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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의 존재 이유

<아레나>의 컨트리뷰팅 에디터 이우성은 시인이자 러너다. 그는 네 살 된 몰티즈 ‘뾰롱이’와 함께 산다. 작은 구름 같은 뾰롱이와 함께 불암산을 오르는 게 그의 아침 일과다. 그는 뾰롱이를 만나고 나서 자신이 지구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가 사이판에서 마라톤을 마치고 쓴 글을 보내왔다. 뾰롱이와 함께하며 달라진 삶에 대한 고백이다.

UpdatedOn April 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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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뾰롱이

뾰롱이는 내 목을 노리고 달려와 점프한 후 나 몰라라, 털썩 주저앉아버린다. 켁. 내 아침은 단발마로 시작된다. 뾰롱이는 내 얼굴을 핥으며 쳐다본다. 이봐, 친구. 일어나서 먹을 것도 좀 내오고 밖에 나가게 가이드 좀 하지? 하는 눈빛. 건방진 강아지 놈. 어이없어서 일어난다. 내 커피물을 끊이기도 전에 뾰롱이 사료통에서 일용할 양식을 한 주먹 쥐고 노즈워크 장난감에 넣는다. 돌변해, 착한 눈빛으로 ‘앉아’ 자세를 취하고 있는 뾰롱이에게 준다. 물고 휑 가버린다. 아, 간사한 놈.

이제 커피 타임이 시작된… 다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침 식사를 마친 뾰롱이가 달려와 점프하며 내 몸을 민다. 나는 뾰롱이를 안고 소파에 앉아 허벅지 위에 올려두고, 사정 좀 봐달라는 눈빛을 보낸 후 커피를 마신다. 커피잔을 들고 있지 않은 손은 뾰롱이의 배를 쓰다듬는다. 시간은 대략 오전 8시. 참고로 회사 출근 시간은 10시.

커피를 마시고 일어나면 뾰롱이가 다시 점프하며 발로 나를 찬다. 대충 옷을 걸치고 뾰롱이 목줄 착용.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상체를 일으켜 앞발로(애견인인 친구는 내가 “앞발”이라고 하면 손을 저으며 말한다. “손!”) 엘리베이터 문을 긁는다. 네 살인데 아직도 자기가 발로 긁기 때문에 문이 열리는 줄 안다. 나를 닮아서 머리가 좋진 않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주민에게 한 번 두 번 세 번 짖으며, 안 돼, 라고 말할 때까지, 이 구역 짱은 나라는 신호를 보낸 후에 얌전해진다. 1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아파트 화단 쪽으로 KTX처럼 달린다. 늘 소변 보는 위치에 도착해 안심한 표정을 지은 후 한 발을 들고 화단의 식물 쪽에 바짝 기대 시원하게 발사. 그리고 또 뛰기와 냄새 맡기를 반복하며 아파트 정문을 지나, 불암산을 향해 올라간다. 뾰롱이와 나는 일주일에 3번 아침 산을 오른다. 달려서.

