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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꿈꾸는 이 시대 농부를 만나다 (3)

On October 04, 2013

도심 속 옥상 텃밭이야 이제 특별한 것도 아니지만, 저스틴의 옥상 텃밭에는 남다른 열정과 노력이 숨어 있다. 커다란 쓰레기통 속에서 꿈틀거리며 퇴비를 만드는 지렁이들 덕분에 뙤약볕 아래서도 튼튼하게 자라는 채소를 보면, 그의 숨은 열정을 직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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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코넛 껍질로 만든 퇴비용 가루.
2 옥상과 연결된 저스틴의 옥탑방에는 농업에 관련된 책이 쌓여 있다.

옥상 텃밭에서 진화한 도시농업을 시도하는, 저스틴 폴라드

도심 속 옥상 텃밭이야 이제 특별한 것도 아니지만, 저스틴의 옥상 텃밭에는 남다른 열정과 노력이 숨어 있다. 커다란 쓰레기통 속에서 꿈틀거리며 퇴비를 만드는 지렁이들 덕분에 뙤약볕 아래서도 튼튼하게 자라는 채소를 보면, 그의 숨은 열정을 직감하게 된다.

도시농업 발전을 도모하는 지식 공유 커뮤니티

어릴 적 태권도를 배우고 미국에서 동양학을 전공하면서 자연적 이끌림으로 서울에 살기 시작한 지 5년이 다 되어가는 저스틴. 그는 요리하기를 좋아하고 가드닝에 관심이 많아 작년에 마음 맞는 친구 두 명과 함께 텃밭을 일구고 쿠킹 클래스를 열었다. 올해에는 남산에 공동체 텃밭을 구해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고, ‘서울도시농부(Seoul City Farmers, http://www.meetup.com/seoul-city-farmers)’라는 모임을 만들어 유기농법, 채소 키우기, 지속 가능한 농업기술과 음식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단 세 명에서 출발한 팀이지만 지금은 한국인, 미국인, 아랍인, 인도인, 호주인, 프랑스인 등등 다양한 국적의 회원이 200여 명이나 된다. 각 나라에서 행해지는 농사 정보를 나눔으로써 새로운 지식을 축적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농법을 개발해내는 즐거움이 크다.

한 달에 한두 번 물을 주는 위킹 가든 베드(wicking garden bed)

커뮤니티를 주관하는 저스틴은 호주에서 연구된 위킹 가든 베드(wicking garden bed)를 직접 만들어 옥상에서 작물을 키우고 있다. 가든 베드로 작물을 키워본 적이 있는 이라면 매일매일 물 줘야 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도 아니고 한 달에 한 번만 물을 줘도 된다는 것은 아주 획기적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대지는 다양한 토양층을 이룬다. 겉은 말라 보이지만 뿌리가 박혀 있는 부분의 토양은 축축하게 수분을 머금고 있어 빗물만으로도 수분이 충분히 유지된다. 가든 베드를 흙으로만 채우지 않고 수분을 머금고 배수가 잘될 수 있도록 다양한 층을 만들어주는 것이 포인트다. 가장 아랫부분에는 하이드로볼(hydro ball: 순수한 황토를 800℃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낸 경량토)을 깔아 토양의 과습이나 건조를 방지한다. 그 위에는 천을 깔아 수분을 머금는 기능을 부여한다. 버리는 옷이나 이불, 쓰고 난 커피 백 등 어떠한 소재의 천이든 상관없다. 그다음 흙을 덮고 파이프를 꽂아 직접 급수할 수 있도록 만든다. 비가 많이 오는 날 물이 자연적으로 배수될 수 있도록 가든 베드의 옆 부분에 구멍을 뚫는다. 흙에 수분이 부족하지 않으니 물을 많이 줄 필요가 없어 물 자원을 낭비하지 않을 뿐더러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인에게는 꼭 필요한 시스템이다.

