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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만 7년 연상 아내와 중1 딸 위해 집 짓는 사연

On October 15, 2013

김병만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지난해 ‘정글’이라는 미개척 분야에 뛰어들어 생사를 오가는 치열한 현장에 발을 들이더니 이번엔 ‘셀프 집짓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7세 연상의 아내와 딸에게 보금자리를 선물하기 위해 직접 땅을 파고 못질하고 땜질하는 그를 공사 현장에서 만났다.

‘달인’을 통해 한국의 슬랩스틱 코미디의 새 장을 연 김병만(38세). 이후 드라마, 연극, 영화에 출연하며 활동 영역을 넓힌 그는 <키스앤크라이>와 <정글의 법칙>을 통해 열정과 도전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달인’다운 위용을 과시했다. 2011년에는 자전 에세이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를 출간해 2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대성공을 기록했으며, 최근 어린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지침서를 내 또 한 번 주목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건축가로 변신했다. 나만의 집을 짓고 싶다는 로망을 반영해 젊은 건축가들과 함께 새로운 개념의 집짓기에 나선 것이다. 이른바 ‘한글주택 만들기 프로젝트’다. 한글주택이란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모티브로 한 주택으로, 사각형 모양으로 이미 만들어진 모듈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해 ‘ㄱㆍㄴㆍㄷㆍㅡㆍlㆍㅏㆍㅑ’ 등 한글과 같은 형태로 짓는 집을 말한다.
5월 중순, 공사가 한창인 현장을 찾았다. 경기도 가평 설악면 일대. 서울 강남에서 약 50분이면 닿는 이곳은 북한강 등 수려한 자연환경으로 전원주택을 짓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실제로 김병만의 집을 중심으로 한글주택타운이 들어선다고 하니, 머지않아 명소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닐까 싶다.

# 김병만식 건축학개론

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있지만, 건축에 도전장을 내민 건 의외였어요.
현재 서울 반포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똑같은 형태의 주거 공간이 아닌 넓은 정원, 가족의 취향에 맞게 설계된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늘 꿔왔어요. 또 저의 드림하우스는 하나부터 열까지 제 손으로 직접 지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고요. 그동안 방송을 통해 정글에서 나무를 엮고 나뭇잎 지붕을 얹으며 비록 임시 주택이지만 집을 지어본 경험이 있어요. 또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죠. 과거 어려웠던 시절 때문에 집에 대한 애착이 있기도 하고요.

저렴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주택을 짓는다고 들었습니다.
전원주택 짓기가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1억원을 들여 집을 짓고 관리비가 거의 들지 않는 ‘고효율 에너지 주택 짓기’에 도전하게 된 겁니다. 1억원으로 가격을 정한 이유는, 집을 짓기 위해 가격을 알아보니 맘에 드는 세련된 디자인들은 아무리 작게 지어도 2억원이 넘더라고요. 물론 1억원으로도 집을 지을 수 있지만 너무 형편없는 집이고요. 그래서 여러 전문가와 상의한 끝에 1억원에 괜찮은 집을 지으면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1억원 한글주택 만들기’ 작업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저렴한 비용으로 집을 짓는, 한글주택의 공사 비결은 뭔가요?
일반 주택의 경우 공사비를 제외한 설계비만 평균 3천만원에서 1억원이 들어요. 물론 건축가의 디자인이 포함된 가격이기 때문에 값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실제 집을 지으려는 분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비용이죠. 그래서 보통 이미 지어진 집들을 설계비를 들이지 않고 그대로 짓거나 조금 수정해서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고요. 하지만 주택은 나만의 스타일대로 지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데, 공장에서 찍은 듯한 아파트 같은 주택에 들어가는 것은 의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한글주택 만들기 작업에서는 모듈화 설계를 적용해 설계비부터 1천만원대로 낮추고 있습니다. 레고 블록 같은 모듈화된 블록으로 직접 원하는 데에 놓으면서 손쉽게 설계하고, 기획에 필요한 시간 및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시키는 거죠. 기존 공법이라면 5가지 공정 과정이 들 것을 1가지 공정으로 끝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돈도 줄고 시간도 줄어드는 것이죠. 지금 만들고 있는 주택은 6월 안에 마무리될 예정이에요. 결국 두 달 안에 집짓기가 완성되는 셈이죠.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이 있다면요.
관리비가 적게 든다는 거죠. 이 집은 아주 고단열 주택이에요. 내벽거푸집이 단열재이기 때문에 콘크리트와 단열재가 일체화되어 열이 새거나 결로 현상이 전혀 일어나지 않거든요. ‘고단열 에너지 효율’ 주택이 되는 것이죠. 또 태양광 발전을 이용해 전기도 생산하고요. 그래서 1억원에 집짓기에도 도전하지만 ‘관리비 제로’에도 도전하고 있어요. 나중에 집 짓고 나면 관리비 영수증을 보여드릴게요.

