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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itique

우리의 술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UpdatedOn April 26, 2019

시절에 따라, 시류에 민감하고 누구보다 빨리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동시대 사람들을 매혹하는 술들이 있었다. 몇 해 전에는 싱글 몰트위스키가 그랬고, 지금은 내추럴 와인이다. 여기에 최근 몇 년간 주조 스타일과 브랜드 이미지를 꾸준히 각색해온 전통주, 우리 술도 한 자리 차지한다. 정성 들인 재료로 잘 만든 우리 술들이 한층 명확하고 고급스럽고 개성 있는 정체성을 어필하며 매력적인 브랜드로서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싱글 몰트위스키와 내추럴 와인의 주류 시장 내 판매 점유율이 생각보다 높지 않은 것처럼, 잘 만든 전통주 역시 판매량 면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전통주가 동시대적 가치를 켜켜이 입으며 발전하기 어려운 시대, 경제, 역사적 상황이 있었다. 그렇지만 힘겹게 여기까지 왔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술은 어디로 가야 할까?

EDITOR 이경진

이제야 정당한 경쟁 라인에 선 것

최근 “와우!” 했던 막걸리 두 종류가 있다. 남양주 봇뜰 양조장의 ‘봇뜰탁주’와 광주요 화요에서 설 명절 한정판으로 만든 ‘화요 프리미엄 생막걸리’다. 나만 몰랐지, 봇뜰 양조장 권옥련 대표는 꾸준히 술을 빚고 있었다. 유독 봇뜰탁주가 내 레이더에 들어온 것은 어디까지나 하얗고 깔끔한 디자인 덕분이다. 와인 바나 레스토랑에서 안면 있는 소믈리에와 와인을 고르다 흔하게 주고받는 농담이 있다. “고르기 힘들면 ‘병 맛’으로 골라볼까요?” 병 맛. 우아한 농담은 되지 못하지만 병 맛도 분명 중요하다. 내추럴 와인의 인기에 구태를 벗어난 진취적이고 개성 있는 라벨 디자인이 명확히 한몫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막걸리도 마찬가지. 동급 술이 거기서 거기라면, 눈으로 봐서 당기는 것을 고르게 된다. 같은 양조장의 막걸리라면 개성은 달라도 완성도야 비슷할 터. 

봇뜰 양조장의 술로 말하자면, 봇뜰막걸리의 때수건색 플라스틱 병보다야 매끈하게 잘빠진 봇뜰탁주를 고르게 되는 것이다. 소비자의 “와우!”는 복합적인 인지로부터 나오는 감탄사다. 술도 음식이니 맛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감싼 패키지나 브랜드 이미지 등 맛 이외의 요소까지 모두 인지한 후에 홀딱 반했을 때 나오는 것이 “와우!”라는 것이다. 가격만 한 가치를 지니는가에 대한 판단도 중요하게 포함된다. 봇뜰탁주 한 병의 소매가격은 6천원 선. 일반적으로 막걸리가 생수만큼 싼 데 비하면 그 다섯 배 정도는 한다. 그러나 식당에서 소매보다 훌쩍 비싼 1만8천원에 마시고도 나는 바가지 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상품이 그 값어치를 했기에 기꺼이 지불한다. 단순한 자본주의 명제. 최근 몇 년 사이 눈을 괴롭히지 않는 패키지 디자인과 잘 정리된 스토리텔링으로 동시대적 정체성을 갖춘 한국 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완성도 또한 상향 평준화. 직접 빚은 누룩만을 사용하거나 남아도는 국산 쌀을 품종별로 팍팍 소비해주는 양조장도 적지 않고 감미료에 의존하지 않고 본연의 단맛을 잘 끌어낸 좋은 술도 이제 많다. 

