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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年建築史

대한민국 땅에도 1백 년 된 건축물들이 있다. 일제의 손에 의해 지어졌든 그렇지 않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시류와 풍파를 거쳐 시대와 우리네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는 게 중요할 뿐이니까. 하지만 웅장함에 지르는 탄성의 끝엔 왠지 씁쓸한 기분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br><br> [2006년 11월호]

UpdatedOn October 23, 2006

덕수궁 정관헌
1897년 대한제국을 세운 고종 황제는 서양문물 수용에 적극적이었다(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물론 나라의 발전을 위해선 서양문명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믿었을 거다. 1900년에 지어진 정관헌은 황제의 생각이 반영된 시도였다. 고종은 러시아 건축가 사바친에게 설계를 맡겼다. 커피를 마시고, 음악도 즐기며 대한제국의 개혁정책을 구상했던 곳으로 외교 사절을 맞아 연회를 즐기던 사교장 역할도 했다. 1백 년 전 급박한 국제정세에서 고종이 휴식을 취하며 고민하던 장소로 알려졌는데, 굴욕의 세월, 멋들어진 새 건물 짓고 고민하는 건 그리 이성적인 행동은 아닌 것 같다. 국빈에 대한 예를 다하기 위한 그의 안목이라는 건 의심치 않지만. 중국풍이 느껴지기도 하는 서양식 건물로 설계는 러시아인이 했지만 공사는 중국인이 했다. 외부 철제 기둥은 로마네스크 양식을 따르고 있고 문양은 우리나라 전통 문양을 사용했다. 절충된 서양식 건축의 도입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대한의원
1907년 대한제국 정부가 황제의 명령에 의해 의정부 직속으로 대한의원을 지었다. 일본인의 설계로 1908년에 완성됐다. 현재는 본관 건물만 남아 있다. 1908년 대한의원은 조선총독부 의원으로 바뀌고 1911년에는 부속 의학 강습소로 이름이 또 바뀌었다. 광복 뒤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원의 본관으로 불렸다. 현재는 서울대학교병원 부설 병원연구소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지붕은 앞면에서 봤을 때 사다리꼴 모양을 한 우진각 지붕이며, 중앙에 높이 솟은 시계탑은 바로크 양식을 하고 있어 본격적인 서양식 건축물 자체라 하겠다.

옛 경성감옥
일본 침략의 본격 상징인 옛 서울 구치소는 1907년 인왕산에 일본인이 설계한 근대적 감옥이다. 올해 정확히 1백 년째 맞는 이 건물은 1945년까지 독립운동가들을 가두고 고문과 박해를 하고 죽였던 장소다. 김구 선생도 고문을 당했고, 유관순 열사도 이곳에서 숨을 거뒀다. 1946년 광복 후 서울형무소로 이름을 바꾸고 반민족 행위자와 친일세력을 수용하는 데 활약했다. 대한민국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는 4·19혁명과 5·16 쿠데타 같은 정치적 변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시국사범들이 옥고를 겪어야 했다. 마음 편하게만 나들이를 즐길 수 있는 건물은 아니다.

인천문화원(옛 제물포 구락부)
구락부라는 이름이 그리 반갑지 않은 건, 클럽의 일본식 발음이라는 것 때문이겠다. 사실 이름만 그렇지 일본인들만을 위한 장소는 아니었다. 본디 인천에 있던 미국, 독일, 러시아, 일본인들의 사교모임인 제물포 구락부의 사교장으로 이용하기 위해 광무 5년(1901년)에 지은 것이다. 내부에 당구대, 사교실, 도서실, 테니스 코트를 가지고 있는 진정 사교를 위한 장이었다. 1913년 각국의 조계들이 철폐됨에 따라 이곳은 일본 재향군인회관, 부인회관 등으로 이용됐다. 해방 후에는 미군이 사용했고 1953년부터 1990년까지는 인천 시립박물관이었다가 현재는 인천문화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구한말부터 씁쓸했던 과거의 풍파를 그대로 담고 있는 건물이다. 백색 투명한 건물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옛 인천 일본 제일은행지점
석조 단층 건물로 1899년에 세워졌다. 설계는 일본인 니이노이에 다카마사가 했다. 당시 일본인의 건축물은 목조에 의한 서구풍이 주류를 이뤘다. 순수 서구 양식의 석조 건물로 수준 높은 건축물이라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근대 건축물이다. 우리 손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서 아쉽기는 하지만. 인천 일본 제일은행은 당초 부산지점의 인천출장소로 출발하여 1888년 인천지점으로 승격되었고 1909년 한국은행이 창립되면서 한국은행 인천지점으로 변경됐다. 1911년 한국은행이 조선은행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조선은행 인천지점이 됐다. 건물 외벽에 조선은행이라 쓰여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현재는 인천 중구청 별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바로크풍 장식창 돔형 지붕은 후기 르네상스 양식을 단순화한 모습이다.

