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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과 역량

<아레나>가 꼽은 이달의 시계, 불가리 옥토 로마 크로노그래프.

UpdatedOn October 1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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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 옥토 로마 크로노그래프 블루 다이얼에 스테인리스스틸 브레이슬릿을 체결한 모습. 브레이슬릿 착용감 역시 좋다. 손목에 헛돌지 않고 매끈하게 감긴다.

기록을 깬다. 상을 받는다. 그 상품을 출시한다. 영향력 있는 소비자에게 인지도를 얻는다. 그에 힘입어 핵심 제품의 정체성을 조금 희석시킨 대중 친화적 라인업을 추가한다. 사용성이나 일상 영역에서의 성능을 높여가며 발전시킨다.

이런 흐름의 이야기에서 자신이 어떤 물건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각자 다른 물건이 생각날 것이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레이스에서 승용차로 이어지는 자동차 마케팅이 생각날 것이다. 카메라에 관심이 있다면 프로용 모델에서 취미 모델로 이어지는 카메라 라인업의 흐름을 떠올릴 것이다. 의외로 귀금속도 이런 식으로 모델을 발표하고 라인업을 키우는 곳이 있다. 오늘의 시계 코너 주인공 불가리다. 불가리는 옥토 로마 크로노그래프 2023년형으로 자신들의 최신형 시계 제조술을 선보인다.

불가리는 귀금속계의 고전 명가다. 단일 라인업인 세르펜티도 75주년을 맞이해 올해 서울에서 기념행사를 했다. 고전적인 회사라서인지 새로운 라인업을 알린 방식도 고전적이다. 불가리는 2012년 신규 라인업 ‘옥토’를 출시했다. 인지도를 얻은 방법은 고전적인 기록 경신이었다. 종목 이름은 ‘가장 얇은 시계’. 불가리는 이후 가장 얇은 시계의 각종 부문에서 신기록을 냈다. 자동차로 치면 레이스카 같은 신제품을 계속 출시한 셈이다. 그러는 중 옥토 라인업의 디자인 요소가 들어가되 조금 다른 옥토 로마를 출시했다. 옥토 라인업의 엔트리 포지션 느낌이다. 2023년인 올해 옥토 로마의 페이스리프트라 할 만한 2023년 옥토 로마를 출시했다.

옥토 로마가 흥미로운 건 급진적인 듯 보이면서도 묘하게 조화롭기 때문이다. 이 시계는 고전과 현대의 기묘한 조화다. 시장에 진입한 방법(기록 경신)은 고전적이다. 시장에 진입한 시계 자체의 모습(팔각 케이스)은 남다르다. 옥토가 이름을 떨쳤던 고급 시계의 ‘얇기’는 전통적인 고급 시계의 경쟁 종목 중 하나다. 그런데 불가리가 얇은 두께를 구현해 실제로 만들어낸 시계 모양은 상당히 전위적이다. 뱅글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고전적 시계의 모습에서 벗어나 있다. 옥토 라인업의 디자인 원형은 서양의 고전 그 자체인 로마 건축물 ‘막센티우스 바실리카(Basilica of Maxentius)’의 디테일이다. 반면 로마 시대 건축을 차용해 만든 옥토 로마의 디자인은 오늘날의 어떤 손목시계와도 다르다.

의미와 맥락을 빼고 시계 자체만 봐도 신형 옥토 로마는 재미있다. 이 시계에서 특징적으로 눈에 띄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케이스, 다이얼, 스트랩 교체 시스템.

옥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케이스다. 옥토 로마 케이스의 모든 입면은 수직각으로 처리되었다. 곡면으로 처리된 부분이 없다. 개념적으로는 계단처럼 모두 각져 있다. 이 덕에 시계가 입체적으로 보인다. 각면은 교대로 폴리싱과 브러싱 처리가 되어 있어서 손목에 차고 기울이면 각각 반사광이 도드라진다. 동시에 각면이 촘촘하게 나뉘어 있어서 멀리서 봤을 때 반사체처럼 번쩍거리지는 않는다. 번쩍거리는 걸 오래 만들어온 회사의 균형감각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확실히 남달라 보이되 부담스러울 정도로 튀지 않는다.

남다른 디자인이 머쓱하지 않으려면 사상적 뿌리가 탄탄해야 한다. 불가리의 사상적 뿌리는 고목처럼 거대하다. 로마 건축물 막센티우스 바실리카, 로마제국 시대에 민들어진 거대한 건물이 옥토 로마의 디자인 원천이다. 이 건물은 지금은 세 개의 거대한 아치로 유명하다. 아치 사이로 들어가 천장을 보면 팔각형과 원형이 겹쳐진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 팔각형과 원형이 겹친 구멍이 옥토 로마 케이스의 사상적 뿌리이자 디자인의 원천이다. 손목시계 디자인에서 팔각으로 유명한 사람이 하나 더 있다. 제랄드 젠타. 제랄드 젠타 역시 불가리와 관계가 있으니 여러모로 맥락이 풍부한 디자인이다.

남다른 디자인이 가소롭지 않으려면 디테일이 좋아야 하고 제조 기술 수준이 높아야 한다. 불가리를 비롯한 고급 시계 업계의 디테일은 언제든 놀라운 수준이다. 불가리 옥토 로마 신형은 미세하게 쌓인 각면 처리, 브러싱과 폴리싱을 적절히 섞은 표면 연마 등 볼거리가 많다. 한 세대 전 옥토 로마와 비교하면 베젤 부위 브러싱의 헤어라인 디테일 등 소소한 부분이 달라졌다. 누를 부분 눌러주고 다듬을 부분 다듬어준 듯한 운영의 묘를 느낄 수 있다.

