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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코로나19’

한인 기피를 실제로 겪어… 현지인이 전한 중국 코로나 실태

<우먼센스>에 보내온 5개국 현지 특파원들의 생생한 이야기.

On May 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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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초 우한에서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수롭지 않은 뉴스였다. 20년 가까이 중국 생활을 한 남편은 사스부터 굵직한 전염병을 모두 겪은 터라 나보다 더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주변에선 겨울방학을 보내기 위해 많은 이들이 한국으로 떠났고 춘절 분위기에 들뜬 중국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고향으로 향했다.

명절날 아침, 축구광인 남편은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교민들과 축구를 하러 갔다. 그날 생각보다 일찍 귀가한 남편은 갑자기 나타난 관리인이 단체 활동이 금지됐다는 이유로 경기를 중단시켰다고 했다. 톈진에 확진자가 증가하기 시작한 시기가 아마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톈진의 상황은 비교적 잠잠했다. 미미한 생필품 사재기 느낌이 있었지만 이틀도 지나지 않아 모든 공급이 안정을 찾았고 가격 변동도 거의 없었다. 한인 타운에서는 체온 측정을 통과한 이들만 출입을 허락했고 많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통제의 힘은 훨씬 무섭고 컸다. 나오지 말라고 하니 정말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도로에 다니는 차가 없어 택시를 잡을 수 없을 정도였고 도시 전체가 텅 비어 있는 듯했다. 지역 신문들은 예상외로 나이, 연령, 거주지, 증상 발병 시점, 병원에 가는 과정과 역학 조사 결과 등 관련 소식을 비교적 빠르고 자세하게 보도했다. 평소에도 중국 생활은 의외로 간단했다. 하지 말라는 거 하지 않으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방역 수칙을 잘 지키니 우호적이었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엘리베이터엔 한 명씩만 탔고, 버튼을 조작할 땐 휴지를 이용하고, 청소 아줌마는 각층 현관과 함께 엘리베이트를 매일 오전, 오후 두 번 소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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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자 톈진의 주민들은 한국인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한인 타운에서는 체온 측정에 통과한 이들만 출입을 허락했고 엘리베이터 버튼은 휴지를 이용해 누르는 등 방역에 집중했다.
 

중국 상황이 한풀 꺾일 때쯤 한국 상황이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밖에 나가면 중국 이웃들이 경계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한국에 다녀오지 않았다’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고 싶었다. 자꾸 물어보니 슬슬 화가 날 무렵 한국은 위험 국가가 됐고 항공편이 모두 끊겼다. 나와 마주친 이웃들은 혼비백산해 집으로 들어가버리거나 우리가 문밖에 있을 경우 이웃집 대문은 절대 열리지 않았다. 옆 아파트 단지에서는 한국인의 출입을 막는 사태가 벌어졌다. 자기들은 불안해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일도 하지 못하는데 한국인들은 위험한데 왜 출근을 하느냐는 둥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한국인이라고 수군거리며 피하는 일은 예사였고 “몇 동 몇 호 사는 누구는 마스크도 하지 않고 다닌다, 무서워서 못 살겠다”며 한국인을 단속해달라는 민원이 빗발쳤다.

한국 상황이 잠잠해지자 이제 전 세계의 상황이 심각해졌다. 중국은 방역 앱을 개발해 각자 고유 건강 코드를 만들게 했다. 어디를 가든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든 건강 코드를 스캔해야 진입할 수 있고 승차가 가능했다. 또 어느 건물이든 그 점포 고유의 QR코드가 있어 그것을 스캔하고 정상 체온임을 증명해야 진입이 가능했다. 모든 국민을 실시간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한마디로 입 아프게 누가 어디를 갔는지 더 이상 물어볼 필요가 없는 코로나 방역 앱이었다.

봄이 오자 취학 아동을 둔 엄마들은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다. 휴교를 이어가던 학교들이 온라인 수업을 시작한 것이다. 집에서 수업이 이뤄지다 보니 감시 아닌 감시를 해야 해서 덩달아 엄마들도 바빠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요식업의 영업 정지가 풀려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다는 것. 평소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일상이 소중해진 요즘이다.

글·사진 _ 조미숙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이 있는 중국으로 건너온 지 14년 차. 이제는 중국 생활이 더 편해진 두 아이의 엄마다.

CREDIT INFO

에디터
김두리
글·사진
조미숙
2020년 05월호

2020년 05월호

에디터
김두리
글·사진
조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