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FASHION MORE+

일일, 일물

일상을 최소한의 언어로 단단히 응집시킨 작가의 일물들.

UpdatedOn November 30, 2018

/upload/arena/article/201811/thumb/40624-344673-sample.jpg

서정화의 문구류 시리즈 ‘Basalt; Stationery Series’

만지지 마시오. 작가의 작품에 으레 붙는 당연한 으름장이 서정화의 일물에는 무의미하다. 오히려 그는 촉각적 욕구를 자극하는 사물을 궁리한다. 이 문구류 시리즈는 서정화가 디자인하고, 제주도의 현무암 조각을 현지 석공 장인들이 가공하여 제작한다. 오름, 주상절리, 정낭 형태를 응용한 이 일물을 쓰다듬으면 표면은 거칠거칠한데 왠지 모를 온기가 느껴진다. 현무암이 이런 돌이었나? 서정화가 만든 사물을 살피는 일은 물질 자체가 주는 강렬한 충격과 마주하는 일이다. 누구나 잘 알지만, 그런 식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던 소재들을 발견하게 된다. 지구상의 모든 물성에 대한 존중이, 형태와 맞물려 빛난다.
 

/upload/arena/article/201811/thumb/40624-344674-sample.jpg

이광호의 옷걸이 ‘The Moment of Eclipse Series – Hook’

전선, 고무 호스, 지푸라기부터 적동, 돌, 옻칠까지 이광호가 탐구하는 소재는 종잡을 수 없다. 또한 이광호의 손을 거치면 비범하고 모호한 일물이 된다. 그렇게 예술과 일상의 경계에 턱 하니 놓여 익숙하고도 낯설게 읽힌다. 이 차갑고 단단한 것은 옷걸이다. 이광호가 2014년부터 만들어온 ‘모먼트 오브 이클립스 시리즈’의 연작이다. 검붉은빛의 적동, 놋쇠, 알루미늄 3가지 금속으로 만드는데, 금속 재료가 품은 성질을 조금이라도 닦아낸 흔적이 없다. 묵직하고 견고하며 자연스럽게 빛나고, 쓰다듬으면 경쾌한 감촉이 느껴진다. 적동과 놋쇠에는 멋스러운 얼룩도 흐른다.
 

/upload/arena/article/201811/thumb/40624-344675-sample.jpg

최정유의 선반 ‘In Between – Circle’

최정유의 작업에서는 틈새마다 일상의 소소하고 익숙한 움직임이 보인다. 좁은 현관 벽에 걸어 외출할 때 덥석 챙길 수 있는 작은 것들을 둔다거나, 테이블 위에 두고 자주 쓰는 펜, 향이 나는 종이, 좋아하는 돌 등을 하나씩 올리는 즐거운 순간들. 철판을 절곡해 ㄷ자 모양으로 접은 큰 원과 그 틈에 직각으로 끼어 있는 작은 원. 간결한 요소로 완성한 최정유의 선반은 벽면에 부착해서도, 테이블 위에 겹겹이 쌓아서도 쓴다. 물건은 쓰여야 한다. 최정유의 일물에서는 이 당연한 문장이 칸칸이 배어난다.
 

/upload/arena/article/201811/thumb/40624-344672-sample.jpg

김진식의 우편함 ‘The Mail Box’

김진식의 일물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호기심이 녹아 있다. 우편물은 왜 앞쪽으로만 꽂아 보관할까. 서류를 보관하는 가구나 도구는 왜 공간에서 툭 불거져 나와 있어야 할까. 그렇다면 이우편함은 어떻게 쓰면 좋을까? 직관적인 감을 따르면 된다. 벽에 부착한다. 그럼 마치 처음부터 벽과 하나였던 것처럼, 처음부터 그 공간에 붙박인 것과 같은 모습의 우편 보관함이 된다. 우편물과 각종 고지서와 서류들은 옆쪽으로 꽂는다. 필요할 때만 드러나도록. 형태가 기능을 완벽히 포용하는 것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형태, 작고 명확한 기능. 김진식의 디자인에서는 그 자신이 골몰하는 주제가 간명하게 드러난다.
 

<에스엠라운지>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이경진
PHOTOGRAPHY 한준희
COORPERATION 라이플로, 서정화 스튜디오
ASSISTANT 박지은

2018년 12월호

MOST POPULAR

  • 1
    영감을 찾아서: 뮤지션 루피
  • 2
    시간은 제멋대로 흐르고
  • 3
    스트레이 키즈의 리노와 현진
  • 4
    영감을 찾아서: 감독 김보라
  • 5
    스무살의 NCT DREAM

RELATED STORIES

  • FASHION

    세차장에서

    명랑한 스웨트 셔츠를 입고 반짝반짝 세차를 합니다.

  • FASHION

    처치스의 페니 로퍼

    이 계절에 탐나는 이름, 처치스와 페니 로퍼.

  • FASHION

    정체성 확실한 반지들

    브랜드의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주는 반지들.

  • FASHION

    가을 스웨트 셔츠

    가을이 오길 손꼽아 기다린 스웨트 셔츠 9.

  • FASHION

    디올 맨의 액세서리

    디올 맨이 주디 블레임에게 건네는 빛나는 헌사.

MORE FROM ARENA

  • FEATURE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스타그램 계정이 사라졌다”고 <아레나>의 컨트리뷰팅 에디터 이승률이 말했다. AI의 오류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거쳐야 하는 AI와의 입씨름이다. 과연 그의 계정은 살아 있을까?

  • INTERVIEW

    AB6IX의 네 남자

    어느 것 하나로 모이지 않고 각자 들쭉날쭉한 개성을 지녔지만, 함께 근사한 하모니를 만드는 AB6IX에게 나다운 것이 뭔지 물었다.

  • ISSUE

    하성운에게 배워봅니다

  • FASHION

    팬데믹 시대의 패션위크: Digital Presentation

    2021 S/S 디지털 패션위크는 앞으로 패션 시장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어떻게 변하는지를 점쳐볼 수 있는 초석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 런웨이를 생중계하는 것부터, 영상미가 돋보이는 패션 필름을 보여주거나, 새로운 형식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등 브랜드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창의적인 패션위크를 전개했다.

  • FASHION

    Untact Grooming

    지금 가장 현실적인 그루밍.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