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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도 돼요

창피하지 않게. 오랜 공백 내내 주영은 그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UpdatedOn February 20, 2018

 

티셔츠는 노아, 그림은 함미나 ‘입방체’ 2016년 작품.


“다른 사람이 써준 곡을 대부분 불렀다. 사람들이 좋아해줄 때도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떳떳하지 못했다. 주위에서는 창피해하지 말라는데, 그래도 나는 자꾸 창피했다.”

 

주영이 부지런히 만든 수십 개의 음악 중 가장 좋은 여섯 곡을 골라 작은 앨범을 완성 중이다. 아름답지 않고, 가볍지 않고, 밝지 않은 그 자신을 눌러 담았다고 했다. “이번엔 진짜 나다운 것만 했어요” 그는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정말 하고 싶은 걸 했으니까요. 망한대도 괜찮을 만큼 좋아요, 지금.” 이 말은 퍽 진심 같았다.

 

 

흰색 후디는 서브에이지, 블레이저는 제리핑크 by 헨즈, 스니커즈는 컨버스, 데님 팬츠는 본인 소장품. 그림은 함미나 ‘심해’ 2016년 작품.


인터뷰 오랜만이겠다.
모든 게 다 오랜만이다. 촬영도 그렇고.

제대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다고 들었다.
제대라고 하기엔 창피하고 소집 해제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컴백을 꽤 서둘렀네.
소집 해제 이후로 계속 녹음에 전념했다. 곡을 본격적으로 준비한 지는 2년 정도. 2년 동안 잠 못 자며 만든 곡들을 미니 앨범으로 낸다. 이제 세부적인 요소를 정리하고 있는데 힘들지만 꽤 만족스럽다. 음악적으로 내 색깔을 찾은 것 같아 좋다. 이전에 했던 음악은 뭔가 나와 안 맞는다고 생각했거든. 이번엔 최대한 나답게 만들었다. 그것만으로 너무 좋아서, 앨범이 잘 안 돼도 상관없을 것 같다. 그냥 좀 궁금할 뿐이다. 다들 어떻게 생각할지.

이전에 한 음악과는 어떤 면이 맞지 않았나?
대체로 다른 사람이 써준 곡을 불렀으니까. 그것부터 잘못됐던 것 같다. 그땐 그냥 잘되고 싶었다.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 회사에선 잘되고 나면 내 음악 할 수 있을 거라고 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는 맞지 않는 방식일 수 있지 않나. 나에게도 그랬던 것 같다. 공익 근무하며 보낸 2년 동안 처음 음악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많이 돌아올 수 있었다. 나에게 안 맞는 옷 그만 입고 내 걸 하자 싶더라. 이전의 음악을 색깔에 비유하자면 너무 밝고 ‘샤방’한 색이었는데, 나는 사실 그렇게 밝은 사람이 아니다. 늘 그런 나를 조금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좀 더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음악은 무엇인가?
음. 일단 가볍지 않은 음악? 이번 앨범을 들어보면 느낄 거다. ‘트렌디’하지 않고, 오래 들을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어 공을 들였다. 생각을 많이 한 앨범이라는 게 느껴질 거다. 참 진지하게 만들었다.

이번 앨범에 주영의 어떤 이야기를 담았나?
다 사랑 얘기다. 이야기는 그냥 그렇게, 자유롭게 썼다.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같이 흥얼거리고 술도 마시며 취해서 듣는 음악 스타일을 하고 싶었다. 지금 한국 힙합 공연은 완전 턴업(Turn Up)이고, 아니면 거의 정적인 음악들이 대다수이지 않나. 나는 좀 그루브한 것. 그냥 긴장 풀고 듣기 좋은, 칠아웃 뮤직 같은 음악을 만들려고 했다.

이번 앨범에서 꼭 들려주고 싶은 사운드도 있었나?

입체감 없는 2D 사운드, 디지털 사운드에 질려서 진짜 악기들을 등장시켜 ‘3D적인’ 사운드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악기 다루는 분들에게서 정말 많은 도움받았다. 장난 아니다. 정동하 씨가 피아노도 쳐줬다. ‘새롭고, 들을수록 좋은 사운드’를 많이 고민했다.

‘주영다운 음악’을 작업한 2년 동안 영감이 된 것에는 무엇이 있었나?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니까 뭐든 다르게 느껴지더라. 모든 감각이 확 열린 기분이었다. 이를테면 〈노팅힐〉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입은 낡은 티셔츠와 맨투맨 셔츠 같은 것만 봐도 자연스럽고 멋져서 감탄하고. 그런 사소한 디테일에 자주 시선을 빼앗겼던 것 같다. 내 음악도 어떻게 하면 더 ‘디테일하게’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난 2년 동안, 온갖 영감이 와서 꽂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하는 말, 어쩌다 들은 소리, 맛본 음식까지 다. 막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처럼 예민해졌다.

새로 태어나는 것 같았겠다.

처음 1년은 되게 힘들었다. 진짜 나다운 걸 만들려니, 이전에 내가 했던 건 아예 음악이 아닌 것 같았거든. 괴로웠다.

