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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가 말하는 문정희

On November 07, 2019

7년 만에 다시 만난 문정희는 그대로였다. 특유의 밝음도, 상냥한 목소리도, 몸에 밴 배려심도. 모든 게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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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비 테일러드 재킷·네이비 슬랙스 모두 가격미정 비고쉬, 로고 포인트 화이트 스니커즈 10만9천원 아디다스.


문정희는 참 연기를 잘하는 배우다.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차분하고 단아한 성격의 '유경' 역을 맡아 감우성과 호흡을 맞췄다. 잔잔한 여운을 남기며 시청자에게 각인됐고, 그 후로 드라마 <천일의 약속> <마마>, 영화 <해결사> <쏜다> 등에 출연했다. 상업영화 첫 주연을 맡았던 <연가시>에선 국가 재난이라는 위기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강단 있는 엄마 '경순' 역을 맡아 호평을 이끌어냈다. 최근엔 드라마 <배가본드>에서 세계 무기 중개상을 연기하는데, 그 연기가 또 일품이다. 아무튼 그녀는 소재나 장르, 캐릭터가 무엇이든 늘 기대 이상의 연기로 보답하는 천생 배우다.

카메라 밖에서의 그녀는 어떤가. 그녀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인간적인 여배우'라고 입을 모은다. 자기보다 주변을 챙기느라 바쁜, 스스로 빛나기보다 함께하는 스태프를 조금이라도 더 쉬게 하려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착한' 여배우라는 평가다. 차분하지만 똑 부러지고 친절하고 밝은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한 문정희를 만났다.


오랜만이에요.
영화 <판도라> 이후 2년 정도 휴식기를 가졌어요. 최근 드라마 <배가본드> 촬영을 사전 제작으로 마쳤고, 지금 방송 중이에요. 오랜만에 돌아오니까 활기가 넘치고 재미있어요. 지난 2년 동안은 그동안 일하느라 바빠서 돌보지 못했던 가정을 돌봤고, 취미 생활을 즐겼고, 남편과 시간도 많이 보냈죠. 오랜만에 쉬니까 좋던데요? 그런데 돌아오니까 더 좋아요.(웃음)


취미가 다양한 걸로 알고 있어요. 특히 살사는 수준급이라고 들었어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살사 댄스는 모두에게 놀라움을 안겼죠.
오래전 연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 배웠는데 재미있어서 그만두지 못했어요. 남편도 살사를 추다가 만났고요.(웃음) 아직도 못 끊었어요. 이 정도면 거의 중독이죠.


요즘에 새로 생긴 관심 분야가 있나요?
우리 집에 새로운 가족이 생겼어요. 최근 강아지를 입양했거든요. 제가 잠깐 데리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는데 같이 지내다 보니 정이 들어 돌려보내지 못했죠. 강아지를 키우기 위해 이사했을 정도면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 느껴지지 않나요? 이젠 모든 걸 함께하는 사이가 됐죠.


일명 '개박사'가 됐다지요?
예전엔 '강아지를 어떻게 키우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키우는 걸까?'라고 생각했어요. 한 생명체를 키운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공부해야 해요. 이런 상황에선 이렇게 대처해야 하고, 또 저런 상황에선 저렇게 대처해야 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어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개가 다른 사람을 문다거나 하는 사고가 생겨요.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까 '개박사'가 돼버렸죠.(웃음)


왠지 연기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강아지와의 교감…. 물론 도움이 됩니다. 신기해요.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 친구가 알고 있는 것 같거든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감정이 언젠가 연기에 쓰일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연기에 도움 되지 않는 경험은 하나도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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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프 숄더 슬리브 블랙 페이턴트 롱코트 가격미정 720, 드레이프 디테일의 슬리브리스 드레스 가격미정 코스, 실버 체인 이어링 25만원 파나쉬 차선영, 블랙 플랫폼 샌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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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사이즈 실루엣의 건 클럽 체크 트렌치코트 39만8천원 모던에이블, 골드 링 레이어드 드롭 이어링 24만원 파나쉬 차선영, 블랙 톱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고 김영애 선생님은 제가 아는 어른 중 가장 꼰대 같지 않은 어른이에요. 선생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연기를 잘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제겐 충격이었죠. 연기를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 죽음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마인드를 배우고 싶어요.

