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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의 서울 맛집 이야기

연남동 하하

On October 03, 2013

5년 전 모 일간지에 ‘중화요리 4대문파’라는 제목으로 특집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이 기사는 일간지로는 최초로 음식을 주제로 해 4면에 달하는 분량이 게재되어 이슈가 되었다. 16명의 화교 원로 요리사들이 조리복을 입고 한자리에 모여 사진 촬영을 했고, 이는 국내 화교 12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사건이었다.

5년 전 모 일간지에 ‘중화요리 4대문파’라는 제목으로 특집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이 기사는 일간지로는 최초로 음식을 주제로 해 4면에 달하는 분량이 게재되어 이슈가 되었다. 16명의 화교 원로 요리사들이 조리복을 입고 한자리에 모여 사진 촬영을 했고, 이는 국내 화교 12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사건이었다. 국내에 거주하는 화교 요리사들의 계보도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그 기사는 장장 세 달간에 걸쳐 취재가 진행되었다. 기사는 1970~1980년대에 활약했던 화교 요리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모든 정보를 증언을 통해 정리해야 했기에 소개에 소개를 받으며 화교 원로 요리사들과 직접 만나야 했다. 공식 행사에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화교 원로 요리사들을 한 명 한 명 만나는 일은 마치 007 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다이내믹했다. 원로 화교 요리사들의 비밀스러운 회식에 겨우 소개를 받아 참여하기도 하고 대만과 중국에 거주하는 전설의 요리사들을 만나기 위해 국내 입국 날짜에 맞춰 3분 대기조가 되어야 했다. 심지어 화교 결혼식에 참석해 ‘축가’를 부르기도 했다. (이미 은퇴한 화교 원로 요리사들은 좀처럼 한자리에 모이기 힘들지만 결혼식만큼은 꼭 참여한다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축가를 부른 이유도 원로들의 환심과 신뢰를 얻기 위해서였다.) 화교 요리사들은 유대 관계가 돈독해 마치 큰 대가족처럼 연결되어 있었고 필자는 이 취재 기간을 통해 화교들 사이에서 ‘반가운 손님’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화교 사이에는 ‘한 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라는 말이 있는데 원로 요리사들은 그 말을 입증이나 하듯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늘 필자를 초대한다.
화교의 대표적인 거주 지역인 연남동은 화교 요리사들의 단골 술집들이 꽤 많다. 늦은 밤 연남동 화교 골목에 가면 얼굴이 꽤 알려진 중식 스타 요리사들이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삼삼오오 모여 술잔 기울이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연남동 중식당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식당 규모가 작고 음식 가격이 저렴하며, 화교가 직접 운영한다는 점이다. 거기에 하나 더, 화교를 상대로 술안주를 만들기 때문에 그 맛에 ‘오리지낼러티’가 있다. 대부분 중식은 오랜 세월을 거쳐 한국 사람의 입맛에 맞게 변화해왔지만 이 근방의 식당에서는 화교 가정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조리법을 사용해 본토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소개할 ‘하하’는 화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단골을 확보하고 있는 작은 식당이다. 연남동에 거주하는 화교를 상대로 가정식을 만들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곳이다. 하하를 운영하는 이지하 씨는 올해로 60세가 되는 화교 2세대다. 전문 요리인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중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웠다고 한다. 이지화 씨는 옛날식 중화요리뿐 아니라 잔칫날이 되면 집에서 만들어 먹던 요리로 메뉴를 구성했다. 이곳을 추천하는 화교 요리사들은 모두 입을 모아 ‘집에서 만들어 먹던 가정식’이라고 소개했다. 화교 원로 요리사들이 이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면 흐뭇한 얼굴로 어린 시절 추억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럼 하하에는 어떤 요리들이 있기에 이처럼 화교 원로 요리사들의 사랑을 받는 걸까? 하하에는 요리류, 작은 요리류, 식사류, 탕류 등으로 구분된 30여 가지의 요리가 있다. 메뉴의 가짓수는 적지만 가지볶음, 동파육, 산둥소유기, 피단두부, 돼지귀무침, 산라탕, 완자탕 등 일반 중식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메뉴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화교들의 잔칫날 주로 먹던 음식들은 더욱 이색적이다. 산둥소유기가 그 대표적인 잔치 음식이다. 이 요리는 닭을 살짝 튀겨서 다시 한 번 찐 요리다. 요리 위에 뿌려 먹는 소스가 일품인데 닭을 찔 때 흘러나오는 육수에 마늘과 식초를 간해 첫맛이 새콤하면서 씹을수록 닭고기 살과 어우러져 깊은 풍미를 느끼게 해준다. 동파육도 잔치 음식 중 하나다. 목살 부분을 두툼하게 썰어 각종 양념으로 오랜 시간 조려냈는데 술안주로 그만이다. 가지를 살짝 튀겨 웍에 넣어 볶아낸 가지볶음도 이 집의 인기 메뉴다. 두툼한 가지 살에 각종 양념의 맛이 깊이 배어 특별한 감동을 준다.
평상시 집에서 즐겨 먹던 요리는 작은 접시에 담아 부담이 없다. 삶은 돼지 귀를 썰어 오이와 마늘 그리고 양념으로 버무린 돼지귀무침, 돼지 내장을 주재료로 사용한 돼지내장무침, 감자채무침 같은 음식은 중국 가정에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요리이다.
가정식으로 유명한 만큼 하하는 만두도 맛있다. 물만두, 왕만두, 군만두, 찐만두 4가지를 판매하는데 각기 다른 피와 속 재료를 사용해 매일 만두를 빚는다. 특히 왕만두는 돼지고기, 표고버섯, 콩, 마른 새우 등 재료가 8가지나 들어간다. 언젠가 만두를 먹으면서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만두의 피와 소를 다르게 해서 네 가지나 만들어 파냐며 ‘허허’ 웃던 한 화교 원로 요리사의 표정이 생각난다. 화교 원로 요리사들이 애환과 추억을 느끼며 술 한잔 기울이는 곳, ‘하하’에서는 추억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info
메뉴 산둥소유기 1만8천원, 동파육 1만5천원, 가지튀김볶음 1만4천원, 돼지귀무침 4천원, 감자채무침 4천원, 찐만두ㆍ군만두 5천원, 왕만두 개당 1천8백원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11시 30분(둘째, 넷째 일요일 휴무)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연남동 229-12
문의 02-337-0211

전우치

음식칼럼니스트, 에디터, 신문기자, 방송작가, 여행기자, 영상 디렉터, 프로젝트 디렉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온 콘텐츠 제작 전문가다. 클럽컬처매거진 [bling], 패션 매거진 [MAPS]의 편집장을 거쳐 현재 크리에이터스 매거진 [ELOQUENCE]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호화대반점> <포장마차프로젝트> 같은 새로운 형태의 음식 프로젝트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5년 전 모 일간지에 ‘중화요리 4대문파’라는 제목으로 특집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이 기사는 일간지로는 최초로 음식을 주제로 해 4면에 달하는 분량이 게재되어 이슈가 되었다. 16명의 화교 원로 요리사들이 조리복을 입고 한자리에 모여 사진 촬영을 했고, 이는 국내 화교 12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사건이었다.

Credit Info

글&사진
전우치
에디터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