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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반기는 부드럽게 감기는 그 맛 …잔치국수

On January 15, 2014

법가에서 국수를 부르는 이름은 ‘승소’, 스님을 미소 짓게 만든다는 뜻이다. 음식을 탐하지 않는 절간의 스님도, 아침부터 밭일하느라 배곯는 농부도, 잔치에 모인 손님들까지 ‘구수한 즐거움에 빠져 흥성흥성 들뜨게 하는 맛’, 국수. 인생의 애달픈 회한과 흥겨움이 공존하는 국수 한 그릇의 매력.

삶의 상념을 고명으로 얹어

음식에 관한 전설적인 시, 백석의 <국수>는 시인의 천재적 재능에 ‘국수’에 얽힌 복잡다단한 시상이 더해져 우리 마음에 착 달라붙는다. 멸치나 고기로 낸 진한 육수에 얇은 면을 삶아 말아 내고 달걀지단과 애호박볶음을 고명으로 올린 국수장국은 전통적인 결혼식이나 생일잔치, 회갑연 등에서 국숫발처럼 길게 잘 살라는 의미로 손님들에게 내어졌기 때문에 ‘잔치국수’라 불린다. 양반가가 아니면 잔칫날에나 먹을 수 있던 국수에는 기대와 흥겨움의 정서가 녹아 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백석은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을 좋아한다 하였다.

근대에 들어서 일본의 ‘마른 소면’ 제조법이 들어오고 밀가루가 구호물자로 보급되면서 국수는 바야흐로 서민 음식의 상징이 되었다. 농촌 두레의 아침 새참상에는 밥 대신 국수에 탁주 한잔이 곁들여 나왔고 혼자 끼니를 때우는 이들의 손은 자연스레 국수 봉지로 향했다. 시인 박정대는 국수에 대해 ‘국수를 삶을 때 맛있게 삶는 방법 중의 하나는 자신의 상념을 국수 고명으로 살짝 얹어놓는 것, 결국 국수를 맛있게 먹는 것은 겨울밤을 건너가는 외로운 영혼들의 일이니까, 오늘도 나는 내 상념의 건더기 스프를 넣고 나만의 국수를 삶는다, 그러니까 지금은 바야흐로 국수 삶는 계절’이라 이야기한다.

바가지에 구멍 뚫어 만들던 국수 가락

한국의 전통적인 국수는 크게 반죽을 밀어 칼로 썰어 만드는 절면과 반죽을 구멍이 뚫린 틀에 넣고 눌러 만드는 압면으로 나뉘었다. 반죽을 치대 늘어트리며 만드는 납면(수타면)은 글루텐 함량이 적은 우리 밀가루와는 맞지 않아 사용되지 않았다. 절면이 칼국수로 발전했다면 지금의 잔치국수와 닮은 것은 압면이었다. 밀가루는 귀하므로 주로 메밀에 녹말을 섞어 사용하였다. 조선왕조에서 궁중 연회 음식을 기록한 <진찬의궤>나 <진연의궤> 등에는 국수장국에 관한 내용이 20여 차례에 걸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역시 주로 메밀을 이용한 것이고, 백석의 시에 나오는 국수도 메밀국수로 추측된다. 옛 어르신들이 결혼식에서 먹던 국수도 메밀국수로, 지금의 것과는 달리 색이 ‘희스무레’하였다. 1909년 출간된 <조선만화>에는 당시 국숫집의 모습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조선의 음식점에는 어느 곳을 보아도 국수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국수를 좋아하는 국민으로 보인다. 국수는 눈과 같이 하얗고 일본의 소면이나 말린 국수보다도 훨씬 희다. 어느 음식점이라도 음식점마다 한구석에 국수를 제조하는 장소가 있어 밖에서 보인다. … 솥 위에는 커다랗고 두꺼운 조판 모양의 물체가 있고 이 물체에는 5~6치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에 국수 반죽을 넣는다. 위에서 절굿공이를 내리누르면 밑에 망이 있어 그 망으로 국수가 실 모양으로 따라 내려와 끓고 있는 가마솥에 떨어진다.’ 조선 시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에는 가정에서 녹두국수와 메밀국수, 밀국수를 압착식으로 만드는 법이 나와 있는데 ‘바가지 바닥에 구멍을 뚫어 녹말풀을 담아 끓는 물 위에 아주 높이 들고 박을 두드리면 밑으로 흘러내린다’고 설명되어 있다.

