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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빙수

요즘엔 팥과 떡이 전부인 단정한 빙수가 대세다. 각종 젤리며 통조림 과일이 잔뜩 올라가 있던 휘황찬란한 빙수의 시대는 지났다.빙수를 밥 먹듯 먹는 기자가 네 군데의 빙수를 선정했다.<br><br>[2008년 8월호]

UpdatedOn July 23, 2008

Photography 김린용 박원태 Editor 이지영

1 artisee 아티제

떡이 하도 커서 입 안 한가득 넣고 오물거리면 커다란 충만감이 든다. 역시 팥빙수는 떡이다. 떡만 제대로 나와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당일 아침 만들어 들여온다는 이 집 떡은 마치 기사 식당 깍두기를 연상케 한다. 그만큼 커다랗고 묵직한 게 먹음직스럽다. 맛은 크게 달지 않고 고소하다. 인절미를 씹는 느낌인데 그보다 더 찰지고 담백하다. 언뜻 ‘서주 아이스 바’를 연상케 하는 얼음은 우유를 얼려 간 게 아니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일반 얼음 간 것 위에 우유와 연유를 섞어 부었다는데 얼음이 워낙 곱다 보니 티도 나지 않게 잘 스민 것이다. 그러니 우유 맛이 많이 나서, 빙수 자체가 고소하다. 팥은 정말 많이 부어 내온다. 처음엔 얼음과 팥을 섞는 행위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팥이 그릇에 차고 넘친다. 떡도 커다란 데다 팥까지 엄청나게 올려 나오니 정말 풍성하다는 느낌이다. 그릇이며 실내 인테리어며, 위치한 동네며(타워 팰리스 바로 인근에 위치해 있다) 가히 범상치 않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신라호텔에서 운영하는 집이란다. 단순하게 떡과 팥, 우유와 연유만으로 맛을 냈는데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니 먹는 동안 내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굳이 치장할 필요가 없다는 건 대단한 자신감이다. 이 집 빙수는 심지어 그 흔한 아이스크림도 얹지 않았다. 아무런 꾸밈이 없어 다소 서운할 정도로 기본에 충실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난다니, 정석의 힘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2 담장 옆에 국화꽃

이 집은 가로수길에 위치한 떡 카페다. 가로수길에 떡 카페라니, 왠지 낯설다. 그런데도 수긍이 가는 건, 인테리어며 맛이 가로수길답기 때문일 것이다. 가로수길답다는 건 뭘까, 적당한 세련됨이다. 이 집 떡은 시장 떡집에서 파는 것처럼 푸짐하거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지는 않는다. 대신 모양새만큼은 아기자기 예쁘다. 빙수 역시 다르지 않다. 떡 카페에서 내 놓는 빙수지만 흔히 ‘떡 카페’에서 연상할 수 있는 푸짐함과 후덕함은 없다. 대신 ‘가로수길표’답게 예쁘고, 적당한 옛날 맛(재래식이라는 말은 아니다)이 난다. 일단 방짜 유기 그릇이 눈에 띈다. 마치 항아리에 담긴 수제비처럼, 이 집 빙수는 유기 그릇에 담겨 나와 흥취를 돋운다. 여기에 올린 미숫가루, 대추, 밤, 떡은 한방의 느낌을 선사한다. 빙수에 정성을 다하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몸에 좋다는 온갖 재료들이 유기 그릇에 올라와 있으니 마치 황제의 아침상을 받기라도 하는 기분이다. 모두 국산 재료를 직접 사다가 삶고 조리고 했기 때문에 맛이 건강하다. 팥은 중국산과 달리 단단해 씹는 맛이 있고, 대추는 살도 많고 달다. 밤은 통조림 밤에 비해 훨씬 덜 달고 담백하다. 직접 삶아 ‘밤초’로 만들어 올렸다고 한다. 이 집 빙수는 연유도, 우유도, 아이스크림도 자제한 모습이다. 빙수에 연유가 많이 들어가면(혹은 우유 얼음을 쓰면) 느끼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이 집 빙수는 질척이는 맛이 없이 깔끔하다.

