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 네이버 포스트 네이버 밴드 유튜브 페이스북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ISSUE

ISSUE

가습기 살균제 논란 8년

가습기 살균제 논란이 불거진 지 어느덧 8년이 흘렀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수는 올해 7월 기준 6,459명이었으며, 이들 가운데 1,415명이 목숨을 잃었다.

On August 04, 2019

3 / 10
/upload/woman/article/201907/thumb/42458-379512-sample.jpg

서울 마포구 애경타워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애경타워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2011년 수면 위로 떠오른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5년이 지난 2016년에서야 사건 전담수사팀이 구성됐고 최대 가해 업체로 지목된 옥시 대표가 처벌을 받는 등 피해 수습에 나서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가해 업체들을 규탄하고 있다. 특히 애경산업이 판매한 ‘가습기 메이트’ 제품 피해자들은 회사 측의 사과조차 받지 못한 상황이라고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산소통 없이 살 수 없는 삶…”

‘가습기 메이트’로 인해 폐섬유화와 천식을 앓게 된 만 14세 딸의 엄마 손 모 씨는 평일 점심마다 애경타워 앞에서 1인 피켓 시위를 벌인다.

손 씨는 애경산업의 진심 어린 사과와 피해에 상응하는 배상을 받아야만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가습기 메이트’를 사용했다. 좋은 제품일 것이라 믿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병원에서 딸에게 네블라이저(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사용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도 의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2012년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딸은 결국 천식 판정을 받게 됐다. 치료를 이어가던 손 씨는 2015년 12월 담당의로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해 접수를 했고 이듬해 4월 검진을 받았다. 같은 해 8월 손 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딸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 2단계(가능성 높음) 환자라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가습기 살균제가 딸의 건강을 망쳤다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는 “아이에게 정말 미안했다”며 “아이를 위해 고른 제품이 오히려 독이었다는 배신감에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애경산업은 2016년 손 씨의 딸이 ‘가습기 메이트’ 아동 피해자로 판정되자 환경기술원을 통해 손 씨의 연락처를 문의했다. 손 씨는 애경으로부터 곧 연락이 올 것이라 기대했지만, 당시 따로 연락이 오진 않았다.

손 씨는 “딸은 국가에서 인정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니까 제대로 해결될 것이라 기대했다”면서 “그런데 애경은 2년이 지난 지난해 9월에서야 연락을 했고 올해 3월까지 합의에 대한 얘기가 오갔는데도 달라진 건 없다”며 “지금은 만남을 주도한 직원들과 연락이 끊겼고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면서 마주쳐도 외면하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피해자 김태종 씨의 아내는 ‘가습기 메이트’ 단독 사용 피해자다. 지난 2008년 7월,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는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간 김 씨는 담당의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의사는 “여기 있어도 죽고, 큰 병원에 가도 죽고, 집에 가도 죽는다”고 말했다. 성가대를 할 정도로 건강했던 아내가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진단받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속출한다는 뉴스를 접했고, 아내도 피해자일 것이라는 의심이 들어 애경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당시 애경 직원은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김 씨의 아내는 현재 13% 남은 폐 기능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자가호흡이 불가능해 간병인이 24시간 상주해야 한다. 아내의 외출은 병원에 갈 때만 허락된다. 아내의 긴 투병 생활로 집안은 풍비박산 났다. 김 씨에 따르면, 지금까지 병원비 등으로 지출된 돈만 1억 8,000여 만원이다.

김 씨의 아내는 정부로부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 3단계(가능성 낮음)를 판정받았다. 과거 폐 질환을 앓았다는 이유로 낮은 단계를 받은 것이다. 김 씨는 단계 구분으로 피해 정도를 판단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피해 단계가 낮다 보니까 애경에서는 눈길도 안 준다”며 “지원금도 적게 나와 치료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게 사실”이라고 속상해했다. 이어 “정부로부터 특별구제 판정을 받아 5,800여 만원의 구제계정비용을 지원받았지만, 전체 치료비의 3분의 1밖에 안 돼 어려운 건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피해자 조순미 씨는 유해성이 입증된 옥시 제품 50%, 애경 제품 50%를 사용해 피해를 입었다. 그는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2년 동안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고 2009년 11월 급성 호흡곤란 증세로 인해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현재 폐 질환 외에도 간 양성 종양, 흉선 종양, 섭식장애 등 전신 질환을 앓고 있다. 2013년부터는 수면 호르몬이 전혀 분비되지 않아 다량의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다. 그는 “일반인들이 복용하면 응급실에 실려 갈 수 있는 양의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잔다”며 “약을 먹어도 2시간 정도밖에 못 잔다”고 설명했다.

