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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서 그랬어

지난달 과천에선 토막 시신이 발견되고, 봉화군에서는 엽총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놀라운 것은 피의자들의 범행 동기가 모두 홧김에 ‘욱해서’였다는 것이다.

On October 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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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9일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주차장 인근 수풀에서 토막 시신이 발견됐다. 머리와 몸, 다리 등이 분리된 이 시신은 발견 당시 부패가 상당히 진행돼 부검을 통해서도 정확한 사인을 알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다행히 지문이 보존돼 있어 조회해본 결과, 사망한 이는 경기도에 거주하던 50대 남성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용의자는 시신 발견 이틀 만에 검거됐다. 서울대공원 인근의 CCTV를 조사한 결과 밤인데도 전조등을 끈 채 이동한 SUV를 수상히 여긴 경찰이 피의자 변 씨를 검거한 것이다. 변씨가 진술한 범행 동기는 다음과 같다. 변씨가 운영하던 노래방에 손님으로 왔던 피해자가 도우미를 불러달라고 요구했고, 도우미를 불러주자 피해자는 그녀와 말다툼 끝에 다른 도우미로 교체를 요청 했다. 이 와중에 변 씨는 피해자로부터 도우미 영업을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받았고, 이에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범행이 우발적인 범죄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잔인하게 시체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계획적인 범죄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홧김에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라는 쪽으로 무게가 더 실리고 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8월 21일 봉화군 소천면사무소에서 70대 김 모 씨가 엽총을 난사해 근무 중이던 민원 행정 6급인 손 모 씨와 8급 이 모 씨가 총상을 입고 숨진 것이다. 현장에 있던 공무원과 민원인들이 김 씨를 제압한 후 경찰에 인계해 바로 검거할 수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물 때문이었다고 한다. 김 씨는 수도권에 살다가 군대 후배의 권유로 2014년 봉화군으로 귀농해 아로니아 농사를 지어왔다. 경찰은 그가 터를 잡으면서 설치한 간이 상수도를 주변 네 가구와 함께 쓰면서 수압이 낮아지자 이웃들과의 갈등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면사무소 직원들을 표적으로 삼은 것은 그들이 이와 관련한 민원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이유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범행 한 달 전인 7월 20일쯤 유해 조수 구제용으로 엽총을 구입,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사격 연습을 하면서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해왔다고 한다.
 

‘홧김에’ 저지른 사건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홧김에’란 단어를 치면 ‘홧김에 아버지 살해’ ‘홧김에 동료 살해’ ‘홧김에 방화’ 등 화를 참지 못해 저지른 범죄뉴스가 어렵지 않게 검색된다. 과연 화가 난다는 이유만으로 저지를 수 있는 범죄인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한 범죄들이다. 이렇듯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분노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화를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것, ‘분노조절장애’는 화가 나는 상황에서 분노를 통제하거나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임상심리학이나 정신의학 분야에서 정식으로 사용되는 진단명은 아니지만 이로 인한 폭력성이 방치될 경우 심하면 범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분노조절장애 증상을 보이는 이는 별것 아닌 사소한 일에도 화를 참지 못하고 공격적인 말과 행동을 보이거나 기물을 파손하고, 억울함 또는 부당함을 느끼며 복수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살인 사건은 물론, 지난 6월 17일 전북 군산시에서 3명이 숨지고 30명이 부상을 입은 방화 참사, 지난 1월 서울시 종로구의 한 여관에서 6명이 숨진 방화 사건 등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참변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분노 범죄의 원인은 결코 간단치 않다.

분노조절장애 증상을 보이는 사람 중 일부는 굳이 분노를 조절하지 않아도 되는 상급자나 ‘갑’의 위치에 있어 충동을 억제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반면 하급자나 을의 입장인 사람들은 화를 참을 수 있어서 참는 것이 아니라 참아야 하기에 참는 것이라고. 또한 화를 제대로 낼 줄 모르는 사람들이 분노조절장애 증상을 보인다고도 한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와 같이 화를 내야 할 때와 표출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엉뚱한 시점에서 누적된 화가 폭발한다는 것이다.
 

분노조절장애가 부른 ‘묻지마 범죄’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범죄는 최근 몇 년 사이 발생한 묻지마 범죄의 원인과도 무관하지 않다. 범죄심리학자 이수정과 프로파일러 김경옥의 저서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의 가장 큰 원인은 ‘절망’과 ‘분노’이다. 내재된 분노가 어떤 촉발 요인에 의해 폭발하듯 표출된다는 것이다. 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 권 모 경감은 “부모에게 꾸지람을 들었기 때문에 사람을 살해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꾸지람이라는 촉발 요인에 의해 이미 쌓여 있던 분노가 폭발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묻지마 범죄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범죄의 내용보다 이에 이르게 한 분노나 절망 등 억눌린 감정의 폭발이라는 것이다. 묻지마 범죄 피해자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피해자가 범인이 좌절감을 느끼도록 한 직접적 원인 제공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그저 심리적으로 상징적 의미를 지닌 대상이었을 뿐이라고.

분노 때문에 일어난 범죄의 경우 외견상 동기는 ‘복수’이지만 심층적으로 분석해보면 ‘범죄자가 해결할 수 없는 깊은 내적 갈등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수단으로서의 폭력 행동’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그렇기에 범행을 저지른 후 범인은 순간적으로 안정을 찾는다고. 실제로 과천 토막 살인 사건의 용의자 변 씨도 검거 후 범행 동기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눈물을 보이며 “죄송하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내 주위에는 왜 욱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의 저자 오카다 다카시는 우발적 범죄의 원인으로 ‘과대자기증후군’을 꼽기도 했다. 이러한 증상을 지닌 사람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유아적인 전능감’이 강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상향을 꿈꾸거나 자존심이 과도하게 높으며, 특별한 존재이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데 이러한 자신의 욕망을 부정당하고 방해받았을 때 이에 대한 반격으로 대담하기 그지없는 범죄 행위까지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에서 점점 심해지는 미성년자 잔혹 범죄의 이유가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받았던 과보호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이러한 과대자기증후군의 원인이 과도한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대인들은 어릴 적부터 경쟁에 치여 살아온 탓에 모든 일을 경쟁에서 이기느냐 지느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게 몸에 배어 있다. 승패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인간적인 감정에 소홀하게 되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도 점점 떨어진다. 이런 가치관에 갇혀 감수성 풍부한 시기를 지내고 나면 마음속에 결정적인 각인이 남는다. 훌륭한 성과를 보이며 지나치게 과도한 자신의 노예가 되거나 변변치 않은 성적으로 열등감에 사로잡힌 콤플렉스 덩어리가 되는데, 두 경우 모두 승패나 우열이라는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밝혔다.

분노조절장애 범죄의 원인은 결코 간단치 않다. 이러한 분노 범죄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병리 현상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제는 분노조절장애를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질환으로 보고 심각하게 짚어보아야 할 때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안젤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2018년 10월호

2018년 10월호

에디터
김안젤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