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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와 패션 사이

잡지 기자들의 삶이 궁금하다는 독자들의 질문을 가끔 받는다. 피처 기자들은 당대의 유명인들을 인터뷰하고, 패션 기자들은 시대를 풍미하는 패션 아이템들을 예민하게 선별한다. 분야는 달라도 트렌드를 선도해 나가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같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먹고, 떠들고, 뒹굴고, 싼다 해도 이들은 조금 다른 사람들이다. 독자들의 질문에 피처 에디터와 패션 에디터가 서로 다른 대답을 내놨다.<br><br>[2008년 5월호]

UpdatedOn April 27, 2008

Photography 기성율 Editor 이기원

원래 잡지 기자들이 모두 ‘잘난 척 대마왕’이라고 하던데요? 특히나 패션 기자와 피처 기자는 사이가 좋으려야 좋을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
피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 이런 대사가 나오죠.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지예”.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죠. 서로 ‘나와바리’가 다르다 보니 서먹할 수도 있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더 친해지기도 하죠. 물론 어떤 잡지사는 서로 얼굴도 안 보는 견원지간이기도 하다지만 <아레나>는 그렇진 않지요. 참, 잘난 척 대마왕이라니요. 잘난 척 대마녀도 많습니다.
패션 피처 기자와 패션 기자는 서로 도와야 하는 일종의 공생 관계죠. 그러니 서로의 콧털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는 서로 즐거워야 하며, 실제로도 그러합니다.

평상시 옷차림은 어떻죠?
피처 분명 패션 기자 못지않은 감각을 뽐내는 피처 기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은 라운드 티셔츠와 리바이스 청바지, 스니커즈 정도죠. 저희끼리는 ‘심플 앤 모던’ 혹은 ‘다다이즘 룩’이라고 주장하지만, 반향은 없습니다. 물론 인터뷰나 행사가 있을 때는 최대한 정중한 차림으로 가지요.
패션 패션 에디터들의 옷차림은 그야말로 제각각이죠. 누군가는 빈티지 룩을 멋스럽게 소화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뭐라 한 가지로 꼬집어 설명하기 힘든 ‘포스트모던한’ 옷과 슈즈를 좋아하기도 합니다. 물론 마감 때는 트레이닝복과 덥수룩한 수염으로 ‘고시생 룩’을 완성하기도 하지만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포인트는 줍니다. 컬러 스니커즈를 신는다거나, 선글라스 같은 아이템을 추가하는 식이죠.

남성지에는 꼭 섹스 기사가 있어야 하나요? 섹스 담당 에디터를 보면 같은 사무실을 쓰는 동료라도 거부감이 들 때가 있지 않나요?
피처 그러니까 제가 싫다는 말씀인 거죠? 이것 하나만은 알아주세요. 섹스 기사 한 번 쓸 때마다 정자가 천만 마리씩 죽는 것 같다니까요.
패션 일단 패션 에디터는 옷을 벗기기보다는 입히는 직업이죠. 게다가 패션지에 있다 보면 본의 아니게 남의 몸(주로 잘빠진 모델)을 자주 접하다 보니 단순히 벗은 몸만 봐서는 에로틱한 감정을 느끼기가 쉽지 않아요. 심지어 성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지기까지 하죠. 그래서 가끔씩 저의 성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섹스 기사도, 또 이를 쓴 담당 에디터에게도 고마울 따름이죠.

수많은 인터뷰를 했을 텐데,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는 어떤 부류인가요.
피처 그동안 만났던 모든 인터뷰이들이 기억에 남죠. 하지만 자주 죽여버리고 싶고, 가끔 존경스러워요. 유명인들도 인간이니, 결코 완벽하지는 않으니까요. 말을 가리는 데다 말주변도 없는 연예인들보다는 자기 세계가 확고한 문화 인사들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군림하는 신이 아닌, 신도들과 함께하는 신을 원했기 때문에 낮은 지붕의 교회를 만들었다던 건축가 김개천 선생님이 생각나네요.
패션 언젠가 Z 제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사토리를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그는 그 자체로 제냐더군요. 스타일과 사고방식,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요. 자신이 맡은 브랜드가 자신과 동일하다면 일하는 즐거움이 얼마나 크겠어요. 그렇게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인터뷰이들을 만나면 마음 깊이 존경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생기죠.

그렇다면 꼭 인터뷰하고 싶은 대상은 누구죠?
피처 버락 오바마. 세계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정치인이죠. 현명하지만 고루하지 않고, 연설도 잘하는 데다 심지어 춤까지 잘 추죠. 차기 미국 대권에 가장 근접해 있는 남자이기도 하고요.
패션 칼 라거펠트. 그의 옷을 보면 ‘여자의 마음은 이런 거야’라고 외치는 것 같으니까요.