구포항 일대를 하얗게 물들인 국수 말리기

메밀 반죽을 손국수틀에 넣어 뽑은 압면은 ‘아무렇게나 막 뽑아 삶아 먹는다’는 뜻의 막국수로, 밀가루 반죽을 넣고 손국수틀에 뽑은 압면은 부산의 밀면으로 발전했다. 우리가 지금 흔히 먹는 건조 밀가루 면, 소위 ‘소면’은 일제강점기 때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얇은 면을 건조하는 기술은 일본에서 들어왔는데 우리의 소면과 일본의 소면은 만드는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조선 시대 이덕무 검서관의 시문집 <청장관전서>에는 일본의 소면 제조법이 나온다. 밀가루를 소금물에 반죽한 뒤 길게 줄처럼 늘이고 반죽이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기름을 발라 늘이고 숙성하는 과정을 반복해 가늘게 만든 뒤 대나무에 걸어 말리는 것, 반면 구포항 일대에서 생겨난 우리식 건조 밀가루 면은 반죽 틀에서 압면법으로 면을 뽑아 낸 뒤 말리는 것이었다. 낙동강 유역의 구포항은 예로부터 낙동강 인근의 자원을 여기저기로 실어 나르는 선박이 모여드는 대규모 조창으로 부두 노동자들로 붐비는 곳이었는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위쪽 지역에서 끊임없이 내려오는 피난민들까지 더해지며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러다 보니 곯은 배를 채울 음식이 필요했고 미국의 구호물자로 밀가루가 풀리자 국수 공장이 줄을 이어 생기게 된다. 가내수공업 형태의 작은 국수 공장에서는 손국수틀로 밀가루 면을 뽑아 집 앞마당이나 옥상에 면발을 걸어놓고 말렸는데, 구포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은 국수에서는 특유의 짭조름한 맛이 났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쫄깃하고 짭짤한 면발에 멸치와 디포리로 시원하게 맛을 낸 국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별미였다. 구포 일대는 국수 공장만 20곳에 국수 가게가 셀 수 없이 들어찰 정도로 성행했다. 대규모 공장에서 소면을 만들어 전국으로 유통하면서 구포의 명성은 시들해졌지만, 멸치 육수에 삶은 소면을 말아 먹는 잔치국수는 서민들의 솔푸드가 되었다.

한국판 우동 한 그릇 삼각지, 옛집
한자리에서 30여 년을 지켜온 주인 할머니가 있는 옛집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도시 미담이 있다. 20여 년 전, 한 사내가 사기를 당해 사업이 망하고 아내도 떠나 모든 것을 잃은 채 용산역 일대의 식당을 배회하며 끼니를 구걸한다. 가는 식당마다 모두 거절당한 뒤 들어간 곳은 할머니의 국숫집. 돈이 없었지만 며칠을 굶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던 그는 일단 국수 한 그릇을 시켜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다시 한 그릇을 더 청한다. 할머니는 그릇 한가득 국수를 채워 건넸고 그것마저 다 먹은 그는 벌떡 일어나 도망치기 시작한다. 도망치는 그를 쫓아 나오며 그의 뒤에 대고 할머니가 소리친다. “그냥 가, 뛰지 말고, 다쳐!” 그 한마디에 힘을 얻은 그는 이민을 가서 사업가로 성공하고, 훗날 방송에 이 집이 소개된 것을 보고 방송국으로 전화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는 이야기다. 유명한 이 미담만큼이나 옛집의 국수 맛은 따뜻하다. 연탄불에서 은근히 끓인 멸치 육수를 소금과 파로만 간해 소면을 푸짐하게 말아 낸다. 고명으로는 유부와 얇게 썬 다시마가 올라간다. 심심한 듯 감칠맛 도는 국물 맛에 다시마 줄기 얹은 부드러운 면발이 잘도 넘어간다. 국수는 달라는 대로 더 준다. 그때그때 손으로 말아 내는 김밥에서는 어머니의 손맛이 난다. 여름에는 비빔국수와 콩국수도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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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뉴 김밥 1천5백원, 온국수(잔치국수) 3천원, 비빔국수 3천5백원, 콩국수 7천원
    영업시간 06:00~21:00(매월 2·4째 토요일 휴무)
    주소 서울 용산구 한강로1가 231-23
    문의 02-794-8364

