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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음식연구가 김현숙 씨가 전하는 자연의 맛

古家의 봄

On October 03, 2013

김포 배천 조씨 종가에서 한식당 ‘고가(古家)’를 운영하는 김현숙 씨. 160년이 넘는 앞마당 장독에는 직접 담근 장과 식초, 효소가 익어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맛을 내는 발효 양념으로 무쳐낸 반찬들이 건강한 봄맛을 전한다.

배천 조씨 ‘고가’의 내림 손맛

배천 조씨 집성촌인 김포시 고촌면 풍곡리. 논밭 사이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면 오래된 고택이 보인다. 배천 조씨 종가가 4대째 살고 있는 종갓집이자 건강 밥상을 차려 내는 한정식집 ‘고가’다. 볕 잘 드는 곳에 장독이 줄지어 서 있고 장독대를 지나 160년 된 고택의 대문을 열면 고풍스러운 안채가 나온다. 종가 며느리이자 이곳의 안주인 김현숙 씨가 부엌에서 문을 열고 반갑게 맞는다.
20년 동안 국내 굴지의 출판사에서 일하며 중역을 지내기도 한 그녀에게 지금은 종가음식연구가, 약선요리연구가, 발효음식연구가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물론 지금까지의 길이 결코 녹록하지는 않았다. 종가의 전통을 이어가길 원하는 시댁에서 직장 생활도 탐탁지 않게 여겼는데, 유산으로 받은 종가를 음식점으로 만들겠다고 하니 어르신들의 노여움이 컸다. 하지만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만 하는 성미이다.
고향이 전라도인 그녀는 친정어머니의 어깨너머로 배운 음식 솜씨로 어른들께 음식 잘한다는 칭찬을 받았다. 종갓집이다 보니 한숨 돌리면 찾아오는 제사는 별 문제도 아니었다. 만만찮은 제수 준비에도 희열을 느꼈을 정도니 말이다. 시어머니는 부잣집에서 자라나 고급스러운 음식도 많이 접하고 종갓집에서 손님 접대도 많이 해봐서 음식 담는 방법도, 만드는 실력도 남달랐다. 친정어머니에게 배운 기본기를 시어머니 덕분에 단단히 다질 수 있었다.

배기다림의 미학, 발효 음식

그녀의 보물 1호는 대대로 물려받은 옹기다. 100년이 되었을지 200년이 되었을지 모를 씨간장이 담겨 있고 그녀가 철마다 담근 수많은 식초와 청이 자연의 흐름 따라 익어가고 있다. 청이건 식초건 발효된 지 1년 미만의 것은 아예 장독 뚜껑을 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천일염 또한 10년 이상 묵은 것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 설탕 대신 잘 발효된 매실청을 쓰고, 마늘 대신 마늘식초로 음식의 잡내를 없앤다. 김치에 생강 대신 생강청을, 양파를 넣는 음식에는 양파청을 넣어 깔끔하게 맛을 낸다. 이렇게 발효 양념으로 맛을 낸 음식은 깊은 맛과 감칠맛이 더해져 기품마저 느껴진다.
그녀가 발효 양념에 집중한 이유는 남편 때문이었다. 젊었을 때부터 몸이 약했던 남편은 세 번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고 항상 몸이 편치 않아,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 바로 섭생이다. 양평에서 우연히 맛보게 된 천연 발효 식초로 양념한 음식을 먹어보니 씹으면 씹을수록 풍미가 느껴지고 배불리 먹고 난 뒤에도 속이 편했다. 그 당시에는 천연 발효 식초나 청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문헌으로 나와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수도 없는 실패를 거듭하면서 다양한 천연 재료로 식초와 청을 만들어냈고, 지금은 수백 가지가 되는 식초와 청을 배합해 색다른 맛의 양념을 개발하고 있다. 그녀가 만든 천연 양념은 단순히 양념이 아닌 남편의 병을 고친 ‘약념’이기도 하다. 이곳 고가의 음식도 제철 재료에 약념을 더하니 약선이나 다를 바 없다.

1. 절기를 오롯이 담아내다 웅어냉채

웅어는 보리 이삭이 팰 무렵부터 수확이 끝나는 오뉴월까지 잡혀 늦봄이 제철이다. <자산어보>에 ‘횟감 중에 최고’라고 적혀 있을 정도로 예로부터 맛 좋기로 유명하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서식하는 웅어는 김포가 주 산란지이며, 요리로는 배천 조씨가의 내림 음식이자 향토 음식인 웅어감정이 대표적이다. 잊혀가는 생선 웅어를 알리기 위해 그녀가 주관하는 웅어축제가 오월에 고가에서 열린다. 싱싱한 웅어를 썰어 우엉, 달래와 함께 새콤달콤한 발효 양념을 곁들인 웅어냉채로 봄 입맛을 되살린다.

2. 시원한 국물이 나른함을 깨우다 순무백김치

순무는 기후와 토양 조건이 맞는 경기도 김포와 강화에서만 소량 생산되어 순무 요리가 발달했다. <동의보감>에는 ‘순무는 맛이 달고 오장에 이로우며 소화를 돕고 눈과 귀를 밝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보랏빛 껍질에 흰 속살을 지닌 순무로 물김치를 담으면 붉은빛이 곱게 우러나와 보기에도 좋다. 배즙과 사과즙을 갈아 넣어 달짝지근하면서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3. 밥 한 그릇 비우는 짭조름한 감칠맛 무릇장아찌와 무릇곰

봄이 되면 무릇 순을 거둬 장아찌를 만들고 뿌리째 채취해서 약한 불에 조청과 함께 고아 곰을 만든다. 장아찌를 만들 때는 단순히 된장이나 고추장에 박거나 간장물에 담그지 않고 다섯 번의 공정 과정을 거친다. 무릇을 간장에 담갔다 건져내 하루 정도 말리고 고추장과 약초로 만든 효소로 버무려 6개월간 둔다. 다시 고추장과 도라지효소 혹은 더덕효소에 버무려 재워둔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에 발효와 숙성을 거쳐 깊이가 더해진다. 무릇곰은 종가 음식으로 쑥과 민들레, 질경이와 같은 산야초와 함께 조청에 고아 노란 콩가루에 찍어 먹으면 소화를 도와줘 속이 더부룩할 때마다 꺼내 먹는다.

4. 지친 몸에 기운을 돋우다 효소에 조린 삼겹살

각종 약재를 넣고 삶은 삼겹살을 각종 효소청을 섞어 만든 조림장에 조리면 건강한 달큼한 맛이 전해진다.

info. 김현숙 종부는 요리 교실을 열어 오랜 기간 연구해온 발효 음식 제조법을 알려나가고 있다. 쿠킹 클래스 기초반에서는 효소의 개념과 각종 식초 및 효소를 만들고 그것을 이용한 응용 요리 등을 배울 수 있다.

김포 배천 조씨 종가에서 한식당 ‘고가(古家)’를 운영하는 김현숙 씨. 160년이 넘는 앞마당 장독에는 직접 담근 장과 식초, 효소가 익어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맛을 내는 발효 양념으로 무쳐낸 반찬들이 건강한 봄맛을 전한다.

Credit Info

요리
김현숙
장소협찬
고가
포토그래퍼
최해성
에디터
양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