3 가미분식

이대 졸업생들이 입덧할 때 찾는다는 가미분식 빙수는 참 거칠다. 밀가루처럼 고운 설질이 트렌드인 이 마당에 꽤나 거친 얼음을 쓴다. 집에서 갈아도 이 정도는 하겠다 싶을 정도다. 게다가 올린 팥과 미숫가루 역시 불친절하기 그지없다. 팥 한 뭉치, 미숫가루 두어 스푼 정도가 그냥 툭 하고 얹혀 나온다. 대체 이게 그 유명한 가미분식 팥빙수가 맞나 싶다. 먹어본즉슨, 이 맛을 그리워할 이가 분명 있을 거라는 확신은 든다. 달착지근하게 감기는 맛도 없고, 모양새가 아리땁지도 않으며, 분위기 역시 학교 앞 분식점 수준 그 이상도 아니나 분명 이 집 빙수에선 향수가 느껴진다. 참 묘한 일이다. 직접 삶았다는 팥에선 단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거의 시루떡 고물에 물을 적신 격이다. 게다가 팥이 힘도 없이 반은 누그러져 있으니 그 모양새가 가히 반갑진 않다. 그런데도 이 집 빙수를 오매불망 잊지 못해 찾아온다는 이들이 있으니, 사람의 입맛이란 쉬 질리지 않는 것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모양이다. 얼음과 팥 가운데 부드러운 게 하나 없어서 쓱쓱 비비기조차 벅찬 이 집 빙수를 먹다 보면, 기가 찬다. 이런 맛을 그리워하다니… 싶다. 요즘 한창 인기라는 수박빙수 역시 수박 몇 덩이와 얼음 그리고 연유가 다다. 아웃백에서 새 메뉴라고 내놓는 수박주스보다야 한결 낫긴 하지만, 이걸 과연 빙수라고 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 된다. 그러나 이 두 개의 빙수 모두 못 먹어서 안달난 이들의 심정은 알 것 같다. 빙수가 그리운 건지, 추억이 그리운 건지는 본인들만이 알 일이지만 말이다.

4 abondant 아봉당

이 집 빙수는 근방에 입소문이 꽤 났다. 올림픽공원 근처에 사는 이들치고 ‘아봉당 빙수’를 모르는 이가 없다. 이 집은 아침 시간이 지나면 근처 선수촌 아파트에 사는 아줌마들의 아지트가 된다. 아주머니들이 춥지도 않은지 빙수를 시키고 앉아 있는 게 아봉당의 아침 풍경이다. 셋이서 먹어도 거뜬해 보이는 이 집 빙수는 녹차빙수와 팥빙수 딱 두 가지가 있다. 두 빙수는 일단 그 모습만으로도 전공이 굉장히 분명해 보인다.
녹차빙수는 하겐다즈 녹차 아이스크림이 솥뚜껑만 하게 올라와 있고, 팥빙수에는 녹차빙수에 들어가는 팥의 여섯 배가량 팥이 들어간다. 두 빙수는 맛에서도 굉장한 차이를 보이는데, 일단 녹차 빙수엔 팥이 거의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휘휘 저어 먹으면 마치 녹차셰이크 맛이 난다. 팥은 국산 팥을 세 번 삶아 사용한다. 본래 팥이라는 게 삶을 때 거품이 많이 이는데, 이 거품은 소화를 방해한다. 팥만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는 엄마 말이 허튼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세 번 삶아 거품을 덜어내고, 본래의 떫은맛도 거두어줘야 소화 잘되는 빙수 팥을 만들 수 있다. 눈처럼 갈린 우유 얼음은 마치 솜뭉치 같다. 입자가 너무 고와 제각각 따로 놀지 못하고 솜뭉치처럼 한 덩어리를 이룬다. -20℃에서 얼렸다는 고가 우유는(저가 우유는 얼렸을 때 입자가 거칠어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는 동안 자꾸만 녹아내린다. 아이스크림과 섞다 보면 어느새 빙수가 첨벙거릴 정도다. 곡물은 며칠만 지나도 금세 절은 내가 나기 때문에 미숫가루는 열흘 간격으로 새로 갈아 들여온다. 제과점 빙수인 만큼 조그맣게 잘려 얹힌 양갱도 이 집에서 직접 만든 것이며, 뿌려진 아몬드 역시 여러 번 씻어 오븐에 구운 것이다. 양이 꽤 많기 때문에 한자리에서 다 먹지 못한 이는 컵에 빨대 꽂아 담아 간다. 그러니 이건 빙수이기도 하고, 셰이크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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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Photography 김린용 박원태
Editor 이지영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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