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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준, 저를 기억하시나요?

돌연 국적 포기로 입국 금지당한 유승준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가는 젖어 있었다.

On June 01, 2015

‘가위’ ‘나나나’ ‘열정’으로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했던 유승준. “군대 가겠다”고 외치다가 돌연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서 뭇매를 맞고 한국 연예계에서 사라졌던 그가 입국 금지 13년 만에 대중 앞에 섰다. 그의 얼굴에는 다시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잘못을 뒤늦게 깨달은 것에 대한 후회, 지금까지 사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등 다양한 감정이 묻어 있었다.

국민 앞에 무릎을 꿇었고 눈물로 용서를 구하는 그는 때때로 지나간 과거가 허무한지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유승준이 대중 앞에 서기로 한 건 자신의 생각과 속내를 가감 없이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편집이나 왜곡 없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대중으로부터 심판받고자 용기를 냈다.

군 입대를 2주 앞두고 돌연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게 된 이유, 시민권 취득 후 자처한 기자회견을 위해 입국했다가 공항에서 입국 금지 통보를 받고 돌아가야 했던 일화, 지난 13년간 제대로 된 해명 한 번 하지 못한 채 ‘거짓말쟁이’ 신세로 살아온 사연을 털어놓으며 몇 번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바람은 오직 하나, 가족과 당당하게 한국 땅을 밟을 수 있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가수 유승준입니다. 솔직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먼저 국민 여러분께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 힘들게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고개 숙인 채 한참을 망설이던 그는 이내 무릎을 꿇었다. 힘겹게 말문을 연 유승준의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에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눌한 말솜씨로 제 마음을 전부 전달할 수 없을 것 같아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 자리는 심경고백 자리도 아니고, 변명을 하러 나온 것도 아닙니다. 국민 여러분과 법무부 장관님, 병무청장님, 출입국 관리소장님, 그리고 한국에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사죄드리고자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군 입대를 2주 앞두고 돌연 국적을 포기했던 유승준은 출입국 관리법 11조 3항에 의거 입국 금지 대상자로 분류됐다. 대한민국의 공공의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는 외국인에게 국가가 내리는 조치다. ‘아름다운 청년’이라 불리던 그에게 국민이 받은 배신감이 반영된 결과다.

그는 왜 13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일까?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많았다. 입영 의무 면제 연령 제한이 풀렸으니까 한국에 오겠다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도 있다. 혹자는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게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그동안 여러분 앞에 서지 못한 이유는 용기가 없어서였습니다. 제가 저지른 일인데도 마치 피해자가 된 느낌이었어요. 몇 번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했지만 제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저를 향한 비난이나 질책에 상처가 컸어요.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냥 도망가고만 싶었고, 한국을 멀리하는 게 제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서 만나는 한국인의 응원에도 마냥 웃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꺼워지는 벽을 느낄 때마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착잡한 표정으로 흐느끼는 그에게서 힘들었던 과거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모두 저를 싫어한다는 생각에 마음의 문을 닫은 것 같습니다. 해외 활동에서 한국 후배 가수들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슈퍼주니어 친구들도 와서 ‘응원한다’고 하는데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지….”치기 어린 마음에 피하고만 싶었던 한국행, 그가 13년 만에 용기를 낸 데는 가족이 있었다.

“아빠는 유명한 사람인데 왜 한국에 못 들어가?”라고 순진하게 묻는 아들 지효군의 말이 비수가 됐다. 그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뿌리를 찾아주고 싶었다. “아들이 제 노래에 맞춰 춤을 출 정도로 자랐어요. 제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저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상처받기 시작하더라고요. 오늘도 인터뷰하러 간다고 했더니 결과는 언제 나오느냐고 물었어요.

저의 과거 문제로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꼭 아이 때문만은 아니에요. 오랫동안 미국에 살면서 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족을 위해서라도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유승준은 지난해 7월 한국 출입국관리소에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귀화 의사를 전달했다. 물론 병무청에도 입대하고 싶다고 밝혔다. 오랜 시간 그를 지켜본 가족과 지인들도 모두 “잘 선택했다”고 응원했다. 전혀 문제될 게 없어 보였는데 나이가 걸림돌이 됐다.
 

