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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문호들이 사랑했던 크림반도

On January 25, 201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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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둥지성.

제비둥지성.

 

푸시킨이 머물렀던 구르주프 휴양소

1820년 황실의 미움을 사 러시아 남부 지방에서 유배 생활 중이던 푸시킨은 몸마저 망가져 시름시름 앓았다. 평소에 그를 아끼던 지역 사령관 라옙스키 장군은 크림반도의 구르주프로 함께 요양을 간다. 라옙스키 장군은 훗날 데카브리스트 반란의 주역이 되는 세르게이 발콘스키의 장인이자 마리아 발콘스카야의 아버지였다. 비록 4개월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을 이곳에서 보냈지만 푸시킨이 머물렀던 휴양소 2층에는 그의 이름을 딴 박물관이 있다. 그가 사용했던 책상과 종이, 펜 그리고 자화상을 볼 수 있다. 특히 그가 집필한 대표작 『예브게니 오네긴』의 초고와 삽화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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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_구르주프의 안톤 체호프 다차에 있는 좌상. 우_톨스토이 참전 기념비.

좌_구르주프의 안톤 체호프 다차에 있는 좌상. 우_톨스토이 참전 기념비.

 

안톤 체호프의 생가와 하얀 별장

흑해가 내려다보이는 얄타의 언덕에는 체호프가 죽기 전에 5년간 살았던 집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여느 식물원 못지않게 온갖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체호프가 직접 땅을 개간해 일군 정원이다. 배우였던 부인 올가는 주로 모스크바에 있었고 이곳에서는 어머니와 누이들이 함께 살았다. 의사이기도 했던 체호프는 이웃을 돌보면서 작품을 썼다. 그는 이곳 2층에 있는 서재에서 『벚꽃동산』을 집필했다.

이 집에서 멀지 않은 구르주프에는 그의 여름 별장인 다차가 있다. 흑해가 보이는 해안과 맞닿은 언덕의 바위 틈에 있어서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곳도 규모는 작지만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다. 건물 전체가 흰색이라 '하얀 별장'이라고도 부른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체호프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그는 말년에 지병인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독일로 떠난다. "나 죽으러 간다"라고 농담처럼 친구들에게 했던 말이 결국 그의 유언이 되었다. 후사가 없었던 터라 그가 죽은 후 여동생들이 박물관으로 개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크림전쟁에 참전했던 톨스토이

크림반도의 관문 세바스토폴은 전쟁으로 점철된 쓰라린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1854년에 발발한 제1차 크림전쟁 때 포대장의 신분으로 참전한다. 그는 프랑스, 영국, 오스만 튀르크의 침공으로 349일간 항전했던 처절한 전투의 경험을 살려 『세바스토폴 이야기』라는 작품을 쓰기도 했다. 전장에 선 톨스토이의 모습과 그의 이미지가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가 근무한 포대 진지에는 지금도 대포가 거치돼 있고 그 앞에는 톨스토이 참전 기념비가 서 있다. 톨스토이는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다시 한 번 세바스토폴을 방문했다. 당시 그가 묵었던 건물에는 그가 묵어갔다는 사실을 알리는 동판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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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디아 궁전 전경.

리바디아 궁전 전경.

 

얄타 회담이 열린 리바디아 궁전

리바디아 궁전은 니콜라이 2세의 여름과 가을 궁전이기 이전에 우리에게는 잊지 못할 얄타 회담이 열린 역사적인 곳이다. 1911년, 건축가 크라스노프가 설계하고 제정 러시아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가 별장으로 사용했다. 특히 이 궁전은 인케르만석으로 지어 시간이 지나도 변색되지 않고 하얀색을 유지한다. 크림반도에서 생산되는 인케르만석은 요즘 들어 인공 치아 원료로도 각광받는 귀한 돌이다. 니콜라이 2세는 생전에 이곳에서 네 차례 휴가를 보내고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다.

