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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의 맛

On May 28, 2015

중식은 불의 맛이고 일식은 칼의 미학이라면 한식은 장맛일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표현하기 힘들었던 된장의 맛에 대하여.


한식 가옥은 보통 동쪽에 평지보다 한 단 높여 만든 장독대를 둔 구조로 되어 있다. 장독대 위에는 큰독, 중간 독, 작은 독의 키를 맞추어 놓고 매일 세수시키듯 닦아 반질반질 윤이 흐르도록 잘 손질하였다. 대체로 맨 뒷줄에 있는 큰독은 간장독이고 중간 독에는 된장과 고추장, 막장 등을, 작은 독에는 장아찌와 깨, 고춧가루를 저장해두었다. 장독대의 모습은 그 집안 주부의 얼굴이라고 하여 정성껏 손질했는데, 이 풍습은 저장식품이 얼마나 식생활에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하는 것이다.

한국 음식에는 간장, 고추장, 된장이 안 들어가는 음식이 없으며, 장맛은 모든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요인이다. <증보산림경제>에 ‘장은 모든 음식 맛의 으뜸이다’라고 쓰여 있다. 집안의 장맛이 좋지 아니하면 좋은 채소와 고기가 있어도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없다고 함께 적혀 있다.

 


이처럼 한식의 맛은 장맛에서 시작된다. 된장은 간장과 더불어 콩을 발효시킨 대표적인 전통 식품이다. 발효식품은 그 지역의 기후, 토양 등의 자연환경에 크게 영향받는다. ‘백성을 살리는 데는 콩의 힘이 가장 크다.’ 조선시대의 실학자 이익이 <성호사설>에 적은 말이다. 이처럼 콩은 한반도 어느 지역에서나 쉬이 자라는 작물이다. 현재에도 향토음식이라고 하면서 여기저기서 두부 요리가 가지각색으로 발전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지명 중 식품에서 유래된 것은 드문데, 그중 ‘두만강(豆滿江)’은 ‘콩이 가득 찬 강’이라는 뜻이다. 지천에 널린 콩을 자연환경에 맞춰 오랜 시간 동안 발효해 만든 된장은 맛뿐만 아니라 곡류 단백질에서 부족하기 쉬운 필수아미노산, 지방산, 유기산, 미네랄, 비타민 등을 보충해 현대에 와서 영양적인 면모로 위상을 떨친다.
 

 


된장이 되기까지

재래 된장은 예로부터 가정에서 만들어온 것으로, 콩으로 메주를 만들어 소금물이 담긴 독에 담가 숙성시킨다. 발효가 끝나면 메주 덩어리를 걸러내 다른 장독에 담아 소금을 더해 발효시키면 된장이,
액체 부분을 불에 올려 달이면 조선간장이 만들어진다.
 

된장의 맛

콩, 소금, 물. 된장은 단 3가지 재료만으로 만들어졌지만, 설명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맛이 난다. 햇볕과 바람, 자연의 흐름 속에 메주와 소금, 물이 뒤엉켜 미생물에 의한 화학적인 변화로 맛이 생성된다. 장을 만드는 처음 과정은 가을에 수확한 대두를 삶아 메주를 만드는 것이다. 볏짚에 매달아둔 메주에 곰팡이와 효모가 번식하면 이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두는데, 1~2개월 정도 숙성시킨다.

대두는 단백질 40%, 지방 20%, 섬유질과 3단당과 같은 올리고당을 20% 정도 함유하고 있다. 약 28% 농도의 소금물에 메주를 담가 숙성시키는 동안 메주의 곰팡이와 효모, 기타 알 수 없는 미생물이 생성하는 다양한 효소로 당화 과정, 알코올 발효, 산 발효, 단백질 분해 과정 등이 일어나면서 고유의 맛과 향이 생기게 된다. 향은 단내, 구운 내음, 콩 내음, 메주 내음이 전해지고, 맛으로는 짠맛, 단맛, 신맛, 간장 맛, 쿰쿰한 맛 등이 있다.

단백질의 분해 산물인 아미노산과 저분자량의 펩타이드를 함유하고 있는 된장은 짠맛을 덜 느끼게 하고, 생선류와 육류의 비린내와 누린내를 가리며, 신맛과 쓴맛, 떫은맛을 약화하는 완충 작용을 한다. 또한 짠맛, 단맛, 쓴맛, 신맛, 감칠맛까지 맛의 균형이 이미 잡혔기 때문에 음식에 풍미를 더한다. 그렇다면 간장처럼 된장 또한 오래 묵힐수록 좋을까? 그렇지만은 않다.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에
발표된 논문 <전통 된장의 숙성 기간에 따른 감각·화학적 품질 특성>에 따르면 1년 숙성부터 9년 숙성 된장의 수분, 조단백질, 조지방 등의 일반 성분과 염도는 숙성 기간에 따르는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한다.

또한 콩에 포함된 필수지방산인 리놀렌산과 리놀렌산 함량 비율은 9년 숙성된 된장에서도 유지되어 전체 지방산의 55% 이상을 차지했다. 게다가 아플라톡신 생성 곰팡이 등 위해미생물은 9년 동안 숙성시킨 된장에서도 검출되지 않아 위생상으로 안전했다. 숙성 기간 동안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것은 표면 색도였으며, 숙성 기간에 따라 밝기와 황색도가 점점 짙어지는 경향이 보였다. 또한 숙성 기간에 따라 점도, 간장 냄새, 비린 냄새, 메주 냄새, 간장 맛 등 약간씩 변화가 있었는데, 아래의 도표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전통 된장의 숙성 기간에 따른 감각·화학적 품질 특성

※ <전통 된장의 숙성 기간에 따른 감각·화학적 품질 특성> 논문에서 발췌.

