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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그룹이 떠나는 이유

UpdatedOn July 24, 2019

2.5세대 혹은 3세대라 불리는 걸 그룹 중 멤버가 이탈하거나 해체하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놀랄 일은 아니다. 영원히 함께하자던 약속이 지켜지지 못하는 일을 겪는 건 걸 그룹을 응원하는 이들이 거쳐야 할 일종의 운명이다. 그런데 왜 걸 그룹은 영원하지 못할까? 이들의 행보가 멈춰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여다봤다.

CONTRIBUTING EDITOR 강예솔

우리가 혹은 그들이 걸 그룹을 소비하는 방식

걸스데이가 사실상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AOA와 EXID는 일부 멤버가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프리스틴은 빛도 보지 못하고 해체했다. 주결경을 비롯한 몇 명만이 회사에 남았다. 7년 차 걸 그룹이 각자의 길을 걷는 최근 흐름은 한동안 유효하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누군가는 벌써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조금 바꿔 말하면 누군가는 멤버들의 개인 활동, 그러니까 솔로 음악가로서의 활동이나 연기, 예능 활동 등을 응원하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것에 불만을 가지거나 심지어 싫어하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현상을 한 번만 더 다르게 설명하면, 걸 그룹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는 음악보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이야기다.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걸 그룹 자체를 좋아하다 보니, 사람을 좋아하게 돼 그들이 하는 음악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 사람이 뭘 하든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나쁜 건 아니지만 음악이 별로여도 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앨범이 많이 팔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게 무엇이 문제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음악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건 우선 그룹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걸 그룹의 성장은 팬덤 규모가 커지고, 콘서트장의 크기가 커지고, 월드 투어 국가가 늘어나는 것이 전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린 나이에 활동을 시작해 5년에서 7년까지 길다면 긴 성장 시간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이들에게 성장은 산업 규모에서의 성장이 전부가 아니라 음악가로서, 구성원들끼리 하나의 공동체로서 성장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상업적 성과가 중시되다 보니, 한국에서 걸 그룹은 너무나도 천연덕스럽게 대상화된다. 성적 대상화와 같은 과정을 은연중에 겪는 가운데, 상업적 성과라는 목표와 함께 이들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연대체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처럼 변해간다. 물론 상업적 성과와 내실의 성장을 함께 다질 수 있는 이상적인 길도 있다. 팬덤과 연대해 조금씩 그 시도를 늘리고, 함께 주목받으며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미국의 틴 팝 스타를 비롯한 팝 디바들, 그리고 채의림을 비롯한 중화권 팝 스타들도 좋은 사례다. 모험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한국은 여자친구나 트와이스처럼 오히려 같은 스타일을 반복하며 시그너처 사운드와 팬덤을 공고히 하고자 노력한다. 물론 그런 방향도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동어반복은 곧 매너리즘과 연결된다. 노래를 부르고 선보이는 당사자나 회사가 그것을 모른다면, 그건 그것대로 안타까운 문제다.

한국의 걸 그룹은 안전함을 택하는 편이다. 그래서 더욱 대상화된다. 이러한 대상화의 구조는 기획사뿐만 아니라 팬덤에게도 영향을 준다. 팬덤은 자신들이 원치 않는 행동을 하면 화를 내고 좋아하지 않는다. 사태라고 부르기도 뭐한, ‘Girls Can Do Anything’ 폰케이스를 썼던 손나은이나 책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아이린을 봐도 그렇다. 대상화는 걸 그룹과 팬덤 사이의 사랑에 위계질서를 만들고,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걸 그룹은 시쳇말로 ‘존버’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좀 더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을 택하기도 하며,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김예림에서 림 킴(Lim Kim)으로 나타나 발매한 음반 <SAL-KI>가 주는 메시지는, 그러니까 음악 산업 속에서 여성이 주체로서 활동하기 힘들다는 메시지는 걸 그룹에도 적용된다. 아니, 오히려 더 크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걸 그룹 멤버는 솔로 활동이 가능하다. 예능도, 드라마도, 영화도 걸 그룹 멤버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각의 멤버가 만나는 새로운 환경은 매력적이다. 자신이 속해왔던 사회, 속해왔던 시스템과 다른 무언가를 만나서이기도 하겠지만, 팀 속에 있던 개인을 존중해주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떤 이유든 간에 걸 그룹 멤버는 개인 활동이 가능하고, 그러한 개인 활동은 자연스럽게 잦아진다. 개인 활동을 그룹의 분열로 바라보는 팬덤도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각자의 삶을, 각자의 활동을 존중해주지 못한 채 그룹을 이어가야 한다면 그만큼 안타까운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사람들은 그룹 전체가 지니는 ‘케미’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멤버 한 명 한 명을 좋아하기도 한다. 당장 SNS만 봐도 그룹 개개인의 팬덤이 눈에 띈다. 이러한 현상은 막을 수도, 막을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걸 그룹은 그들을 좋아하는 이들의 감성을 이해하는 사람이 구성해야 한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균열이 생긴다. 또한 걸 그룹이 여성 팬덤을 택할 것인가, 남성 팬덤을 택할 것인가에 따라 곡의 분위기나 방향, 의상 등 여러 노선이 달라진다. 남성성이 강한 제작자들이 걸 그룹을 구성해 남성 팬을 택하면 상황은 가장 위태로워진다. 걸 그룹을 하는 당사자성이 지워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스텔라 같은 그룹은, 그렇게 희생되는 사람들은 언제 또 생겨날지 모른다.

지금까지 걸 그룹이 성취해야 하는 상업적 성과 이면에 담긴 문제점, 개인이 주체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개인 활동이 미치는 영향까지 이야기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와 의식 측면의 아쉬움 때문에 걸 그룹은 오랜 시간 멤버가 그대로 자리를 지키기는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걸 그룹의 해체를 비난하지 말자. 각자의 길을 응원하고 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흩어져 있어도 서로를 챙기는 멤버들 간의 케미와 의리를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감동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범죄 때문에 멤버가 바뀌는 보이 그룹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WORDS 블럭(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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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IBUTING EDITOR 강예솔
WORDS 블럭(음악 칼럼니스트)

201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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