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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 부심

On December 22, 2017 0

지현우를 본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두 번은 스쳐지나가듯 본 게 전부였지만 늘 대본을 들고 있던 그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남에서 그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드라마 <올드미스 다이어리> 속 '국민 연하남'이라는 말은 지현우를 대세 반열에 올려놓은 수식어이기도 했지만 결국 스스로 극복해야 할 꼬리표가 됐다. 그래서일까? 지난 몇 년간 그는 캐릭터나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다른 배우들이 용기 내지 못하는 작품에도 선뜻 도전했다. 드라마 <도둑놈 도둑님>에서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도둑이 된 '장돌목' 역할을 맡으며 또 하나의 필모그래피를 채운 지현우를 만났다.


촬영 현장에서도 대본 벌레였다고 들었어요. 촬영장에서 숙박을 할 정도로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주인공 역할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건지, 괜한 부담감이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었죠. 50부작, 그러니까 6개월 동안 극 중 캐릭터로 살면서 고민이 많았어요. 제 욕심을 채우면서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했죠. 결국엔 대본이더군요. 대사를 완벽하게 외워 한 번에 오케이 받는 게 첫 번째 목표였기 때문에 대본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어요.


대본에만 충실하다고 해서 좋은 연기,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요?
대본, 연기자, 감독님이라는 삼박자가 딱 맞는 작품을 만나기는 어려워요.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중엔 <송곳>과 <인현왕후의 남자>가 좋았죠. 감독님도 "나를 믿고 연기하라"고 하셨고 대본도 탄탄했어요. <송곳>을 연출하신 김석윤 감독님은 <올드미스 다이어리> 때 이미 한 번 호흡을 맞춰봤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제가 연기를 잘할 수 있는지를 아는 분이셨죠. <인현왕후의 남자>는 무엇보다 대본이 완벽했어요. 이번 작품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연기이기도 했고, 잘하고 싶은 마음과 앞서 말한 삼박자를 맞추기 위해 계속 현장에 있었던 것 같아요.


결론은 이번 작품이 힘들었다는 말이군요?
시청자가 제게 기대하는 게 분명히 있으니까 부담감 때문에 힘들었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반전 전개도 저를 긴장하게 했어요. 심지어 악역과 싸워야 하는 심각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마냥 웃으며 즐길 여유가 없었죠. 방심했다간 큰일 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자신을 더 조였던 것 같아요.


서현 씨와의 키스신과 로맨스는 늘 화제가 됐어요.
서현 씨도 10년 이상 톱 여가수로 살아온 사람이에요. 어쩌면 자기 고집과 여배우로서 요구하는 게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늘 신인의 자세로 임하더라고요. 상대 배우 그리고 선배로서 고마웠죠. 저도 예민해져 있는데 서현 씨마저 버릇없이 굴었다면 아마 같이 연기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무엇보다 예쁘게 보이려고 하지 않는 모습이 좋았어요. 어느 순간부턴 화장도 안 하더라고요.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예뻐 보였죠.


선배 배우로서 어떤 조언을 해주었나요?
밝고 맑은 친구라 더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했어요. "좀 더 집중해라" "방심하지 말아라" 하는 식이었죠. (김)지훈이 형이 달래주는 역할이었다면 저는 조금 조이는 선배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말 많은 선배였네요.(웃음) 그렇다고 무섭게 다그치진 않았어요. 적절하게 그리고 따끔하게 충고해준 정도죠.


평소 여배우들과의 관계도 그런 식인가요?
연기를 처음 시작했던 20대 초반엔 선배 여배우들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갔어요. <올드미스 다이어리>에 함께 출연했던 (예)지원 누나가 11살 연상이었으니까 그다음부턴 웬만한 연상녀들은 꺼릴 게 없었죠. 거침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아니지만.


지금은 어떤데요?
서른 살이 되면서,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군 제대 후 변한 것 같아요. 조심스러워졌죠. 예전엔 선배들과의 작업이 많았다면 요즘엔 점점 후배들과의 작업이 많아져요. 직장인들도 중간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가장 힘들 듯, 연기자도 삐끗하면 안 되는 시기인 거죠.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 신중해졌어요. 덕분에 '싸가지'라는 오명은 벗고 있네요.


