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 네이버 포스트 네이버 밴드 유튜브 페이스북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STAR

STAR

기적과 같은 한 해를 보낸 이하늬와의 만남

이하늬는 달리는 중이다. 고민하며, 치열하게, 아름다운 30대 중반을 보내는 중이다.

On December 09, 2019

3 / 10
/upload/woman/article/201911/thumb/43400-393167-sample.jpg

 


오래전 이하늬와 파리로 화보 촬영을 간 적이 있다. 그때의 모습이 강하게 기억나는 건, 그 시절의 그녀가 파리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평범해서 아름다웠고, 따뜻해서 아름다웠고, 고민하는 청춘이어서 아름다웠다. 그녀는 여분의 시간 동안 파리에 사는 친구와 배낭을 메고 여행했으며, 자연스레 우리 일행과 합류해 몽마르트르를 거닐기도 했으며, 함께 김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렇게 이하늬는 평범한 청춘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다시 만난 이하늬는 그때와 별 다를 게 없었다. 여전히 고민했고, 뜨거웠고, 따뜻했다. 스스로 실수투성이라고 말하지만 그 모든 게 이하늬였다. 그래서 예쁜 사람이었다.

올해 가장 열정적으로 활약한 여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이하늬다.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오가며 털털한 모습으로 사랑받고, '이하늬의 재발견'이라고 할 만큼 연기력도 일취월장했다. 그런 그녀가 이번엔 또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영화 <블랙머니>(감독 정지영)는 IMF 외국 자본이 한 은행을 헐값에 인수한 후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떠난 '론스타 사건'을 극화한 작품이다. 이하늬는 극 중 차갑고 이성적인 엘리트 변호사 '김나리' 역을 맡았다.


대본을 읽고 어떤 것에 끌렸나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 무게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영화적인 재미 요소가 많았어요. 이 영화의 메시지도 좋았고요. 현시대를 살아가면서 배우로서 메시지를 던지는 작업에 함께한다는 게 의미 있죠. 무엇보다 대본의 완성도를 보고 놀랐어요. 작업자가 수정에 수정을 거쳐 무결에 가까운 글이었어요. 이런 작품을 만났는데 안 할 이유가 없죠.


'김나리'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했나요?
지적이고, 오랫동안 유학 생활을 했고, 월가에서 일하는 리더예요. 영어가 완벽해야 하죠. 그뿐만 아니라 경제용어도 일상어처럼 사용하는 사람이에요. 영어를 입에 붙이는 작업을 집중적으로 했어요.


캐스팅 과정이 궁금해요.
감독님이 (조)진웅 오빠를 먼저 캐스팅했어요. 사실 감독님은 저라는 배우의 존재 자체를 모르셨던 것 같아요.(웃음) 이후에 말을 들어보니 제가 출연한 다큐 예능을 보고 캐스팅을 결심하셨다고 해요. 미처 생각지 못한 저의 어느 한 부분이 다른 작업자들에게는 특별한 모습이 될 수도 있구나, 생각했어요. 그 프로그램에서 제가 연출을 주도적으로 해야 하고 친구들을 이끌어가야 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 부분이 김나리라는 캐릭터 구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73세의 거장 감독은 현장에서 어땠나요?(정지영 감독은 <남영동 1985>(2012), <부러진 화살>(2011) 등을 연출했다)
젊고, 패기 있고, 친구 같은 감독님이셨어요. 배우가 스스럼없이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주셨어요. 감독님은 스스로 진화하는 스타일이세요. 디렉션을 주실 때 저 멀리 계시다가도 막 뛰어오세요. "감독님, 마이크로 해주셔도 돼요" 하면 "나 마이크 안 써, 직접 눈 보고 해주고 싶어" 하세요. 그래서 늘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계시죠. 작업자의 마음, 태도, 열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감독님이 '김나리'라는 캐릭터에 대해 원하는 건 뭐였나요?
오직 하나, 자신만만. "김나리는 자신만만이다!" 하셨어요.


주연급 역할을 주로 했지만 이번처럼 힘 있게 이끄는 역할은 처음이었어요.
연기력을 인정받거나 흥행에 성공하겠다는 생각보다 이 작품의 한 일원이 되어 함께 작업할 수 있다면 배우로서 명예로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지영 감독님과 함께 작업한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고. 극 중 상대역이 조진웅 선배여서 좋았고, 영화 속 그와 다른 축을 이루는 한 파트의 배우가 되었다는 게 감사한 일이었죠.


