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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신 교수의 음식과 윤리 음식

윤리의 기원, 나눔

On May 27, 2014

지난달에는 음식인이 지켜야 할 윤리강령을 알아봤다. 그렇다면 음식 윤리라는 것은 언제 생긴 것일까? ‘음식 윤리(food ethics)’ 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96년 벤 메팸(Ben Mepham)의 저서 에서다. 그렇다면 음식 윤리의 역사가 고작 10여 년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음식 윤리는 인류가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윤리적 필요성이 대두된 때만큼이나 오래된 일이다. 윤리학을 정립한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훨씬 앞서 전 인류가 수렵 채집민일 때부터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 어느 여름밤, 어머니는 ‘잠자기 전 수박을 많이 먹으면 오줌 싼다’고 경고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귓전으로 흘리고 수박 먹기에 몰두했다. 그날 밤 꿈에 전봇대가 나타났고, 전봇대에 시원하게 볼일을 보자마자 축축하고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잠에서 깨어났다. 요를 다 적시다 못해 철철 넘쳐 다락방 바닥에 생긴 커다란 지도와 머리에 바구니를 쓰고 소금을 얻으러 갔던 기억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고 보니 수박에는 시트룰린(citrulline)이라는 이뇨 촉진 성분이 있지 않은가. 어머니는 음식을 먹을 때 필요한 계명을 적절한 방식으로 마음에 새겨주셨다.

이렇듯 사람들은 각자 삶의 구석기라 할 수 있는 갓난아기 시절부터 음식에 대한 윤리적 태도를 배운다. 아기는 어머니 품에서 ‘잘 먹으면 어머니가 행복해하고 어머니가 행복한 것은 좋은 일이다’라는 선악 판단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관계된 윤리를 배우게 된다. ‘손 씻어라’, ‘소리 내지 말고 먹어라’, ‘그릇에 부딪치는 소리 내지 마라’, ‘골라 먹지 마라’,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밥상머리 교육도 빠지지 않는다. 이러한 ‘잔소리’는 식사 에티켓이나 음식 윤리적 훈계를 ‘하라’, 또는 ‘하지 마라’로 계명화한 것이다. 그 잔소리는 대물림되어 개인에서 가족, 세대를 잇는 음식 윤리의 역사를 이룬다.

음식 윤리는 인류의 삶 전체에서 아주 어린 시절에 해당되는 선사시대로부터 비롯되었다. 인류가 구석기시대 수렵 채집민일 때부터 사냥하거나 채집한 먹을거리를 분배하는 일, 즉 ‘나눔’에서 음식 윤리가 시작되었다. 이는 유적과 유물로부터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다. 사람들은 우정과 상호 의무의 유대로 묶여 있었고 함께 먹고 마시는 음식 나눔은 그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고대 우리나라의 음식 윤리도 함께하는 나눔에 있었다. 오늘날 직장 회식은 이러한 나눔이 변모된 모습 중 하나이다. 고대 중국의 음식 윤리는 검소한 식생활을 강조하는 공맹식도(孔孟食道)였으며, 고대 그리스의 음식 윤리도 절제가 기준이었다.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먹어라’, ‘먹지 마라’의 이분법적 계율로 음식 윤리를 표현했다.

오늘날 음식 관련 위생 사건이 터져 공공 기관이 안전성 발표를 하면 “도대체 먹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하는 이분법적 반응도 그와 같은 논리와 통한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음식 윤리는 음식에 대한 무심(無心)이었고 그것이 중세에서는 금욕주의로 강화되었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와 풍요로운 음식 섭취, 그중에서도 육식을 권장하는 식문화로 변화해갔다.

근대에 이르러 과학의 발달은 음식뿐 아니라 음식 윤리에도 영향을 끼쳤다. 살아 있는 닭을 집에서 직접 죽여야 닭백숙을 먹을 수 있던 시절에는 먹는 사람과 만들어 파는 사람 사이에 간격이 없었지만 대량 사육과 분업화된 도살이 가능해지면서 먹는 사람은 닭으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도 닭의 존재를 감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만큼 먹는 사람과 생산자와의 거리 간격은 크게 벌어졌고 음식에 대한 불신과 불안도 커져가고 있다. 그에 따라 음식 윤리의 적용 범위는 날로 확대되었다.

음식 윤리는 먹는 행위뿐 아니라 만들고 파는 행위로,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지역적 차원을 넘어 국제적 차원으로, 현재를 초월해 미래로까지 확대 적용되기에 이르렀다. 과학의 발달에 발맞추어 음식 윤리 역사의 수레바퀴는 계속 전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음식 윤리의 키워드인 ‘나눔’만큼은 아직까지 굳건히 남아 있다. ‘혼자 먹지 말고 나눠 먹어라’는 어머니 말씀이 지금도 심금을 울리는 이유다.

김석신 교수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식품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 분야의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음식 윤리를 대중에 알려 우리 사회에 올바른 식문화가 정립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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