집이 커 보이진 않는데…
원래 낭비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수입이 적진 않지만 여전히 전셋집에 살고 있죠. 그래서 첫 내 집이 생기는 거라 더 설레고 기대되는 것 같아요.

이번 집을 짓기 위해 따로 준비한 건 없나요?
굴삭기 자격증을 따려고 해요. 옛날에 직업학교 졸업 후 배관공을 한 경험으로 설비 배관도 직접 하려고 하고요. 공사 과정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할 겁니다. 예전에 벽돌도 쌓아봤고 대형 간판도 만들어봤고 용접도 할 수 있어요. 시골 아버지 집을 지을 때도 돈을 아끼기 위해 직접 공사를 다 했었거든요.(웃음) 이번에 전문가들에게 배우면서 흉내만 내는 게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제 손을 거쳐서 집을 짓고 싶어요. 저도 이렇게 집을 지었으니, 누구라도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요.

집이 완성되면 이곳에서 살 계획인가요?
물론이죠. 다만 당분간은 현재 살고 있는 반포 집과 이 집을 왔다 갔다 하게 될 것 같아요. 딸이 중학교 1학년이라 교육 문제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하려고 해요. 아마 일단은 온 가족이 쓸 수 있는 별장 형태로 쓰지 않을까 싶어요.

계부터 직접 참여했으니 가족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공간도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인 아내를 위해 마스터룸에 알파룸이라는 서재 개념의 공간을 만들었어요. 아내에게 보여주었더니 아주 좋아하던데요.(웃음) 딸을 위해서는 넓은 테라스를 마련했어요. 아무래도 여자아이이다 보니 외부 공간도 혼자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아할 거 같아서요. 또 가족들이 자연을 보다 더 가깝게 느끼게 하고 싶어 중정(中庭, 건물 안채와 바깥채 사이의 뜰) 개념의 공간을 두려고 해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도 베란다에 큰 화분을 많이 뒀는데, 거실에 누워 있을 때 화분들을 보면 편안한 마음이 들거든요. 중정에 아주 큰 나무를 심어놓고 새로 짓는 집의 거실에서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 7살 연상 아내와 중1 딸과 사는 요즘

김병만은 2011년 11월 교제 중인 여성과 이듬해 3월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그해 12월 부친상을 당하면서 결혼식을 연기했다. 식은 연기됐지만, 혼인신고는 바로 했다. 김병만의 아내는 슬하에 딸을 한 명 두고 있는 7살 연상의 교사. 김병만은 “딸의 성을 하루빨리 김씨로 바꿔주고 싶어서 혼인신고를 서둘렀다”고 말했다.

법적 유부남이 된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는데, 신혼 생활은 잘 즐기고 있나요?
실감이 나지 않아요. 아내와 함께 살고는 있지만 <정글의 법칙> 이후 더 바빠져서 집에 못 들어가는 날이 많거든요. 집에 들어가는 건 일주일에 이틀, 집에서 눈 붙이는 건 2~3시간 정도고요. 연이은 스케줄에 늘 이동하는 차 안에서 자는 버릇을 들이다 보니, 오히려 집에서 두 다리 뻗고 편히 자는 게 어색하고 불편해요. 그래서 아내가 많이 섭섭해하죠. 늘 저보고 정글과 결혼한 것 같다고 하니까요.

결혼식은 언제 올릴 계획인가요?
마음은 빨리 하고 싶은데, 딸의 정서를 위해 잠시 미뤘어요. 중학교 1학년이라 한창 사춘기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면사포 쓴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되고 조심스러워요. 일단은 예민한 시기가 지나간 다음 딸아이가 (엄마의 재혼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하려고 해요. 사실 결혼식이라는 게 형식적인 거라 얽매이진 않지만, 아내도 그렇고 제 어머니를 위해 이렇게 흐지부지 지나가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요.

