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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가 사랑한 영웅들 PART 1

사진가 할리 위어

사진가 할리 위어의 시선에는 내러티브가 담긴다. 그녀는 설명 대신 감정의 동요를 부르는 타당한 아름다움을 찍는다.

UpdatedOn March 18, 2021

나의 영웅은 누구인가. 창간 15주년 특집 기사 기획안을 받고 고민했다. 기획은 에디터들이 지대한 영향을 받은 인물을 인터뷰하는 것이다. 취향도 말투도 걸음걸이조차 서로 다른 에디터들은 스스럼없이 자신만의 영웅을 꼽았고, 각 영웅의 면면에서는 그 에디터의 화보와 문체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이번 기획은 현재 <아레나> 콘텐츠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추적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에. 기사 진행이 쉽지 않았다. 에디터들은 자신들의 영웅을 영접하고자 메일과 왓츠앱, 전화와 줌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영웅들과 접선했다. 영웅들은 단번에 인터뷰를 승낙하진 않았다. 바쁜 일정으로 인터뷰가 불가능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가까스로 인터뷰에 응해 뒤늦게 답변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뒤에 이어지는 인터뷰이들의 이름을 보면 섭외에 난항을 겪은 이유가 이해될 것이다. 평소 우리가 갈망했지만 만나지 못한 인물들이다. 옷으로 낭만을 이야기하는 디자이너, 무뚝뚝한 에디터의 감정을 뒤흔든 사진가, 독일 현대 미술을 이끄는 작가, 방황하는 청춘을 그려내는 영화감독, 남극점과 북극점을 모두 정복한 최초의 인간 등 그들에겐 아직 묻고 싶은 말이 많이 남아 있다. 기사는 9명의 실존 인물과 6명의 가상 인물 인터뷰로 구성된다. PARTⅠ에는 실존 인물들과의 감도 높은 대화와 사진이 담겼다. PARTⅡ는 만날 수는 없지만 에디터들이 큰 영향을 받은, 롤모델로 삼기도 한 인물들과의 가상 인터뷰다. 자신이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자아 형성의 토대를 찾아 방황하는 이들에게 <아레나> 창간 15주년 특집 인터뷰가 나침반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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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 끝내주게 세련된 패션 사진도 너무나 많다. 급격한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를 살다 보니 첫눈에 끌리는 감각적인 비주얼이야 넷플릭스의 추천 콘텐츠처럼 범람하지만, 시선이 머무는 건 잠시, 금세 더 자극적인 이미지를 쫓는다. 가끔씩 예외일 때가 있는데, 잡지를 넘기다가도, 웹 서핑을 하다가도 할리 위어의 사진을 보면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한다. 누가 찍은 사진인지 몰라도 호기심을 먼저 자극하는 비주얼이면서 오래 봐도 어떤 감정의 동요를 부른다. 그녀가 담는 사진은 절제된 배경에 난초 속 파리를 찍은 정물조차 매혹적이고, 피부의 질감을 만지고 싶을 만큼 밀착된 시선으로 바라본다. 누군가는 도발적이라거나 야릇하다는 감상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할리 위어는 일찍부터 남성 중심적인 편견을 깨는, 예술과 포르노 사이에서 가장 순수한 내러티브가 있는 사진을 찍어왔다. 가장 상업적인 지점의 패션 사진부터 개인적인 시선을 담은 작업까지 늘 새롭고 대단한 진짜 이유는 하나같이 작품에서 작가의 의도를 강요하지 않고, 몇몇 사진가들처럼 성을 소비의 주제로 삼지 않아서일 거다. 할리 위어는 요즘 도자기도 만든다. 그녀의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금발에 파란 눈의 여자 도자기상이 맞이해준다. 사진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얻고, 세상을 탐구한다는 그녀의 요즘 사진에서 투박하게 빚은 흙처럼 다부진 질감과 거침없는 드로잉이 드러난다. 지금의 할리 위어의 의식과 미감이 고루 녹아 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사진 작업은 꾸준히 해왔지만 사실 한동안 코로나로 우울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봄이 오는 것을 느낀 후부터 마음이 들뜨고 있다.

