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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김태우만큼만

On January 22, 2018

김태우는 뭐든 지나치는 법이 없다. 굳이 자신을 부풀려 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굳이 낮춰 말하지도 않는다. 담담하고 담백하게,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솔직함으로 상대방을 대한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과장이나 과시 같은 건 없다. 그러니까 딱 김태우처럼, 그만큼의 무게와 속도로 연기를 해왔다. 벌써 21년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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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는 바버, 안경은 헤이즈 제품.

니트는 바버, 안경은 헤이즈 제품.

 

그에게 질문을 해야 하는데, 고백을 할 것 같았다. 마침 얼마 전에 영화 <키친>을 다시 봤는데 참 낭만적이었고, 그가 홍상수의 남자였던 시절 출연한 작품들을 아직도 꺼내 보며,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에서 특히나 멋졌다고 말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김태우는 늘 한결같은 배우라 도저히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는 못 배길 질문을 찾기 힘들었다는 얘기도 된다. 이토록 점잖고 묵묵하게 21년째 연기를 하는 배우에게 ‘왜 당신은 기복이 없느냐’고 시비를 걸기도 뭐하고 말이다.

일단 ‘팩트’를 나열하자면 이렇다. 김태우는 화면보다 훨씬 호리호리하고 잘생겼다. 한국 나이로 마흔여덟 살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청년’의 얼굴이 남아 있다. 어떤 질문이든 막힘없이, 그리고 가감 없이 대답한다. 주관이 확실하다는 의미일 거다. 어쩌면 조금 예민한 면이 있을 수도 있다. 그건 예술가라면 뭐, 다 그 정도의 섬세함은 있으니까. “왜 늙지 않으세요?”라는 하나 마나 한 질문으로 시작한 인터뷰는 꽤 긴 시간 순조롭게 흘러갔다. 무심한 듯 툭툭 대답을 하지만 대화가 이어질수록 재밌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김태우의 매력인가 보다. 적당히 무심하면서 의외의 면모를 한 번씩 보여주는. 딱 김태우 같은 인터뷰였다.

 

초면에 나이 얘기를 해서 미안한데, 몇 년 전부터 그냥 계속 마흔한 살인 것 같다.
오히려 어렸을 때는 어려 보인다는 얘길 못 들었다. 이번에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 유동근 선배님이 나이를 물어보시길래 “내년에 마흔여덟이 됩니다” 했더니 깜짝 놀라시더라고.

왜 늙지를 않나?
원래 배우들이 자기 나이보다 조금은 어려 보이지 않나? 매일 청바지 입거나 트레이닝복 입고 다니고, 아무래도 직장인보다는 운동도 더 하고 그러니까. 별것 없다.

이번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 출연한 건 노희경 작가의 작품이어서?
물론 노희경 작가 작품은 언제나 신뢰가 가니까 출연을 결심했지만, 사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주인공 원미경 선배의 골칫덩어리 중 ‘근덕’이라는 남동생이 있다. 이 친구가 택시 운전을 하면서 노름을 하거든. 그래서 미경 선배를 더 불쌍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데, 처음엔 그 배역을 제안받았다. 나는 너무 좋아서 당장 한다고 했지. 근데 다음 날 다시 연락이 와서 회의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거다. 나도 대답했다. “당연히 좋은 작품이니까 참여하는 데 의의를 두겠지만, 나는 ‘근덕이’를 연기하고 싶다고 전해달라”고. 근데 결국 최지우와 불륜 관계인 유부남 역할로 낙점됐다. 나중에 ‘근덕이’ 역할 누가 하냐고 물어봤더니 유재명 씨더라고. 누가 봐도 딱이라서 내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웃음) 근데 한마디 덧붙였지. “걔, 나보다 두 살 어려.” 하하.

사실 1996년에 이미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소설과 영화로도 리메이크됐다. 심지어 수능 문제로도 출제된 바 있다. 이걸 굳이 2017년에 다시 봐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요즘 트렌디한 드라마들 사이에서 이 작품은 좋게 말하면 클래식하고, 나쁘게 말하면 올드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참여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고전 영화를 보듯 공감하고 슬퍼하면서 보는 것도 좋겠더라고. 아무리 ‘뻔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사람의 원초적인 감정을 계속 건드리기 때문에 울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드라마다. 연말 연초에 선물 같은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

노희경 작가와는 〈거짓말〉 〈그 겨울, 바람이 분다〉로 이미 두 번 작업을 한 적 있다. 이렇게 몇 번 만났던 작가와는 좀 더 편하게 지내나?
〈거짓말〉은 노희경 작가의 장편 데뷔작이었을 거다. 나도 그땐 신인이었지. 그리고 한 10년 넘게 서로 연락처도 모르고, 연락도 하지 않고 지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때 다시 만난 거다. 그 드라마 쫑파티 때 보고 이번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대본 리딩 때 오랜만에 봤다. 생각보다 친밀하게 교류하진 않았다. 늘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좋아해왔지만, 좋아한다고 다 출연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러니 이렇게 제안을 받으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는 거지.