신혼여행은 정글로 갈 거라는 얘기가 있던데요.
저는 좋은데 아내가 싫어할 거 같아요.(웃음) 그런데 신혼여행이 아니더라도 아내와 언젠가 꼭 한 번은 정글에 다녀오고 싶어요. 정글에서는 오로지 저를 100% 의지할 수 있잖아요. 평소 사랑하는 사람과 자연을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정글에 가서 함께 고생을 하다 보면 서로 더 사랑하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실제로도 <정글의 법칙> 팀원들과 가족처럼 돈독해졌기 때문에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내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순탄치 않았죠. 세상에 어떤 부모가 이런 상황(초혼인 아들과 애 딸린 연상의 재혼녀)을 흔쾌히 받아들이겠어요?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끝내는 제 선택을 존중해주시더라고요. 지금은 다 풀린 상태예요.

부친상 이후 결혼식이 차일피일 미뤄져서 파혼설이 돌기도 했어요.
그런 소문을 듣긴 했는데 당시 스케줄이 바빠 크게 신경을 못 썼어요. 처음에는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갈수록 소문이 더 확산되는 분위기더군요. 그래서 방송을 통해 일부러 아내 얘기를 하고, 작년 연말 ‘연예대상’ 최우수상 수상 소감에서 “누나, 고맙고 사랑해”라고 말했어요.

그러고 보니, 두 분이 어떻게 만나셨어요?
아내가 제 열렬한 팬이었고 7개월간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사랑을 키웠어요. 제가 너무 일정이 바빠 데이트할 시간이 안 됐거든요. 그런데 그런 부분을 다 이해해주고 감싸주더라고요. 힘들고 지칠 때 옆에 있는 사람이 징징대거나 투정 부리면 감당하기 힘든데, 아내는 연상이라 그런지 마음 씀씀이가 달랐어요. 재밌는 건 처음엔 누나 동생으로 지내면서 마치 저한테 좋은 여자를 소개해줄 것처럼 하더니, 알고 보니 결국 그게 자기였던 겁니다. 그 모습이 황당하면서도 얼마나 예뻐 보였는지 몰라요. 아내는 똑똑하고, 말 잘하고, 제가 보고 배울 게 많은 그런 여자예요.(웃음)

아내 자랑 좀 더 해주세요.
제가 남의 말에 잘 혹하고 판단력이 흐린 편이에요. 그래서 ‘내가 나중에 결혼할 사람은 나 대신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잘 알고, 지혜로운 사람이어야겠죠. 평강 공주처럼요.(웃음) 마음씨 곱고, 현명하고, 헌신적인 여자를 늘 꿈꿔왔는데, 제 아내가 그런 여자입니다.

연상 아내라 좋은 점은요?
뭐든 다 잘 챙겨줘요. 제가 몸에 열이 많은 편이라 열을 다스릴 수 있는 음식 위주로 챙겨주죠. 속옷도 잘 챙겨주다 못해 입혀줄 판이고요.(웃음) 한 가지 불만이라면, 아내는 저를 늘 어린아이 취급을 한다는 거예요. 지금도 교직에 몸담고 있어서 그런지 저를 학생 대하듯 하죠. 심지어 부부 싸움할 때도 선생님처럼 혼내요. 그래서 전 엄마가 두 명이에요. 큰 엄마가 우리 엄마, 작은 엄마가 아내죠.

"선생님인 아내를 위해 마스터룸에 알파룸이라는 서재 개념의 공간을 만들었어요. 아내에게 보여주었더니 아주 좋아하던데요.(웃음) 딸을 위해서는 넓은 테라스를 마련했어요. 아무래도 여자아이이다 보니 외부 공간도 혼자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아할 거 같아서요"

딸과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딸이 워낙 무뚝뚝하고 보이시한 편이라 표현을 잘 안 해요. 학교에서 남학생용 바지 교복을 맞춰서 입고 다니고, 평소에는 제 옷을 즐겨 입죠. 사이즈가 같거든요. 사춘기 소녀인데 멋 부릴 줄 몰라요. 엄마 머리를 닮아 공부는 참 잘해요.

