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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푸드를 찾아서

충남 예산 ‘월정한정식’ 추사밥상

On May 26, 2014

당대의 명필이자 조선의 미식가 추사 김정희의 고향 예산. 비옥한 땅에 각종 식재료가 넘쳐나고 사대부 집안의 식문화가 풍성하게 전해 내려오는 이곳. 까다로운 추사의 입맛도 만족시킬 만한 예산의 맛깔스런 밥상 이야기.

사대부 문화가 발달한 추사의 고향

현지답사를 기초로 기술된 조선 시대 지리서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충청도에서는 내포(內浦)가 가장 좋은 곳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내포는 지금의 예산을 중심으로 인근의 홍성, 당진, 서산 등지를 말한다. 땅이 기름지고 평평하며 소금과 물고기가 많아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가 많았던 이곳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년)의 고향이기도 하다.

추사에 관해서라면 추사체와 <세한도>를 남긴 조선 당대의 유명한 학자라는 교과서적 내용밖에 몰랐던 필자는 4년여 전 추사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된 추사밥상의 기획, 개발직을 맡으며 미식가로서 그의 면면과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음식을 헤아리는 추사의 섬세한 미각과 표현, 그리고 미식에 대한 욕구는 지금의 미식가들을 능가하고도 남을 정도이다. 추사는 24세에 청나라 수도인 연경에 부친의 수행원으로 함께 방문하면서 중국의 차 문화에 눈을 떴다. 조선에 돌아와서도 차를 즐기던 그는 한국의 다성(茶聖)이라 불리던 초의선사가 만든 ‘초의차’를 널리 알려 세상에 빛을 보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추사가 동갑내기 스님 초의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에는 차에 대한 예찬과 특유의 익살이 묻어난다.

“육차六茶가 갈급한 폐를 적셔줄 수 있으나 너무 적구려.
또 향운 스님과 더불어 진작에 차를 주기로 한 약속을 정녕하게 하였는데,
일창일기를 보내주지 않으니 안타깝소.
모름지기 이러한 뜻을 전달하여 그 차바구니를 뒤져서라도
봄 안으로 보내주면 좋겠소.
인편이 바빠 글쓰기가 어려워 예를 갖추지 못하오.
새 차는 어찌하여 돌샘과 솔바람 사이에서 혼자만 마시면서
애당초 먼 데 있는 사람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게요?
몽둥이 삼십 방을 아프게 맞아야겠구려.”


조선 최고의 명필인 추사가 친구가 보낸 육차를 받고 양이 너무 적다고 투덜대는 대목이 꽤나 신선하게 다가온다.

추사에게 헌정하는 ‘월정’ 자매의 밥상

추사의 밥상을 재현하기 위해 편지글 등에 나타난 단편을 따라 돼지고기, 부추, 은어 등 그가 좋아한 식재료를 찾아냈다. 조각난 단편이 하나 둘 모여드니 이런저런 형태의 상차림의 큰 줄기가 만들어졌지만 문제는 미식가 추사에게 헌정할 만한 식당을 찾는 일이었다. 실리를 떠나 식재료 자체와 음식 맛의 지조를 지켜 ‘추사밥상’의 타이틀을 달아도 될 만한, 200년의 시간을 돌려 추사가 살아 돌아와도 까칠한 그의 입맛을 만족시킬 만한 식당이 어디있을까 백방으로 찾던 중에 ‘월정’을 알게 되었다.

소박한 외관에 의아해하며 처음 월정 한정식을 맛본 날, 이곳을 운영하는 차혜자, 차정자 자매의 열정과 정성에 깜짝 놀랐다. 세상이 변하고 다양한 음식이 화려함을 내세워도 자매는 삼천 평 땅을 일구어 거의 모든 재료를 직접 농사지어 소박하지만 정성이 깃든 밥상을 차려 내고 있었다. 두부를 만들기 위해 콩농사를 짓고 입맛 돋우는 전채로 나오는 달걀찜 하나를 위해 직접 닭을 키운다. 김치에 들어가는 젓갈 하나도 모두 이곳에서 직접 만든 것이다. 35년간 이어오는 간장 맛으로 재운 너비아니는 짠 듯하면서도 품격 있는 단맛을 낸다. 야들야들하게 삶은 수육은 추사가 좋아했다는 부추겉절이를 곁들이고 10년 동안 간수를 뺀 천일염으로 만든 된장을 얹어 쌈채를 더해 먹는다.

월정의 ‘추사한정식’ 상을 받으면 크게 화려한 요리가 없어 어느 음식이 주인공인지 몰라 젓가락 들이밀기가 망설여질 수도 있다. 추사라면 어땠을까? 미묘한 차 맛과 차를 우리는 물맛까지 가려내던 추사라면 반찬 하나라도 된장, 간장, 젓갈 등 그 저변에 깔린 장맛의 격을 따졌을 것이다. 월정에 추사가 온다면 자신의 이름이 걸린 ‘추사한정식’ 앞에 고개를 끄덕일 거라 믿는다.

1 매일 아침 신선한 달걀을 주으러 간다.
2 하얀 곰팡이 피운채 익어가는 메주.
3 반짝이는 깃털만 보아도 닭의 건강을 알 수 있다.
4 못생긴 당근이지만 맛만 좋다.
5 대파 꽃을 말려 속의 씨앗을 받는다.
6 달고 은은한 살이 일품인 움파.
7 각종 콩과 곡물이 곳간 한가득이다.