3 위킹 가든 베드는 옥상에 두어야 하기 때문에 가볍고, 이동성이 있도록 바퀴를 달아 디자인 했다. 또한 힘의 무게중심이 아래로 가기 때문에 밑바닥을 튼튼하게 설비했다.
4 저스틴이 휴지통으로 제작한 퇴비 용기.
5 옥상에는 너비와 깊이가 다른 위킹 가든 베드 3개가 있다. 깊이와 너비에 따라 식물이 잘 자라는지 체크한다.

더욱 손쉽게 친환경 퇴비 만들기

저스틴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퇴비’다. 근대 농업은 화학비료나 농약 등을 사용해 흙이 오염되고 힘이 저하되어 지속 가능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저스틴은 흙에서 자란 유기물로 퇴비를 만들어 다시 흙으로 돌려보낸다. 그는 버려진 코코넛 껍질과 음식물 쓰레기로 퇴비를 만든다. 코코넛 껍질 1.5kg을 대야에 넣고 물 10L를 부어 1~2시간 두면 두 배로 부푼다. 손으로 문지르면 껍질이 살살 벗겨지는데 이것을 말려 지렁이가 있는 커다란 쓰레기통에 넣는다. 음식물 찌꺼기, 커피 찌꺼기, 잡초 등을 코코넛 껍질 가루 속에 넣는다. 지렁이가 돌아다니며 유기물들을 분해해 퇴비가 완성되어 삽으로 뒤적이지 않아도 된다. 저스틴의 퇴비 용기 하단에는 쌀통과 비슷하게 네모진 구멍이 나 있는데, 그 구멍 위에 5cm 간격으로 철사를 꽂아두었다. 철사 사이로 삼지창 갈고리를 긁으면 지렁이가 돌아다니면서 만들어진 퇴비가 약간씩 떨어져 필요한 만큼 내리면 되어 매우 편리하다.최근 그의 흥미를 끄는 것은 가든 베드에 어떤 작물을 함께 키울지에 관해서다. 모든 식물은 자라면서 유기물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콩은 질소를 만들어낸다. 질소를 필요로 하는 작물을 함께 심는다면 특별히 비료(비료에 가장 많이 들어 있는 유기 성분이 질소다)를 뿌리지 않아도 잘 자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자연에 가장 가깝게 작물을 키우고 도심에 살면서 불편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의 즐거운 고민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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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 파수꾼 꿀벌을 지키는 사람들‘어반 비스 서울(Urban Bees Seoul)’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달 미국 농무부에서는 작년 겨울에 미국 꿀벌 군집의 31%가 줄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유럽에서도 지난해 22%의 꿀벌 군집이 없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09년 토종벌들이 괴질로 95% 이상 폐사해 농업이 직격탄을 맞은 적도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꿀벌은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작물 중 71종의 수분 작용을 돕는다고 전한다. 2억 년간 지구 생태계를 지켜온 꿀벌이 떼죽음을 당한다는 건 곧 식물의 번식이 멈춰 생태계 질서가 무너진다는 뜻이다.

생태 도시를 만드는 꿀벌

꿀벌이 사라지는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도시화’를 가장 유력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 생존의 근간이 되던 산과 숲, 나무와 꽃이 사라지면서 꿀벌이 집을 잃고 헤매다 죽거나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된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뉴욕 맨해튼에 사는 금융인, 법조인들은 아파트 베란다 또는 옥상에 벌통을 놓고 벌꿀을 키운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일본의 긴자에서는 15만 마리나 되는 꿀벌을 키워 ‘도시에서 키운 유기농 벌꿀’ 하면 긴자를 떠올릴 정도다. 영국은 도심에서 벌꿀을 키우는 사람만 170명을 넘어섰다. 파리, 밀라노, 서울의 시청에서는 양봉을 하여 직접 꿀벌을 키우고 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자연의 균형과 질서를 회복시켜 생태 도시를 구축하기 위해 사라져가는 꿀벌을 불러들이고 있다.