싸가지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나요?
데뷔 초엔 관계자들 사이에서 '싸가지 없는 애'로 통했어요.(웃음) 선배 배우는 물론이고 스태프들에게도 거침없이 행동했거든요. 싫으면 인사도 안 했어요. 신인 주제에 말이죠. 솔직하고 자유분방했죠. 보통 업계에 '싸가지 없다'고 소문나면 캐스팅도 안 되는 편인데, 저는 다행히도 연출하시는 분들이 좋게 봐주셨고 덕분에 여기까지 잘 오게 된 것 같아요.


때로는 그런 과거가 현재를 만들기도 하죠.
맞아요. 어렸을 때 하도 싸가지 없이 독불장군 스타일로 굴었기 때문에 지금은 더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센 척하는 사람' '갑질하는 사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눈도 갖게 됐고요. 무엇보다 현장에서 대충대충, 설렁설렁하는 사람을 만나면 화가 나요. 저는 이제 이 일이 천직이고 안 하면 안 되는 일인데 사명감 없이 놀러 온 것처럼 임하는 사람을 보면 열 받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를테면 방금까지 장난치고 떠들다가 안약 하나 들고 들어가 눈물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 말예요. 그럴 땐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죠. "노시면 안 됩니다"라고요.



 

막연하게 꿈꾸는 가정의 모습은 있어요. 하지만 아직은 결혼 생각이 없네요.
한 마흔 살쯤? 제가 톱 배우라 불릴 수 있을 때쯤이면 결혼도 고려해볼래요.

 

연기에 대해,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진지한 자세로 임하고 있군요. 그런데 시작은 배우가 아니었어요. '더 넛츠'라는 밴드 그룹의 보컬이었죠?
'문차일드'라는 그룹의 차기 멤버가 되기 위해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업계에 발을 들였어요. 이런저런 작은 활동은 했지만 2년 동안 번 돈은 고작 1백만원이었죠. 힘들어서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당시 매니저 실장님이 '더 넛츠'를 새로 만들었어요. 행사 뛰고, 교육방송 단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했죠. 그땐 제 이름으로 된 통장에 입금되는 5만원을 보면서 행복해했어요.


힘든 시기였을 텐데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네요? 그때를 돌이켜보면 어떤가요?
즐거웠어요. 돈을 별로 못 버는 건 솔직히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죠. 지금은 우연한 기회에 연기를 시작한 게 잘한 거구나 싶어요. 음악적인 재능은 많지 않았거든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강요 아래 음악을 공부했지만 저는 드라마 편성표, 방송 프로그램 편성표를 외우는 걸 더 재미있어 했던 아이였어요. 물론 기타를 치고 노래를 했던 경험은 연기자로서 감수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많이 됐지만 말예요.


처음 연기 시작했을 때를 기억하나요?
<회전목마>라는 드라마에서 단역으로 처음 연기를 시작했어요. (이)동욱이 형이 리더인 밴드의 멤버로 출연했는데, "야! 어디 가? 늦었어!"라는 대사 한 줄을 하기 위해 거제도까지 내려갔을 정도로 흥미를 느꼈죠. 이후 KBS 공채 시험에 응시해 운 좋게 합격했고 당시로선 파격적인 외쌍꺼풀이 감독님의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연극배우 출신 배우들 사이에서 연기의 '연' 자도 모르는 제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나 봐요. 모든 게 타이밍이 좋았죠.


'내가 비로소 배우가 됐구나' 하는 걸 느낀 때는 언제인가요?
아직 진정한 배우가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배우의 길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건 전역 직후예요. '30대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40대의 삶이 달라진다면 나는 치열한 30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고 어느 때보다 열심히 했어요. 감독님과 단둘이 대본 리딩을 하면서 지적도 많이 당했죠. 그때 깨달았어요. '최소한 이 정도로 노력해야 대중이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요.