조 씨는 10kg에 달하는 휴대용 산소통을 메고 세계 각지를 다니며 피해 사실을 알리고 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날까지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그는 “정부에 가습기 살균제 증후군으로 인한 전신 질환을 보고했지만, 폐 질환을 제외하고는 인정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피해자가 직접 나서서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게 아니면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참담한 현실에 눈물을 흘렸다. 이어 “가해 기업들은 피해자들을 지원하기는커녕 진심 어린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면서 “진상규명과 피해 크기에 상응하는 배상을 할 때까지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애경산업, 피해자 외면 ‘비웃고 뒷말까지’

애경산업은 지난해 9월부터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 10명과 수차례 만났다. 피해자 A씨는 애경 직원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직원의 따뜻함과 위로가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남을 이어갈수록 애경 직원들은 피해자를 농락하는 태도와 말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직원은 피해자들과 가깝게 지내며 소통했지만 피해자들과 접촉하기 3개월 전 사건 무마를 위해 브로커에게 6,000만원을 건넨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직원은 브로커에게 돈을 건넨 것은 사실이지만 사건 무마를 목적으로 한 돈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A씨는 “처음에 만났던 애경 직원은 자신의 아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아빠의 마음으로 나왔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한다’ 등 따뜻한 말로 피해자들을 위로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몇 번 만난 뒤에는 특정 피해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돈이 급해 보여 곧 합의를 볼 거 같다’ ‘이 정도 액수면 합의할 의향이 있을 거 같다’는 식으로 피해자를 기만했다”며 “심하게는 특정 피해자를 가리켜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무슨 말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는 등 뒷말을 늘어놓기도 했다”고 밝혔다.

일부 피해자들은 거듭되는 애경 직원들의 무례한 태도에 배상보다 강력한 처벌을 받길 원한다고 말했다. 피해자 B씨는 “기자회견을 비롯해 관련 활동을 할 때 숨어서 비웃고 조롱하는 직원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분개했다.

특히, 애경은 몇몇 피해자들을 선별해 ‘선지급금’ 명목의 돈을 제안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측 제보에 따르면, 이후 애경 직원이 피해자로 인정받은 10명 중 일부에게 선지급금 제안을 다시 생각해달라며 회유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받은 피해자 C씨는 피해자 전원이 같은 메시지를 받은 것인지 직접 확인했지만, 못 받은 사람이 더 많았다고 밝혔다.

기자는 피해자들이 언급한 해당 직원들의 입장을 듣고자 연락을 시도했지만 “외부 접촉은 홍보팀에서 대응한다”며 피하려 했다. 한때나마 피해자들과 직접 소통했던 직원도 지금은 “홍보팀에서 모르는 내용은 나도 모른다”며 “곤란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피켓 시위, 기자회견 등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 ‘가습기넷’은 지난 7월 ‘김기태 가습기넷 공동운영위원장의 자전거 국토 종단 출발’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피해 사실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전신 질환 인정 및 판정 기준 대폭 완화 ▲피해 단계 구분 철폐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 ▲가습기 살균제 피해 TF팀 구성, 정례 보고회 개최 ▲범정부 차원의 피해자 추모 행사 개최, 문재인 대통령 참석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기태 가습기넷 공동운영위원장은 “현재 의학적 인과관계를 증명해야만 피해자로 인정받는 제도 때문에 지원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많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5월 기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자 6,389명 중에 구제급여 대상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피해 단계를 삭제하지 않으면 지원조차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피해 구제를 제대로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수차례 면담을 요청하고 약속 이행 촉구 운동을 벌여도 응답이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관련 기업에 대한 수사도 중요하지만 피해자들이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CREDIT INFO

취재
김연주 기자(여성경제신문)
사진
문인영 기자(여성경제신문)
기사제공
여성경제신문
2019년 08월호

2019년 08월호

취재
김연주 기자(여성경제신문)
사진
문인영 기자(여성경제신문)
기사제공
여성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