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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책

'위대한 개츠비'를 펼치고 싶을 때

7명의 작가에게 물었다. “당신의 인생 책은 무엇인가요?”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 생애를 두고 다시 읽고 싶은 한 권의 책에 대하여.

On November 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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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탁월한 애잔함

콘텐츠 디렉터 박지호


사실 그동안 “내 인생의 책을 꼽아달라”는 질문이나 요청을 꽤 많이 받아왔는데 한 번도 응한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지금껏 트렌드로서, 흐름으로서 가장 최신의 책을 읽는 데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내게 책은 곧 지금의 문화와 사회적 이슈, 흐름을 보여주는 가장 최종적인 매체의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딱 한 권의 책을 꼽을 수 없었던 것이, 그때그때 인상 깊게 다가온 책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바뀌어왔기 때문이다.

고전이라는 양식이 내게는 여전히 낯선 것 또한 ‘내 인생의 책’을 꼽는 데 망설이게 한다. 어릴 때 어설픈 번역으로, 심지어 몇몇 대목을 뭉텅이로 잘라내기까지 했던 몇몇 문고본이나 전집류에 질린 탓인지 어른이 돼서도 20세기 이전의 작품에는 그렇게 썩 손이 잘 가질 않았다. 그러니까 내게는 트루먼 카포티, 프랑수아즈 사강, 줄리언 반스, 이언 매큐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등의 작품이 일종의 고전 역할을 해온 셈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앞선 시대의 작품에, 그리고 여전히 틈만 나면 찬찬히 곱씹어보곤 하는 작품으로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피츠제럴드 단편선>이 있다.

피츠제럴드는 자기 작품 속 인물들과 비슷한 인생의 궤적을 걸어왔다. 개츠비처럼 경제적 성공과 명예를 얻은 뒤 그 잔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흥청망청하는 사교계의 삶을 살아보기도 했고, 바닥으로 급전직하해 결국 자신은 알코올중독으로, 아내는 신경쇠약으로 고생하다 많지 않은 나이에 삶을 마감했다. 무엇보다 그는 주옥과도 같은 단편들을 통해 인류가 최초로 겪은 대공황, 1920~30년대에 유례없을 정도의 호황과 급전직하하는 공황을 겪은 당시의 미국인들이 정체 모를 불안과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좀처럼 삶을 포기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꿈과 환상을 놓지 못하는 애잔함을 정말 탁월하게 담아냈다.

그리하여 나는, 당시로부터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우매한 인류가, 끊임없이 호황과 불황 사이를 진동하는 세계 경제의 예측 불가 상황에 지극히 무능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그럼에도 결국은 미래에 대한 꿈과 환상을 놓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스스로를 애잔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하여 피츠제럴드의 작품들을 여전히 펼쳐보며 작은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
김정선
2019년 11월호

2019년 11월호

에디터
하은정
사진
김정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