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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스피커의 진실

이상하다. 욕심쟁이 IT 기업들이 AI 스피커를 헐값에 판매하며 경쟁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의 AI 스피커를 통해 기업들의 속내를 밝힌다.

UpdatedOn February 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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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철의 미니멀 라이프
    김정철은 테크 제품을 분석하고, IT 산업의 미래를 예측하는 남자다. 테크와 IT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생활 가전과 함께 간결한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먼 옛날, 집에서 제대로 음악을 들으려면 꽤 큰 결심을 해야 했다. 우선 커다란 전축을 사고 가구 크기의 스피커 두 개를 거실 양끝에 세웠다. 12인치 LP판은 책꽂이에 들어가지 않아 별도의 오디오장까지 구입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이사할 때 가장 골칫거리는 전축이었다. 몇 덩이로 나뉜 본체, 턴테이블, 스피커, 엄청난 먼지, 꼬여 있는 배선에 걸려 죽은 쥐…. 필립스와 소니 덕분에 CD 시대로 접어들며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오디오는 작아졌고, 커다란 LP 대신 5인치 CD는 부담이 한결 덜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며 디지털 음원 시대가 열렸다. 아이팟에 MP3 파일을 잔뜩 내려받은 후에 스피커에 아이팟만 꽂으면 음악 감상이 가능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미니멀해졌잖아? 하지만 스피커에 붙은 아이팟 독이 눈에 거슬렸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며 기기를 꽂을 필요 없이 블루투스 연결로 음악을 듣는 시대가 왔다. 음원을 내려받을 필요도 없어졌다. 스트리밍 기술의 발달 덕분이다. 이제 끝일까? 아니다. 오디오 진화의 최근 버전은 오늘 얘기할 AI 스피커다.

AI 스피커는 자체 무선 스트리밍 재생 기능이 있어 스마트폰을 거치지 않고도 바로 음악 감상이 가능하다. 또 인공지능 플랫폼이 탑재돼 있어 간단한 명령 수행이 가능하다. 미국 아마존이 첫선을 보인 AI 스피커는 2016년 SK텔레콤의 ‘누구’를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활발히 출시되고 있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불과 1년 만에 국내에만 1백만 대 가까이 보급됐다. 폭발적인 반응을 부른 이유는 무엇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AI 스피커는 사실 거의 공짜로 뿌려지고 있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입하면 AI 스피커를 덤으로 주는 행사가 넘쳐난다. 크기나 설치도 옛날 오디오처럼 부담스럽지 않다. 겨우 머그컵 정도 크기다. 배선도 필요 없다. 상자에서 열고 전원만 연결하면 끝이다. 미니멀 라이프에 아주 적합한 제품이다. 무엇보다 장점은 클라우드 기반의 스트리밍 서비스와 인공지능이다. 걸 그룹 노래가 듣고 싶으면 그냥 “걸 그룹 노래 틀어줘”라고 명령하면 된다. 그럼 알아서 최신 유행하는 걸 그룹 노래를 연속으로 틀어준다. 아! SK텔레콤의 누구는 못 알아듣는다. 네이버 프렌즈나 카카오 미니만 알아듣는다. 구매에 참고하시길.

욕심쟁이 제조사들이 AI 스피커를 헐값에 뿌리는 것은 아직 인공지능 서비스가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이다. 제조사가 관심 있는 것은 우리의 푼돈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데이터다. AI 스피커는 우리와 대화하는 척하며 우리의 대화 방식이나 습관, 특정한 버릇 등을 학습한다. 이 데이터 값은 클라우드 플랫폼으로 전송되어 인공지능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사용된다. 이런 데이터를 모으면 정말 돈이 될까? 진짜 그렇다. 구글은 지난 2014년, 5천억원 정도에 딥마인드를 인수했다. 그리고 2년 후에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는 이세돌을 꺾었다. 알파고 개발까지는 추가로 2백억~3백억원이 들었지만 이세돌을 꺾으며 얻은 홍보 효과와 브랜드 가치는 약 58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2년 만에 약 1백 배 이상의 수익을 거둔 셈이다. 오디오 업계에서 가장 큰 회사 중에 하나인 보스(Bose)의 1년 매출은 2조원 정도다. 기술 기업들은 오디오를 파는 것보다 사용자의 데이터를 모으는 게 훨씬 큰 장사가 된다.

이런 이유로 AI 스피커는 스피커보다 마이크에 가까운 구조다. 모든 방향에서 들어오는 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4~8개의 마이크를 달았다. 음악을 스트리밍하기 위해 무선 기능이 있는 게 아니라 클라우드 서버에 데이터를 주고받기 위해 무선 기능을 달았다. 스피커가 붙은 이유도 우리에게 음악을 들려줄 목적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답하는 소리를 재생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우리가 AI 스피커를 사는 이유는 오디오 대용이지만 음악을 들려주는 것은 그냥 부품 재활용 수준의 부가적인 기능에 불과하다. 테크놀로지가 발달하면 결국 모든 게 단순화된다. 오디오도 단순화됐고, 음악의 의미도 단순화됐다. ‘LP-CD-MP3 파일-스트리밍’이라는 물리적 크기도 작아졌지만 의미도 작아졌다. AI 시대의 음악은 데이터 수집에 따른 경품 정도가 됐다. 그렇다고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우리도 빅데이터 수집을 위한 데이터 생성기에 불과하지 않은가?

앞으로 AI 스피커는 무수히 나올 예정이다. 대부분 값도 저렴하다. 공짜라는 유혹에 여러 개의 AI 스피커가 잔뜩 배달될 수도 있다. 많은 스피커 중에 어떤 스피커를 불러야 할지 고민될 날이 올 수도 있다. 오디오와 음악의 의미는 단순해졌지만 우리의 데이터 수집을 위한 쟁탈전은 시끄러워지고 있다. 부디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 현명한 선택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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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WORDS 김정철(<더 기어> 편집장)

201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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