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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이 써내려가는 시

유아인은 시다. 길고 나지막한 고백이 끝난 뒤 유아인은 커다란 시로 변했다.

UpdatedOn February 0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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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WFP 컬렉션 후드 티셔츠·포스 이어링 모두 발렌시아가 제품.

검은색 WFP 컬렉션 후드 티셔츠·포스 이어링 모두 발렌시아가 제품.

WFP가 새겨진 발렌시아가를 입은 유아인이 카메라 앞에 서 있었다. 에디터가 스튜디오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촬영이 한창이었다. 스토리는 이렇다. 유엔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me, WFP)은 전쟁 중이거나 가난한 나라의 굶주린 사람들을 돕는 데 앞장서온 공로로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발렌시아가는 전 세계에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세계 기아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하기 위해 2018년 겨울 컬렉션부터 기아 퇴치를 목적으로 제로 헝거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2021 봄 소개되는 발렌시아가의 WPF 컬렉션은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WFP 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 기부 활동에 참여한 배우는 카메라 앞에 서 있는 유아인이었다.

흥미로웠다. 실시간으로 모니터에 표시되는 유아인의 사진들은 같은 게 하나도 없었다. 포토그래퍼는 초 단위로 셔터를 눌렀고, 매초 유아인은 다른 표정과 포즈, 새로운 느낌을 화면에 드러냈다. 카메라와 모니터를 도구 삼아 퍼포먼스를 펼치는 젊은 예술가의 몸짓 같았고, 그 몸짓은 읽지 말고 느껴야만 하는 것 같았다. 화보 촬영을 진행한 에디터와 발렌시아가 담당자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사이에 껴서 멋진 감상평을 말하고 싶었지만 촬영이 끝났다. 화보 촬영장을 방문한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닌데 유아인의 촬영은 사진보다 촬영하는 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촬영 이후, <아레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채널에 올릴 영상 인터뷰도 완전히 끝날 때까지 온몸의 감각은 유아인에게 향해 있었다.

그리고 이 인터뷰를 마친 뒤 주말 동안 생각했다. 단어가 의미를 상실했던 시절,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니 공감하지 못했던 날들을 떠올렸다. 말하는 건 불편했고, 미안했다. 솔직히 말한 다음에는 무엇이 솔직한 것인지, 내뱉지 못하고 삼킨 말들을 쫓아 내 안으로 침잠하길 반복해야 했다. 나는 그때 시를 쓸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 후로 눈앞의 현상은 감각으로만 받아들이고, 감각의 여운이 제멋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었다. 이따금 특수한 문장들만이 감각을 해제시키고, 머릿속에 아로새겨졌다. 지난 주말 생각을 잡아끈 것은 유아인의 답변 중 “이 세계가 예술임을 알고 받아들인다”는 말이었다. 그 순간 관념적이었던 그와의 대화가 명확해졌다. 나는 유아인이라는 시를 읽고 있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짧은 인터뷰다.


새해 목표가 금연이다. 계기가 있었나?
오랫동안 담배를 태우면서 한 번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들어 담배가 맛이 없고, 담배 태우는 의미도 없더라. 변화를 주고 싶었던 것도 같고.

지난해는 <#살아있다>와 <소리도 없이>를 발표했고 올해는 <승부>와 <지옥>이 예정되어 있다. 한 해 두 편의 영화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힘들지 않은가?
체력에 부친다는 투정은 말 그대로 투정이다. 많은 배려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촬영 기간에는 체력적으로 힘들기는 하지만 직장인과 비교하면 시간을 자유롭게 누리는 편이다. 내 체력보다는 새로움의 문제, 재미의 문제다. 한 해 두 편이 되었건 한 편이 되었건 인물을 표현하며 관객을 지치지 않게 하는 것이 큰 고민이다. 관객은 한 배우를 오래 보면 질릴 수도, 지칠 수도 있다. 그 배우의 연기를 보는 동안 긴장감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큰 숙제다.

보는 이가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은 작품 선택에도 영향을 미칠까?
그렇다. 한 편의 영화에서 관객이 긴장을 놓치지 않게끔 하는 것이 배우의 일이다. 하지만 한 배우가 출연한 작품이 공개될수록 해당 배우에 대한 선입견, 고정관념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작품 수가 늘어날수록 관객을 지치지 않게 해야 하는 고민, 새로움에 대한 고민이 커진다. 농담처럼 얘기하자면 우리는 오랫동안 애정하며 지켜본 배우에게도 ‘쟤 또 똑같아’라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런데 연기를 한들 인간으로서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한 인간이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며 변주를 잘해내는 것이 배우로서 풀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영화는 두 시간 남짓이지만 배우의 인생은 길고, 그 안에서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다.