“38세까지 입대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작년에 지원했어요. 병무청에서도 ‘잘 선택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틀 뒤 불가 통보를 받았습니다. 38세까지 입대할 수 있는 80년대생과는 다르게 70년대생은 36세가 지나면 징집 대상에서 제외되더라고요. 결국 나이 때문에 무산됐습니다.”

그는 애초부터 잘못됐다고 말했다.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 스케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해병대에 가도 좋을 체격이다”라는 기자의 말에 “네, 그것도 좋죠”라고 답한 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다음 날 아침 “유승준 해병대 자진 입대”라는 내용의 기사가 대서특필됐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유승준에게 “군대에 언제 가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보도된 후 만나는 사람들마다 ‘대한민국 남자로서 현명한 결정을 했다’고 하는 거예요. 그 말에 ‘감사합니다’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죠. 뮤직비디오 촬영 중 무대에서 떨어지면서 허리 디스크가 생겼는데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군대는 무조건 갈 생각이었는데 제 의도와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에 당황스러웠습니다. 해병대 홍보대사를 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에요. 저는 금연 홍보대사를 했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당시 유승준은 타국에 6개월 이상 체류하면 영주권이 박탈되기 때문에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평소 아들의 가수 생활을 탐탁찮게 여겼던 아버지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는 게 어떻겠느냐며 그를 불러들였다. 군 입대를 불과 2주 앞둔 때였다.“일본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어요. 입대를 앞둔 사람은 출국이 안 됐는데 당시 병무청 직원 두 명이 보증을 서준 덕분에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었죠.

그리고 미국에 가서 부모님께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올 작정이었어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군대에 가면 오랫동안 보지 못할 가족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 생각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는 그를 붙잡고 울었다.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살지 않겠니? 네가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는 회사 식구들을 생각해서라도 군 입대를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렴.”당시 아버지의 심경은 <우먼센스>와의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군대에 가면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저러나 싶었습니다.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겠다며 미국 시민권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걸 눈물로 설득했어요. 이 모든 게 제 결정인데 모든 비난과 손가락질은 승준이가 받고 있으니 애비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답답할 뿐입니다.”
 

스물다섯 살, 대부분의 생활을 매니저에 의지했던 ‘어린’ 유승준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남자가 국적을 포기하면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는 게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미국에서 시민권을 취득한 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했던 생각은 ‘아, 일하러 가는구나’였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죠. 그냥 제 심경이 왜 변했는지, 제가 처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 이해해주실 줄 알았어요. 공항에 내려서 많은 기자들이 나와 있는 걸 보고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출입국 관리소에서 제 여권을 보고 영어로 말할 때 ‘아, 뭔가 잘못됐구나’ 싶었습니다.” 유승준은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돌아간다면 이와 같은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규칙적인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군대에 거부 반응이 없었습니다. 군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도 있었고요. 아버지도 저도 군대는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갈 거예요.”두 손 모아 기도하듯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한국행을 향한 간절함이 느껴졌다. 한국에 들어오는 길을 열 수만 있다면 미국 시민권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아내와 아이들과 떳떳하게 한국 땅을 밟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게 뭐라도 할 겁니다. 저를 사랑해주셨던 분들, 한순간 제 실수로 배신감 느꼈을 분들께 직접 사죄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선처해주세요.”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던 유승준은 고심 끝에 마지막 말을 뱉었다. “국민 여러분,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죄송합니다.

일찍 사죄를 구했어야 했는데 용기가 없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늦게나마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다시 한국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유승준이라는 이름을 다시 회복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많은 분들께 실망감을 안겨드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진심을 다한 70분. 후회와 반성, 회한과 슬픔이 공존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과거 유승준의 아버지가 기자를 붙잡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 새끼, 내 가족만 생각했지 이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솔직히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밥 한 숟가락을 떠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승준이를 보면 할 말이 없습니다.

마음고생하면서 이룬 가수 생활인데 그냥 저 하겠다는 대로 둘걸 하는 후회도 합니다. 국민들께는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눈물로 용서를 구한 인터뷰에도 민심은 여전히 싸늘하다. 그는 과연 ‘그리운’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CREDIT INFO

취재
이예지 기자
사진
서울문화사 DB, 신현원 프로덕션, 영화 <쌍성계 : 고대 전설의 부활> 스틸컷
2015년 06월호

2015년 06월호

취재
이예지 기자
사진
서울문화사 DB, 신현원 프로덕션, 영화 <쌍성계 : 고대 전설의 부활>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