플리커(Flickr)에 포스팅한 사진을 본 클라이언트의 의뢰가 패션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으로 한 작업이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나나?
당시에 플리커는 온통 내가 좋아하는 곳인 바닷가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찍은 사진들뿐이었다. 그중 어떤 사진들은 나의 요청대로 그들이 모델처럼 포즈를 취해준 사진들도 있었지만 확실히 패션 사진과는 거리가 멀었다. 처음으로 한 작업에 대해선 내가 아주 불평불만이 많았다는 게 기억에 깊게 남아 있다. 상업 사진에 대한 커리어가 전무하다 보니, 어떤 경우에도 내가 광고나 상업적인 부분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촬영 현장에서 잘 나와야 하는 건 무엇보다 옷이었다. 내게 있어서는 아주 놀라운 일이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Central Saint Martins)에서 파인 아트를 전공했다. 대학에 입학할 때의 꿈은 뭐였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 입학할 때만 해도 막연히 아티스트가 되겠다는 부푼 꿈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빨리 재정적인 안정을 찾고 싶었다. 사진을 계속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예술로 돈을 벌 수 없을까봐 두려웠다. 아마 인터넷이 없었다면 지금의 경력도 없었을 거다. 그 당시 나는 예술로 돈을 버는 방법은 몰랐으니까. 난 너무 어렸고, 바 일을 그만두고 창의적이면서 돈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신났다.

자주 사용하는 카메라는 어떤 기종인가?
정말 다양하게 쓴다. 모든 촬영에 들고 다니는 내 키트엔 기본적으로 핫셀블라드, 캐논, 마미야, 니콘, 그리고 후지까지 총 5대의 카메라가 있다. 이 중에서 딱 한 개만 고를 수가 없다.

패션 사진뿐 아니라 개인 작업도 왕성한 편이다. 각각의 결과물 모두에 당신의 시야가 담기지만, 작업 방식에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두 작업 모두에서 고수하는 당신만의 작업 방식이나 생각 또는 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나는 사진을 통해 지식을 얻는다. 또한 사진에는 내가 가진 모든 지식이 반영된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지식을 동경하는 데서 비롯되기도 했고. 뭔가를 배울 수 없는 일이라면 흥미가 동하지 않는다. 테크닉적인 부분이나 새롭게 겪는 환경 등 어떤 것이든 나는 계속 발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때문에 패션 사진이나 개인 작업 모두에 촬영 당시 가장 성장해 있는 내 모습이 녹아 있다.

개인적으로 당신이 포착하는 레드를 좋아한다. 싱그럽고 매혹적인 레드. 빨간색이 내포하는 여러 의미 중에서 당신이 가장 끌리는 건 어떤 단어인가?
빨간색은 피의 색이고, 삶과 죽음, 여성성에 대한 관념이기도 하다. 이런 본질적인 이미지에 끌리고 갈망한다.

그런 이미지를 가장 잘 담고 있는 빨간색 피사체는 무엇인가?
빨간색을 주제로 한 많은 사진들을 찍어봤지만 빨간색이 강렬하게 두드러진 어떤 대상보다 시각적으로 긴장을 주는 요소로 드러나는 레드가 오히려 인상적이다.

사진가는 비행기 조종사 못지않게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직업이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불과 몇 년 전보다 확실히 활동 반경이 줄었을 것 같다.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물론 우버를 타듯 비행기를 타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최근에 개인적으로 변화를 느낀 건 내 오랜 친구가 항상 해준 말이다. “네가 필요한 모든 지혜는 너의 침실에서 찾을 수 있어”라는 말인데, 예전만 해도 그 말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내 침실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다.

요즘엔 주로 어디에서, 어떤 것을 찍나?
어떤 일에 오랜 시간 몰두하고 모든 애정을 쏟은 사람이라면 내 말에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에서 몇 번 사진에 정나미가 떨어진 적이 있는데, 지금도 바로 그런 시기라고 말해야할 것 같다. 그렇다고 사진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요즘은 사진과 함께 다른 실험적인 방식들을 시도해보고 있다.