이전의 주영은 뭘 원했던 사람이었나?

그때는 솔직히 말하면 1등이 하고 싶었다. ‘히트’ 칠 만한 소스는 뭘까? 그런 궁리를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로다. 공익 근무하는 동안 근무 시간 말고는 내 노래 작업에만 골몰했는데 처음 1년 동안은 정말 하나도 모르겠더라. 내가 무슨 음악을 했던 사람인지. 뭘 해야 하는지. 뭘 할 수 있는지.


“이번엔 최대한 나답게 만들었다. 그것만으로 너무 좋아서, 앨범이 잘 안 돼도 상관없을 것 같다.”

 

셔츠·수트는 모두 헤리티지 플로스, 넥타이·비니·목걸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셔츠·수트는 모두 헤리티지 플로스, 넥타이·비니·목걸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셔츠·수트는 모두 헤리티지 플로스, 넥타이·비니·목걸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전과 달리 하고 싶은데, 기준점으로 삼을 만한 ‘전의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나 보다.
맞다.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아예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큰일 났다 싶어서 정말 열심히 했다. 잠도 거의 안 자고 음악 작업만 했다.

돌파구를 어떻게 찾았나?

1년쯤 지났을 때 프로듀서 친구가 트랙을 좀 보내달라더라. 그 친구랑 같이 프로듀싱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스타일이 확 잡혔다. 할 수 있겠다 싶더라. 그때부터 차근차근 한 곡씩 썼다. 몇십 곡을 썼다. 그중에서 제일 좋은 것 여섯 곡만 골랐다. 정규 앨범을 내고 싶었는데 아직 그렇게는 안 될 것 같고, 미니 앨범으로 낸다. 여섯 곡만 고르고 보니 또 좋더라. 이 정도면 떳떳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렇게 애정을 쏟고 내 음악이 마음에 든 건 처음이다.

앨범은 그런 기분으로 내야 하는 것 같다. 누가 어떻게 평가하든 그건 나중 문제이고 본인이 좋아 미쳐야지.
이젠 스스로 떳떳하고 싶더라. 내 색깔 제대로 내면서 내 것을 하고 싶더라. 사실 그동안 엄청 창피했다. 창피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 색깔을 찾아야겠다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마음을 먹은 계기가 혹시 있었나?
내 색깔대로 혼자 앨범을 만들어본 적이 있다. 앨범을 거의 완성해서 회사에 가져갔다. 근데 그걸 못 냈다. 그때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2014년의 일이다. 이거면 되겠다, 괜찮다 싶은 앨범이었는데, 못 내고 효린이랑 듀엣을 했다. 음악 방송을 도는데 그 무대에서 느껴지는 기분이 참 별로였다. 어떤 아이돌의 팬으로 온 관객이 대다수였는데, 내가 무대에 등장했을 때 그들은 관객이 아니었다. 관객이지만 관객이 아닌 느낌. 그때 생각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그 상태로 더 있다가는 평생 음악 못할 것 같아서 공익 근무를 시작한 거다. 복무하는 동안 내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원하는 게 있는데 풀 수가 없으니까 창작만 했다.

데뷔를 2010년에 했으니, 꽤 오래 걸려 자기 자릴 찾은 셈이다.

8년 전이다. 데뷔할 땐 진짜 아무것도 몰랐다. 노래하는 게 그저 좋았고, 순수했고. 그냥 라디(Ra.D) 형이 써준 노래 부르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그 이후로는 다른 사람이 써준 곡을 대부분 불렀다. 사람들이 좋아해줄 때도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떳떳하지 못했다. 주위에서는 창피해하지 말라는데, 그래도 나는 자꾸 창피했다.

창피했다는 말, 좋게 들린다. 아무나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말이다.
나는 인정한다. 그때 주위의 음악 하는 친구들이 엄청 많이 놀렸다. 뭐하는 거냐고. 이상한 거 하지 말라고. 돈에 눈이 멀었냐고. 그런 말 많이 들었다. 돈에 눈이 먼 게 아니라, 현실에 일단 타협했던 건데. 근데 문제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곡을 가지고 무대에 올라도, 내가 그 무대에서 늘 자신 없어 했다는 거다. 그런 상태로 무대에 선다는 게 가장 창피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 참 기분 좋겠다.
너무 좋다. 망해도 된다니까, 정말.

그럼 된 거다.
그러니까. 앨범을 2월 중순쯤 발표할 예정이다. 남은 힘을 쥐어짜며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퀄리티를 높이려다 망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들기도 해서 빨리 마무리하고 싶다. 하하.

진짜 주영은 지금이 시작인 것 같다.
아무도 나를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준비하는 중이다. 이번 앨범 낼 때 사실 이름도 바꾸고 싶었는데…. 이것저것 지어봤더니 다 오그라들더라. 그냥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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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경진
PHOTOGRAPHY 김윤식
STYLIST 이잎새
HAIR&MAKE-UP 이현정
ASSISTANT 김윤희

201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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