조진웅 씨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저를 귀찮아했어요.(웃음) 한데 선배는 '츤데레'예요. 맛있는 게 있으면 툭 던져주며 "밥은 묵었나?" 하는 스타일이에요. 진웅 오빠는 말수가 적은 편인데, 내 동료라고 생각하면 가족처럼 완전히 받아들이죠. 가족 같은 배우를 얻었어요. 함께 작업하면서 왜 조진웅이라는 배우가 충무로에서 사랑받는지 공감이 됐어요. 삶의 온 방향이 영화로 가 있는 사람이에요. 술을 마시는 것도 영화 때문이고, 기분이 끝내주게 좋은 것도 영화 때문인 사람요. 영화를 중심으로 우주가 도는 사람이랄까요. 왕왕대는 그 큰 에너지를 옆에서 직접 보고 느낀 점이 많아요.


이하늬라는 배우가 어느덧 충무로에서 완전히 자리 잡은 느낌이에요.
저는 완전히 반대였어요. <극한직업> 할 때는 개봉하기 직전까지 바들바들 떨었고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꿈을 얼마나 자주 꿨는지 몰라요. <블랙머니>도 마찬가지예요. 아직도 바들바들 떨고 있어요. 마음이 안 놓이나 봐요. <극한직업>의 개봉을 앞두고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연기를 했는데도, 또 다 내려놓았기 때문에 오는 걱정이 있더라고요. 관객들이 어떻게 볼까 궁금하고 두려운 마음이 커요. 아직은 햇병아리라 걱정이 많죠.


전작들의 흥행이 걱정을 배가하기도 하죠.
전에 없던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극한직업>에선 형사지만 '여형사'가 아닌 그냥 '형사' 다섯 명이길 바라는 식이죠. 그렇게 캐릭터를 구축하려고 노력했어요. 한데 그게 어떤 관객에게는 불편한 모습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극장에서 작품이 내려갈 때까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계속 이어져요. 또 한편으론 양기 충만한 작품을 하고 나면 자기복제를 하지 않을까, 스스로 점검하죠. 에너지를 완전히 틀 수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었는데, 감사하게도 이 작품이 제게 온 거예요. 배우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이죠.


이전의 역할과는 조금 달라요. 다른 역할에 대한 갈증이 있었나요?
배우로서 이른바 '잘된다'는 게 어떤 걸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결국 하고 싶은 캐릭터를 맘껏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올해 저는 최고의 한 해를 보냈어요. 꿈 같은 캐릭터를 만났고, '마음대로 해봐' 하는 현장을 만났고, 좋은 감독을 연이어 만났어요.

/upload/woman/article/201911/thumb/43400-393168-sample.jpg
수련을 하지 못하면 몸도 붓고 멘탈도 흐트러져요. 말부터 달라지죠.
어떻게 보면 요가와 명상은 본능적으로 내가 살기 위해 하는 거예요.

연말이에요. 한 해를 정리한다면 어때요?
선물, 혹은 기적과 같은 한 해였어요. 제가 배우로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하면서 배우를 '직업'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유명해지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매일매일 현장에 나가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받아들이자는 의미예요.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을 때 느껴지는 자족이 소중한 걸 아는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그래요. 사실 그 외의 것은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하고 싶은 캐릭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모든 걸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결국 제가 잘해서 된 게 아니라는 의미예요. 1,600만 관객을 만났다는 건 배우 입장에서는 걷다가 벼락을 맞는 것과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너무 감사하지만 동시에 모든 걸 내려놓고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게 맞는 거죠. 저는 앞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게 더 많은 배우이기 때문에 이 상황에 행여 스스로 만족할까 더욱 경계하고 있어요.


국악을 전공했고, 배우로 전향했고, 성공한 배우가 됐어요.
스스로 배우라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열심히 하다 보면 누군가 나를 배우라고 불러줘야 배우잖아요.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죠. 그런 면에서 본다면 "연기가 하고 싶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말하고 다녔던 초심이 이제야 대중에게 조금 전해진 것 같아 감사할 뿐이에요. 그런 마음이 커요.


모든 배우가 시간이 지나면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건 아니에요. 하늬 씨는 눈에 띄게 연기가 진화 중이에요.
뻔한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작품에 누가 되지 않을까, 늘 경계해요. 너무 행운인 건 매 작품에서 많은 걸 배웠다는 거예요. <침묵>의 정지우 감독에게는 배우가 얼마나 자유롭게 토해내듯이 연기할 수 있는지를 배웠어요. 그게 없었다면 <극한직업>에서 저를 완전히 내려놓기 어려웠을 거예요. <극한직업>에서는 코믹 타이밍의 천재 이병헌 감독을 만났고, 덕분에 <열혈사제>로 이어갈 수 있었죠. 그 작품들이 있었기에 <블랙머니>도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 도움받고 진화하는 과정들이죠.


