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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까지 살찌우는 훈훈한 기운

라멘

On March 04, 2014

한 젓가락 크게 뜬 면발을 입안 가득 씹으며 사발을 들어 국물까지 후루룩, 정신없이 라면을 먹다 보면 헛헛한 마음까지 부르다. 조금쯤 요란하고 터프한 액션을 취하며 땀 한 번 닦고 먹어야 더 맛있는 라면, 한국인이 사랑하는 라면의 원조, 일본의 라멘을 먹다.

거부할 수 없는 맛

세계적으로 연간 소비되는 인스턴트 라면의 양은 대략 1천억 개, 가장 많은 양을 소비하는 국가는 연간 440억 봉지를 소비하는 중국이지만 1인당 소비량을 따지자면 연간 70봉지 이상을 먹는 한국이 굳게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5일에 한 번꼴로는 라면을 끓여 먹는 셈, 밥과 김치 다음으로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인 것이다. 라면은 입맛을 대번에 사로잡는 자극적인 맛에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치명적인 냄새로 우리 국민을 단시간에 사로잡은 요물 중 요물이다. 주식으로도 먹지만 야식에서도 빠질 수 없는 것이 라면, 늦은 밤 출출할 때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라면은 생각만으로 애가 닳는다. ‘라면 먹고 갈래?’가 늦은 밤 이성을 집에 초대하는 고유 대사가 될 정도, 밤에 먹는 라면 맛을 아는 것은 비단 우리뿐이 아니다. 라면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일본식 라면 ‘라멘’ 역시 야밤의 포장마차에서 팔던 것에서 발전했다.

늦은 밤 포장마차에서 팔던 중화풍 국수

일본에서 라면을 먹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메이지 시대, 개항과 함께 밀려들어 온 중국인들이 노점에서 ‘납면(拉麵)’이라는 것을 만들어 판 것이 그 기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납면은 일본식 한자 발음으로 읽으면 ‘라멘’이 된다. 닭 뼈와 돼지 뼈, 멸치, 가다랑어 포로 육수를 내 중화면이라 불리는 국수를 말아 먹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중화요릿집에서만 라멘을 판매하던 것이 차츰 인기를 얻으면서 라멘 전문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부터 리어카가 돌아다니며 국수를 팔던 풍습이 있었는데, 그 풍습이 늦은 밤 ‘야타이’라 부르는 포장마차에서 라면을 파는 것으로 이어졌다. 일본의 전통 있는 유명 라멘집들의 경우 이 포장마차에서 시작한 곳이 많다. 아직도 후쿠오카 지역에 가면 늦은 밤 간단한 술, 안주와 함께 라멘을 파는 야타이(포장마차)가 많은 것으로 보아 술 마시고 난 뒤 라면을 먹는 애주가들의 풍습은 한국과 같은 듯하다.

일본은 다양한 스타일의 라멘 각축장

라멘은 본고장 일본에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 국민의 사랑을 꾸준히 받으며 솔푸드로 자리 잡았는데 그 사랑이 어찌나 대단한지 매주 전국 라멘 가게의 랭킹을 매기는 TV 프로그램과 잡지, 인터넷 사이트까지 있을 정도다. 오랜 전통을 지닌 만큼 지역마다 다른 개성을 띠고 발전했는데, 남쪽으로 갈수록 국물 맛이 진하고 기름지며 북쪽으로 갈수록 점차 맑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알려진 진한 돼지 육수 베이스의 돈코쓰라멘은 후쿠오카(하카타) 지역 스타일로 이 역시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국물이 걸쭉하게 점성을 띠며 진해진다. 도쿄는 일본의 중심답게 온갖 스타일의 라멘이 선보이는 곳이지만 도쿄식 정통 스타일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닭 육수에 가쓰오부시와 간장으로 맛을 낸 쇼유라멘이라 할 수 있다. 북쪽으로 올라가 삿포로에 이르면 일본식 된장인 미소로 맛을 내 구수한 맛이 특징인 미소라멘이 유명하다. 이러한 베이스를 기본으로 점포마다 각종 육류, 해산물 액기스나 향신료 등을 더해 자기만의 개성이 담긴 육수를 낸다. 기본적으로 밀가루를 간수로 반죽해 뽑아내는 면은 숙성 시간이나 굵기 등에서 저마다 차이를 보이고 숙주나 파 등 올라가는 부재료도 다르다. 돼지고기를 양념에 재워 삶아 구운 차슈도 점포마다 양념의 맛과 부위 등이 달라 선택의 폭이 다양하다. 도시 곳곳에서 비장의 레서피로 무장한 새로운 라면을 내놓는 신흥 강자와 전통의 명성을 지닌 노점포들이 끊임없이 경쟁하며 발전하고 있는 일본은 그야말로 라멘의 각축장이라 할 수 있다.