당신의 드림카는요?
피처 드림카는 너무 많죠. 애스턴 마틴 DB9, 포르쉐 박스터, 알파 로메오 같은 슈퍼카들 이죠. 하지만 ‘내 생애 마지막 자동차는 벤츠’라는 생각은 한 번도 변하지 않았어요.
패션 미니 클럽맨! 패션 빅팀들에게 이만큼 어울리는 차가 없죠. 트렁크가 넓어서 옷가지를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기도 좋으니.

여자를 처음 볼 때는 어떤 점을 제일 많이 보나요?
피처 당연히 예쁜 여자죠.
패션 남자는 남자니까요. 물론 스타일이 나쁘면 금방 싫어지지만.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핫한’ 장소는 어디라고 생각하나요?
피처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이죠. 끝도 보이지 않게 늘어선 상점들은 말 그대로 욕망의 거리 아니던가요.
패션 ‘지금까지’ 가장 핫한 곳은 신사동 가로수길. 자판기 커피보다 더 평범해진 스타벅스 대신 배스킨라빈스보다 더 선택의 폭이 넓은 다양한 스타일의 카페들이 즐비한 곳이죠. 하지만 패션계는 그 특성상 번잡해지기 전에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나는 화전민 같기에 이도 얼마나 갈진 모르겠어요.

섹스 스타일은 어떤가요?
피처, 패션 대체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며, 대답까지 해야 하는 걸까요. 이러쿵저러쿵 해봤자 우리는 결국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것 아닌가요?

좋아하는 잡지가 있나요? 물론 <아레나>는 제외하고.
피처 출장차 혹은 고향 방문차 가끔 KTX를 탑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앞좌석에 꽂혀 있는 월간 를 보지요. 정말 훌륭한 잡지라고 생각합니다. 괜한 허세를 부리지 않는 데다 정보뿐만 아니라 정서를 전달하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죠. 물론 우리 조국 산천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걸 배우기도 하고요. 정공법이란 건데, 매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
도로 쓰레기가 창궐하는 요즘 잡지계에서는 정말 바람직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패션 좋아하는 잡지 너무 많죠. 다만 잡지를 선택하는 기준이 ‘누가 찍었느냐’죠. 위르겐 텔러의 사진이 실린 잡지는 모두 좋아요. 굳이 하나를 꼽자면 비교적 잡지 기조가 또렷하고 포토그래퍼들의 포트폴리오 같은 정도.

인터넷 악플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피처, 패션 그러니까 아마도 잡지 바닥만큼 소문이 빠르고 뒷말이 많은 세계도 없을 겁니다. 인터넷 악플이요? 사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귀여운 것들 하면서 봅니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지금 당장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뭐죠?
피처 우선 컵라면과 인스턴트 커피를 덜 먹어야 할 것 같아요. 나무젓가락과 종이컵이 얼마나 환경을 오염시키는데요. 그리고 환경단체에 매달 조금씩이라도 기부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하지만 그냥 이 세상을 빨리 뜨는 것이 제일 좋지 않을까요? 살면서 소비 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환경 재앙을 가져오는 행동일 테니까. 가뜩이나 사람도 넘쳐나는 판에.
패션 우선 퍼를 좋아했던 그동안의 취향을 반성해야겠네요. 각종 털 달린 동물들의 아픔을 애써 외면해왔던 것, 인정합니다. 땅에 묻어도 백 년은 멀쩡할 것 같은 에나멜 구두와 가방들을 편애해왔던 것도. 쇼핑을 줄이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하려고요.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책이 있나요?
피처 진보신당을 지지합니다. 에디터들도 결국 똑같은 노동자들이니까요.
패션 솔직히 정치에는 별 관심 없어요. 다만 대운하만큼은 꼭 중단됐으면 좋겠어요.

술자리 약속을 잡을 때 청담동이 편하세요, 종로가 편하세요?
피처, 패션 주차하기 쉬운 곳이오.

지금 서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아티스트는 누군가요?
피처 미술가 권오상. 언젠가 인터뷰하다 천재라는 건 정말 세상에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말 몇 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아우라를 느꼈죠. 지금도 그렇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더 엄청난 인물이 되어 있을 겁니다.
패션 ‘청바지 작가’로 유명한 최소영이 생각나네요. 청바지로 콜라주를 만드는 그녀의 작업은 ‘패션의 기본은 진에서 출발한다’는 명제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해주죠.