 

스페인 알리시아 연구소의 된장 맵 

알리시아는 세계 최고의 셰프로 꼽히는 스페인의 스타 셰프 페란 아드리아가 만든 세계 최초의 요리과학연구소다. 샘표는 2012년부터 알리시아의 요리과학자, 영양학자, 셰프들과 함께 간장, 고추장, 된장, 쌈장 등 한국 대표 양념을 유럽의 다양한 식재료와 요리법에 적용해봤다. 장을 처음 접하는 알리시아 연구소 사람들은 장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으니 일단 모든 재료와 요리법에 장을 사용해 테스트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연구를 통해 한국의 장들이 각 재료와 일대일로 만났을 때 어떤 맛이 나고, 각각 조리법에 따라 대입하면 어떤 특성이 나타나는지를 연구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150개의 레서피를 완성했고 장을 처음 접하는 외국 셰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장 맵(Jang Map)’을 만들었다. 아래 ‘된장 맵’은 식재료별로 어떤 요리법이 어울리는지 한눈에 알 수 있게 만든 표다. 알리시아 연구소에서 말하는 된장의 이상적인 사용 방법은 달걀 요리나 고기스튜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된장은 달걀의 맛을 풍부하게 하고, 고기스튜 맛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또한 치즈의 맛을 더욱 고급스럽게 하며, 양념된 고기의 맛에 풍미를 더할 때 사용하기에 좋다고 전했다.
 



상훈 드장브르 셰프가 전하는 된장의 맛

된장과 간장 등 우리네 장이 세계로 알려지게 된 것은 ‘발효’가 푸드 트렌드로 떠오르는 시점부터였다. 미디어, 음식 관련 업계 CEO, 셰프 등이 모여 현재 요리계의 트렌드와 미래를 전망하는 컨퍼런스 겸 박람회인 마드리드 퓨전 2012의 주제가 ‘발효’였고,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을 받게 되어 한식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장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푸드 트렌드를 이끄는 ‘발효’는 서양 셰프에게 새로운 식문화를 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서양에도 치즈, 햄, 와인 같은 발효 식품이 있지만, 새로운 미식을 전하기 위해 전 세계 각지의 발효 음식을 다양한 요리에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네 된장은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분자 요리의 대가이자 한국계 벨기에인으로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인 래르 뒤 탕(L’air du Temps)을 운영하는 상훈 드장브르 셰프는 된장을 사용하면 부족한 2%의 맛을 충족시킨다고 한다. 된장찌개를 가장 좋아하는 그지만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그의 레스토랑 메뉴에는 된장을 넣었는지 안 넣었는지 모를 정도로, 맛의 미묘함만을 담는다. 정통과 뿌리는 중요하지만, 시대에 맞게 정통과 현대적인 감성을 창의적으로 융합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훈 드장브르가 자란 벨기에는 프랑스와 근접해 있어 요리 방식이 프랑스와 아주 흡사하다. 따라서 버터와 소금으로 기본 맛을 낸다. 버터는 재료에 풍미를 더할 뿐 아니라 재료들끼리의 조화로움을 이끌어낸다. 예를 들어 약한 맛의 채소와 강한 맛의 채소를 볶을 때 버터를 넣으면 서로의 강하고 약한 점이 보완되는 중재자 역할을 한다. 버터를 사용할 때 된장을 약간 섞으면 된장의 강한 맛이 줄어들면서 된장이 지닌 다채로운 식물의 향과 꽃향기까지 첨가된다고 한다. 상훈 드장브르 셰프는 된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재료는 유제품과 치즈, 숙성해서 만든 햄 등
발효된 재료라고 말한다.

또한 양파구이를 할 때 된장을 아주 얇게 바르면 환상적인 맛을 자아낸다고 전한다. 요리 방법은 다음과 같다. 껍질을 벗기지 않고 양파를 통째로 낮은 온도의 오븐에서 1시간 30분 동안 굽는다. 구운 양파를 오븐에서 꺼내 잘라 양파 사이사이에 된장과 레몬즙을 아주 얇게 바른다.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 우려낸 채소주스를 뿌리면 된장의 닫혀 있던 향과 맛이 열리면서 트러플 향과 함께 햄을 넣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라고.

“된장은 사납지만 사람을 잘 따르는 충견 같아요. 공격적인 요소가 있지만, 겁을 먹지 않고 길들이면 묵묵하게 잘 따르죠. 맛과 향이 강한 된장 또한 다양한 시도를 하면 된장이 지닌 다양한 뉘앙스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되어 그 매력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중식은 불의 맛이고 일식은 칼의 미학이라면 한식은 장맛일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표현하기 힘들었던 된장의 맛에 대하여.

Credit Info

기획
양연주 기자
사진
김나윤
디자인
김다연
참고자료
샘표 장프로젝트, <발효식품(이론과 실제)>(김귀영 외 지음, 교문사), <한국식생활풍속>(강인희 지음, 삼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