식량의 혁명 인스턴트 라면

일본에서 처음으로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한 이는 타이완 출신 일본인 안도 모모후쿠. 패전 후 구호물자로 밀가루가 넘쳐나던 가난한 시절, 그는 값싼 밀가루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 온 국민의 배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일본인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쉽지 않아 거듭 사업에 실패, 한껏 좌절한 그는 삶을 포기하고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술이나 마시자는 생각으로 조그만 선술집을 찾는다. 그곳 주방장은 어묵을 튀기는 중이었는데 밀가루 반죽을 입힌 어묵이 기름에 들어가자 밀가루 속 수분이 빠르게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는다. 밀가루 생면도 튀기면 수분이 빠져나가 오래 보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맛도 더 좋아질 것이라는 그의 생각이 적중, 거듭된 연구 끝에 1958년 처음 나온 ‘닛싱 치킨 라멘’이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 큰 히트를 치게 된다.

1963년 삼양은 일본 ‘묘조라면’의 노하우를 전수받아 국내 최초의 라면 ‘삼양라면’을 출시한다. 하지만 생소한 음식에 일본식 국물은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이에 한국인 입맛에 맞춰 수프에 고춧가루를 넣어 매운맛을 더하고 혼분식 장려책까지 날개를 달아줘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그 후 1970년대에 들어서는 즉석 자장면과 칼국수 등 다양한 종류의 인스턴트 면이 선보이고 1980년대 중반에는 컵라면이 등장하며 인스턴트 라면은 승승장구한다. 1989년에는 공업용 쇠기름으로 면을 튀겼다는 공격성 보도로 촉발된 ‘우지 파동’에 의해 삼양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지만 끊임없는 고급화 전략으로 인스턴트 라면은 여전히 국내에서 인기를 떨치고 있다.

하얀 라면 열풍을 지나 매운맛 경쟁, 그리고 돈코쓰라멘

3년 전 우리나라는 닭 육수를 베이스로 한 ‘하얀 라면’이 돌풍을 일으키며 다시 한 번 라면 전성시대를 맞았다. 요즘 그 인기는 사그라졌지만 새로운 라면에 대한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춘 다양한 라면 개발을 촉진시켰다. 최근에는 매운맛 유행과 더불어 ‘더 더 맵게’를 표방하는 라면들이 나와 인기를 끌고 있고, 여기에 ‘야매 요리’가 유행하며 젊은 층 사이에서 다양한 라면을 섞어 먹는 ‘궁극의 레서피’가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라면은 간편하고 싼 인스턴트식품’이라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깬 것은 일본에서 들어온 정통 라멘인데 폭발적이지는 않아도 근 10여 년간 차츰차츰 그 세를 넓혀가고 있다. 처음에는 하카타 지역의 돈코쓰 스타일 일색이던 것도 차츰 다양해졌다. 하지만 역시나 ‘일본 라멘=돈코쓰라멘’이라는 이미지가 강한지 최근에는 인스턴트 라면에도 돼지 육수를 넣는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돈코츠라멘