지현우를 대세 반열에 올려놓은 <올드미스 다이어리>에 출연할 때는 몰랐던 걸 뒤늦게 알게 된 거군요?
그땐 많이 어렸어요. 시키는 대로 연기했죠. 시키는 대로 울었고 시키는 대로 웃었어요. 스스로 연구하고 공부해서 만들어낸 감정이 없었죠. 사람들이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저를 왜 좋아해주는지도 몰랐어요. '이걸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야?'라고 의아해했죠. 21살 어린 제가 32살 여자의 감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나이 먹어가면서 알게 됐죠. 연기를, 여자를, 저를요.


20대의 지현우가 어땠는지 더욱 궁금해지네요.
주변 사람들은 제게 "넌 최고가 돼야 한다"고 말했어요. 톱 배우를 꿈꾸라고 강요했죠. 그렇지만 저는 톱 배우가 꿈은 아니었어요. 소위 톱이라고 하는 배우들은 외로워 보였거든요. 저는 조금 덜 유명해도, 조금 덜 벌어도 외롭지 않은 배우가 되는 게 목표였죠. 그런데 그것도 어느 순간 바뀌더라고요. 지금은 톱 배우가 돼겠다고 생각해요.


왜요?
지금 저의 위치는 애매해요. 핫하게 떠오르는 대세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구라도 인정하는 연기파 배우도 아니죠. 톱 배우는 더더욱 아니고요. 그렇다 보니 여러 곳에서 갑질 아닌 갑질을 당할 때가 많아요. 이를테면 연장 방송을 하면 작품이 늘어지고 망가질 게 뻔한데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못하죠. 제가 하지 않겠다고 하면 "너 다시 연기 안 할 거야?"라는 말이 돌아오는데, 톱 배우들이 "하지 않겠다"고 하면 쩔쩔매는 게 이 바닥이거든요.


그렇다면 지현우가 생각하는 톱의 기준은 뭔가요?
돈을 많이 버는 게 기준은 아니에요.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게 톱 배우의 가장 큰 메리트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저는 내가 먼저 작품을 고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은거에요.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배우에게 그건 연기를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또 더 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거든요. 적어도 저한테 만큼은 그래요.


밴드 출신이라서 그런가요? 반항아적 기질이 곳곳에서 엿보이네요.
그 또한 제 매력 중 하나죠.(웃음) 부당한 상황에 타협하는 걸 견디지 못해요. 성향이고 성격이죠. 그래서 전 솔직하고 계산적이지 않은 사람이 좋아요. 그런 성격의 사람들과 친해지는 편이기도 하고요.


연애할 때도 솔직하고 직설적인가요?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렇지 않겠어요? 다만 요즘엔 연애에 관심이 없어요. <도둑놈 도둑님>을 하면서 또 한 번 느꼈죠. 나처럼 일에만 미쳐 있는 남자를 어떤 여자가 좋아할까…. 아마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할 거예요. 이런 저를 이해하는 여자를 만난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새로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번거롭게 느껴질 뿐이에요. 또 '저 사람과 내가 오래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겁도 많아졌어요. 무엇보다 요즘에 일에 대한 집착 같은 게 생겼어요.


나이가 나이인 만큼 예쁜 가정을 꿈꿀 법도 한데요?
물론 막연하게 꿈꾸는 가정의 모습은 있어요. 주변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친구들, 혹은 사랑스러운 아기를 보면 문득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곤 하지만 아직은 결혼 생각이 없어요. 한 마흔 살쯤? 제가 톱 배우라 불릴 수 있을 때쯤이면 결혼도 고려해볼래요.


지현우는 인터뷰를 마친 뒤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저는 어떤 사람일 것 같나요?"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확실하게 답했다. "왠지 좋은 사람일 것 같아요".

지현우를 본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두 번은 스쳐지나가듯 본 게 전부였지만 늘 대본을 들고 있던 그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남에서 그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Credit Info

에디터
이예지
사진제공
드림티엔터테인먼트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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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예지
사진제공
드림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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