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WATCH MORE+

평양냉면 두드려보기

음식 평론가 이용재가 이번엔 말 많은 평양냉면 신에 가볍고 예쁜 책 하나를 던졌다.

UpdatedOn August 07, 2018

3 / 10
/upload/arena/article/201807/thumb/39398-323885-sample.jpg

 


<냉면의 품격>은 방대한 범주의 한식 중 평양냉면을 콕 집어 비평한다. 어쩌다 한식 중 평양냉면을 가장 먼저 ‘비평적인 좌표’에 올리게 되었나?
외국 생활 당시 취미로 요리를 독학하던 과정에서 이 음식이 집에서 재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대부분의 한식은 집밥과 외식의 구분이 모호하고, 되려 ‘집밥 같다’는 표현으로 외식을 칭찬하는 현실에서 비평적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실향민의 음식이라는 정서적인 정통성이 작용하는 점 또한 흥미로웠다. 모든 음식이 나름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야기가 많은 음식이다.

이전의 저서들에 비하면 꽤나 책이 얇다. 평양냉면에 관한 철학은 최대한 덜어내려 한 것처럼 보인다. 의도적인 연출인가?
맞다. 여러 이유가 있다. 일단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가장 두려운 게 동어 반복이다. 평양냉면의 비평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전작인 <한식의 품격>에서 비중 있게 다루었으므로 이 책에는 담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 책을 통해 처음 내 비평적 시각을 접할 독자를 위해 머리말에서 아주 간략하게 요약해 언급했다. 어떤 매체에서는 평양냉면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그 역시 의도였다. 나는 건축 역사 및 비평으로 진로를 택한 연구자였기에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 모르지 않는다. 다만 한국의 음식 저널리즘은 역사나 어원 등, 소위 인문학적 자료를 사골 우리듯 우려 써먹기만 할 뿐, 그 속에서 패턴이나 교훈을 도출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분량도 계획적이었다. ‘평양냉면 기행을 위한 핸드북’이 애초에 기획 의도였다.

<한식의 품격>을 쓰던 당시에는 한식이 지닌 맛의 원리와 개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기본 전제를 계속 깔아야 했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평양냉면은 상황이 다르다. 한식 중 아주 드물게, 사람들이 지향점과 문제점 혹은 대안에 관해 말하기 좋아하는 음식이 됐는데.
모르겠다. 지향점은 존재하지만 많은 부분 감정적인 가치에 기댄 개인의 호불호다. 아니면 스테인리스 주발에 담겨 나오는 냉면을 ‘스텐 젓가락으로 먹으면 안 된다’ 같은 일종의 컬트가 발달했다. 또 하나 문제는 매년 매체에 등장하는 ‘냉면값 오른다, 서민 음식이라 하기 어렵다’로 대변되는 ‘가격 대 성능비’에 관한 논란이다. 지난 6~7년간 꾸준히 평양냉면에 대한 글을 쓰면서 대체로 이런 시각이 너무 단순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는데, 올해 책을 쓰기 위해 취재하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스테인리스 주발과 공동 수저통을 쓰는 환경에서 내는 냉면이 1만2천원까지 올랐다면 이제 변명의 여지가 거의 없어진 거다.

<냉면의 품격>에서 격식을 갖춘 냉면집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동의하는가?
부분적으로만 동의한다. 일부 기획형 음식점 혹은 고깃집은 놋그릇에 담아 내놓아도 딱히 맛있지 않다. 하지만 소위 ‘노포’는 그런 차이가 분명히 완성도와 맛에 영향을 미친다. 애초에 출발점이 다르다. 그릇이 좋고 접객이 좋아서 냉면이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측면에도 신경을 쓰기 때문에 음식에도 더 세심하게 접근하고 그래서 더 나은 음식을 내는 것이다. 한편 한국의 음식 문화는 ‘서민’의 굴레에 지나치게 얽매어 있다. ‘허름하지만 맛만 있으면 되지’라는 비틀린 믿음이 있는데 과연 그런 게 가능한 현실인지 언제나 되묻고 싶다.

모든 비평가는 비평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당신이 비평을 쓰는 과정에서 완성도를 위해 마련하는 체계 혹은 가이드라인은 무엇인가?
평가의 여건 구축에는 나름 기준이 있다. ‘내 돈 주고 먹기’는 이제 말하기도 지겹고,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빼놓고 모든 음식은 끼니의 맥락에서 먹는다. 파인 다이닝처럼 식사 시간이 길고 오감에 호소해 피로감이 강한 음식이라면 취재를 하더라도 연일, 혹은 연달아 끼니로 먹지 않는다. 대체로 평가를 위해서는 음식만 놓고 조리나 맛내기 과정 등을 역추적해야 되는데 언제나 위험부담이 크다. 먹어본 음식이라면 그 기본적인 인상을 시각적으로 기억한다. 맛의 특징과 환경 등등이 일종의 다이어그램이나 도표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이것만 가지고는 비평문을 쓸 수 없다. 그 위에 디테일을 얹는 작업이 가장 까다롭다.