뾰롱이는 3일은 나와, 4일은 엄마와 산다. 내가 회사에 가야 해서 매일같이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다. 3일 중 이틀은 주말이고, 하루는 수요일인데, 이날은 회사 근처 유치원에 간다. 무슨 강아지를 유치원까지 보내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집에 종일 혼자 둘 순 없으니까. 사람도 집에 혼자 가둬두면 답답하잖아! 엄마도 물론 뾰롱이를 예뻐하지만 ‘할머니’가 저 기운 넘치는 막내아들을 일주일 내내 데리고 있을 수 없어서…. 무엇보다 엄마는 뾰롱이를 산책시키는 걸 무서워한다. 갑자기 차도로 확 달려가버릴까봐. 목줄을 하지만 뾰롱이가 엄마보다 힘이 세다. 그래서 나와 있는 3일이 뾰롱이에겐 밖에 나오는 날이다. 얼마나 좋을까. 초원의 야생마처럼 달려간다. 등산로를 따라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린다. 달리다가 돌 냄새, 주차 금지 팻말 냄새, 전봇대 냄새, 지나가는 강아지 냄새를 맡으며 달린다. 산책 나온 동네 아주머니를 보며 쓸데없이 짖다가 또 달린다. 그러다가 항상 ‘응아’ 하는 장소에 닿으면, 제자리에서 몸을 빙빙 돌리며 대방출!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간절한 존재임을 일부러 부정하는 편은 아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친구들…? 뭐 아마도. 그들에게 내가 있어야 한다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뾰롱이를 만나, 새삼, 아, 내가 지구에 있어야만 하는구나 깨달았다. 나는 삶의 소중함을 모른 척하거나 내 가치를 추락시키며 괴로워하는 편도 아니다. 행복의 세부를 한 장씩 읽으며 감격하는 편도 아니었다. 뾰롱이를 만나고 새삼 그렇게 되었다고 적는 게, 저 천방지축인 아이와 나의 관계를 미화하는 것일까? 음, 아닌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뾰롱이를 데리고 밖에 나오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은데 어찌됐건 그걸 하게 되는 게, 나로서는 신기하고 놀랍다. 아마 내가 노원구 최고의 게으름뱅이일 거라서. 엄마 집에 뾰롱이를 데리러 가면, 믿거나 말거나 뾰롱이는 이미 한참을 짖고 있다. 엄마는 뾰롱이가 네 발자국 소리를 기가 막히게 안다고 말한다. 오늘 형이 오는 걸 아는 것 같다고도 말한다. 내 우주엔 너무 많은 존재들이 있다. 그중엔 뾰롱이도 있다. 뾰롱이의 우주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만 있다. 아, 좋아하는 간식 ‘터키츄’도 있겠다. 그러니 간절할 수밖에.

불암산 초입에서 500m 더 들어갔다가, 간 길을 그대로 돌아온다. 가면서 냄새 맡았던 나무, 주차 금지 팻말, 전봇대에 똑같이 코를 대고, 아파트 화단에 남은 한 방울의 소변을 보고(정말 한 방울!), 다시 엘리베이터 문을 긁으면 ‘결국 본인의 의도대로’ 문이 열리고, 앉아서 한숨을 피휴 쉬고 기다리다가 집 앞에 도착한다. 거기서부터는 뾰롱이가 앉는다. 번호키를 눌러 문을 열고 화장실로 직행. 씻긴다. 물이 발에 닿으면 뾰롱이는 나를 쳐다본다.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그런데 화를 내는 건 아니고, 나 물 싫어요, 이런 눈빛. 그러다가 손을 다 씻기고 발을 씻길 때가 되면 시건방진 눈빛으로 쳐다본다. 이봐, 우리 방금 전까지 좋았잖아.

좋았지. 뾰롱이랑 달리는 건 마치 마라톤 선수들이 하는 ‘인터벌 훈련’ 같다. 빠르게 달리다가 잠시 느리게 달리고, 다시 빠르게 달리다가 잠시 느리게 달린다. 신기하게도 팔자걸음으로 달린다. 어릴 때부터 내 걸음걸이를 보고 자라서 저렇게 된 걸까. 아무튼 이런 훈련을 5세트도 넘게 한다. 다이어트에 좋다는 공복 러닝…? 살은 안 빠졌지만. 뾰롱이랑 아침 산을 오르며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에 숲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게 된 건, 시인인 내게 큰 소득이다. 봄의 초록, 여름의 햇살, 가을의 붉음, 겨울의 가지를 눈에 담으며 내가 가장 절절하게 느낀 감정은 ‘안도’다. 이 감정은 항상 내 가슴속에 있으며, 다시 아침마다 뾰롱이와 산에 오를 때 더 확고하고 원대해진다. 내가 아끼는 누군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감정을 뾰롱이에게서 배우지 못했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요즘 그 깨달음을 시로 쓰고 있다.

씻고 나면 뾰롱이는 잠시 잔다. 뾰롱이는 하얀색 몰티즈다. 거실 바닥에 구름이 놓여 있는 것 같다. 분명 자고 있는데, 조용히 어딘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시간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안도의 감정은 늘 약간의 불안함으로 바뀐다. 인생은 결국 긴 이별 직전의 시간이니까. 그러니까 내 동생, 고마워. 오늘도 우리가 살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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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IBUTING EDITOR 이우성
EDITOR 조진혁
ILLUSTRATION 이슬아

202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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