이 드라마를 처음 방송했던 해에 데뷔하지 않았나? 그게 벌써 21년 전이다. 이렇게 굳이 햇수를 계산해서 질문할 때, 세월을 실감하지?
그렇다. 이런 질문 받을 때 내가 이렇게나 오래 연기를 해왔구나 느낀다. 특히 영화 현장은 더 젊어져서 죄다 나보고 선배님이라고 부른다. 최근 영화 〈창궐〉 현장도 그랬고, 이젠 나보다 나이 많은 스태프를 손에 꼽을 정도다. 이번 드라마에서 (최)지우를 만났는데, 우리 둘 다 1996년도 드라마 〈첫사랑〉으로 데뷔했다. “지우야, 너 그때 몇 살이었어?” 물으니 “스물한 살”이었다고 하더라. 몇 년 전에 영화 〈협녀, 칼의 기억〉 촬영하면서 (전)도연이를 다시 만났을 때도 같은 기분을 느꼈다. 우리 둘 다 〈접속〉이 영화 데뷔작이었거든.

20년 넘게 꾸준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힘은 뭔가? 그 흔한 부업도 안 하고.
내가 처음으로 가진 꿈이 배우였다. 그만큼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오래 할 수 있는 거다. 근데 나 사실 연기하는 걸 되게 좋아한다. 현장에 있는 거, 연기하는 거 자체가 좋다. 좋게 말하자면, 아니, 좀 재수 없게 말하자면 성실한 것도 큰 힘이었지. 별로 변하지 않고 큰 욕심도 없는 거. 그래서 아내는 지겹다고 말하지만.(웃음)

얼마 전에 드라마 〈블랙〉에서 저승사자로 특별 출연했다. 잠깐이었지만 ‘닥터 스트레인지’를 느꼈다. 이런 판타지를 좋아하나?

이것도 사연이 있다. 역할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내가 김홍선 감독에게 빚진 게 있었다. 전에 어떤 작품을 하기로 했다가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본의 아니게 취소한 적이 있었다. 또 최란 작가도 내가 출연한 <신의 선물-14일>을 쓰셨던 분이어서 이래저래 큰 고민 없이 출연한 거다. 특정한 장르를 좋아하는 건 작품 선택과는 관계 없다. 내가 수영 선수라 치자. 개인적으로는 자유형을 좋아하는데, 성적은 배영이 더 좋다면 나는 배영이 주종목인 거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와 배우로서의 쓰임은 전혀 상관이 없지.

 

 

터틀넥 니트는 라르디니 by 신세계인터내셔날, 팬츠는 소윙바운더리스, 리베르소 트리뷰트 리베르소 듀오 워치는 예거 르쿨트르, 슈즈는 브도이통 by 캐쉬스토어 제품.

 

“사실 나는 화려하게 살아본 적도 없고, 늘 조금은 지루한 생활을 한다. 극장 가서 영화 보고 책 읽고 이런 것들이 지루하기도 하지만 배우로서 내게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바로 그 지점이 스스로 불만이기도 하다. 어떤 틀을 깨지 못한다는 점에서.”

 

배우 김태우를 설명할 때 꼭 빠지지 않는 진부한 표현이 있다. ‘선과 악을 넘나든다’거나 ‘선과 악이 공존한다’ 같은 말. 언제부터 이런 수식어가 따라다녔나?
내가 연기한 지 올해로 21년이 됐는데 17년이 될 때까지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매번 똑같았다. “언제 악역 한 번 하실 생각 없으세요?” 그럼 나는 똑같이 대답했다. “저는 악역을 피한 적이 없어요. 언제 악역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언제 하든 잘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라고. 그러고 나서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악역을 처음 맡았는데 이후에 영화 〈해적〉 〈협녀, 칼의 기억〉, 드라마 〈굿와이프〉까지 계속 악역만 하게 됐다. 요즘은 그게 또 불만이다.(웃음) 17년 동안 계속 착한 역만 하다가 한 번 물꼬가 트이니까 계속 악역을 하게 되네.

17년 동안 정말 답답했겠는데?
좀 지겹긴 했다. 그때 또 이런 얘길 했다. “나는 평생 연기하고 싶다. 지금 나이로 보면 아직 반도 지나지 않은 거 같은데 언젠가는 악역을 제안받을 테고, 그렇다면 잘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그래서 조급함은 별로 없다고까지 말한 거 같은데, 사실 요즘은 좀 조급하다. 하하. 요즘엔 맨날 너무 악역이 들어오니까.

지금 또 고민 중인 드라마가 있다고 들었다. 착한 역인가 나쁜 역인가?
두 개의 작품 중에 고민하고 있는데, 가만 보니 둘 다 착한 역할은 아닌 거 같더라고. 하하. 요즘엔 하나 더 보태서, 선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쁜 역할을 많이 주문받기도 한다. 악역 같지 않은 악역을 재미있어 하는 거 같다.

요즘에 웬만한 배우들 다 SNS 하던데.
나는 카카오톡도 안 한다.