군산세관
군산항이 1899년에 개항하면서 철도가 부설되고 항구 시설을 갖추게 됐다. 이에 따라 1908년에 대한제국 시절 국내 유일의 세관 건물이던 군산세관이 건립되었다. 올해 99년 된 건물이다. 탁지부(조선 후기의 관청)에서 설계했는데 평면과 외관은 서양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벨기에산 적벽돌 등 수입한 건축자재를 사용했다. 현재는 본관과 창고만 남아 있다. 고딕풍의 지붕, 로마네스크 양식의 창문 등 서구 건축 양식을 혼합해 독일인이 설계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호남 관세 전시관으로 변신, 일반인들을 무료로 맞이하고 있다.

옛 벨기에 영사관
대한제국 주재 벨기에 영사관 건물이었다. 1905년 회현동에 그 부지를 마련해 지었지만 이후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1983년 지금의 남현동으로 이전, 복원됐다. 1970년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의 소유였다가 2004년 5월 우리은행이 서울시에 무상 임대하여 공공 미술관으로 자리바꿈했다. 1903년 착공해 2년에 걸쳐 세워진 이곳은 서양의 고전주의 양식 건축물이다. 벨기에의 L. 뱅카르가 건축을 지휘했고, 일본 호쿠리쿠 토목회사에서 시공하고 고타마가 설계했으며 니시시마가 감독했다. 좌우 대칭 형태로 붉은 벽돌과 석재를 적절히 사용했고, 고전주의 양식의 현관과 발코니의 이오니아 양식 돌기둥 등이 아우라를 만든다.

인천 선린동 공화춘
1905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공화춘은 자장면의 발상지로 잘 알려져 있다. 건물 형태가 ‘목(目)’자형으로 구성돼 있어 당시 청나라 조계지의 건축 특성을 자랑하고 있다. 1883년에 개항한 인천에는 청인들이 거주했다. 1920년부터 무역이 성행하면서 중국 무역상을 대상으로 한 중국음식점이 생겨났고 신개념의 요리는 SBS <결정! 맛대맛>에 소개해도 손색 없을 정도로 완성도와 싼값으로 인기를 끌었다. 청요리가 주목받자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생겨났다. 자장면이 탄생하게 된 거다. 정식으로 자장면이란 이름으로 음식을 팔기 시작한 곳이 1905년 개업한(아래 오른쪽 사진) 공화춘이다. 중화루, 동흥루와 함께 차이나타운 3대 요릿집으로 호황을 누렸으나 1984년 문을 닫았다. 지금은 자장면 박물관화 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옛 러시아 공사관
조선 고종 27년(1890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건축된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설계자는 구한말 맹활약하던 러시아인 사바틴(정관헌의 설계자)으로 추정된다. 본관은 한국 전쟁 때 파괴됐고, 현재는 3층 규모의 탑만 남았다. 고종과 순종의 아관파천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게 러시아 공사관이다. 현재 탑의 동북쪽으로 지하실이 있어 이곳에서 덕수궁까지 지하 통로가 있다고 한다. 열강 사이에 낀 힘 약한 왕조의 설움이 담겨 있는 장소다.

익산 나바위 성당
1897년 전북 익산시 나바위 부락에 주임으로 부임한 베르모렐 신부가 나바위에 있는 동학농민운동 때 망해버린 김여산의 집을 1천 냥에 사들여 개조하고 성당으로 사용했다. 한국 초기 본당의 하나로 당시 한국 풍속에 따라 남녀의 좌석을 칸막이로 막고 출입구도 각기 달리했는데, 이건 현재도 지켜지고 있는 독특한 정서다. 나바위 성당은 1906년 순수 한옥 목조건물로 지어진 후 1916년까지 증축을 거듭했다. 한ㆍ양 절충식 건축물인 성당의 앞면은 고딕 양식의 3층 수직 종탑과 아치형 출입구로 꾸며져 있고, 지붕과 벽면은 전통 목조 한옥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기와 지붕 아래에는 팔괘를 상징하는 팔각 채광창이 사방으로 나 있고, 처마 위마다 십자가를 세워놓았다. 현대 건축 양식에서 볼 수 없는 묘미가 있다 하겠다. 1987년 7월에 국가문화재 사적 제318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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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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