이 책이 달성하고자 한 목표, ‘음식 비평서’로서의 조건은 무엇이었나?
간단히 답할 수 있다. 일단 비평서 자체가 없으니까. 책의 존재 자체를 놓고 가장 고민했다. 과연 이런 책을 내도 되는 것일까? 그 단계를 넘어서면 나머지는 의외로 어렵지 않다. 내 돈 내고 먹고, 먹은 대로 평가한다. 평가한 대로 쓴다. 그저 이런 책을 내는 것 자체가 한국의 현실에서는 충족시켜야 할 목표이다.

음식 평론가의 ‘취향’과 ‘완성도에 대한 잣대’는 얼마나 분리할 수 있을까?
단적으로, 냉면을 예로 들 수 있다. 나의 취향으로 평가했다면 의정부 계열은 고춧가루를 뿌린다는 이유만으로도 지금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나의 취향이 없지 않겠지만 아직 제대로 꺼내놓아본 적이 없다.

평양냉면 외에 비평적 잠재성을 지닌 한식에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
공교롭게도 역시 면 음식인데 짜장면이다. 서민의 굴레를 쓰고 완성도가 떨어지면서 또한 조금씩 사라지는 음식이라고 본다. 외국에서 들어온 음식이지만 완벽하게 한국화되었다는 점도 흥미롭고, 소위 전통적인 한식에서 배제된다고 생각하는 지방이 바탕을 깔아준다는 점에서도 비평적인 잠재성을 높게 친다.
 

READ IT OUT

 READ IT OUT 


영화감독 변영주는 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누구나 향유하고 있는 대중적인 대상을 비평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냉면의 품격>은 음식 평론가 이용재의 또 다른 모험이다.

<에스엠라운지>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이경진

2018년 08월호

MOST POPULAR

  • 1
    이경규 · 강형욱 · 장도연, <개는 훌륭하다> 달력 화보 공개
  • 2
    화성에서 온 신발
  • 3
    숫자와 섹스
  • 4
    정경호 'IN THE ROOM' 미리보기
  • 5
    스무살의 NCT DREAM

RELATED STORIES

  • WATCH

    크리스토퍼 놀런의 시계들

    시간을 탐미하는 감독답게 유독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에는 많은 시계가 등장한다. 최근 개봉한 <테넷> 역시 마찬가지. <테넷>을 비롯해 놀런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또 어떤 시계를 찼는지 알아봤다.

  • WATCH

    갤러리에서 만난 시계

    천천히 둘러보세요. 사진 촬영도 가능합니다.

  • WATCH

    효도를 부르는 추석 선물 ‘시계 4종’

    ‘우리 아들’ 소리가 듣고 싶다면, 이 시계를 추천 드립니다. 어떠세요?

  • WATCH

    남자와 시계

    다양한 직업을 가진, 자신만의 스타일로 시계를 차는 8인의 손끝 인터뷰.

  • WATCH

    주목해야 할 새로운 시계

    지금 주목해야 할 새로운 얼굴 6.

MORE FROM ARENA

  • FEATURE

    영감을 찾아서: 건축가 문훈

    영화 한 편, 소설 한 권은 벽돌 하나에 불과하다. 그것들이 쌓이며 성을 이룬다. 작가의 세계는 그렇다. 때로는 인상적인 작품이 성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고, 벽돌의 배치에 따라 기발한 아이디어가 발견되기도 한다. 우리는 작가와 함께 그의 성을 투어하며, 작품의 토대가 된 벽돌들을 하나씩 뽑아 들었다. 지금 각 분야에서 가장 유별난, 돋보이는 작가들의 영감 지도다.

  • SPACE

    인도네시아 The Infinite City

    새로운 도시가 생긴다. 스마트시티로 명명되는 이 도시들은 자원을 최소한으로 사용한다. 자연환경과 어우러지고, 에너지와 식량을 자급자족하며, 지속가능성을 화두로 삼는다. 그리고 여기에 자율주행이나 주민의 네트워크, 공동체, 민주주의 같은 개념을 이식한다. 기사에서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스마트시티들을 소개한다. 나아가 이 도시를 설계한 건축가들과 스마트시티의 기능과 역할, 그리고 주민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물었다. 건축가들이 답하는 미래 도시의 조건이다.

  • FILM

    폭스바겐 x 시로스카이

  • FEATURE

    지옥에서 누가 살아남을까?

    전 세계에 전염병이 퍼지고, 시위가 발생해도 공은 굴러간다. 안 열릴 것만 같았던 챔피언스리그가 시작된다. 32강 조 추첨은 마무리됐고, 죽음의 조가 두 개나 나왔다. 그중 가장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H조에는 황희찬의 소속팀 RB 라이프치히가 속해 있어 국내 팬들의 관심이 쏠린다. 또 다른 죽음의 구렁텅이인 D조도 흥미로운 대진이다. H조와 D조에서 살아남을 팀은 누구인가.

  • FASHION

    OLDIES BUT GOODIES

    어떤 시절을 공유하는 가장 보통의 셔츠들.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