한동안 안 보인다 했더니 또 다른 성장을 하고 있었군요. 자평하자면 문정희는 어떤 여자인가요?
사람들은 저를 우울한 여자로 알고 있더라고요. 혹자는 까칠하다고 말하죠. 하지만 저는 '쉬운 여자'예요.(웃음) 밝고, 활기차고, 열정적이고, 치열하고…. 여배우라는 직업이 결코 평범한 직업은 아니지만 스스로는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밥하고, 낮에는 저녁 메뉴 고민하고, 운동하기 싫어서 뒹굴거려요. 저는 굉장히 평범한 여자예요.


일과 개인 생활이 완전히 분리된다는 말로 들려요.
집에 들어오는 순간에는 배우가 아니라 인간 문정희, 여자 문정희가 되려고 해요. 촬영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나 연기 고민 등을 안고 집에 가면 가족들이 힘들거든요. 그 짜증과 예민함을 받아주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배우에서 인간 문정희가 되는 걸 연습해왔더니 언제부턴가는 자연스럽게 되더군요. 이제는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 캐릭터가 돼서 연기를 완벽히 해내는 게 어렵죠.


데뷔 20년 차가 만들어준 내공 덕분이겠죠?
데뷔 초엔 쉽지 않았어요.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고, 잘하고 싶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더 몰입했던 것 같아요. 작품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외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도 상당해요. 보여지는 것, 사람들과의 관계, 현장 분위기…. 제 상황을 공감해줄 누군가가 필요한데 그게 신랑이에요. 신랑과 많은 대화를 하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연기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죠.


돌아보면 훌쩍 프랑스로 떠나기도 했고, 살사에 빠져 연기를 하지 않은 적도 있어요.
방황의 시기였던 것 같아요. 물론 저도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그렇듯 저도 대부분의 날들이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어요. 그 상황에 이입되어버리면 더 힘들어지고요. 그래서 무작정 프랑스로 유학을 갔었죠. 그런데 거기서도 녹록지 않았어요. 언어 장벽이 너무 높았고, 인종차별 때문에 상처받는 날이 많았거든요. 돌아와서는 또 왠지 실패한 것 같아 힘들었고요. 그런데 경험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터득이 되더군요.


30대 초반…. 여자에겐 참 힘든 시기인 것 같아요.
여자에게는 여러 번의 질풍노도 시기가 찾아오는데 가장 힘든 시기가 30대 초·중반인 것 같아요. 자아가 강해서 부모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에 놓이거든요. 결혼을 해도 부모에게 의지하게 되고, 아이를 낳아도 부모에게 의지하게 되죠. 저도 모든 게 쉽지 않은 시기가 바로 그때였던 것 같아요. '왜 나는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강했던 때였죠.


어떻게 극복했어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었어요. '쉬는 게 정말 좋니?' '일하는 게 좋니?'라고요. 그리고 매일 기도했어요. 내 마음속에 평안을 달라고 빌었죠. 중요한 건 절대 도망치지 않았다는 거예요. 힘들면 힘든 대로 그것을 마주하려고 했죠. 배우인지라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 가장 행복하지만 쉴 때도 좋더라고요.(웃음) 아무 생각 없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여유가 좋았고, 텃밭을 가꾸면서 채소들과 대화할 때도 즐거웠어요. 그렇게 하루하루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서 지냈더니 조금 나아지더라고요. 하나 배운 건 이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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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지 톤의 에코 퍼 재킷 가격미정 H&M, 베이지 싱글 버튼 블레이저 32만8천원·베이지 와이드 팬츠 19만8천원 모두 모던에이블, 골드 링 이어링 1백28만원, 골드 볼드 링 1백18만원 모두 이에르, 블랙 포인티드 토 블로퍼 가격미정 73아우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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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물론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도피하듯 프랑스로 떠나기도 했고, 살사를 배우기도 했어요.
경험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다 보니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더군요.
스스로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진 뒤로는 좋아졌어요.