1945년 2월 역사적인 얄타 회담이 이 궁전에서 열렸다. 그 당시 소련의 스탈린은 거동이 불편한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를 배려해 이곳을 숙소와 회담 장소로 제공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남과 북이 나뉘게 된 비극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원망이 앞서서인지 궁전의 화려함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당시의 회담장 모습 그대로 세팅돼 있는 회의실이나 루스벨트, 스탈린, 처칠 세 사람의 밀랍 인형에 관심이 간다. 각각 다른 생각을 숨기고 웃음 띤 얼굴로 기념 촬영을 했을 그들을 생각하면 그리 편한 마음으로 볼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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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_얄타의 안톤 체호프 박물관 입구. 우_리바디아 궁전의 얄타 회담 주역 3인의 밀랍 인형(좌로부터 루스벨트, 스탈린, 처칠).

좌_얄타의 안톤 체호프 박물관 입구. 우_리바디아 궁전의 얄타 회담 주역 3인의 밀랍 인형(좌로부터 루스벨트, 스탈린, 처칠).

 

흑해의 랜드마크 제비둥지성

얄타에서 멀지 않은 해안가 절벽에는 흑해의 명물 중 하나인 제비둥지성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건물을 지탱하는 지반이 30%쯤 무너져 내려 허공에 떠 있는 위태로운 모습이지만 흑해와 어우러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크림반도 관련 책자나 사이트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랜드마크다. 해안가 절벽에 매달린 제비둥지를 닮았다고 해서 '제비둥지성' 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준 선물이라고 해서 '사랑의 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래 이곳에는 러시아 장군의 별장이 있었는데 1910년 독일인 거상이 이곳을 매입해 독특한 형태의 성을 지었다. 그러나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는 서둘러 이 성을 팔고 독일로 귀국했다. 이후 잠깐 동안 한 러시아인의 손을 거쳤고 볼셰비키 혁명이 나자 국가에 귀속됐다. 그 후 1927년에 얄타에 큰 지진이 일어나 지반의 상당 부분이 소실돼 지금처럼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현재는 세계 유명 작품들의 이미테이션을 전시하는 전시관으로 쓰인다.
 

100만 병의 포도주, 마산드라 와이너리

마산드라 와이너리에서 필자 박대일 대표.

마산드라 와이너리에서 필자 박대일 대표.

흑해 연안을 향해 펼쳐진 크림반도 남부 지역의 산비탈에는 포도밭이 끝없이 연속된다. 물기가 잘 빠지는 지형에 흑해의 풍부한 일조량과 변화가 심한 기후 등은 포도 생산에 최적의 조건이다. 크림반도의 포도주는 기원전부터 유명했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 상인들은 흑해 연안에 헤르소네스라는 고대 도시를 건설하고 포도주 교역에 앞장섰다.

얄타에서 가까운 마산드라 지역에는 제정 러시아 황실의 포도주를 만들던 마산드라 와이너리가 유명하다. 1894년에 건설한 와이너리는 너비 4~5m에 길이가 150m에 이르는 7개의 터널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터널은 관으로 연결되고 이 관을 통해 흐르는 지하수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한다. 특히 이곳에서는 알코올 도수가 다르고 색깔이 다르며 당도도 각각 다른 수많은 종류의 와인이 생산된다. 지형과 고도, 채취 시기와 초벌 숙성 기간, 저장 기간에 따라 각각 다른 와인이 된다. 이곳에는 와이너리 역사와 제조 과정, 저장 창고를 구경하고 9종류의 와인을 시음하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물론 싼값으로 파는 자체 매장도 함께 운영한다. 마산드라 와이너리에는 100만 병 이상의 와인이 저장되어 있으며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가장 비싼 와인은 1775년에 생산된 '헤렌스프란 떼라'라는 브랜드로 병당 100만 유로의 가치를 지니며 현재 4병을 보유하고 있다.
 

<우먼센스>에서는 7월 26일부터 8월 2일까지 크림반도 8일 여행,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코카서스 3국 10일 여행 등을 바이칼BK투어(주)(02-1661-3585)와 함께 진행하며 3월 27일 오후 3시 서울문화사 별관 강당에서 여행 설명회를 한다. 자세한 내용은 우먼센스 2018.02월호 92, 94쪽 참조.

[투어] 생생한 역사의 현장, 크림반도 8일

Credit Info

취재·사진
박대일 바이칼BK투어(주) 대표

201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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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사진
박대일 바이칼BK투어(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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