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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밤은 맛있다

호형호제,이유석·강민구·김정현

On June 26, 2014

요리를 향한 설렘과 열정으로 두 볼 발갛게 빛내던 청년들, 어엿한 셰프가 되다.

꿈꾸는 3인의 청년, 스페인에서 만나다

요리사의 꿈을 안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무작정 프랑스로 건너간 청년 이유석, 파리의 미슐랭 3스타 ‘라스트랑스’ 등 다양한 레스토랑을 거치며 3년간 경험을 쌓은 뒤 당시 미식의 중심지로 떠오르던 스페인으로 훌쩍 발길을 옮겼다. 처음 접하는 스페인어, 말이 통하는 동료가 없어 외롭던 그 무렵 스페인의 다른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다는 강민구를 소개받는다.  

(왼쪽부터)셰프마일리 수쉐프 김정현
루이쌍끄 오너 셰프 이유석
밍글스 오너 셰프 강민구

이유석은 발렌시아에, 강민구는 멀리 떨어진 산세바스티안에 있기에 직접 만나지는 못하고 메일 주고받기를 수차례, 요리 철학이 통한다는 것을 발견한 두 사람은 동지를 만났다는 기쁨에 겨워 일주일에도 십여 통이 넘는 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몇 달 뒤, 타지에서 홀로 생일을 맞게 된 이유석 앞에 강민구가 나타난다. 생일 축하를 위해 장장 14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달려온 것이다. “엄청 꼬질꼬질한 아이가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거예요. 제 생일을 축하겠다고요.” 강민구의 낡은 배낭에는 선물로 챙겨 온 요리책이 가득했다. 그렇게 처음 만난 그들은 요리에 관한 이야기로 뜨겁게 밤을 지새운 뒤 발렌시아의 명물인 파에야를 나눠 먹으며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며 헤어진다.  

1 최근 셋이 마지막으로 만난 날은 김정현의 생일날. 스페인에서의 추억을 회상하며 서촌의 ‘따빠스 구르메’에서 먹고 마셨다.
2 셋 다 늦은 밤에 일이 끝나고 끼니도 대충 때울 때가 많다 보니 항상 출출하다. 그래서 가장 즐겨 먹는 것도 설렁탕처럼 든든한 메뉴.  

강민구와 김정현의 인연은 또 다르다. 부푼 꿈을 안고 스페인으로 간 강민구는 ‘엘불리’와 맞먹는 명성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마틴 베르사테키’의 견습생으로 들어갔다. 전 세계 요리 지망생들이 꿈꾸는 레스토랑, 무급으로라도 일하며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견습생만 50명, 정식 셰프까지 합치면 70명의 인원으로 주방은 말 그대로 전쟁 통이었다. 그중에는 몇 개월 먼저 온 한국인 김정현도 있었다.

스페인어라고는 전혀 모르던 강민구에게 그래도 스페인어로 이것저것 이야기하는 김정현이 대단해 보였고 힘이 되었다. “저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하니까 대단해 보였지요. 물론 나중에 알고 보니 착각이었지만.”
“형이 처음 들어왔을 때 정말 재밌었어요. 주방에서 대답을 할 때 ‘오이도’라 해야 하는데 자꾸 혼자 ‘발레, 발레(스페인어로 응)’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화가 난 스페인 셰프가 ‘너 그렇게 대답하지 마’라고 소리 질러도 또 ‘발레’라 하고, 셰프는 더 화가 나서 ‘장난하냐’고 소리 질러도 또 ‘발레’라 하고.”

말도 안 통하는 동양인, 50명의 견습생 사이에서 허드렛 일만 하다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둘은 끝까지 버티며 점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강민구는 그곳에서 깨달은 게 있다. “한국에서 인터넷, 외지로만 보던 유명 셰프의 요리, 정말 사진 그대로 요리를 만들까? 그게 가능할까? 궁금했는데 가능하더라고요. 그리고 알게 된 것은 아무리 유명한 3스타 레스토랑이라도 다르지는 않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한편으로는 대단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는 아니구나 깨닫게 된 거죠.” 

이유석과 강민구가 본 김정현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의 경험이 풍부해 지중해 음식에 해박한 데다 샤퀴테리의 강자로 넓고 자유로운 음식 세계를 가졌다. 멕시코 사람처럼 생겨 별명도 ‘미구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강민구와 김정현이 본 이유석
클래식한 음식을 재해석해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해가는 ‘돌직구’ 같은 요리를 만들어 낸다. 외식업계의 뉴 아이콘이자 제갈량.

이유석과 김정현이 본 강민구
한국 음식의 재해석을 넘어 아시안 음식의 르네상스를 이끌어갈 차세대 주자. ‘밍글스’는 차기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들어갈 가장 강력한 후보. 

동료 요리사, 그리고 평생을 함께할 속 깊은 친구

요리를 향한 꿈은 같지만 스타일은 다른 세 사람은 제각기 다른 꿈을 안고 뿔뿔이 흩어진다. 이유석은 서울에 돌아와 부담 없는 프렌치를 모토로 ‘프랑스 심야식당’이라 불리는 루이쌍끄를 열었고, 한식 등 동양의 식문화를 베이스로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고 싶던 강민구는 미국으로 날아가 일식을 기반으로 한 컨템퍼러리 퀴진 ‘노부’에 입사해 바하마 지점의 헤드 셰프까지 맡으며 승승장구한다. 자유분방한 스타일로 더 다양한 유럽 스타일을 경험하고 싶던 막내 김정현은 이탈리아로 건너간다.

가장 먼저 한국으로 돌아와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레스토랑을 오픈한 맏형 이유석, 클래식하면서도 트렌디한 감성을 더한 ‘루이쌍끄’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무렵 두 동생도 차례대로 들어온다. 26세에 노부의 헤드 셰프까지 올라가 화제가 된 강민구는 한국의 외식업체에서 서로 ‘모셔 가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대형 외식업체의 셰프로 한국에 돌아온 강민구는 이달 드디어 자신의 꿈을 담은 레스토랑 ‘밍글스’를 오픈했다.
막내 김정현은 국내에서 흔치 않은 델리미트를 제조, 판매하는 오스트리아 레스토랑 ‘셰프마일리’의 수셰프로 활동 중이다. 스페인에서는 셋이 한자리에서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서울에 모두 모이니 이제 그들은 가족보다 더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다 같이 레스토랑을 할 생각은 없을까? “절대 없어요. 수장은 하나여야 하는데 저희는 셋이니까요. 그런 걸로 의 상하기는 싫어요.”

그 대신 수시로 서로 의견과 도움을 주고받는다. 이유석은 샤퀴테리 메뉴를 만들 때 햄 가공에 일가견 있는 김정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신기한 게, 제가 만드는 방법 그대로 알려줘도 결과물을 보면 형만의 개성이 묻어나는 전혀 다른 것이 나온다는 거예요.” 이제는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동료를 넘어 사적인 고민을 주고받는 가족 같은 사이가 된 그들, 셋이 시간 맞추기가 어려우면 둘씩이라도 본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난다. “가게 앞 편의점 미니××에서라도 봐요. 사실 거기가 가장 자주 가는 단골집일 거예요 아마.” 

요리를 향한 설렘과 열정으로 두 볼 발갛게 빛내던 청년들, 어엿한 셰프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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