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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신 교수의 음식과 윤리

한,미,일 판례 비교로 살펴보는 법과 윤리 관계에서의 음식 윤리

On August 20, 2014

어느 사회에나 관습과 법, 윤리가 있다. 다시 말해 사회는 관습, 법, 윤리라는 세 가지 규범이 상호 보완하며 안전망을 형성함으로써 유지된다. 관습은 사회 구성원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그 기원이나 의미를 자세히 모르는 경우도 많으며 비이성적인 요소도 많다. 윗사람에게 술을 따를 때에는 두 손을 사용해야 하는 우리 문화도 그 예이다. 대부분이 ‘왜’ 그렇게 하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사회적으로 따돌림이나 눈총을 받을 수 있기에 관습을 지킴으로써 안정적으로 사는 길을 택한다. 법은 사회 구성원의 행위를 외적 측면에서 판단하여 위배되는 행위에 대해 타율적(강제적)으로 처벌을 가함으로써 사회를 유지한다. 하지만 아무리 법망이 촘촘해도 바람직하지 않은 모든 행위를 규제하기란 사실상 힘들다.

윤리는 관습에 비해 이성적이고 법에 비해 자율적으로 행위에 대해 내면적인 판단을 하도록 한다. 양심의 가책도 윤리에 기인하는 것이다. 윤리는 우리의 삶이 안전하고 평화로우며 행복하도록 돕는다.관습은 국가나 지역마다 다르다. 법도 국가 간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다른 판결이 나온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글로벌한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윤리가 요즘 시대에는 규범의 근거나 기준으로 자리 잡기에 걸맞아 보인다. 특히 음식 관련 규범의 경우 음식 윤리를 거시윤리(macro-ethics)나 세계윤리(global ethics)의 관점에서 확대, 정립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 질식 사망 사고를 일으킨 ‘미니컵젤리(mini-cup jelly)’ 사건에 대한 한·미·일 세 나라의 판례를 살펴보며 거시적 음식 윤리에 관해 생각해보자.

미니컵젤리는 곤약을 함유한 단단한 젤리를 작은 컵에 개별 포장해 한입에 후루룩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품으로 우리나라에도 ‘젤리x’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여러 나라에서 이것과 유사한 제품을 먹던 어린아이들이 기도가 막혀 사망하는 질식 사고가 일어났다. 일본에서는 이 미니컵젤리에 의한 질식 사고가 떡에 의한 질식사 다음일 정도였다. 미니컵젤리가 질식사를 유발하는 주요인으로는 모양(원형 혹은 난형), 작은 크기 및 섭취법(한 번에 들이마시는 법), 물리적 성질(물컹한 경도와 응집성, 탄성, 불용성, 점착성) 등이 있다. 질식 사고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기도를 막아 일어나는데, 미니컵젤리의 경우 흡입하는 순간 젤리가 입안으로 갑자기 들어와서 후두덮개가 미처 후두 입구를 닫기 전에 젤리가 기도로 들어감으로써 기도 폐쇄를 일으킬 수 있으며 제품 특성상 젤리의 일부만 기도를 막아도 질식하기 쉽다. 미니컵젤리를 먹다가 질식하여 사망한 어린이 수는 한국 3명(2001~2007년), 미국 6명(1999~2002년), 일본 9명(1995~2008년), 타이완 3명(1999~2002년), 오스트레일리아 1명(2000년), 캐나다 1명(2000년) 등으로 집계되었다. 그 가운데 한국, 미국, 일본에서 사망한 어린이의 부모들이 미니컵젤리 제조업자나 수입업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한국과 미국 법정은 미니컵젤리에 결함이 있고 그 제조업자나 수입업자가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반면, 일본 법정은 제조업자나 수입업자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판결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미니컵젤리는 영양, 안전성, 기능성은 없지만 맛이 달고 색깔이 예쁘며 탱탱한 질감이 재미있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기호식품이다. 그런데 이 탱탱한 질감을 부여하는 겔화제가 결과적으로 질식을 유발하는 것이다.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기호식품이므로 질식이 걱정된다면 안 먹으면 그만인 셈이지만 음식의 본질은 사회 공동체에서 개인이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고 윤리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바람직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결과적으로 미니컵젤리는 윤리적으로 바람직한 음식이라 볼 수 없다.

법은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는 법만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법과 윤리가 상호 보완하며 조화를 이룰 때 잘 유지될 수 있기 때문에 법 이전에 음식을 만들고 파는 사람들의 윤리적 마인드가 우선되어야 법의 효력이 극대화된다. 고대에는 황금률과 같이 법규범과 윤리규범이 서로 다르지 않았지만 오늘날 사회는 법과 윤리가 분리되어 있다. 윤리에는 어긋나지만 법적으로는 제재를 하지 않는 일도 왕왕 일어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가 봐도 반윤리적인 법률이나 판결은 그 정당성에 의문을 품게 하며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법과 윤리는 긴밀하게 상호 관련을 맺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미니컵젤리에 ‘결함이 있다’는 판결을, 일본에서는 ‘결함이 없다’는 판결을 냈다. 바로 여기에서 거시적 음식 윤리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드물기는 해도 분명히 질식사를 유발하는, 게다가 그 대상이 어린아이인 제품에 음식 윤리를 대입시킨다면 ‘제품에 이상 없다’는 판결은 절대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거시적 음식 윤리의 확립이 필요한 때이다.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식품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 분야의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음식 윤리를 대중에 알려 우리 사회에 올바른 식문화가 정립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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