일본 전통 방법 그대로 뽑아낸 돈코쓰라멘 신촌 가마마루이

정통 돈코쓰 스타일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는 곳, 신촌 연대 정문 맞은편, 다소 외진 골목에 위치하고 있지만 그 맛만으로 입소문을 타며 라멘 마니아를 끌어모으고 있다. 10여 년이 넘게 라멘만을 전문적으로 수련한 베테랑 사장이 가마솥에서 끊임없이 돼지 육수를 뽑아내는 전통 기법 ‘요비모도시’로 만드는 진한 돈코쓰 국물이 일품이다. 돼지의 잡냄새가 전혀 나지 않고 채소와 향신료 등 특제 재료를 더해 묘한 중독성이 있는 향을 풍긴다. 밀가루와 간수를 황금 비율로 반죽해 뽑아 딱 적당한 시간 동안 숙성한 면발은 여느 곳보다 유독 가늘지만 한 그릇 다 먹을 때까지 탄력 있는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다. 70℃에서 저온 조리한 차슈는 부드러운 육질을 자랑하고 작은 그릇에 담겨 나오는 온천 달걀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육수의 진하기와 면의 삶기 정도도 선택 주문이 가능하며 배고픈 학생들을 위해 밥과 마파두부가 무제한으로 제공된다. 손님의 20% 이상을 일본인이 차지할 정도로 일본 본토인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돈코츠라멘
‘이것이 정통이다’를 보여주는 듯 진하지만 잡내 없는 육수와 얇지만 심이 살아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뚜렷한 면발이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다진 마늘을 제공하기는 하나 잡내가 없어 넣지 않고 먹는 것을 추천한다. 면을 다 먹고 남은 육수에는 함께 제공하는 매콤한 붉은 미소를 넣고 밥을 말아 먹어도 일품이다.

  • shop info
    메뉴 돈코츠라멘 7천원, 차슈라멘 8천원, 일본온천계란 1천원
    영업시간 12:00~21:00(15:00~17:00 브레이크 타임), 일요일 휴무
    주소 서울 서대문구 성산로 22길 4
    문의 02-3142-3929

미소야채라멘, 차슈라멘

소박한 도쿄식 소유라멘 대학로 일정당(이초도)

진하고 걸쭉한 돈코쓰가 주를 이루는 서울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맑은 스타일의 도쿄식 소유라멘을 판매하는 곳이다. 닭 육수를 베이스로 가쓰오부시와 채소로 우려낸 ‘트리플소스’ 육수는 삼삼하지만 깊고 은은한 감칠맛이 부담 없이 즐기기 좋다. 1등급 생달걀과 밀가루, 일본 간수회사의 협조 아래 한국에서 제조하는 간수로 직접 만드는 생면은 신선하고도 부드러운 맛을 낸다. 맑은 국물과 신선한 면에는 숙주 등 신선한 채소가 담뿍 올라가 한 그릇 먹고 나면 배 속에서 건강한 기운이 올라온다. 기본 소유 베이스에 미소를 더한 미소라멘도 자극적이지 않은 은은한 구수함을 낸다. 가정집에서 만든 듯 정감 가는 맛의 차슈를 듬뿍 올린 차슈동은 늦게 가면 다 떨어져 맛볼 수 없을 정도로 인기다.

차슈라멘
도쿄 올드 스타일의 삼삼한 소유라멘에 차슈가 올라갔다. 깊고 은은한 국물이 마치 엄마가 끓여준 국수처럼 문득문득 생각나는 맛이다. 다 먹고 나서 속이 편안한 것도 특징.

미소야채라멘
소유 베이스에 미소를 더해 은근히 달짝지근한 감칠맛이 난다. 부드럽게 볶은 채소가 푸짐하게 올려 있어 함께 먹으면 속이 부드럽게 풀리는 기분이다.