불가리 옥토 로마의 팔각 케이스가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케이스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거나 말거나 남다른 디자인을 시장에 인지시키려 노력하는 불가리의 기개는 대단하다. 케이스 자체의 완성도 역시 다른 의견이 필요 없을 만큼 훌륭하다. 이외에도 케이스 방수 성능이 50m에서 100m로 높아지는 등 향상되었다. 케이스 종류는 골드와 콤비, 스틸 등 다양하던 전작과 달리 스테인리스스틸 하나로 통일되었다.

다이얼 역시 화려하나 절도가 있다. 다양한 디자인 장치 덕분이다. 대표적인 게 클루 드 파리다. 클루 드 파리는 시계 다이얼을 마감하는 방법 중 하나다. 구조적으로 작은 피라미드가 촘촘이 차 있는 모습이다. 덕분에 빛을 비추었을 때 입체감이 도드라진다. 다이얼 자체에 입체감을 주는 건 요즘 고급 시계에서 많이 쓰는 장식 중 하나이며, 불가리도 이런 트렌드 위에 있는 셈이다. 전 세대에 비해 가장 큰 차이가 클루 드 파리이기도 하다.

케이스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인덱스 처리다. 전작과 비교했을 때 인덱스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지난 세대의 인덱스는 브러싱 처리된 표면을 확실히 보여주고 인덱스 양 측면을 따로 다듬었다. 이번 세대는 브러시 양 측면을 직각으로 처리한 대신 야광 물질을 입혔다. 덕분에 조금 더 활동적인 느낌이 들고 밤에 쓰기도 더 편해졌다. 핸즈 역시 전작은 스켈레톤 방식으로 가운데를 뚫었는데 신형에서는 야광 물질을 입혔다.

불가리 옥토 로마 크로노그래프

레퍼런스 103829(블루 다이얼) 케이스 지름 42mm 무브먼트 BVL399 케이스 두께 12.4mm 구동 방식 오토매틱 케이스 소재 스테인리스스틸 시간당 진동수 28,800vph 방수 100m 한정 여부 없음 버클 핀 버클 가격 1천2백90만원 스트랩/브레이슬릿 스테인리스스틸 브레이슬릿, 러버 스트랩 제공 기능 시·분·초·날짜 표시, 크로노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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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 옥토 로마 크로노그래프의 다이얼 부분을 확대한 모습. 클루 드 파리의 입체감이 선명하다. 야광 물질을 얹은 바 인덱스와 크로노그래프 초침 표시창의 동심원 디테일 등도 정밀하다.

옥토 로마 신형은 라인업 구성도 전작과 조금 다르다. 일단 올해 나온 모델을 기준으로 전부 스테인리스스틸 케이스다. 케이스 크기는 기능에 따라 두 갈래로 나뉜다. 타임 온리는 전작과 같이 41mm, 크로노그래프 지름은 42mm다. 타임 온리 모델의 무브먼트는 같고, 스펙 역시 같다. 시간당 28,800 진동, 파워 리저브 42시간. 다이얼 색도 기능에 따라 달라진다. 타임 온리는 화이트, 블루, 앤스러사이트(짙은 회색), 크로노그래프는 블랙과 블루다. 샘플을 눈으로 보고 손목에 차본 결과 타임 온리와 크로노그래프의 크기 차이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착용감은 조금 달랐다. 1mm의 지름뿐 아니라 두께가 조금 더 두꺼워졌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신형 옥토 로마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교체 가능한 스트랩 시스템이다. 요즘 시계 스트랩 교체 시스템을 많은 브랜드에서 채용하는데 불가리는 전용 케이스와 브레이슬릿 및 스트랩을 선보였다. 케이스에 설치된 버튼을 누르면 스트랩과 브레이슬릿을 편리하게 교체할 수 있다. 체결되는 감각도 좋아서 계속해도 질리지 않는다. 스트랩은 2023년 현재 고무 소재로만 출시된다. 고무 스트랩 표면에도 클루 드 파리와 비슷한 입체적 패턴이 추가되어 일체감이 좋다.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해 생각해보면 신형 불가리 옥토는 역시 미묘한 시계다. 멀리서 보면 다 비슷한 고급 시계 사이에서 존재감이 남다른 건 확실하다. 그 존재감을 위해 소비자가 1천2백90만원(크로노그래프 기준)을 내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 가격에 크로노그래프에, 손쉽게 갈아 끼울 수 있는 전용 브레이슬릿에 고무 스트랩까지 하나 더 준다고 생각하면 (타사 시계 대비) 마냥 비싸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확실한 개성, 고전과 첨단의 온갖 요소를 시계 하나에 집어넣은 역량. 올해의 불가리 옥토 로마는 이들의 개성과 역량을 한 번 더 보여주었다.

+ 끌림 요소
◦ 한 번 마음에 들면 비교 대상이 없는 개성적 생김새
◦ 높은 다이얼 완성도와 선명한 다이얼 색상 톤
◦ 현재 가장 수준 높은 편리성을 보여주는 스트랩 교체 시스템

+ 망설임 요소
◦ 뭔지는 몰라도 다르다는 건 확실히 알아볼 만큼 튀는 생김새
◦ 개선되지 않은 무브먼트 퍼포먼스
◦ 사설 스트랩 구매가 불가능할 만큼 독자적인 스트랩 교체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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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케이스 뒷면 모습.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BVL399 위아래로 브레이슬릿과 스트랩을 갈아 끼우는 버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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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그래프 버튼은 위에서 보면 케이스 디자인과 곡선이 비슷해 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옆에서 보면 표면 처리 방식이 달라 존재감이 확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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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불가리 옥토 로마의 특징인 스트랩 교체 시스템. 자랑해도 좋을 만큼 편리하고 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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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박찬용
Photography 박도현

202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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