월정 농장에는 못생긴 것이 참 많다

월정 한정식 바로 옆에 붙은 삼천여 평의 ‘월정 농장’에 가면 기죽을 일이 없다. 못생긴 것이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지푸라기에 흰 곰팡이 곱게 피운 채 널려 있는 크고 작은 메줏덩어리들, 고추장을 만들기 위해 숙성 중인 삶은 콩, 알뿌리가 짤뚝한 움파와 겨우내 얼지 말라고 흙구덩이에 넣어둔 당근과 무까지… 대파씨 털어 내고 남은 빈 깍지는 마치 솜 방울 같고 결명자씨 담긴 마른 대는 툭 치면 우수수 씨앗이 떨어질 것만 같다.

어느 구석이든 못생겼지만 정겹고 맛난 것이 그득하다. 햇볕이 뚫고 내려오는 따스한 비닐하우스가 자매의 겨울 놀이터다. 비닐하우스를 나와 마당 아래 닭장으로 가니 십여 마리의 토종닭이 뛰어놀고 있다. 멀리서 보아도 반짝거릴 정도로 윤기 있는 깃털에서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서 모아지는 달걀을 매일 식탁에 부드러운 달걀찜으로 올린다. 실리만 추구하지 않다 보니 식당 운영에 부침이 있을지언정 곳간만은 누구보다 부자다.

고추장 독 가득 핀 새하얀 곰팡이. 장이 잘 익었다는 증표다.

달밭농장의 간장 적금

흔히들 결혼 자금, 집 마련 종잣돈, 여행 비용 등을 모으려 적금을 든다. 그런데 월정에는 그 어떤 적금보다도 탐나는 적금이 있다. 두 자매의 적금은 삼천 평 농장 초입의 마당 한 켠에 있는 작은 ‘달밭농장’에 있다. 그것은 바로 큰 항아리 가득한 ‘간장’, 햇간장을 담가 3년이 되면 큰 독에 붓고 또 붓고… 그렇게 모아온 간장이 벌써 35년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0여 년 전 서울에서 예산으로 내려올 때에도 소중히 지고 온 이 간장은 3년 만기 간장 적금의 모음과도 같다. 간장을 살짝 찍어 먹어보면 그 맛이 참 달다. 간장이 이렇게 깊은 단맛을 내다니! 큰 항아리에 담긴 간장은 월정 상차림의 기본 밑간이 된다. 홍매실나무 아래 크고 작은 독이 여기저기 놓인 달밭농장은 작은 규모지만 마음이 편안한 곳이다. 월정에서는 특이하게 7~8년 된 묵은 된장을 즐겨 사용한다. 된장이 시간이 지나 마르면 콩물을 붓고 한 번 뒤집어 섞어 촉촉하게 만든 뒤 양지 바른 장독대에서 다시 긴 시간 숙성한다. 단골들은 이 된장을 ‘짜지만 참 달다’며 자꾸 찾는다. 묵은 장으로 끓인 깊고 구수한 된장찌개는 월정의 가장 큰 자랑이기도 하다.

막 끓여져 나온 뜨끈한 두부. 물기를 빼지 않고 그대로 먹어도 슴슴하고 고소한 맛이 있다.

1 약밥과 식혜, 떡, 직접 고은 수수엿까지 그 때 그 때 주전부리가 달라진다.
2 수수와 찹쌀가루를 섞어 부친 귀한 더덕전. 쌉쌀하면서도 은은한 단 맛이 베어난다.
3 월정의 자랑, 깊은 맛의 된장찌개.
4 농장에서 가져온 유정란에 직접 만든 새우젓으로만 간한 달걀찜은 입 안에 착 붙는다.

정직함으로 승부하는 월정 자매의 귀한 밥상

가족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가면 왠지 푸근한 기분이 든다. 아마도 홀과 주방의 호흡이 자연스레 맞아떨어지는 업장의 안정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도쿄에 거주하던 시절, 집 근처에는 형이 셰프로서 주방을, 동생이 소믈리에와 서버로서 홀을 맡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그곳은 맛도 맛이지만 손님들의 긴장을 무장해제시키는 편안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한적한 시골 ‘월정’에서 도쿄의 그 레스토랑이 떠오른 건 왜일까?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평범하기만 한 단층건물과 황량한 주변의 밭, 처음 방문한 이에게 기대감보다는 의아함을 먼저 품게 하는 곳. 하지만 누구나 이곳에서 밥을 먹으면 특유의 편안한 기류에 마음을 놓게 된다. 나긋나긋 상냥하기보다는 정직한 성품의 월정 자매, 그리고 정직한 음식 맛에 손님들은 강력한 믿음을 쌓아간다.

홀을 담당하는 언니나 음식을 담당하는 동생이 가장 극진히 모시는 것도 손님이 아니다. 그녀들은 고객보다도 고객이 먹을 음식의 식재료를 중히 여겨 떠받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찬에 오르는 작은 밑반찬 하나라도 허투루 만드는 법이 없다. 오른 찬이 마뜩지 않거나 식재료가 부족한 날에는 아예 손님을 받지 않는다. 상에 오른 종지 하나에도 남다른 정성과 탄탄한 기본기가 녹아 있는 이 밥상이야 말로 추사를 비롯한 미식가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리라.

shop info
메뉴 월정한정식 2만원, 추사한정식 3만5천원, 예산한정식 5만원(메뉴 모두 예약제)
주소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효림리 10-25
영업시간 문의
문의 041-338-1120

당대의 명필이자 조선의 미식가 추사 김정희의 고향 예산. 비옥한 땅에 각종 식재료가 넘쳐나고 사대부 집안의 식문화가 풍성하게 전해 내려오는 이곳. 까다로운 추사의 입맛도 만족시킬 만한 예산의 맛깔스런 밥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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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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