삶을 대하는 방식이 특별해 보여요.
기본적으로 열심히 사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제가 가진 에너지도 많고요. 사람들은 열정적이라고 말하는데, 가슴 뜨거운 그런 거라기보다는 책임감인 것 같아요. 어떤 것을 내가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무언의 책임감이죠.


인생의 롤모델이 있나요?
혹은 멘토 같은 거요. 한 분 꼽자면 고 김영애 선생님이 제 스승이에요. 제가 아는 어른 중에 가장 꼰대 같지 않은 세련된 분이셨죠. 돌아가시기 전에 뵈었는데 선생님이 살아온 삶, 선생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 연기 앞에서의 겸손함 등이 다시 한 번 존경스럽고 멋있게 느껴지더군요. 무엇보다 죽음을 대하는 무덤덤한 태도는 쇼크였어요. '아, 이럴 수도 있구나' 싶었거든요. 강렬했어요. 사실, 인생 참 별거 없잖아요. 별거 없는 인생 별거 있게 살다가 멋있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인생에 멘토가 있다는 건 어쩌면 축복이에요.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하신 말씀이 있어요. 연기를 잘하고 싶으시대요. "그때 그 캐릭터를 왜 그렇게밖에 연기하지 못했는지 너무 후회돼"라고 말씀하시는데 찌릿했죠. 스스로 양심에 가책을 느꼈어요. 매너리즘에 빠져 노력하지 않았던 날을 후회했죠. 저도 연기에 대한 갈증이 심해요. 잘하고 싶어요. 정말로, 진심으로, 너무 잘하고 싶어요.


연기 앞에서 절대 타협하지 않는 것이 있나요?
'고집부리지 말자'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해요. 드라마든 영화든 현장에서의 상황이나 분위기가 정말 중요한데 배우의 한마디가 좋은 분위기를 망쳐버릴 수 있거든요. 연출, 작가, 배우, 스태프 등 모든 게 착착 맞아떨어져도 힘든 촬영 현장에서 배우의 한마디는 엄청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가끔 융통성 없이 행동하는 저 자신과 절대 타협하지 않으려고 해요.


원론적인 질문입니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모범 답안 같지만 캐릭터로 기억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화면 속 캐릭터가 곧 나인 것 같은 그런 강렬함을 주는 배우요. 인생 캐릭터요? 모든 작품 속 캐릭터가 좋았지만… 앞으로 만날 인생 캐릭터가 더 기대됩니다.


노력하는 사람을 당할 자는 없다.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을 이길 자는 더더욱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배우 문정희를 볼 수 있다는 건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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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지 톤의 에코 퍼 재킷 가격미정 H&M, 베이지 싱글 버튼 블레이저 32만8천원·베이지 와이드 팬츠 19만8천원 모두 모던에이블, 골드 링 이어링 1백28만원, 골드 볼드 링 1백18만원 모두 이에르, 블랙 포인티드 토 블로퍼 가격미정 73아우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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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실루엣으로 고급스러움을 더한 스티치 디테일의 캐멀 벨티드 롱 코트 2백18만원 쁘렝땅.

7년 만에 다시 만난 문정희는 그대로였다. 특유의 밝음도, 상냥한 목소리도, 몸에 밴 배려심도. 모든 게 여전했다.

Credit Info

에디터
정소나, 이예지
사진
안지섭
패션 스타일링
임하영
프롭 스타일링
정재성
헤어
김민선
메이크업
강연진(알루)

2019년 11월호

이달의 목차
에디터
정소나, 이예지
사진
안지섭
패션 스타일링
임하영
프롭 스타일링
정재성
헤어
김민선
메이크업
강연진(알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