‘레인보 디스코 클럽’은 매년 5월 초에 개최되었으나 올해는 취소됐다. 대신 이들은 디제이가 플레이하는 동영상을 촬영해 훌륭한 라이브 공연을 선사했다. 나는 집에서 화상 채팅 앱인 ‘줌’을 설치했고, 친구들과 환담하며 집에서 음악 축제를 즐겼다.

그 친구들 중엔 도쿄에서 주목 받는 레스토랑인 ‘가비(Kabi)’를 운영하는 동료가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후 휴점했다가 최근 테이크아웃을 시작했다. 식당 구성원 중 한 명이 무농약 농가에서 남아도는 순무를 대량으로 구입했다고 한다. 그 순무와 테이크아웃 초밥이나 내추럴 와인을 구입하러 가게에 갔더니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음악 축제 ‘레인보 디스코 클럽’이 방송한 영상 라이브에 출연했던 디제이나, 가을에 개최할 수 있을지 오리무중인 음악 축제 ‘라비린스’의 주최 멤버, 불안한 나날 속에서 작은 희망을 찾는 사람들, 일본의 여러 아티스트들도 SNS를 사용해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했다. 가수는 라이브 동영상을 스트리밍하고, 개그맨이나 배우는 줌을 통해 콘텐츠를 제공했다.

정부가 보상에 대해 발표하지 않는 불안한 날들이 계속되던 중에 한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 팝스타 호시노 겐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우리 집에서 춤추자’는 밈이 생겨났다. 다양한 배우와 코미디언들이 참여하며 열광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밈에 아베 신조도 참여해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곤궁에 빠져 있는 와중에 호화 관저에서 우아하게 티타임을 즐기는 아베 신조의 모습에 많은 국민의 비난이 쏟아졌다.

좁고 답답한 아파트 밀실에서 어떻게 즐겁게 보낼까 궁리해온 나날.
레스토랑이나 클럽, 바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평화가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극장에서 보는 영화나 공연장에서 듣는 음악이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풍성하게 채색하였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 소중한 문화가 부족한 보상 탓에 없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설 자리를 지키자는 외침은 ‘세이브 아워 플레이스(Save Our Place)’ 운동으로 발전했다. 정치에 소극적이던 일본인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정부에 의문을 갖게 됐다. 이제 나는 일본인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발언하는 새로운 삶이 찾아올 것을 기대한다.
WORDS & PHOTOGRAPHY 히라이 리오

Hirai Rio 히라이 리오(平井莉生)
히라이 리오는 프리랜스 에디터로 도쿄의 레스토랑, 클럽 등 여러 커뮤니티를 가로지르며 문화와 푸드 전문으로 활동한다. <뽀빠이>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며 <하나코> <엘르 재팬> <슈프르> 등 패션 매거진에서 컨트리뷰팅 에디터로 일한다. 사라져가는 레스토랑과 클럽 등 지역 문화에 대해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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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다뤄야 할까. 대대적인 봉쇄령에도 사람들은 일상을 지속한다. 베란다에서 글을 쓰고,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고, 저항과 논쟁을 이어가고, TV 쇼에 문자 투표를 한다. 팬데믹 시대에도 라이프스타일은 지속된다. 세계 12개 도시의 기자들이 팬데믹 시대의 삶을 전해왔다. <모노클> <뉴욕타임스> <아이콘> <TAZ>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그넘> 기자들이 전해온 21세기 가장 암울한 순간의 민낯과 희망의 기록이다. 지금 세계는 이렇다.

Credit Info

EDITOR
조진혁, 이예지, 김성지
GUEST EDITOR
정소진
ASSISTANT
김인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