  • shop info
    메뉴 차슈라멘·차슈동 6천원씩, 미소야채라멘 7천원
    영업시간 11:00~22:00, 일요일 휴무
    주소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29길 28
    문의 02-747-7927

쓰케멘, 미소라멘

뉴욕까지 진출하는 라멘 삼대 이태원 멘야산다이메

‘면가 3대째’라는 뜻의 멘야산다이메는 도쿄에서 라멘집을 하던 사장이 내는 진하지만 깔끔한 맛의 돈코쓰 국물로 유명세를 타며 국내 라멘의 격전지인 홍대에서 오랜 기간 강자로 군림해 왔다. 지금은 이태원과 대학로, 논현동에 분점이 있으며 뉴욕 지점 오픈을 준비 중이다. 가게 내에 마련된 제면실에서 매일 직접 면을 뽑아내는데 메뉴에 따라 면의 굵기를 다르게 할 정도로 면발에 신경 쓴다. 양념에 재워두었다가 삶는 차슈는 손님에게 나가기 전 토치로 구워 그윽한 불향이 살아 있다. 이태원점은 다른 지점과 달리 24시간 운영되므로 한밤중 라멘이 생각날 때 언제든지 달려가도 좋다.

미소라멘
농후한 돈코쓰 육수에 구수하면서도 부드러운 미소의 맛을 더하고 차슈 대신 잘게 썬 고기를 넣어 부드러운 맛을 극대화했다. 진한 돈코쓰와 구수하니 달착지근한 미소, 신선한 면발이 기분 좋다.

쓰케멘
갓 삶은 면을 소스에 찍어 먹는 쓰케멘은 면 자체의 씹는 질감을 즐기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일반 면보다 굵은 면발은 탱글탱글한 질감을 즐기기에 좋고 돈코쓰스프에 매콤한 맛이 더해진 소스는 입맛을 돋운다.

  • shop info
    메뉴 미소라멘 7천5백원, 쓰케멘 8천원
    영업시간 24시간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06
    문의 02-790-4129

서울라멘

서울식 라면에 대한 고민 합정 한성문고

누가 뭐라 해도 한국에 돈코쓰라멘의 열풍을 일으킨 원조는 홍대의 ‘하카다분코’, 10년이 넘게 인기몰이 중인 하카다분코에서 ‘서울식 라면’을 만들고자 새로 문을 연 곳이 한성문고다. 일본 각 지방마다 특색 있는 라멘이 발전했듯 서울에서도 특색 있는 라멘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이 만든 서울식 라면은 돼지 뼈와 함께 닭 뼈와 생선을 넣어 상대적으로 삼삼하게 우려낸 뽀얀 국물에 기존의 일본식 면발 대신 더 두툼한 면발을 넣은 것. 기존의 돈코쓰 육수를 부담스러워 하고 일반 라멘 면발보다 쫄깃함을 좋아하는 한국인 입맛에 맞추었다. 고명으로는 차슈 대신 돼지고기 사태를 양념해 삶은 것을 잘게 찢어 올린다. 서울라면 외에 하카다분코의 인기 메뉴인 인라멘, 불맛 나게 볶은 채소를 인라멘 위에 올린 한라멘도 만날 수 있다. 하카다분코의 명성을 좀 더 여유 있고 깔끔한 매장에서 즐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서울라멘
돼지 뼈와 닭 뼈, 생선이 만난 뽀얀 국물에 칼국수 같은 면발이 돼지국밥과 북엇국, 사골 칼국수의 그 어느 사이를 생각나게 한다. ‘한국에는 왜 라멘이 없을까? 한국식 라멘은 무엇일까?’ 생각하던 이들, 기존 돈코쓰라멘 특유의 돼지 냄새와 기름진 맛을 부담스러워하던 이들이라면 가볼 만하다.

  • shop info
    메뉴 서울라멘·한라멘 1만원씩, 인라멘 7천원
    영업시간 11:30~22:30
    주소 서울 마포구 양화로6길 19
    문의 02-332-7900

한 젓가락 크게 뜬 면발을 입안 가득 씹으며 사발을 들어 국물까지 후루룩, 정신없이 라면을 먹다 보면 헛헛한 마음까지 부르다. 조금쯤 요란하고 터프한 액션을 취하며 땀 한 번 닦고 먹어야 더 맛있는 라면, 한국인이 사랑하는 라면의 원조, 일본의 라멘을 먹다.

Credit Info

포토그래퍼
정문기,강태희
에디터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