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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밥을 찾아서

On April 02, 2019

서울에서 밥 좀 짓는다는 식당에 갔다. 한 술 떠서 오물거리면 풋풋한 단내가, 고소한 찰기가 번지는 밥맛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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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 맛집 리스트라면 줄줄 읊어도, 잘 지은 밥 한 그릇 맛볼 수 있는 식당 하나 떠올리기는 힘들다. 없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거다. 잘 만든 빵의 식감, 잘 말아 낸 냉면의 메밀 함량, 파스타 면을 삶은 정도가 ‘알덴테’인가 아닌가를 신나게 이야기하는 동안, 왜 잘 지은 밥 한 그릇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까. 서울의 미식 신에서 밥이 주인공이었던 때가 있었던가? 잘 지은 밥을 짓고 서비스하는 일은 자못 치열하다. 쌀 품종의 도정율과 수분율, 씻는 방법, 밥물의 양과 종류, 밥을 짓는 도구와 불의 세기, 불리고 끓이고 뜸을 들이는 시간까지. 모든 요소가 완벽한 궁합을 이뤄야 입안에 걸리는 것 없이 맛깔스러운 밥이 완성된다. 이런 맛, 저런 맛이 궁금해 자꾸만 허기가 지는 탐식과 식욕의 계절. 모르던 맛을 찾아, 서울의 밥 맛집으로 향했다.


 1  비채나의 솥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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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나는 점심과 저녁에 솥밥을 낸다. 고명 하나 없는 쌀밥이다. 계절에 따라 대게, 민어, 보리, 곤드레 등을 더하기도 하지만, 비채나의 기본 식사는 1년 내내 하얀 쌀밥이다. 푹 익어 몇 번 씹으면 이내 물러지는 밥이 아니다. 밥알 하나하나 탄력 있게 쫀득거리는 맛에 한참을 오물거리게 된다. 꼭꼭 씹으며 입안에 머무르는 시간을 넉넉히 두어야 달큼한 밥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비채나는 강원도 철원의 오대쌀을 현미로 받아 아침마다 그날 지을 양만큼 직접 도정한다. 예약 상황에 따라 필요한 양만을 도정기로 탈각하는데, 매일 현미를 정백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쌀은 도정 이후 15일 이내에 먹지 않으면 윤기와 맛이 현저히 떨어진다. 비채나는 갓 도정한 백미를 사용하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아예 도정기를 들여놓고 매일, 직접 쌀을 깎아 밥을 짓는다. 현미를 70% 깎아내 7분도미를 만드는데, 우리가 으레 먹는 백미 밥의 분도수와 동일하다. 백미 밥의 가장 이상적인 분도수다.

원하는 만큼 맞춤해 깎아낸 이 백미를 씻을 땐 쌀알에 균열이 생기지 않게 여러 번, 손가락을 갈퀴처럼 세워 부드럽게 씻어낸다. 씻을 때 생기는 균열을 조심해야 다 지은 밥알이 깨지지 않는다. 밥물은 말린 옥수수 강냉이와 둥굴레 등을 넣은 육수를 쓴다. 솥에 쌀을 넣고 팔팔 끓인 뒤 10분쯤 불을 끄고 뜸을 들인 뒤 다시 약불로 3분을 끓여 완성한다. 갖은 찬도 필요 없이, 한 그릇 뚝딱 비울 수 있는 맛이다.

+ 반찬
토장국과 6가지 찬이 함께다. 토장국 이외에 찬의 구성은 조금씩 달라진다. 이날의 찬은 들기름과 통들깨로 무친 나물, 명란을 넣고 무친 연근, 간장에 고기와 단호박을 조려 만든 조림, 매콤한 오징어젓갈, 장아찌 물에 구운 김을 담근 김장아찌, 배추김치다. 특히 들기름으로만 무친 나물 반찬과 짭조름한 명란에 상큼한 유자 껍질을 갈아 넣은 연근무침이 발군이다. 고소하고 달콤한 밥에 그럴싸한 향을 입혀 한 술, 한 술이 새롭게 느껴진다.


 2  옳음의 대게 솥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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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음의 코스 요리에는 솥밥 한 종류가 메인으로 등장한다. 해남에서 재배한 히토메보레로 지은 솥밥이다. 히토메보레는 고시히카리와 초성을 교배한 품종. 히토메보레로 지은 밥은 찰기 있고 씹는 맛이 좋으며, 식어도 특유의 밥맛을 잃지 않는다. 무쇠솥으로 밥을 지을 때는 압력이 작용하지 않아 단단하고 차진 쌀이 제격이다. 솥밥을 내는 식당이 많아지면서 히토메보레의 수요도 늘었는데, 옳음의 서호영 셰프는 오래전부터 솥밥을 지을 때 계속 히토메보레를 썼다.