동생 김태훈 배우가 얼마 전 인터뷰에서 ‘태우 형과는 연기 얘기 안 한다’고 했던데 사실인가 보다.
우리는 삼형제인데 굉장히 친하다. 태훈이랑 나는 배우 일을 하지만 서로 시나리오 검토해주고 이런 거는 안 한다. 전화 통화를 자주 하는데, 가끔 지방에서 뭐 촬영 중이라고 하면 “안 추워?” 같은 안부 물어보는 정도다.

스마트폰을 쓰긴 하나?

쓴다. 전화 걸고 받고. 문자 주고받고. 인터넷으로 기사 읽고 그 정도다. 촬영장 갈 때 음악 듣고. 근데 사실 이런 것도 없애고 싶긴 한데 너무 불편해질까 봐.

보아하니 집이랑 피트니스 클럽 정도 왔다 갔다 하고, 아주 가까운 친구들만 만날 거 같다. 이런 성격이 한결같을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너무 기복이 있으면 항상성을 유지하기 힘드니까.
반대로 얘기하면, 그래서 내 연기가 딱 이 정도일 수도 있는 거다. 사실 나는 화려하게 살아본 적도 없고, 늘 조금은 지루한 생활을 한다. 극장 가서 영화 보고 책 읽고 이런 것들이 지루하기도 하지만 배우로서 내게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바로 그 지점이 스스로 불만이기도 하다. 어떤 틀을 깨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런데 필모그래피 중간에 한 10년 정도 영화에 집중하던 시기가 있지 않았나. 그때 철저하게 자신의 취향대로 작품을 선택했던 거 아닌가?
돌이켜보면 굉장히 그랬다. 그 당시 거의 쉬지 않고 계속 영화를 찍었고, 그만큼 꽤 다양한 영화를 했다고 생각하고 싶긴 하다. 근데 대부분 관객은 홍상수 감독님 영화나 크고 작은 예술 영화에 출연했던 나를 기억한다. 실은 그 시기에 신민아와 멜로 연기를 한 〈키친〉이나 혜수 선배랑 같이 〈얼굴 없는 미녀〉에도 출연했는데 크게 흥행하지 못해서인지, 예술 영화에 몰두한 걸로 비친다. 따지고 보면 내 취향이었지.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훨씬 더 현실적이다.

현실적이란 건 어떤 의미인가?
그 10년 중 7년이 지났을 무렵 외부 평가를 듣고 나서부터 조금 변화하려고 노력했다. 연기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지만 너무 예술 영화를 하는 배우로 인식되더라고. 쉽게 말해서 작품성은 있을지 모르지만 재미가 없다고 해야 할까? 그 당시 해외 영화제를 정말 많이 다녔는데 어느 한편으로는 독이 되더라고. 그리고 자연스레 ‘드라마는 하지 않는 배우’라고 생각해서 놀라기도 했고. 드라마를 다시 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물론 타이밍의 문제도 있었지만. 또 나이가 들면서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줄어듦과 동시에 가장으로서 금전적인 문제도 무시할 순 없다. 이전보다는 내 생각대로만 판단하고 선택할 수 없다는 것. 확실히 그런 건 좀 있다.

근데 왠지 집에서 시나리오 같은 거 쓰고 있을 거 같다.
나랑 친한 사람들은 다 그 얘기 한다. 내가 워낙에 영화 보는 걸 좋아하고, 또 영화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니까. 그래서 친한 감독님들과 작품 얘기하는 걸 즐기는데, 그러다 보면 마지막에 꼭 ‘한 번 만들어보라’고 그런다. 내가 대학 때 극작 수업을 좋아하기도 했고, 시나리오의 독백을 정확하거나 효율적인 표현으로 바꾸는 것에 관심도 있다. 감독님과 작가님께 욕먹지 않을 만큼 바꾸기도 하는데, 그렇지만 작품을 만드는 건 또 다른 차원이다. 쉬운 예로, 감독이 연기 지도를 하면서 무심코 어떤 대사를 맛깔나게 소화했다고 해서 바로 연기자 데뷔를 해야 하는 건 아니잖나. 그냥 잔재주가 좀 있을 뿐이지. 연출을 하고 싶다면 다시 처음부터 공부를 해야겠지.

단편 영화라도 만들어보면 어떤가? 요즘엔 스마트폰으로 영화도 만들고 그런다.
그러게. 다들 그 말 하더라. 일단 뭐라도 찍어보라고. 그러면서 배우는 거라고 말이다. 한번 시작이나 해보라고 엄청 부추긴다. 하긴, 문소리도 영화 찍던데. 하하. 〈여배우는 오늘도〉 봤나? 영화 진짜 귀엽게 잘 만들었더라.

김태우는 뭐든 지나치는 법이 없다. 굳이 자신을 부풀려 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굳이 낮춰 말하지도 않는다. 담담하고 담백하게,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솔직함으로 상대방을 대한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과장이나 과시 같은 건 없다. 그러니까 딱 김태우처럼, 그만큼의 무게와 속도로 연기를 해왔다. 벌써 21년째다.

Credit Info

EDITOR
서동현
PHOTOGRAPHY
오태진
STYLIST
김기동(KD COMPANY)
HAIR&MAKE-UP
이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