이것저것 펼치고 먹는 잔칫날 국수 체부동, 체부동 잔치집
한쪽 벽에 잔뜩 붙은 정치인과 방송인의 사인지가 이 집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경복궁역 근처, 금천교 시장 골목에 자리 잡은 잔치집에는 그야말로 잔칫집 상에 오르는 메뉴가 가득하다. 당연히 잔치국수가 기본, 꽤나 진한 국물의 멸치 육수에 말아 김가루 듬뿍 올린 대중적인 맛의 국수다. 밀가루 소면으로 만든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외에 메밀 면 온국수도 판매해 옛날 메밀잔치국수 맛을 추억하는 어르신들에게도 인기다. 굴전, 해물파전 등 각종 전류와 술맛 당기는 안주가 한가득해 술 마시러 오는 손님도 많다. 잔칫날 한 상 받은 듯 푸짐한 안주에 술 마시고 국수로 입가심하기 좋다.

  • shop info

    메뉴 잔치국수(大) 4천원, 비빔국수(大)·잔치모밀 4천5백원씩, 굴전·해물파전 1만원씩, 골뱅이무침 1만3천원
    영업시간 09:30~24:00(연중무휴)
    주소 서울 종로구 체부동 180
    문의 02-730-5420

투박한 인심 한가득 효창동, 맛있는 잔치국수
대로에 위치한 좁고 길고 허름한 국숫집, 작은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이곳은 성인 네댓 명만 들어가도 꽉 찰 정도로 작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손님으로 북적인다. 17년 동안 이곳에서 국수를 판 주인장이 ‘배가 든든해야 마음도 든든하다’는 마음으로 국수를 듬뿍 말아 낸다. 가게나 국수의 모양새는 투박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갓 삶아 찬물에 헹군 소면을 따뜻한 육수에 여러 번 토렴하는 모습에서 ‘아무렇게나 만들어 팔지 않는다’는 소신이 느껴진다. 성인 남자가 먹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푸짐한 잔치국수에는 달걀지단과 김, 부추, 호박나물 등 고명까지 실하게 올라가 있다. 고추양념이 기본으로 얹어져 얼큰하고 풍성하게 즐기는 국수다. 저렴한 가격이지만 곱빼기를 시켜도 가격은 그대로다. 춥지 않은 날에는 가게 바깥벽에 붙은 테이블도 펼친다. 벽을 마주하고 빙 둘러싼 사람들이 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국수를 먹는 모습이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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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뉴 잔치국수·비빔국수 3천원씩
    영업시간 10:00~20:00(일요일 휴무)
    주소 서울 용산구 효창동 245
    문의 02-706-3752

통통한 옥수수 면발의 독특한 맛 논현동, 두레국수
두레국수는 강남 일대에서 국수 맛집으로 명성이 높다. 문 여는 시각부터 손님들이 줄 서기 시작해서 오후 한두 시만 되어도 그날 준비한 육수가 모두 떨어진다. 얇게 저민 쇠고기와 쑥갓이 듬뿍 올라간 ‘두레국수’는 그 모양새부터 기존 잔치국수와는 조금 다르다. 제주도의 고기국수와 비슷한 것 같아도 육수는 멸치와 각종 채소만으로 우린 맑은 국물이다. 채소를 함께 우려서 그런지 국물에서 단맛이 두드러진다. 노랗고 통통한 면발 역시 독특한데 밀가루 소면이 아닌 옥수수와 감자녹말로 만들어 통통 튀는 듯, 잘리는 면발이 강원도의 올챙이국수를 연상케 한다. 단맛 도는 맑은 육수와 어우러지는 옥수수 면에 알싸한 쑥갓의 향이 중독성 있다. 두레국수 외에 곱창전골도 인기. 국수가 떨어져도 곱창전골과 비빔국수 등은 영업시간 동안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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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뉴 두레국수·비빔국수·비빔밥 7천원씩, 곱창전골 1만3천원
    영업시간 10:00~21:00(13:30~15:30 브레이크 타임, 주말과 공휴일 휴무)
    주소 서울 강남구 신사동 626-79
    문의 02-3444-1421

법가에서 국수를 부르는 이름은 ‘승소’, 스님을 미소 짓게 만든다는 뜻이다. 음식을 탐하지 않는 절간의 스님도, 아침부터 밭일하느라 배곯는 농부도, 잔치에 모인 손님들까지 ‘구수한 즐거움에 빠져 흥성흥성 들뜨게 하는 맛’, 국수. 인생의 애달픈 회한과 흥겨움이 공존하는 국수 한 그릇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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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강태희,김나윤
에디터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