배우 이하늬가 바라는 게 있나요?
작업에 많이 참여하고 싶어요. 배우로서 아직은 이끼가 많이 껴야 되는 돌이에요. 요즘은 글로벌 플랫폼도 열려 있는 시대잖아요. 시대에 맞게 열려 있는 마인드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싶어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도, 할리우드, 유럽, 아프리카도 좋아요. 물론 배우에게 그 기회가 선물처럼 와야 하지만, 행여 올 것을 대비해서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영어가 완벽했군요.(웃음)
대학교 때부터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학원도 줄곧 다녔고요. 왜 그렇게 영어를 열심히 했나 몰라요.(웃음) 데뷔 후 미국에서 1년 반 정도 연기 스튜디오를 다녔어요. 주변 사람들이 말렸지만, 분명 나중에 쓰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면, 쓰게끔 제 삶을 제가 운영하면 되니까요.


데뷔 후면 많은 걸 포기하고 가야 하는 상황 아닌가요?
4살 때부터 국악으로 무대에 섰던 터라 무대가 편한 사람인데 연기로 무대에 서려니까 너무 긴장되는 거예요. 연기적으로 수련이 더욱 필요하다는 걸 알았죠. 그래서 다 접고 미국으로 떠났어요. 그때가 2008년 즈음일 거예요. 돌아보면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는 베이스를 빨리 배우고 싶었던 것 같아요. 빨리 배우가 돼야지, 라는 생각보다 천천히 가더라도 비료가 많은 땅에 씨앗을 심고 싶었어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값진 시간이었죠.


요즘도 채식을 하나요?
채식을 하다가 건강상의 이슈가 있었어요. 채식을 지향하지만 완벽한 채식은 하지 않아요. 그러다가 최근에 요가 트레이닝을 하면서 한 달 동안 완벽한 채식을 한 적이 있어요. 몸이 정말 유연해지면서 안 되던 동작이 가능해지더라고요. 다만 채식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은 없어요. 자유로워지려고 시도했던 채식이 '채식'을 언급하는 순간 강박이 되어 자유롭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말을 내뱉는 순간 나를 속박하게 되는 거죠. 환경을 생각하면 채식을 한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쉴 때는 주로 뭘 하나요?
쉴 때도 자꾸 뭘 해요.(웃음) 그래서 넋 놓고 명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생각이 많은 편이에요.


최근에 발리로 훌쩍 떠났다고 들었어요.
요가 수련을 갔어요. 자유롭고 싶어서요. 몸도 중력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었고, 사람으로부터도, 생각으로부터도 자유롭고 싶어서요. 마지막 날에 얻은 건 편안함이었어요. 한 달 동안 매일 10시간씩, 전 세계에서 온 친구 40명과 수련했는데, 단지 수련하는 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제게는 특별했고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수련'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와요. 그 수련이 하늬씨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엄청난 영향요. 저는 그래요, 수련을 하면 삶이 바뀌어요. 모든 일을 할 때 수련하듯이 하면 실수가 줄어들고요. 수련은 제게 엄청난 에너지가 돼죠. 수련을 하지 못하면 몸도 붓고 멘탈도 흐트러져요. 며칠 게을리하면 말부터 달라지죠. 우리 일이라는 게 외부로부터 오는 많은 일을 쳐내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왜 그런 말을 나한테 하지?' 하고 상처가 되고, 그게 마음으로 들어오면 힘들어지죠. 이때 평상시에도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상처를 덜 받죠. 어떻게 보면 요가와 명상은 본능적으로 내가 살기 위해 하는 거예요. 그래서 발리로 훌쩍 떠나 급속 충전을 하고 온 것인지도 몰라요.


최근엔 요가를 가르치기도 했다고 들었어요.(그녀는 필라테스 티처 트레이닝을 마쳤고, 최근엔 포레스트 요가 티처 트레이닝도 끝냈다) 
안 하면 잊어버리기에 가르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최근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가르칠 기회가 왔어요. 역시 좋은 경험이었어요.(웃음) '이하늬가 가르친대!'가 아니라, 정말 선생님의 한 사람으로, 요가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로 봐주었어요. 운동을 하면 그 나름의 공동체가 생겨요. 요가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향이 비슷해요. 동물을 좋아하고 채식을 선호하죠. 그래서 이곳이 제겐 성역 같은 공간이에요. 마음이 편안해지죠.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는 그녀는 여전히 그 시절 파리에서처럼 아름다웠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2019년 12월호

2019년 12월호

에디터
하은정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