1 벌집은 습기가 차지 않고 다른 곤충과 싸우는 일이 없도록 땅에서 떨어진 받침대에 올려둔다. 또한 벌이 잘 다닐 수 있도록 문은 남서쪽을 바라보게 두고, 기온차가 크면 벌의 체력 소모가 많아지므로 힘을 아끼도록 햇빛이 드는 곳이 좋다.
2 지난 6월 6일 노들텃밭에서 처음으로 진행된 ‘도시 양봉 스타트업 프로그램’에 15명이 모였다. 이들은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벌통을 갖게 되었다.
3 채밀하기 위해 꿀이 찬 소비를 고른다.

꿀벌을 지키는 다섯 남자

작년 서울시에서 시청 옥상에 처음 벌통을 놓은 것을 시작으로 민간 최초로 서울에서 도시 양봉을 시작한 ‘어반 비스 서울’(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이라고도 불린다). 방송대 농학과를 다니며 자연스럽게 꿀벌에 관심이 생긴 박진 씨는 함께 수업을 듣던 이상민 씨, 이상하 씨와 함께 양봉을 배우고 싶었지만, 도시에서 배울 곳도 키울 곳도 마땅치 않아 고민했다. 그렇다면 우리 손으로 도시 양봉을 이끌어보자는 취지에서 같은 뜻을 지닌 이재훈 씨, 이용상 씨와 함께 작년에 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이들에게 꿀벌은 꿀을 모으는 도구가 아닌 하나의 생명이자 지속 가능한 농업을 이끌어주며, 더 나아가서는 생명 공동체의 유기적 매개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꿀을 판매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많은 사람이 꿀벌의 중요성을 알고, 키웠으면 하는 바람에서 ‘도시 양봉 스타트업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꿀벌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꿀벌이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관리하는 방법 등을 교육해 개인적으로 도시 양봉을 할 수 있게 돕고, 서울도시양봉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가입을 유도함으로써 도시 양봉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4 채밀하기 전 밀도(밀랍을 자르는 칼)를 끓는 물에 담가 가열한 뒤 밀개의 밀랍을 제거한다. 떨어져 나온 밀랍을 씹으면 꿀껌을 씹는 듯한 느낌이 든다.
5 채밀기에 밀랍을 제거한 소비를 넣어 수동으로 돌리면 꿀이 흘러나온다.
6 도심에 심은 나무와 꽃, 채소는 농약을 치지 않기 때문에 유기농 꿀을 채집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3월에는 벚꽃 꿀, 5월에는 아카시아 꿀, 6월 말에는 밤꽃 꿀, 가을에는 잡화 꿀 등 계절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도시 텃밭 옆 도시 양봉장

초록빛으로 일렁이는 노들텃밭 옆 양봉장, 서울 하늘 아래 벌집이 줄지어 서 있고 수백 마리의 벌이 날갯짓하는 모습이 한 편의 영화 장면 같다. 꿀벌은 한 번 벌침을 쏘면 바로 죽기 때문에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공격하지 않아 위험성은 아주 적다. 그러나 벌에 대한 사람들의 막연한 공포심으로 인해 도시 양봉을 할 수 있는 장소는 협소할 수밖에 없다. 노들텃밭과 갈현텃밭에 양봉장을 설치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습기와 온도 변화에 민감한 벌이 장마철과 겨울철에 잘 자라도록 보살펴야 하고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기 때문에 전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 등 손이 많이 간다. 사명감을 갖고 시작한 일이지만 그 과정은 고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은 일본의 긴자와 같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꿀벌 수십만 마리가 날갯짓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다.

도심 속 옥상 텃밭이야 이제 특별한 것도 아니지만, 저스틴의 옥상 텃밭에는 남다른 열정과 노력이 숨어 있다. 커다란 쓰레기통 속에서 꿈틀거리며 퇴비를 만드는 지렁이들 덕분에 뙤약볕 아래서도 튼튼하게 자라는 채소를 보면, 그의 숨은 열정을 직감하게 된다.

Credit Info

포토그래퍼
정문기,김나윤,강태희
어시스트
최지은
에디터
<에쎈>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