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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에 수입차 타기

30대에 타는 BMW와 40대에 타는 BMW가 같을 리 없다. 그 효용이 다를 테니까. 운 좋게 수입차를 타는 에디터가 없는 살림과 주위의 탄압을 물리치고 30대 초반에 수입차를 타는 가장 나은 방법을 찾아 나섰다.

UpdatedOn December 06, 2005

 

매달 월급의 반씩 2년간 장기 할부. 그 질곡에서 이제 겨우 벗어났다. 몇 해 전, 서른 살이 되기 무섭게 배기량 2,700cc 짜리 수입차를 덜컥 계약하면서 예견된 일이었다. SM5를 사기 위해 1년간 모은 돈을 선수금으로 몽땅 털리고도 장기 할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달픈 길. 감당하기 힘든 형편에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지만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난 뒤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선택은 옳았다. 수입차는 남다른 나를 보여주는 명함으로 제값을 충분히 했고, 그래서 난 행복했다. SM5를 탔다면 기대하기 힘들었을 후한 대접을 받은 것도 사실이고(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장기 할부와의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결혼을 했고, 요즘은 한술 더 떠 두 번째 수입차를 찾고 있다. 돈이 없는 것과 욕심이 없는 건 천양지차. 서른 살에 수입차를 타는 일은 부도덕한 것도 도박도 아니다. 다만 ‘확실히 더 나은 차’를 남보다 좀 더 일찍 욕심내는 것뿐이다.

누구 말처럼 아버지의 인생은 길다. 그리고 무척 지루하고 힘겹다. 아파트 한 채 장만하고아이들 대학에 보내고 부장 자리를 따내고 보니 정작 곁에 남은 게 별로 없다. 딱 하나 있다면 멍과 상처뿐인 낡은 자동차 한 대…. 더 늦기 전에 수입차를 사기로 큰맘 먹는 시기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제 생각보다 알아주는 이도 없다. 난생 처음 타는 수입차니 주차도 정비도 서툴기만 하다.

세상에는 좋은 차가 좋은 옷과 좋은 시계만큼이나 많다. 과연 우리는 그중 어느 정도를 누리면서 살다 갈까? 반드시 아르마니 수트와 페라가모 구두를 신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대체 무엇이 왜 좋은지는 알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 롤렉스나 몽블랑도 써보기 전까지는 그게 왜 좋은지 알 수 없다. 자동차는 더하다. 꼭 한 번은 타봐야 할 좋은 차가 많고 다양한 것에 비해 우리 관심사는 너무 겸손해서 편협하기까지 하다. 좋은 차를 뒤로한 채 프라이드로 시작해 아반떼, 쏘렌토를 거쳐 그랜저로 마감하는 평이한 인생이 아깝지도 않은가? 무엇보다 그러기에 이 지구라는 행성에는 좋은 차가 너무 많다.

사실 ‘수입차 아니면 국산차’라는 이분법부터 문제다. 수입품투성이인 청바지나 운동화, 시계,가구, 전자 제품에 비해 그 편견이 지나치다 못해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쨌든 국적을 불문한 ‘좋은 차’를 따질 경우, 대부분의 수입차가 차트의 상위에 랭크되는 건 부인하기 힘든 사실. 물론 요즘 나오는 국산차(쏘나타·그랜저·프라이드·싼타페 등)는 수입차에 크게 뒤지지 않는 기량을 보여준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다만 너무 좁고 일률적인 선택의 폭을 넓히는 데 의의를 두자는 거다.

분연히 떨치고 나선 <아레나> 편집부 일동은 우리나라에서 수입차를 타는 가장 빠르고 현명한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먼저 나이부터 따져봐야 한다. 아무리 후하게 쳐도 마흔 살 이후는 너무 늦다. 20대, 심지어 10대에 수입차를 타는 행운아는 열외. 내 힘으로 ‘조금 무리해서’ 살 수 있는 수입차는 30대 초반이 적령기라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도 네이버 지식인에도 없는 이 방법을 어떻게 찾을까? 고심 끝에 나는 실제로 각종 난관을 극복하고, 30대 초반에 수입차를 산 신데렐라맨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답이 나올것이라는 공식을 구했다.

 

내가 만난 다섯 남자의 공통된 견해는 결국 ‘적잖은 돈과 생각하기 나름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원칙을 따지자면 차에 들어가는 돈은 수입의 10분의 1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우리나라에서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샐러리맨이 수입차를 사려면 3분의 1, 심지어 2분의 1까지 감수해야 한다. 마인드의 문제는 좀 더 난해하다. 요컨대 돈은 없어도 뭔가 간절히 바라는 게 있는 사람이 돈이 많아도 갈망하는 무엇이 없는 사람보다 훨씬 빠르다. 수입의 3분의 1 이상을 차에 투자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기왕이면 결혼 전에 일을 해치우는 게 바람직하다. 아내의 의견과 아이의 입장까지 고려하려면 선택의 폭은 더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눈높이를 조금 하향 조정할 필요도 있다. 잘 뒤져보면 6개월 내지 1년쯤 된 새 차 같은 중고차가 꽤 많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게 자격 여부다. 좋은 차를 탈 수 있는 자격이 있느냐는 거다. 자동차가 달리는 기계 내지는 운송 수단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은 무조건 탈락이다. 현실적으로 비싼 수입차를 타려면 큰 기회 비용이 발생한다. 술이든 담배든 카메라폰이든 뭔가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 뭔가 줄이고 포기해야 할 만큼 차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제 지위나 신분 상승을 꾀할 목적으로 수입차를 사는 시대도 물 건너갔다. 조금 진지해져야 한다는 이야기. 수입차는 자기 만족을 위해 사는 게 맞다.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그 무엇, 나의 명함이 되어 누군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수단 정도로 여기는 게 적절하다. 결국 준비된 자에 한해서 운이 좋은 경우, 대략 30대 초반에 수입차를 탈 수 있다. 자동차가 아닌 다른 행복을 많이 포기할 수 있는 준비 말이다.

