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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올리버에 대한 긍정

24살에 TV스타가 되고 28세에는 국위 선양의 공로를 인정받아(그 것도 요리로!) 대영제국훈장까지 받은 이 천재요리사는 자신이 요리한 텐더로인처럼 `제이미 올리버`라는 이름도 난도질 당했 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제이미 올리버의 오해와 명성에 대한 재평가.

UpdatedOn December 06, 2005

유명셰프 가운데 가장 비좁은 주방에서 요리를 하며, 슈퍼마켓에서 재료를 사고, 얼굴만 내세우는 계집애 같은 남자. 무엇이든 ‘갈아 넣는다’를 캐치프레이즈로 삼고 바보 같은 농담을 한다. 음악 취향도 짜증스럽다. 드럼을 칠 줄 알 것 같다.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제이미 올리버를 둘러 싼 뾰족한 말들이 생일파티를 마친 복부비만 환자의 배처럼 팽배해 있지만 정작 그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만든 것도 이런 말들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제이미 올리버를 TV브라운관이라는 도마에 올린 것은 천재 텔레비전 프로듀서 팻 레월린이다. 그녀는 갓 잡아 올린 고등어마냥 신선한 피부를 가진 20대의 셰프가 등장하는 요리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여덟 살 때부터 부모의 식당 주방에서 요리를 시작한 ‘요리 신동’인데다, 이태리 요리계의 거물 안토니오 카를루치오(Antonio Carluccio) 아래서 사사받은 제이미를 팻 레월린이 놓칠 리 없었다. BBC에서 절찬리에 방영된 요리프로그램 <네이키드 셰프>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영국의 모든 어머니와 딸, 아내, 여자친구, 할머니, 누구에게나 어필하겠다는 철저한 계산에서 이루어진 생각은 ‘세상의 모든 딸들’을 사로잡았다. 출연 계약서에 사인할 때만 해도 존재론적으로는 문장 부호쯤에 지나지 않던 제이미 올리버였지 않은가. 바로, 이 지점에서 그에 대한 오해와 시기가 생겨났다.

 대부분의 셰프 수련생들이 받는 연봉은 1만2천 파운드 정도다. 당연히 그 일을 포기하고 텔레비전 출연료 좀 챙기는 남자를 시기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없다. 여기에 제이미가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요리도 하고 막간에 드럼도 연주한 <해피 데이스 투어 라이브!> 역시 사람들이 그와 돈을 일시적으로 연관시키는 착란을 일으키는데 한몫했다.

하지만, 그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네이키드 셰프>로 돈을 벌 수 있었겠지만, 세 번의 시리즈를 마친 뒤 <네이키드 셰프> 캐릭터를 벗어던지기로 결심했다. 또, 그가 2000년부터 70여 편을 찍은 상스베리(영국의 수퍼마켓 체인점)의 광고에 자기 친구들을 등장시킨 것에 대해 호사가들이 한마디씩 거들지만, 생각해 보면 능력 있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돈 좀 벌게 해 주겠다는데 뭐 그렇게 큰 문제이겠는가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제이미 올리버는 자신이 직접 가르친 10대 비행 청소년 출신의 요리사들로 구성된 레스토랑 ‘피프틴(FIFTEEN)’을 오픈하고 같은 이름의 재단을 설립해서 꾸준히 이 일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사회의식을 가진 그리고 그런 자신을 지지해 줄 유명인사 팬들도 가진 영국의 유일한 셰프로 떠오르게 된다.

그가 자신을 다그치며 직면했던 `도전`들에 대해 정말 생각해 보면, 그가 스스로 해낸 것들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이런 어려움 속에서 영국 왕실 훈장을 받았다. 이 훈장은, 재단을 만든 사람들은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답을 받은 것이라 생각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올리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영국 학교 급식 문제를 도마 위에 올렸다. 일단 `제이미의 스쿨 디너` 시리즈를 만들어서 지역 유지들로 하여금 아이들의 식비를 기부하도록 이끌었다. 당시 교육부 장관인 찰스 클라크를 자기 레스토랑으로 초대해서는 먹을 수 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 37페니(약 700원)짜리 학교 급식을 만들어 먹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명사들은 룸펜이나 노동자 계급을 우습게 여겼다가는 유권자의 지지나 시장 점유율을 잃을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기 때문에, 제이미는 학교 급식의 문제에 대해 즐겁게 지적할 수 있었다. 그의 끊임없는 문제 제기로 이제는 영국 정부도 학교 급식의 질을 높이기 위해 2억8천만 파운드의 추가 예산을 편성했다.  

이제 제이미 올리버는 이 모든 것을 계속 성취해 나가고 있으며 자신의 레스토랑도 잘 운영하고 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바이블텍스트의 모범사례가 돼서 아름다운 아내와 어린 두 아이와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기쁘게도, 그는 `터키 트위즐러`를 판다고 상스베리를 비난하기도 했다. 학교 급식 재료로 널리 쓰인 ‘터키 트위즐러’가 칠면조 가공 식품임에도 칠면조 고기는 불과 30%에 불과하고 돼지기름과 그 밖의 재료로 채워져 있어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상스베리에서는 실제로 2003년 이후로는 터키 트위즐러를 팔지 않는다.

제이미 올리버는 이제 더 이상 애처럼 “푸카(Pukka, 최고 혹은 멋지다는 말)”를 외치지 않는다. 더 이상 자신의 프로그램에 토플로더(Toploader, 영국의 5인조 록밴드)의 노래를 쓰지 않는다.  더 이상 자신이 출연하는 광고에 친구들을 등장시키지 않으며, 일 년 넘게 사람들 앞에서 드럼을 연주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나이를 먹은 것이다. 물론, 그가 그저 어린 마음에 잘난 체 했던 지난날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그 누구라도 젊을 때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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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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