딸과 불편한 점은 없나요?
결혼 초반에는 딸이 워낙 말이 없어 제가 싫어서 그런가 하고 오해했어요. 그런데 정말 말수가 적은 거더라고요. 공연이나 콘서트 티켓 구해달라고 할 때 조금 업되는 정도죠. ‘아빠’라는 호칭은 당연하고, 저도 ‘딸~’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가끔 볼에 뽀뽀도 하고 “아빠, 힘내세요”라는 문자도 보내주죠. 애교가 많진 않지만 정 많고 속 깊은 아이예요.

지금의 딸도 소중하지만, 한 명 더 욕심날 것 같아요.
뜻대로 되지 않아서 그렇지, 계획은 늘 있어요. 결혼 후 주변의 관심사가 ‘박학다식’ 아내와 ‘도전의 삶’ 김병만의 2세는 어떤 애가 나올까 하는 것인걸요. 저도 솔직히 궁금합니다. 그래서 머지않은 시간에 아이를 갖고 싶어요. 제 어머니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고요. 아내가 조바심 나고 스트레스 받을지 알지만, 그럼에도 ‘2세 앓이’는 멈추지 않을 거예요.

김병만에게 가족이란?
도전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자 죽을 때까지 함께 가는 울타리.

"어머니께 전북 전주에 조그만 한옥집 하나 선물로 드렸어요. 아무 말 없이 우시던걸요. 한평생 살아오면서 당신 명의로 된 집이 처음 생겼으니…. 아들이 마련해준 집에서 조그마한 정원을 가꾸시며 무척 행복해 하세요. 그런 어머니를 볼 때마다 왜 그렇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지 모르겠어요"

#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고백하건대, 사실 김병만은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었다고 한다. 누이들이 모두 결혼 생활이 순탄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손위 누이는 이혼 후 아이 셋을 키우며 혼자 생활하고 있고, 막내인 여동생 역시 이혼해 지방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그나마 결혼해 잘 살고 있는 바로 아래 동생도 형편이 넉넉지는 않다. 방송 생활 11년 동안 열심히 벌었지만 워낙 마음 써야 할 곳이 많으니 생활은 늘 적자다. 달인으로 뜨고 나서야 집안의 빚을 다 갚고 마이너스 살림이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다.

집안 식구들이 모두 힘들게 살았다고 들었어요.
특히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죠. 어머니는 굉장히 가난하게 사셨어요. 소학교 시절 남의 집 자갈을 몰래 훔쳐 가져다주고 공책으로 바꿔 썼다고 하실 정도니까요. 처녀 때 사진 보면 허름한 집 앞에 검정 고무신 신고 서 있는 모습이 정말 없이 살았구나 싶어요. 저희 할머니가 무당이셨어요. 여기저기 침 놓아주러 다니다가 어머니를 본 거예요. 그때 어머니 나이가 스물, 할머니가 데리고 와서 며느리를 삼으셨어요. 그때만 해도 할머니는 동네에서 세 번째로 잘살았다고 해요. 있는 집으로 시집을 오긴 했는데 그다음부터는 쭉 고생길이었던 거죠. 아버지가 어머니 말은 안 들으면서, 남의 얘기에는 귀가 얇았어요. 큰아버지들이 하는 말에 혹해서 땅 판 돈 다 말아먹고 결국 다 쓰러져가는 집으로 쫓겨 가다시피 해서 살았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던 어머니는 식당 허드렛일이라도 하겠다며 상경했고, 저도 연극을 하겠다고 서울로 왔죠. 그렇게 10년을 어머니가 식당일을 하며 생활을 꾸리셨어요. 손톱이 다 닳아 뭉개질 정도로 일을 많이 하셨어요.

