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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남자와 키스한 까닭은…

`성공만 한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래서 못할 짓(?)도 꽤 했다. 파티 플래너로 성공하기 위 한 지난 몇 해 동안의 고군분투. 다행히 지금은 그 대가 를 보상받는 중이다.

UpdatedOn December 06, 2005

 음악 소리가 작아졌는데도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잠깐 화장실 다녀온 사이  한 테이블이 치워졌다. 클라이언트는  내 얼굴만 빤히 바라본다. 음악과 술이 있는데 왜 놀지 못할까. 나 같으면 스테이지는 예전에 장악했다. 뭐, 좋다. 어쨌든 이 가라앉은 기분 나쁜 공기는 다  내 책임이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파티 시작 전부터 이상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던 그놈에게 다가갔다. 잠깐 멈칫하긴 했다. 하지만 결국 그에게 키스했다. 아니, 한 것 같았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인 데다 여러 번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부정을 했기에 지금은 긴가민가하다. 하지만 꾸욱 감은 눈 옆에, 뻥 뚫려 있는 두 귀로 사람들 함성 소리가 들린 것은 확실히 기억한다. “워어~~” 이쯤이면 됐다. 나의 ‘순교’로 파티는 열광의 도가니가 될 테니까. 끝까지 웃으며 백 스테이지로 향했다. 그리고  가그린 한 통을 다 마셔버렸다. 제길.

스포츠 신문에 이니셜로 등장해야 하는 위험 부담이 있는데도 ‘웃겨봐!’라고 말하는 술 취한 아저씨와 대판 싸우는 개그맨을 난 100% 이해한다. 기껏 준비한 파티에서 사람들이 잘 놀아주지 않을 때, ‘뭐 화끈하고 재미있는 이벤트 없어?’라고 묻는 클라이언트를 보면 나도 비슷한 생각이 드니까. 물론, 고용주인 클라이언트와 싸울 순 없다. 그저 이런 부담스러운 질문에 가끔 힘이 빠진다는 소리다. 또 이런 파티가 끝나면 늘 기획 과정을 반성하고 다음 파티 기획 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blah blah blah…. 쏘리, 조금 구차했다.

처음 파티를 기획했을 때만 해도 제약이 많았다. 제대하고 대학 졸업한 남자가 시작하기엔 불안한 분야였다. 가족과 친구의 우려는 나를 많이 위축시켰다. 그때마다 내 기획 아이디어는 점점 과감해졌다. 위축된 나를 좀 더 고무시키기 위한 의도였다. 백화점이 폐장하면 속옷만 입고(물론 나체로 들어가면 더 좋다. 속옷 매장은 충분히 있으니까) 참가자들이 들어가 원하는 옷으로 마음껏 갈아입고 파티를 즐기자는 등 기발한 기획이 우르르 나왔다. 물론 대부분이 실제로 이뤄지진 않았다. 진보는 늘 벽에 부딪치게 마련이니까, 룰루랄라~.

파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느끼는 재미다. 보이는 재미는 두 번째다. 흔히 사람들은, 심지어 파티 플래너조차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확실한 테마가 있는 파티를 기획한다면 많은 돈을 투자한 파티에서 보다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석 파티’에 사람들을 초대한다고 가정하자. 비싼 보석을 전시하고 감상하는 파티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파티는 007게임이 접목된 파티다. 무대 한복판에 보석을 설치하고 이를 훔치라고 지령을 내린다. 몇몇 경호원이 지키고 있고 30분마다 불이 꺼진다. 난 파티와 럭셔리라는 단어를 동일시하는 대부분의 클라이언트 인식을 바꾸고자 ‘돈 안 쓰는 파티’기획에 매달렸고 시장도 슬슬 이를 받아들였다.

‘파티 플래너’가 되고 싶은 사람들 앞에서 늘 강조하는 말이 파티는 단순히 즐기는 놀이가 아닌 사람과의 관계를 완화해주는 매개체라는 것이다. 파티는 참가자 모두 즐거움을 공유하는 게 가장 중요하며, 이를 위해 플래너는 참가자 한 명 한 명에게 즐길 수 있는 기회를 평등하게 주어야 한다. 파티에선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싶지만, 어디에나 변방에 떨어진 사람은 있게 마련이므로. 세상 누구보다 파티에 자주 참가하면서 플래너 스스로는 절대 파티를 즐길 수 없는 이유다. 플래너는 항상 변방에 있으면서 변방에 함께 떨어져 있는 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클라이언트와 계약을 성사시킬 때도 마찬가지다. 그와 계약을 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줄 수 있다는 확신에 찬 제안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 관계는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give&take’다. 순서는 ‘give’ 다음이 ‘take’다.

다행히, 파티 플래너라는 직업에 큰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성급히 결론부터 말하면 이 시장엔 거품이 많다. 대학 졸업자 평균 연봉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액수를 벌 각오도 단단히 해야 한다. 게다가 이 파티 시장은 대부분 인맥으로 움직인다. 클라이언트 회사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계약을 맺는 식이다. 결국 이런 사람들이 시장을 잠식하면서 아이디어가 설자리가 없어졌다. 이런 파티는 진정한 파티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걸 뚫고 진정한 파티 플래너가 되고 싶은 당신이라면 환영의 커다란 플래카드를 걸어주겠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유연한 인간 관계와 기발한 아이디어, 그리고 추진력뿐이다.

어쨌든 난, 3여 년간 성공적으로 파티 기획을 했고 이젠 그만뒀다. 지금은 당당한 멀티잡족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학에서 파티 플래너 과정을 강의하고 있고, 한류 문화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으며, 카지노 컨설턴트, 모터스포츠 마케터라는 명함도 있다. 물론, 파티 기획을 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수입도 짭짤하다. 이 일들은 모두 기발한 기획을 하고, 그 기획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게 만든 파티 기획에서 파생된 일이다. 사실, 파티 기획이라는 일이 준 가장 큰 선물은 옷장 정도는 거뜬히 채우고도 남을 다양한 사람들의 명함. 기발한 아이디어를 파티에 제공했으니, 이제 당당히 ‘take’ 할  차례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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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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