덕분에 한국 술이 뒤늦게나마 하나의 상품군으로서 정당한 경쟁 라인에 섰다는 것이 한국 술 시장을 보는 내 관점이다. ‘전통주’라는 과장된 미사여구나, ‘우리 술’이라는 막무가내 격 감싸기 조력 없이도 한국 술이 그 자체로 위상을 갖게 된 것은 생산자들의 장인 정신과 소비자의 가치 소비가 잘 맞물린 결과다. 언젠가 한국 술 업계에 투입되는 막대한 정부 지원 없이도 자립 가능한 상품이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다. 단, 비교 대상이 없는 막걸리와 달리 청주나 과실주, 증류주 쪽에서는 한국 술이 여전히 밀린다. 서양의 와인, 브랜디나 위스키, 일본의 사케나 와인과 비교하면 아직 그만한 완성도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열악한 생산, 유통 구조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는 높은 가격대도 근심이다. 제주도에서 귤로만 만들어 프랑스산 오크통에 2년 반 숙성하는 브랜디, 신례명주는 무척 잘 만든 증류주이지만 750mL 정가 9만9천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그 절반 가격의 위스키 양산 제품을 면세점에서 구매하는 것이 더 높은 만족을 주지 않나라는 의문이 여전히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WORDS 이해림(푸드라이터)

더 젊어지고, 똑똑해지고, 다양해져라

전통주에 관한 인식과 관심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전통주 시장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늘었고, 술을 배우고 직접 빚어보겠다고 교육기관의 문을 두드리는 일반인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전통주를 취급하는 업장, SNS에 올라오는 포스팅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하지만 아직 전통주의 갈 길은 멀다. 대다수 사람들이 여전히 질문을 던진다. “이런 술은 어디에서 살 수 있어요?” 소비자가 일상에서 접하는 유통 채널을 들여다보자. 마트, 편의점, 일반 식당 등에서 만날 수 있는 술은 여전히 희석식 소주와 맥주 등이다. 편의점이 유통 채널의 대세로 자리 잡고 있지만, 소비자가 편의점에서 쉽게 집어 드는 술은 ‘4캔에 만원’ 하는 수입 맥주 정도다. 지난 2017년, 정부는 전통주의 온라인 판매를 허용했다. 전통주에 대한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여전히 온라인에서 전통주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지도 자체가 5% 미만이다. 유통 채널에서 우리 술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뭘까? 

앞서 언급한 인지도 측면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통주의 존재에 대해 아는 사람도 적고, ‘전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표기명 때문에 여전히 ‘예스러운’ 술로 포지셔닝된다. 가격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전통주의 기본은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다.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 주정에 물과 감미료를 타서 만든 술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많은 소비자는 전통주를 비싸게 생각한다. 모든 상품군에는 저가와 고가의 것이 공존한다. 우리 술도 마찬가지다. 고급 전통주는 고급 위스키, 와인 등과 그 가치를 비교해야 한다. 젊은 층의 입맛을 사로잡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선 첨가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비자는 똑똑해져 아스파탐과 같은 인공 감미료가 들어갔는지 여부를 따지며 술을 맛보는 단계로 들어섰다. 실제로 전국 30여 개 전통주점의 판매 순위 결과를 보면 막걸리는 7위 내 5종의 술이 인공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았다. 자연 그대로의 맛을 내세운 막걸리가 훨씬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다. 맛, 원료, 색상, 디자인 등의 고급화, 차별화, 다변화도 필요하다. 

사실 한국의 막걸리는 외국인이 놀랄 만한 스펙트럼을 지녔다. 막걸리뿐 아니다. 증류주나 한국 와인에 들어가는 종류를 나열하면 우리 술의 스펙트럼은 깜짝 놀랄 정도로 넓다. 술들이 소비자에게 인상적으로 각인되려면 일단 디자인의 고급화가 필수다. 플라스틱 병보다는 유리병을 사용하고, ‘올드’한 디자인을 탈피해야 하며, 누군가 스마트폰으로 찍고 싶고, SNS에 자랑하고 싶은 세련미와 젊은 감성을 탑재해야 한다. 먹는 방법의 다양화도 필수다. 해당 술의 맛을 돋보이게 해주는,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내야 한다. 한식이 부상하는 지금 우리 술도 세계로 뻗어나갈 기회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부지런히 뛰어야 한다. 전국 양조장들의 적극적인 투자와 노력이 절실한 때다. 


WORDS 이지민(음주문화연구가, ‘대동여주(酒)도’ ‘언니의 술 냉장고 가이드’ 제작자, F&B 컨텐츠 마케팅 회사 PR5번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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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경진
WORDS 이해림(푸드라이터), 이지민(음주문화연구가, ‘대동여주(酒)도’ ‘언니의 술 냉장고 가이드’ 제작자, F&B 컨텐츠 마케팅 회사 PR5번가 대표)

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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