고착된 이미지라 할지라도 그것이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이라면, 그 배우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지 않을까?
때로는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키기도 해야 하고, 때로는 기대를 배반함으로써 또 다른 재미를 줄 수도 있어야 한다. 관객 개개인을 하나로 묶어 판단하기에는 기호나 요구가 제각기 다르다. 스스로 재미있고 흥미로운 그림을 그려나가려는 의지나 노력 등이 중요할 것이다. 그래야 함께 지속적으로 호흡하게 되는 것 같다.

배역을 선택할 때는 무엇을 고민하나?
작품마다 다르지만 고민보다는 상상을 한다. 상상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인물이나 상상하는 동안 흥미가 생기는 인물을 선택한다. 고민해야 하는 인물은 선택하지 않는 편이다.

지금 촬영 중인 <승부>는 어떤 영화인가? 바둑 기사 이창호를 연기한다고 들었다.
이창호 개인의 이야기라기보다 조훈현과 이창호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그려내는 작품이다. 승부의 세계에 속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과 그 세계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그린다. 바둑 이야기보다는 바둑으로 승부의 세계에 임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로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다.

조훈현과 이창호가 승부하던 당시 자료들도 많이 찾아 보았나?
두 분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봤다. 유튜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인 인물을 다양한 목소리로 담아낸다. 그런 것들을 많이 찾아 봤다.

영화 설명에선 조훈현과 이창호를 라이벌이자 스승과 제자라고 밝힌다. 유아인에게도 멘토가 있을까? 있다면 누구일까?
누구 밑에서 수학하며 일을 배우지는 않았다. 배움이란 나에게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사람에서 찾기보다 항상 배움의 태도로 매 순간 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감사하게도 일찍부터 일을 시작해서 많은 분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왔다. 그 모두가 나에게는 스승이다. 안 좋은 본보기가 된 사람들도 내가 어떻게 여기느냐에 따라 배움이 되고, 내 변화의 불씨가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두 시간 남짓이지만 배우의 인생은
길고, 그 안에서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다.”

 

데뷔 18년 차다. 배우라는 직업으로 18년을 살아보니 어떤가? 세상을 보는 시선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을까?
인간의 성향이나, 인간이 처한 상황, 모든 일에 대한 수용 능력이 극대화될 수밖에 없는 직업인 것 같다. 인간을 이해해야 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연기는 내가 공감할 수 있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인이건 선인이건 혹은 그 무엇이 되었건 인물에 공감하고 표현해야 하기에 사람들의 다양한 면면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살인자를 설득력 있게 연기하려면 살인자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과정이 만들어낸 변화가 있었다.

일상에서도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나?
그 사람을 깊이 이해하기보다는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럴 만해서 그러는 것일 테니까. 극 중 인물이라는 건 그렇다. 표현되건 표현되지 않건 극 중에서는 인과 관계에 얽힌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인물은 자신의 배경을 바탕으로 현상이나 사람을 바라본다. 작품을 연기하다 보면 사람에 대한 호오가 줄어들고, 오히려 받아들이는 능력이 커진다. 불편함도 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상태가 편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불편하다는 생각도 든다. 재미없다고 할까?

흘러가는 현상처럼 지켜보는 건가?
흘러가는 듯 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잘 짜인 각본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우리는 일상에서 “왜 저래? 이해가 안 돼” 하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럴 만해서 그런 걸 테니.

배우로서 극복하고 싶었던 한계나 숙제가 있었나? 무엇인가?
과거에는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것 자체가 목표였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성장하고 커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워지는 것이 문제였다. 변화를 숙제로 삼은 것 같다. 성장과 변화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 변화라는 것이 나에게는 배우로서건 인간으로서건 현재 가장 큰 과제이고 문제다.