옳음은 싱싱한 대게를 매일 받아 손질한다. 뜨거운 김에 대게를 찌고 손으로 일일이 살을 바른다. 불린 쌀에 대게 살, 대게 내장을 넣고 명란, 쪽파, 깨를 올리고 솥밥을 짓는데, 밥 짓는 도중에 들기름을 슬쩍 추가한다. 대게 내장과 들기름이 만나 어우러지는 감칠맛이 굉장하다.

맛있는 솥밥을 위해서는 불 조절과 밥물 양을 맞추는 일이 관건. 정확히 30분간 쌀을 불린 뒤, 약 15분을 들여 1인분씩 솥밥을 짓는다. 주방 조리대의 강한 불에 올린 채 끓이기 시작해서 밥이 호화될 쯤에 약 불로 옮겨 서서히 완성한다. 3분에 한 번씩, 네다섯 번 정도 확인하며 신경을 곤두세워야 실패하지 않는다. 솥밥의 간은 슴슴하게 맞춘다.

+ 반찬
제철인 봄이면 달짝지근한 감칠맛이 나는 원추리나물은 된장을 넣어 무친다. 비빔오징어젓갈과 톳마늘장아찌, 명이나물, 서호영 셰프의 모친이 김장철에 다시마를 넣고 시원하게 담근 부추김치도 함께 낸다. 갓 지은 밥에 한 점씩만 곁들이면 금세 한 그릇을 비우고 만다. 톳마늘장아찌는 2주에 한 번씩 주방에서 직접 담그는데, 알싸한 마늘 향과 흥미로운 식감 덕에 옳음이 지어내는 탄력 있는 솥밥에 제격이다.


 3  도사 바이 백승욱의 매생이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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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알이 굵은 신동진 쌀을 쓴다. 찹쌀과 교배해 찰기가 대단한 이 쌀로 지은 밥에 매생이를 비빈다. 알알이 매생이로 감싼 밥은 한껏 촉촉하다. 한 술 뜨면 입안이 온통 바다다. 도사 바이 백승욱은 흐르는 물에 빠르게 씻어낸 쌀을 소쿠리에 쏟아 물기를 완전히 뺀 다음, 다시 쌀과 물의 양을 정확히 계량해 밥물을 맞춘다. 언제나 1.1대1 정도다. 밥물을 맞춘 다음엔 다시마와 소금을 약간 넣고 밥을 짓는다.

생매생이는 날이 더 따뜻해지면 녹는다. 매해 5월이 최후의 달이다. 도사 바이 백승욱은 지난겨울, 매생이가 가장 물 오른 무렵에 구한 완도산 생매생이를 허브 오일에 절여두었다가 매일 지은 밥에 비벼내고 있다. 여기엔 해산물과 채소를 곁들인다. 도사 바이 백승욱 식 회덮밥이다. 먼저 하얗고 옴팍한 그릇에 깻잎을 깔고 매생이밥을 한 숟갈 올린 다음 청도에서 기른 미나리를 포슬포슬 뿌려 두른다. 다음은 방아잎이다. 해산물과 잘 어울리는 방아잎은 깻잎 향에 맞서 밀리지 않을 정도로 향긋하다.

깻잎과 방아잎, 미나리 향이 매생이밥의 촉촉한 맛과 어우러지면, 입이 심심할 틈 없이 흥겹다. 밥 위에 올리는 해산물은 철마다 다르다. 맛있는 성게를 구하면 성게를, 방어철에는 방어를, 제주도에서 넙치농어가 잡힐 땐 그걸 쓴다. 이날은 다시마 향을 입힌 광어다. 다시마로 감싸서 한참 밀봉해둔 광어에선 재미있게도 단맛이 난다. 다시마가 끌어올린 맛이다.

+ 반찬
국과 두어 가지 찬을 곁들인다. 이날은 가볍고 시원한 도다리쑥국과 전복장, 귤김치다. 도다리쑥국은 직접 담근 된장을 풀어 경남 진해에서 잡아 올린 강도다리, 해남에서 자란 향긋한 쑥과 함께 끓였다. 귤김치는 귤 껍질을 살짝 갈아 속 재료로 넣어 담근다. 고추와 청양고추로 매콤한 맛을 더하고 젓갈은 쓰지 않는다.

서울에서 밥 좀 짓는다는 식당에 갔다. 한 술 떠서 오물거리면 풋풋한 단내가, 고소한 찰기가 번지는 밥맛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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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경진
PHOTOGRAPHY
이용인

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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