얼마 전에 어머니께 집을 장만해드렸다고요.
전북 전주에 조그만 한옥집 하나 선물로 드렸어요. 아무 말 없이 우시던걸요. 한평생 살아오면서 당신 명의로 된 집이 처음 생겼으니…. 어머니는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늘 조심조심 생활하세요. 낡은 한옥집인데도 귀하다면서. 집에 조그만 정원이 있는데, 거기에 과일이며 채소며 다 심어놓고, 매일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보내주시기도 해요. 아들이 마련해준 집에 조그마한 정원을 가꾸는 것 자체가 감개무량 한 거죠. 그런 어머니를 볼 때마다 왜 그렇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 건강은 어떤가요?
몸이 성치 않으세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자궁암 수술을 받으신 후 계속 골다공증을 앓고 계세요. 아버지 임종 때 무릎도 꿇지 못할 정도였죠.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더라고요. 지난해에는 갑상선암으로 또 수술 받기도 했어요. 골다공증이 심해 지금도 뒤뚱뒤뚱 걸으시는데, 수술하면 더 안 좋아질까 봐 말리고 있어요. 손쓸 수 있는 데까지 써보고 수술하려고 해요.

어머니께 더 잘해드리는 이유가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도 있는 것 같아요.
네. 아버지는 항상 제가 졸업하자마자 바로 일을 해서 빚 갚는 데 도움을 줬으면 하셨어요. 근데 취업 후 일을 해보니 평생 벌어도 못 갚을 액수더라고요. 그래서 ‘이럴 바에는 모험을 한 번 걸자.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하자’는 뜻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그런데 일이 잘 안 풀리더라고요. 아버지는 일 좀 도와달라고 하시고…. 화가 났어요. 가난한 집에 태어나 이 고생을 하며 사는 게 싫었어요. 진절머리가 났죠. 그런데 제가 빚을 갚고 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릴 수 있게 됐을 때쯤 아버지에게 치매가 왔어요. 완전 어린아이가 되더라고요. 그 후 시골 병원으로 가시고 나서 용돈을 드렸는데 아버지는 돈이 떨어졌는데도 종이라 생각하고 줍지 않으시더라고요. 돌아가실 때도 사랑한다는 말 한 번도 안 했는데 염할 때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라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너무 죄송해서 그런 말을 했어요.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합니까. 어머니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예요.

요즘 코미디를 뒤로하고 정글에만 뛰어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스쿠버다이빙 등 현재 하고 있는 노력들이 코미디에 응용하기 위해서이지, 시간이 남아서 취미 삼아 하는 것이 아니에요. <정글의 법칙>을 통해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나중에 코미디에 응용할 거예요. 제 최종 꿈은 ‘코미디계의 대부’거든요. 한마디로 제가 <정글의 법칙>에서 활동하는 것은, 희극인으로서 외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모으는 과정인 셈이죠.

<정글의 법칙> 논란으로 큰일을 겪은 것에 대해 느낀 점이 많을 것 같아요.
당시 논란이 크게 터졌을 때 사과를 먼저 했어야 했는데 억울한 점을 먼저 밝힌 것이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킨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경험이 개그맨으로서의 인생에 큰 재산이 됐어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다 저한테 좋은 경험이 될 거라 믿어요. 마음고생을 좀 했지만 생각을 바꾸고 난 뒤 한결 편해지더라고요. 뭔가 내공이 쌓인 기분입니다.(웃음)

김병만에게 도전이란?
도전은 제 인생을 흥미롭게 만들고, 어려움의 극복이 인생을 의미 있게 해요. 많은 사람들이 저보고 역시 달인이다, 대단하다고 하는데, 사실 저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이 세상에 위대한 사람은 없어요. 단지 평범한 사람들이 일어나 맞서는 위대한 도전이 있을 뿐이죠. 전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위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뿐이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면, 나아가면 돼요.

인터뷰 말미에 그는 말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고. 그가 말하는 행복은 깊이 느끼고, 단순하게 즐기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삶에 도전하고,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키도 얼굴도 남들보다 특출한 것 하나 없지만 그에게 보내주는 찬사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자신에게 ‘조금 더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보이고 싶다는 김병만. 결국 그 힘이 그를 완벽한 달인으로 만들었다. 그의 도전은 지금부터다.

김병만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지난해 ‘정글’이라는 미개척 분야에 뛰어들어 생사를 오가는 치열한 현장에 발을 들이더니 이번엔 ‘셀프 집짓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7세 연상의 아내와 딸에게 보금자리를 선물하기 위해 직접 땅을 파고 못질하고 땜질하는 그를 공사 현장에서 만났다.

Credit Info

취재
정은혜
사진
신빛

2013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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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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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