지금 깊이 빠져 있는 관심사는?
건강? 건강해 보이는 것도 중요하고 건강한 삶, 균형 잡힌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예전에는 몸을 던져 불사르는 것, 내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것들에서 의미를 찾았다. 지금은 내 몸이 하나라는 사실을 명확히 받아들이고 내 체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 정신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육체와 정신 건강을 몰아붙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후로는 무엇이 건강하게 내 시간을 이어나가는 방법인지 고민하게 됐다.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다. 20대의 고민, 30대의 고민, 30대 중반을 넘어서며 하게 되는 고민은 차이가 있지 않나? 한때는 건강을 앞세우는 게 쿨하거나 섹시하지 않게 느끼기도 했다. 그때는 사지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았고. 하지만 건강해야 내 몸도 어딘가에 던질 수 있고, 현실을 살 수 있는 법이다. 좋든 싫든 생존한다면 보낼 수밖에 없는, 가질 수밖에 없는 내 시간의 질은 건강에 좌우되는 것 같다. 내가 무엇을 보고, 누리기 전에 건강이 토대가 되어야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면 건강 말고도 변하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유행하듯 세상이 점차 빠르게 변한다고 느껴지진 않나?
그런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반대로 인간도 세상도 불변하는 어떤 형태가 있는 것 같다. 천 년 전의 인간과 지금의 인간을 비교하면 생활상이나 습관, 인간상은 다를 수 있겠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 있다고 느껴진다. 세상이 생겨 먹은 모양새가 겉보기에는 달라지는 것 같지만 그 전체를 아우르는 균형 같은 것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은 구체적인 질문을 해야겠다. 금연 말고 2021년 목표는 무엇인가?
미시적인 목표는 금연이지만 명확하지 않다. 구체적인 질문에 추상적인 답을 하자면 덜 의심하고 더 사랑하고, 더 용기내서 더 나답게 사는 것이다. 정말 추상적이지.

 

“변화라는 것이 나에게는 배우로서건
인간으로서건 현재 가장 큰 과제다.”

 

추상적이고 솔직하다.
첨언하자면 오늘 인스타그램에 올린 내용인데, 점점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무언가를 내뱉고 표현하는 것이 조금 더 무거워지고, 어려워진다. 그냥 내뱉는 말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정확하지 않은 말들로 느껴지기도 한다. 말은 쓰이고 기록될 텐데 그 언어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언어로 표현하고 싶지 않은 어떤 욕심 같은 것들이 많아진다. 그럼에도 인터뷰에서 내 나름대로 솔직하게 임하지만, 이러한 변화를 겪고 있어서 시원시원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내가 보는 세상은 이렇다고, 내 느낌은 어떠하다고 내뱉는 말들이 내 내면에 형성된 느낌이나 감각을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올해의 목표는 말하는 것보다 내 매체로, 내가 하는 일로,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더 잘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감언이설을 많이 했었다. 내 혓바닥에 담는 것보다, 내가 하는 또 다른 일들로, 느낌적인 느낌으로 전달하는 것. 마침표를 찍기 어려운 느낌으로 표현하는 것, 나아가는 것. 그런 것들이 배우로서 혹은 한 인간으로서 계속 지켜가고, 조금 더 갈고닦고 싶은 일들이다.

예술이란 그런 이상한 형태의 발언이 아닌가?
동의한다. 예술가, 예술에 대해 우리가 가진 피상적인 이미지조차 나는 버겁다. 예전에는 예술을 행하고 싶었고, 예술적인 것을 고민했다면 지금의 생각은 그냥 나의 시간이, 나의 존재가, 타인의 존재가, 함께 사는 삶이, 내가 살아가는 이 세계가 예술임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변하고 있다고 할까? 예술이라는 말도 잘 모르겠다.

내 앞에 시가 앉아 있는 것 같다. 시의 언어는 소통이 아닌 시인이 자신의 언어로 풀어놓은 자신의 세계다. 유아인은 시 같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좋은 느낌의 시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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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가지 언어로 발렌시아가를 표현한 아트워크의 랭귀지 티셔츠·토이 초커·포스 이어링 모두 발렌시아가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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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 수트 재킷·WFP 캡·포스 이어링 모두 발렌시아가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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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WFP 후드 티셔츠·스키 보머 재킷·팬츠·포스 이어링 모두 발렌시아가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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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카·후드 티셔츠·배기 팬츠·토 스니커즈·포스 이어링 모두 발렌시아가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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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귀지 티셔츠·카고 팬츠·토 스니커즈·체크무늬 스케이트 벨트 백·토이 초커·포스 이어링 모두 발렌시아가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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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커보드 무늬 크루넥 톱·팬츠·포스 이어링·안경 모두 발렌시아가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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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FP 셔츠·WFP 후드 티셔츠·포스 이어링 모두 발렌시아가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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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스 소재 집업 재킷·WFP 티셔츠·포스 이어링 모두 발렌시아가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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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 수트 재킷·트랙 팬츠·호텔 슬라이드·검은색 양말·스케이트 백팩 모두 발렌시아가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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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아트워크 보머 톱·포스 이어링 모두 발렌시아가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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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FASHION EDITOR 최태경
FEATUER EDITOR 조진혁
PHOTOGRAPHY 박종하
STYLIST 이민규
HAIR 이일중
MAKE-UP 안성희
ASSISTANT 김유진

2021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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