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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치유의 공간, 바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절실해진 요즘. 일상과 분리되어 숨을 쉴 수 있는, 자신만의 쉼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하다.

On November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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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 산토리니

쪽빛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 모금을 마시는 순간 어느새 머릿속이 비워져 온전히 쉴 수 있는 그곳. 에디터 정소나

뭔가 달라지고 싶은 한 해였다. 마음먹은 것을 실행하는 데까지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편이었다. 선택할 때는 신중하지만, 선택한 다음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는데 유독 올해만큼은 선택 자체가 불가능한 일투성이였다. 어쩌다 선택지가 주어질 때도,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에 주춤거리다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나이 탓일까? ‘행운은 나의 편’이라며 근거 없이 당당했던 자신감도 실종된 지 오래.

그렇게 사방이 꽉 막힌 상자 안을 맴도는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하루 버티던 어느 날, 불현듯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숨 고르기임을 깨달았다. 당장 휴가를 내고 시름 많은 서울에서 벗어나리라 결심했다. 만사 귀찮으니 한곳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면 좋겠고, 이왕이면 탁 트인 바다도 보고 오자는 심산으로 강원도 삼척에 위치한 쏠비치 리조트로 향했다.

몇 시간을 달려 드디어 도착! 산토리니를 연상시키는 이국적 분위기에 분주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평일의 여유로움에 긴장이 탁 풀리는 기분. 방에 짐을 풀고 플립플롭으로 갈아 신은 뒤 로비에 있는 카페에서 산 커피를 홀짝거리며 프라이빗 비치로 향했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그림 같은 수평선을 배경 삼고, 파도 소리를 음악 삼아 고요한 해변을 걷고 또 걷다 보니 시끄러운 마음이 점점 평온해졌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질 무렵, 레스토랑으로 이동해 바다가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혼자만의 만찬을 시작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갖는 혼자만의 시간은 낯설지만 행복했다. 와인 한 잔을 곁들이니 머릿속 근심이 저만치 달아나며, ‘인생 별거 있나’ 싶어졌다. 방으로 돌아와 칠흑 같은 밤바다와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몸을 누이는 순간 비로소 나 자신이 회복되는 느낌으로 충만해졌다.

충동적으로 발길을 돌렸던 삼척에서의 잠시 멈춤은 온갖 상념으로 지친 나에게 그야말로 선물 같은 ‘힐링 타임’을 선사했다. 바이러스가 지구를 뒤덮고, 하늘길이 막혀버린 요즘, ‘리얼’ 산토리니로 떠날 날은 요원하지만 서울에서 3~4시간만 달리면 산토리니처럼 나를 새로운 감각으로 채워주는 힐링 플레이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끈 힘이 솟는다.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도, 대단할 것 없는 일상이라도 ‘괜찮다’고, ‘까짓것, 그게 뭐라고!’ 하며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그곳으로 조만간 다시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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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다 남항진

때때로 세상과 분리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럴 때 남항진에 간다. 에디터 김연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땅에 살고 있지만 현대인에게 바다는 가닿기 어려운 곳이다. 특히 도심에 사는 이들이라면 보고 싶을 때마다 바다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기껏해야 서울 중심에 있는 한강을 바라보며 심심한 위로를 얻을 뿐. 많은 이들이 휴가철에 바다를 선호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일상과 가장 먼 곳에서 지내보고 싶은 마음, 그중에서도 탁 트인 바다 앞에서 조급함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 말이다. 나는 그런 마음이 들 때 강원도 남항진 해변에 간다.

남항진을 처음 만난 건 한창 취업 준비를 이어가던 25살 여름이다. 사회에 발을 내딛기 전엔 돈은 없어도 시간이 많다고 하던데, 취업 준비생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명제였다. 돈은 물론 시간도 넉넉하지 않다. 되는 일이 없는 시기인지라 심신까지 망가진다. 나 또한 그랬다. 어느 순간부터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엄격하게 굴러가던 시간을 자체적으로 멈춰 세웠다. 그리고 강원도 강릉으로 떠났다. 강릉을 이야기하면 안목해변을 언급하는 이들이 많다. 안목해변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북새통을 이룰 만큼 아름다운 해변과 주변 경관을 자랑한다. 하지만 북적거리는 서울이 싫어 떠나온 나에게 안목해변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600m의 백사장과 모래사장 인근으로 울창하게 뻗은 나무 숲이 한눈에 보이는 남항진 해변. 낚싯대를 세워두고 사색에 빠진 몇 사람을 제외하고 그곳을 찾은 이는 나뿐이었다. 흐린 하늘을 수면 위에 그대로 옮긴 듯한 바다의 빛깔, 거칠게 다가와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적잖은 위로가 됐다. 남항진의 고요함은 철저히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편안함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어떠한 표정을 짓지 않아도 상관없는 시간에 놓였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도심에서의 생활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는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치유를 목적으로 바다를 찾는 이들이 더러 있다고 들었지만 내 이야기가 될 것이라곤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때의 기억으로 강원도에 갈 때마다 남항진을 찾는다. 흔한 카페 거리나 한껏 꾸며진 포토 스폿은 없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바다가 주는 아름다움이 좋았다. 그렇다고 볼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남항진의 명물은 바다와 강 사이에 놓인 ‘솔바람 다리’다. 총 192m에 달하는 다리에 올라서면 강릉 시내에 흐르는 남대천과 동해 바다가 만나는 모습이 한눈에 담긴다. 강과 바다가 섞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용돌이는 남항진을 찾은 이들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아쉽지만 모든 게 그렇듯 남항진 해변의 모습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오탁방지막이 설치되면서 바다만 담기던 시야에 구조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남항진을 찾는다. 조금 변한다고 한들 그 본질이 어디 가겠냐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만의 고요함, 하늘과 바다의 구분이 불명확해 더 아득하게 느껴지는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떠올렸던 생각이 묻어 있는 소중한 곳이다. 이런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남항진 바다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파도를 들어 올렸다가 가라앉힌다.

CREDIT INFO

에디터
정소나, 김연주
일러스트
슬로우어스
2021년 11월호

2021년 11월호

에디터
정소나, 김연주
일러스트
슬로우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