그렇다면 무슨 차로 시작하면 좋을까? 내가 만난 남자들이 ‘입문용’으로 권하는 수입차는 대동소이했다. 마음 푹 놓고 탈 수 있는 차, 국산차보다 나은 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검증된 차, 고성능보다는 무난한 스타일과 자가 정비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성실한 차 등. 그 리스트의  맨 앞에 5명이 만장일치로 뽑은 BMW 320i (4천4백30만원)가, 맨 뒤에 2명이 언급한 아우디 TT 쿠페(5천4백70만원)가 포진했다. 그 중간에 폭스바겐 골프 디럭스(3천1백80만원), 미니 쿠퍼S(3천8백만원), 푸조 307 2.0(3천6백50만원), 혼다 어코드 2.4i-VTEC(3천4백90만원), CR-V 2WD(2천9백90만원) 등이 차례로 있다.

내가 예상한 리스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차 값만 따져서는 안 된다. 차를 살 때 드는 등록세와 취득세, 공채, 자동차 보험료 등도 만만치 않으니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렵게 장만하는 수입차인 만큼 부담을 덜 수 있는 금융 프로그램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리스트에 오른 7개 모델의 평균 차 값은 약 3천8백60만원. 이들을 대상으로 할 때 차 값의 5%인 등록세는 약 1백93만원, 2%인 취득세는 약 77만원, 공채(매입 후 할인) 구입비는 약 60만~1백50만원, 그리고 기타 비용(인지대 등) 1만원 정도다. 그러니까 차 값 외에도 약 3백만~ 5백만원의 등록 비용을 계산에 넣어야 한다는 거다. 자동차 보험료는 좀 더 복잡한데, 연봉 4천만원대의 32세 미혼남이 온라인 자동차 보험에 들 경우 대략 2백만원 전후다.

수입차를 현금 일시불로 화끈하게 살 수 있는 30대 초반의 재력가는 많지 않다. 관건은 ‘예산 책정의 묘를 얼마나 잘 살리느냐’에 있다. 30대 초반, 연봉 4천만원 근처의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할부나 리스를 이용하는 게 좋다. 할부의 경우, 시중 금리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대략 10% 선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요즘은 은행 할부를 이용하는 사람이 드물다. 수입차 메이커가 앞다퉈 리스나 무이자 할부 같은 금융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리스를 쓸 경우, 평균 차 값의 20% 정도를 선수금으로 내고, 나머지를 24개월 또는 36개월 할부로 하는데 그 기간에 등록세 등 각종 세금이 모두 포함되기 때문에 초기 비용은 차 값의 20%인 7백만~8백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할부 기간이 끝난 뒤 잔금을 치르고 차를 소유할 수도 있다. 단, 리스의 조건은 메이커나 딜러사, 리스 회사마다 모두 다르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리스를 전제로 할 경우, 현찰 1천만원에 매달 60만~1백만원 정도를 할부금으로 빼앗겨도 사는 데 지장이 없어야 한다. 요컨대 국산 중형차를 가뿐하게 살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능히 해볼 만하다.

수입차를 타기로 굳게 마음먹었다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몇 가지 주의 사항이 있다. 수입차니까 기름만 넣어주면 알아서 다 해줄 거라는 환상은 아예 버리는 게 좋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쯤은 보닛을 열고 내 차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높은 기대치 때문에 되레 실망하기 쉽다. 멀쩡한 차 탓을 하고 국산차로  컴백할 확률도 높다. 좋은 차를 타는 만큼 정비나 관리에 크게 신경 쓸 일은 없지만 기본적인 의무 사항은 지켜줘야 한다. 제원표상의 스펙이나 정비소 메카닉의 코멘트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험자의 무용담과 조언이 더 피부에 와서 닿는 법. 관련 동호회에 가입해 어렵게 산 수입차를 현명하게 활용하는 팁을 구하는 게 더 낫다.

사실 30대에 타는 BMW와 40대에 타는 BMW는 아무 차이가 없다. 다만 40대에 타는 BMW에는 유턴해 되돌아갈 수 없는 10년이 빠져 있을 뿐이다. 30대 초반에 수입차를 타는 건 별일도 아닐지 모른다. 적어도 좋은 차와 덜 좋은 차를 구별하는 고귀한 감식안을 갖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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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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