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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박이 뭐길래

On June 02, 2020

차박이 유행이라길래 차박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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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과 담쌓고 산지 오래. 캠핑 장비라고는 돗자리가 전부다. 돗자리는 피크닉 용품인가? 어쨌든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하는 차박을 따라 하기로 했다.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첫째는 먼저 남들이 하니까 대세에 편승해보고 싶은 속물적인 욕망 때문이다. 다음은 SUV를 장바구니 싣는 용도 외에도 다른 쓸모를 찾아내고 싶었고. 또 해외여행을 못 가니 차박으로 추억이라도 쌓아보자는 심산이었다.

 살 게 너무 많아 

무턱대고 갔다고 했지만 거짓말이다. 사실은 검색 좀 했다. 차박 성지, 차박 용품 그런 것들을 종일 찾아봤다. 차박에 에어매트는 필수고, 창문에 자석으로 장착하는 모기장도 필요하다. 멋 좀 내려면 캠핑 전구 정도는 걸어줘야 한다. 푹신해 보이는 이불과 배게는 장롱에서 꺼내가기로 했다. 차박은 차에서 잠자는 캠핑인데 뭐 이리 준비할게 많을까. 푸념하면서 캠핑 체어를 구입했다. 규모는 일반 캠핑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 차이라면 텐트가 없다는 정도다. ‘이럴 거면 캠핑카를 렌트하는 게 낫지 않나?’ 하면서 캠핑 테이블도 샀다. 차박 용품을 구입하는 데 비용이 꽤 발생했다. 평소라면 손사래를 치며 관뒀을 텐데, 때마침 정부에서 재난지원금이 나왔다. 소매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그 보너스 포인트 말이다. 그래서 캠핑용품점에 일부러 찾아갔다. 매장에는 나처럼 재난지원금으로 캠핑 쇼핑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실 재난 시에는 야전 숙식 장비가 필요하긴 한 것 같다. 사람일 어찌될지 모르니까.

 성지를 찾아서 

차박 장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차박성지’ 검색하면 수많은 장소가 나온다. 차박은 처음이니까 너무 멀지 않고, 조용한 곳을 가기로 했는데, 어쩌다 보니 강원도로 가게 됐다. 사람일 모르는 거다. 쇼핑하는 데 시간을 너무 할애해서 해질녘에야 서울을 벗어났다. 산에 도착했을 때는 깜깜했다. 가로등도 없는데 여기서 무슨 캠핑을 한다는 말인가. 인스타그램에서 본 캠핑은 근사하게 차려놓은 프랜차이즈 식당의 디너메뉴 같은데, 내가 도착한 곳은 조폭 영화에 나오는 배경 같았다. 그러니까 좀 무서운 야산 말이다. 숲 속에서 고라니와 너구리가 노려볼 것만 같은 산길을 한 참이나 올라갔다(실제 고라니 두 마리를 만났고, 너구리도 있었으리라고 확신한다). 여기에 뭐가 있기에 그러는 걸까. 하는 찰나에 자동차가 보였다. SUV 몇 대가 숲 속에 주차돼 있었다. 그들 사이에 낑낑대며 차를 넣었다. 주차하면서도 생각했다. 내 헤드라이프 불빛이 이들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엔진소리가 잠을 깨우면 어떡하나. 창문을 내리고 좌우를 살피니 다른 차 안에서 휴대폰 불빛이 새어 나왔다. 사람들은 오지에서 휴대폰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한 남남 커플은 트렁크를 열고 문턱에 걸터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명치까지 이불을 두른 채로. 그들은 별을 보면서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많이 궁금하진 않았다. 날아가는 텐트를 붙잡고 씨름하는 아저씨에게 시선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홀로 욕사위를 구사하며 텐트를 지상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오즈의 마법사>가 생각났는데, 더 구경하기에는 너무 추웠다. 한 여름인데도 산꼭대기는 바람이 찼다.

 별헤는 밤 

산기슭에 자리를 잡았다. 바람이 안 불고 주변에 사람도 없었다. 고라니와 너구리는 있겠지만 뭐 어쩌겠나. 그들 집인데. 잠시 양해를 구하고 짐을 내렸다. 의자 두 개 설치하니 땀이 났다. 테이블도 펼쳤고, 버너에 가스를 넣었다. 침대 시트를 정리하는 것 보다 몇 배는 번거로운 시트 평탄화 작업도 했다. 차박의 핵심은 잠자리를 반듯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 차는 2열 시트가 완전히 접히지 않아 자연스레 미끄럼틀이 완성된다. 발 받침 부분을 높게 만들어야 해서 세차용품 박스와 돗자리를 이용했다. 높이를 어느 정도 맞췄지만 그래도 미끄럼틀은 미끄러웠다. 에어매트는 자동으로 충전되는 방식이었다. 마개를 열고 한 참을 내버려두니 바람이 찼다. 에어매트 위에 얇고 보드라운 요를 깔고, 폭신한 이불도 얹었다. 베이지색 베게도 두 개 올렸고. ‘갬성’이 도드라진 세팅이었다. 야밤에 야산에서 뭐 대단한 걸 먹진 않았다. 버너로 물을 끓여 컵라면을 해치운 게 전부다. 땅콩을 먹으며 별을 헤었고, 맥주를 마시며 해방감을 느꼈다. 캠핑장이 아닌 곳, 사람들이 없는 곳, 무턱대고 떠나도 막막하지 않은 곳, 감성과 포근함이 있는 잠자리까지. 이런 게 차박의 매력이 아닐까 하며 차에 올랐다. 자려고 누웠으나 자꾸 미끄러졌다. 잠결에 다시 올라가길 반복했으나 아침에는 트렁크 끝까지 미끄러진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평탄화가 중요하다.

 차박 시 주의사항 

뒤늦게 알았다. 사람 없는 곳에서 차박하는 것은 위험하다. 문제가 생기면 구조 요청을 해야 하기에 사람이 있는 곳, 안전한 곳에 주차해야 한다. 쓰레기는 반드시 회수한다. 이건 당연한 것이지만 지키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맨땅에 불을 지피는 것도 비매너다. 반드시 화로를 사용하자. 흔적을 남겨선 안 된다. 여기는 고라니와 너구리의 집이니까.

차박이 유행이라길래 차박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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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PHOTOGRAPHY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