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 네이버 포스트 네이버 밴드 유튜브 페이스북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STAR

STAR

주안이의 개학 그리고 손준호의 숙제

길고도 길었던 반년간의 방학이 끝나고 주안이가 등교를 했다.

On September 22, 2020

/upload/woman/article/202009/thumb/46080-428160-sample.jpg

오붓한 부자의 한강 라이딩. 그저 평범한 일상에 감사함이 드는 하루.


얼마나 기다렸을까. 겨울방학 이후 손에 꼽을 만큼의 등교일을 빼면 거의 반년이 넘는 방학을 보낸 주안이가 드디어 개학을 맞았다. 으레 그렇듯 이번에도 주안이는 새 학기를 앞두고 나와 여러 가지 새로운 다짐을 했다. 문제집 풀기, 매주 책 2권 읽기, 부모님 말씀 잘 듣기 등 대단하진 않지만 꼭 지켰으면 하는 소소한 약속들이다.

새 학기를 앞두고 갖는 이러한 의식들이 일방적으로 주안이에게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같이 공부하기, 독서하기, 대화하기 등 녀석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약속을 했다.
 

/upload/woman/article/202009/thumb/46080-428163-sample.jpg

엄마 몰래 즐기는 소소한 일탈. 야식은 역시 컵라면이지!

/upload/woman/article/202009/thumb/46080-428162-sample.jpg

수박 고르는 법도 똑 소리나게 터득한 주안이.


우리는 약속을 지킨 서로에게 후한 보상도 잊지 않는다. 나는 대부분 엄청난 칭찬과 함께 평소였으면 결코 허락하지 않았을 하루 아이스크림 2개 먹기, 유튜브 10분 더 보기 등을 선사하고, 주안이는 내게 포옹이나 달콤한 칭찬을 선사하는 식이다.

“아빠가 세상에서 최고로 좋다”는 표현을 해주거나 먼저 다가와 애정 표현을 하고 애교를 부리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으로 나에게 기쁨을 준다. 그럴 때마다 녀석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나는 한 번이라도 더 녀석의 보상을 받고 싶어 안달이 나곤 한다.

문제는 새 학기마다 하는 이러한 다짐들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 특히 내가 출연하는 공연이 개막하면 귀가 시간이 불규칙해질 때가 많아 서로와의 약속은커녕 녀석과 함께 보내는 시간마저 점점 줄어들어 우리의 약속은 자취를 감추고 만다.

이기적이게도 처음엔 주안이가 혼자서라도 나와의 약속들을 지켜주길 바라곤 했다. 고작 며칠이지만 함께 약속을 지켰으니 혹여나 습관이 들진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서였다. 그렇게 혼자 기대하고 실망하고 그래서 둘이 부딪치면서 어느새 주안이를 앞에 두고 혼내고 타이르는 나의 모습을 만나게 됐다.
 

/upload/woman/article/202009/thumb/46080-428159-sample.jpg

주안이의 사랑스러운 소원. 이러니 사랑할 수밖에.

/upload/woman/article/202009/thumb/46080-428161-sample.jpg

주안이와 함께하는 주안 데이. 두발자전거를 타게 된 후 부쩍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돌이켜보면 사실 모든 건 내 잘못이다. 녀석에게 조금만 관심을 갖고 꾸준히 돌보기만 했어도 주안이는 흥미를 잃지 않고 우리 약속을 계속 잘 지켜나갔을 거다. 일을 하느라 아들과의 사소한 약속조차 지키지 못한 나의 부족함이, 막연한 불안감으로 아이를 목적도 없이 어디론가 내몰고 있는 나의 무지함이 귀중한 우리의 약속을 저버리게 만든 건 아닌지 미안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오랜만에 주안이가 등교한 후 텅 빈 녀석의 방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난 반년간의 방학 동안 주안이를 위해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고민보다, 빨리 개학을 해 학교가 주안이를 잘 케어해줬으면 좋겠다고 책임을 미룬 건 아닌지 말이다. 막연하게 학교에 보내면 학교에서 주안이를 잘 가르쳐주고 주안이도 그 시스템에 맞게 잘 자라겠지 하는 수동적인 생각을 하고 살았다. 주안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수업을 받는지, 학교에서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 학교 친구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관심은 뒷전인 채 말이다.

주안이가 8살이 된 해 3월, 처음 주안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가졌던 생각이 있다. “사랑하는 아들이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아주기 위해 학교를 보낸다”고 말이다. 녀석의 방학이 길어지면서 나는 그 초심을 잠시 잊고 살았던 건 아닌가 싶다. 사랑만 하지 말고 관심과 노력으로 그 사랑을 표현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주안이의 ‘반년 만의’ 개학을 맞이해본다. 사랑해, 손주안!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주안이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

KEYWORD

CREDIT INFO

에디터
김두리
김준호
사진
손준호·김소현 인스타그램
2020년 09월호

2020년 09월호

에디터
김두리
김준호
사진
손준호·김소현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