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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잃은 아웃도어

UpdatedOn July 30, 2019

아웃도어 신이 꼭 가만히 멈춰 선 모습이다. 더 정확히는 아웃도어 패션 시장이 그렇다. 갈 곳 잃은 사람처럼 우왕좌왕한다. 산이 좁아서, 도시와 친해지고 싶어서 우르르 몰려 내려온 아웃도어 브랜드가 더 이상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눈치다. 스포츠 영역의 우먼스 마케팅이 뜨자, 여성 타깃으로 눈을 돌려 마케팅을 하고, 러닝 시장이 커지자 등산화를 만들던 브랜드들이 러닝화를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협업, 스타일의 확장, 지금의 트렌드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1년짜리 지지대를 세우는 식이다. 아쉽지만 그리고 예상 가능하게도 이도 저도 아니다. 이렇게 주먹구구식 마케팅을 계속해도 괜찮을까. 물론 안 괜찮겠지. 아웃도어 신의 기대되는 다음이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EDITOR 신기호

독창성 없인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과거엔 그랬다. 만드는 족족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알록달록한 ‘등산복’은 ‘아웃도어’라는 이름이 붙어 산으로, 강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필수품처럼 여겨졌다. 까마득해 보이지만 불과 6~7년 전 얘기다. 한창 아웃도어가 잘나가던 2013년 롯데백화점의 아웃도어 부문 매출 증가율은 무려 29.8%에 달했을 정도다. 정점이었던 2014년 이후 급격히 시장이 축소되자, ‘헬리한센’ ‘살로몬’ ‘노스케이프’ ‘이젠벅’ ‘센터폴’ 등의 브랜드가 잇따라 철수를 선언했다.

살아남은 브랜드들의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젊은 층을 겨냥하자’ ‘키즈로 눈을 돌리자’ ‘골프웨어를 신규 라인으로 내놓자’ ‘아예 스트리트 캐주얼처럼 만들어보자’ 등 옷으로 할 수 있는 웬만한 시도는 다 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스트리트 캐주얼이 유행하자 아노락 점퍼를 내놓는가 하면, 피싱웨어가 뜬다고 하니 낚시조끼를 만들었다. 래시가드, 레깅스, 하와이안 셔츠 등 그때그때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을 마치 원래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만들었던 것처럼 내놨다. “우린 기능성까지 갖췄잖아”를 은연중에 내세우면서.

갑자기 맞닥뜨린 아웃도어의 ‘정체성 위기’는 결국 그들이 자초한 결과다. 국내 아웃도어 업계의 위기 원인으로는 첫째, 명확한 브랜드 정체성 부재(不在). 둘째, 대중에 휘둘린 경영진. 셋째, 불필요하게 뛰어난 제조 능력(!)을 꼽을 수 있다. 처음부터 콘셉트가 명확한 해외 브랜드도 국내에 들어오기만 하면 정체성을 상실하고, 빨강 파랑 바람막이를 내놓지 않던가. 그래야 팔리기 때문이다. 국내 브랜드는 말할 것도 없다. 너나 할 것 없이 잘나가는 1등 브랜드의 디자인을 카피하고(실제로 아주 잘 만들었다), 롱 패딩이 인기라고 하면 브랜드 정체성과 맞든, 안 맞든 마구 찍어냈다. 마진율이 높은 롱 패딩으로 2017년 겨울 ‘재미’를 봤던 브랜드들은 지난해에도 그 유혹에 빠져 생산량을 늘렸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비슷한 롱 패딩 속에서 뭘 골라야 할지 몰랐던 소비자는 결국 가격이 싼 옷으로 눈을 돌렸다. 브랜드들은 결국 ‘제 살 깎아먹기’ 식의 가격 인하 경쟁을 펼쳤고 ‘손해 보는 장사’는 예상 가능한 수순이었다.

물론 대다수 소비자를 겨냥할 수밖에 없었던 기업 경영진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소수 마니아층을 공략해서는 몇천억대의 연 매출 규모를 도저히 유지할 수 없을 테니까. ‘성장’까진 아니어도 ‘선방’하기 위해 잘 팔릴 만한 옷을 내놨던 건 고육지책일 수도 있다. 남들이 사 입으면 나도 가져야 하는 한국인 고유의 소비 특성도 무시할 수 없는 한국만의 문화적 특징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첫 단추를 잘못 꿴 것만큼은 이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다른 패션 브랜드에도 이 논리는 적용되지만, 특히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옷에 붙은 브랜드명만 가리면 어디 제품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요즘이다. 특징이라고 꼽을 만한 디테일 하나라도 있으면 얘기는 달라질 텐데 말이다.

암벽등반에 특화된 발가락 신발을 만드는 ‘비브람 파이브핑거스’는 일반 대중은 잘 모르지만 클라이밍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꼭 갖고 싶은 브랜드’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전문성을 추구하는 브랜드 전략이 마니아층을 만든 비결이고, 큰 폭은 아니더라도 회사가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근간이 된다는 걸 이 회사는 아는 것이다.

지금은 국내에서도 아주 유명한 ‘파타고니아’ 역시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옷 한 벌을 만드는 데 물이 얼마만큼 사용되는지 아느냐. 이 옷을 사지 말라’고 광고하던 이 회사의 전략은 ‘지금 당장 옷 한 벌 못 팔더라도 장기적으로 우리가 친환경 제조 공정을 구축하며 노력하는 기업임을 알아주면 된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사지 말라고 광고했던 그 옷은 불티나게 팔렸다. 소비자들로 하여금 ‘이 옷 한 벌을 사는 것이 다른 옷을 사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한 것도 한몫했다. 디자인도 ‘한 끗’, 투박하지만 파타고니아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독창성과 롱런 전략으로 성공한 대표적 케이스다. 미국 포틀랜드에서 시작한 브랜드 ‘나우’도 주목할 만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친환경 공법으로 염색한 가먼트 다잉 기법을 사용하고 제조 공정에서 인권을 존중하는 등 기존 패션 브랜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시도들을 하고 있다. 디자인도 방향성이 있다. 최신 유행하는 스타일을 반영하지도 않는다.

‘마이웨이’를 외치는 이런 브랜드들은 물론 당장 큰 매출을 올리진 못한다. ‘대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멀리 보고 길게 갈 수 있는 브랜드 전략을 세운 회사들은 10년, 20년 뒤 그 위상이 달라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아웃도어는 아니지만 독특한 콘셉트로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아더에러’ ‘위빠남’ ‘앤더슨벨’ 같은 국내 패션 브랜드의 행보에서도 배울 점은 많을 것이다. 누가 더 개성 있는 제품과 명확한 콘셉트로 기나긴 마라톤을 시작할 것인가. 그 쉽지 않은 결정을 이제는 내려야 할 때다.

WORDS 민지혜(<한국경제신문> 패션뷰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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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신기호
WORDS 민지혜(〈한국경제신문〉 패션뷰티팀장)

201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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