맞다. 최근 사진뿐 아니라 도자기에도 몰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신의 웹페이지와 인스타그램에서도 당신의 작품들이 꽤나 눈에 띈다. 어떤 계기로 작업을 시작하게 됐나?
아버지가 몇 년 전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았다. 아버지가 항상 도자기를 만들고 싶어 하셔서 집에 가마를 들이게 됐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가 도자기 만드는 걸 보고 나도 도예에 재미를 들이게 됐다. 처음 만들었던 도자기 중에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함께한 것도 있다. 아버지가 접시를 만들면 그 위에 내가 드로잉을 하는 식으로. 이제는 부녀가 나란히 앉아 흙을 빚고 있다. 지금은 내 여동생과 어머니도 함께하기 시작해 그야말로 도자기에 홀딱 빠진 가족이 됐다.

사진에서 해소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 도자기에 담기는 건가?
내 상상력은 사진에서 실현될 수 없는 지점에서 발휘됐기 때문에 늘 사진의 리얼리티에 어려움을 느꼈다. 도자기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도자기와 필름 사진에서 상당한 유사성을 발견했는데, 필름 사진을 인화하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이 마치 도자기가 어떻게 구워져 나올지 예상하면서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사진과 도자기 모두 완전한 통제는 불가능에 가깝고, 변형이나 탈바꿈이라는 단계를 거친다는 것도. 덕분에 이제는 그 모든 걸 즐기게 됐다.

굴곡지고 모호한 형태들, 복잡한 색들이 섞인 기호 같은 그림들이 인상적이다. 어디에서 영감을 받나?
오롯이 내 삶과 밀접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도자기를 다루기 시작한 데에는 미술 치료적인 이유도 있었으니까. 도자기를 대할 때의 내 모습은 상당히 직관적이다. 끓어오르는 분노나 슬픔을 도자기에 쏟아붓는 과정 역시 내가 가장 흥미를 갖는 작업 과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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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진집 단행본 <Paintings>에 실린 정물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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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육체와 욕망을
다룬 사진집 <Father>에 실린
하나같이 낯선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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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얼굴이나 마스크를 그리거나 형태를 표현한 도자기들이 눈에 띄던데, 패션 사진을 찍는 당신은 도자기 역시 하나의 피사체로 두는 게 아닐까?
비슷하다. 처음으로 낸 사진집 <Paintings>는 사물을 찍은 사진들로만 채워 다른 사람을 촬영하면서 느낀 트라우마를 인물의 부재로 반영했다면, 지금은 사람이라는 주제를 추상적인 형태와 질감으로 표현하면서 주관적으로 느낀 내 감정을 드러내는 셈이다.

인간에 대한 당신의 애정은 확실히 남다른 것 같다. 예를 들면, 사진집 <Homes>는 집 없는 난민에 대한 주제를 다뤘고, 수익금을 비영리단체인 시마드(La Cimade)에 기부했다. 도자기의 판매 수익 일부 역시 알츠하이머를 위한 재단에 기부한다고?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모든 것을 돌려주는 게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꽤 운이 좋은 편이었고, 그것을 나누고 싶다.

아직 2021년 초반부다. 앞으로 예정된 프로젝트가 있나?
물론! 기발한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실행할 줄 아는 부모님이 지원 사격해준 덕에 몇 가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내가 힘든 시기를 겪을 때, 예술을 통해 견딜 수 있었던 것처럼 치료 미술이 필요한 사람들이 예술에 쉽게 입문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한다. 미술치료사인 친구와 3년 넘게 일해왔다. 우리는 미술 치료 워크숍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책과 라이브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

남성의 육체와 욕망을
다룬 사진집 <Father>에 실린
하나같이 낯선 남자들.

남성의 육체와 욕망을 다룬 사진집 <Father>에 실린 하나같이 낯선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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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러를 바라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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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인 형태의 도자기
‘Pregnant Dog P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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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불 속 누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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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상

202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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