남자들이 스키니 팬츠를 입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피처 끔찍이 싫어합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제 허리와 허벅지에는 스키니 팬츠가 들어가지 않거든요. 게다가 성기능 장애까지 초래할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죠.
패션 스키니 팬츠는 입을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입을 것이냐가 중요하죠. 분명 바지 종류를 하나 늘렸으니 선택의 폭을 넓힌 데에는 공로가 있죠. 하지만 그만큼 매치하기 힘든 아이템이기에 패션 에디터에게는 끝내지 못한 숙제 같은 옷이죠.

에스테틱을 받아보셨나요? 효과가 있어요?
피처 잠깐만요. 강남에서 에스테틱 한 번 받을 돈이면 하이네켄이 몇 병인지 계산 좀 해보고요.
패션 네, 몇 번 받아봤어요. 분명 효과도 봤고요.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그렇게 비싼 삯을 치를 이유가 없죠.

요즘은 남자도 성형 많이 한다면서요? 성형 수술에 대한 의지가 있나요?
피처 지방흡입 먼저 받고 생각해보려고요.
패션 부모가 해주지 못한 걸 의사가 해주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패션지 기자는 왠지 다들 된장남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명품도 하나쯤은 들고 있어야 할 테고. 저축을 하기는 하나요? 재테크도 하고요?
피처 돈 모으는 일, 사실 일반 회사원보다는 어렵습니다. 어쨌든 음식이든 카페든 술이든 경험을 해봐야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유명 패션지 피처 에디터지만 지오다노 하나만으로(주위의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티다가 결국엔 한강변에 아파트까지 장만한 선배도 있는걸요. 정말이지 아주 훌륭한 롤모델이죠.
패션 패션 기자들이라고 항상 숍에 들러서 정신없이 카드를 긁지는 않아요. 다만 일반인보다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잡을 뿐이죠. 실제로 패션팀의 모 기자는 펀드와 기타 재테크로 꽤나 짭짤한 수익을 올렸지요.

패션지 기자들은 전부 수입차만 타고 다닐 것 같은데, 어떤 차를 몰고 다니나요?
피처, 패션 참고로 말씀드리면, 현재 <아레나> 편집부의 자동차 보유 현황은 수입차 한 대, 중형차 한 대, 준중형차 세 대, 스쿠터 한 대, 나머지는 BMW(Bus, Metro, Walking) 되겠습니다.

지금 수중에 천만원이 있어요. 가능한 쇼핑 리스트를 제시해주세요.
피처 지금 타는 차를 팔고, 거기에 천만원을 얹고 대출도 좀 받아서 폭스바겐의 골프를 사겠어요. 돈이 남는다면 플레이스테이션 3를 하나 장만하고요. 적고 보니 참 단순한 수식이군요.
패션 롤렉스 서브마리너(5백만원) + 앤 드뮐미스터 재킷(1백50만원) + 디스퀘어드2의 핑크 셔츠(20만원) + 프라다의 에나멜 슈즈(70만원) + 펑크의 보스턴 프레임 뿔테 안경(27만원)… 더 할까요?

남자에게 필요한 단 하나의 아이템은 뭔가요.
피처 남자는 ‘롤렉스’라고 어릴 때부터 배워왔어요.
패션 순결하지만 강건한 질 샌더의 화이트 셔츠.

당신이 문화부장관이 됐다고 치죠. 평소 에디터의 눈으로 문화예술계를 바라본 당신이 가장 먼저 시행할 정책은 뭔가요.
패션, 피처 잡지 기자 연봉 인상!

잡지 기자로서 최후의 목표는 뭐죠? 차기 <아레나> 편집장?
피처 설마요. <아레나> 편집장이 일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 ‘저렇게 되어야지’보다는 ‘저렇게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말이지요. 아주 먼 미래에 비정기 간행물을 하나 만들고 싶어요. 주제에 대한 제약도 없고, 원고 마감도 없고, 레이아웃도 두서없지만, ‘진심’을 가진 잡지. 예를 들면 대운하에 대한 비판과 역도 선수 장미란의 오트 쿠튀르 드레스 화보가 함께 들어 있는 기절 직전의 잡지요.
패션 패션은 정답이 있는 분야도 아니니 모두가 공감할 만한 스타일을 만든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잡지는 상업 매체이기에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는 게 안타깝죠. 비용과 옷과 모델에 대한 모든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진정 예술과 같은 패션 잡지를 만들고 싶어요. 누드 컷으로만 모든 페이지가 다 채워진다 해도 천박하지 않은, 그런 예술 잡지. 상업의 그늘 아래에서 벗어난 양지의 비주얼 잡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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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Photography 기성율
Editor 이기원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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