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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코로나19’

이곳은 밀라노 지옥, 현지인이 전해준 이탈리아 코로나 근황

<우먼센스>에 보내온 5개국 현지 특파원들의 생생한 이야기.

On May 11, 2020


코로나19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설날 무렵이었다. 라디오에서 중국에 무슨 전염병이 돌아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고 먼 나라 이야기 같아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은 것이 내가 기억하는 코로나19의 첫인상이다. 이곳 밀라노 사람들의 생각 역시 나와 같지 않았을까? 그 이후 평화로운 이탈리아인들의 삶은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 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밀라노의 지옥이 시작된 것이다. 2월 22일 롬바르디아주(밀라노가 속한 주) 이동 금지령이 내려졌고, 3월 10일에는 이탈리아 전체 봉쇄령이 발표됐다. 봉쇄 상황이더라도 슈퍼, 약국, 담배가게 정도는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물론 자신이 사는 시를 넘어 다른 시로 가려면 증명서(Selfdeclaration)가 필요하지만 노부모 부양이나 특별한 상황이 있을 경우 통행을 허가받을 수 있다.

부활절을 앞둔 어느 날, 거리에는 평소보다 사람이 좀 더 있어 보였다. 나 역시 부활절을 맞아 오랜만에 외출에 나섰다. 칠면조 요리를 해볼까 싶어 정육점에 들렸더니 1m 간격으로 선 사람들의 줄이 족히 총 30m는 돼 보였다. 한 가게당 2명 이상 들어갈 수 없어 한 명당 5분씩 계산해도 30분은 더 기다려야 했다. 한참 서 있다가 아이들에게 맛있는 식사는커녕 오히려 바이러스만 안겨다줄 것 같아 줄이 짧은 작은 슈퍼로 방향을 틀어 냉동 닭다리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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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봉쇄령이 내려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외출이 거의 불가능하다. 생필품을 사러 나온 시민들은 1m 이상 거리를 두며 최대한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힘쓰고 있다.
 

사실 국가 봉쇄령이 있기 직전, 나는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기회가 있었다. 일찌감치 비행기 티켓을 예약해놓은 덕에 이탈리아가 전시 상황이 되기 직전 빠져나올 찬스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을 핑계로 가족을 두고 홀로 밀라노를 떠날 수는 없었다. 지금 이탈리아를 벗어나면 언제 다시 아이들 곁으로 돌아오게 될지, 혹시라도 내가 없을 때 아이들이 아프진 않을지 엄마로서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3월 31일 밀라노에 서울행 전세기가 마련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전세기에 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이 결정을, 나는 두고두고 올해 가장 잘한 일로 여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는 하루빨리 종식돼야 할 바이러스임이 분명하지만 지금 겪고 있는 이 시기는 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다. 40년을 넘게 산 내 인생에서 어느 누구도 육아휴직을 권한 이는 없었다. 아이들은 인생의 반을 다른 이들의 손에 의해 자랐고, 난 세상에서 제일 바쁜 엄마가 되어 늘 일에 치여 살았다. 한 달 정도 하루 세끼에 간식까지 만들며 아이들과 뒹굴고 지내다 보니 요즘처럼 하루하루가 감사한 날이 없다. 그저 사랑하는 이들과 건강하게 잘 살아 있다는 것이 감사해지는 순간들이다. 당연한 듯 누려왔던 자유도, 사사롭게 치부했던 일상도 내게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일인지 새롭게 깨닫는 요즘이다. 아이들은 말한다. “엄마, 우리가 겪는 이 시간이 언젠간 역사책에 나올 만한 일이겠지? 그럼 우린 그 순간을 살아남은 사람들이 되는 거고 말야.” 그래, 엄마는 왜 몰랐을까. 너희들과 함께 건강하게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역사, 그 자체인 것을.

글·사진 _ 하수민

오엠코리아 대표이자 14세, 17세 두 딸의 엄마. 뷰티 제품 유통과 함께 주얼리를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일도 하고 있다.

CREDIT INFO

에디터
김두리
글·사진
하수민
2020년 05월호

2020년 05월호

에디터
김두리
글·사진
하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