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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건축 실험

On April 16, 2020

참신한 아이디어와 콘텐츠, 이색 건축 공간의 결합. 지금, 서울의 주목받는 실험적 건축을 모았다. 이들은 서울의 풍경을,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 생활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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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험적 주거 공간, 에피소드 성수 101

주거 문화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강세는 코리빙 하우스다. 오피스텔과 셰어 하우스 그 중간 지점을 공략한 새로운 주거 트렌드다. 홀로 사는 1인 가구와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밀레니얼의 라이프스타일을 정조준한다. 해외에 비하면 국내 코리빙 하우스 시장은 걸음마 단계지만, 젊은 세대가 많이 찾는 연남동, 문래동, 신림동 일대를 중심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힙’한 성수동에도 최근 새로운 코리빙 하우스가 들어섰다. SK디앤디가 만든 ‘에피소드 성수 101’이다. SK디앤디는 부동산 개발 회사다. 제한된 토지에 건물을 짓고 면적을 늘리는 데서 가치를 창출한다. 한데 요즘은 건물 자체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콘텐츠가 더 중요해졌다. 하드웨어에 편중했던 기존 주택 사업에서 벗어나 라이프스타일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로 에피소드 성수 101을 탄생시켰다.

보타이 형상을 한 외관은 붉은 벽돌로 단장했다. 서울시가 성수동을 붉은 벽돌 마을로 지정한다고 선언한 것처럼 상징적 자재를 골라 지역성을 살렸다. 건물 상단에는 브랜드 로고를 달았다. ‘집’에 로고가 붙어 있으니 부티크 호텔이나 디자인 회사 같다. 로고는 풀네임을 쓰지 않고 에피소드를 축약한 ‘ep’와 빈 사각형을 조합했다. ‘그로잉 스퀘어(Growing Square)’라 부르는 빈 사각형은 입주민이 만들어낼 모든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자 소통의 창구로서 의미를 지닌다. ‘101’이라는 숫자에서도 알 수 있듯 내부에는 총 1백1개의 공간이 있다. 89세대가 살아가는 개별 유닛과 공유 공간을 포함한다. 지하 라운지부터 10층 루프톱까지 순차적으로 epØ(Zero)에서 ep101까지 번호를 매겨 공간의 개수이자 거주자가 생활하며 발생할 수 있는 에피소드의 수를 나타냈다.

에피소드 성수 101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이유는 신선하고 개성 있는 코리빙 하우스여서가 아니다. 전문가와 협업해 실험적 주거 공간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가구와 공간 스타일링은 최중호 스튜디오가 맡았다. 그들은 ‘에피소드의 공간 디자인은 소비자가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해야 한다’는 미션을 수행했다. 작은 공간에서 소비자에게 결정권을 주기 위해 고안한 비책은 ‘월 패널 시스템’. 입주자는 방마다 설치된 월 패널 시스템에 원하는 선반 유닛을 부착해 맞춤형 수납 인테리어를 완성할 수 있다. 8층과 10층에는 최중호 디자이너의 큐레이팅룸을 마련했는데, 월 패널 시스템을 기조로 하지만 검은색, 빨간색, 녹색 같은 대담한 색상을 적용해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에 가담한 또 하나의 거물급 전문가는 이케아 코리아다. 75년간 집에 대해 고민한 이케아는 1인 주거 문화를 구축하는 홈 퍼니싱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해답은 9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스마트 & 펀, 홈 오피스, 슬리핑 솔루션, 펫 오너 등 1인 가구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6개 공간이 펼쳐진다. 각 콘셉트에 맞게 이케아가 제안하는 유쾌한 컬러와 실용적인 가구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쉽게도 이케아와의 협업 공간은 모델 홈으로만 운영한다. 대신 이곳에서 본 가구와 조명, 데커레이션 아이템을 별도로 빌려서 쓸 수 있는 대여 서비스를 제공한다. 힘겹게 이삿짐을 옮기지 않아도 원하는 가구와 소품을 골라 나만의 공간을 꾸밀 수 있다.

공용 공간의 테마도 코리빙 하우스를 고르는 기준이 된다. 피트니스 공간, 세탁실, 무인 마켓, 토킹룸 등을 갖췄지만, 그중 가장 눈여겨봐야 할 공간은 지하 1층의 라운지다. 카페와 바, 뮤직 스테이지, 쿠킹 스튜디오, 워크 플레이스의 기능을 두루 갖춘 이곳은 다양한 콘텐츠를 경험하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광장’ 역할을 한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저마다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개개인이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기본적인 명제를 즐거운 경험과 이야기로 충족시켜주는 곳이 에피소드 성수 101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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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근대 문화유산의 복원, 정동 1928아트센터

옛것을 살리기 위한 리노베이션 사례는 흔하다. 하지만 오래된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리스토레이션’하는 경우는 드물다. ‘정동 1928아트센터’는 복원을 통해 추억을 소환한다. 고즈넉한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주하는,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근대 건물이 정동 1928아트센터다. 이 건물은 신고전주의 양식을 반영한 4개의 기둥과 좌우대칭을 이루는 안정적인 구조가 특징이다. 1928년, 구세군사관학교로 건립해 구세군한국군국 사령관 사택, 사관 교육생 기숙사 등으로 활용하다 1959년 1층과 2층 일부를 증축한 뒤 구세군중앙회관으로 이용했다. 그리고 현재는 정동을 오가는 시민이 가볍게 들를 수 있는 카페와 베이커리, 플라워숍, 사진관, 이벤트홀이 자리한 다목적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사실 이 건물은 건축사적 의미가 깊다. 1920년대 후반 서울의 10대 건축물 중 하나로 꼽혔고, 2002년에는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었다. 따라서 용도를 바꾸면서도 새로운 디자인을 덧입히기보다 오리지널을 찾아 복원하는 일에 집중했다. 외관은 전혀 손대지 않고 원형을 온전히 보존했다. 내부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덧댄 부분을 거둬내면서 태생 그대로의 속살을 발견했다. 더하기 보다 덜어내는 데 힘을 쏟은 것이다. 석고보드를 뜯어내고 민낯을 드러낸 벽돌 벽, 천장의 노출된 나무 구조물, 독특한 지붕 짜임 방식인 해머빔 구조 등 90년 넘는 세월을 견뎌낸 그 시대의 건축 양식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1층 카페에 앉아 있으면 2층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감성적으로 느껴지죠. 나무 바닥을 밟는 소리는 현대적 건물에선 들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잖아요.” 이 프로젝트를 지휘한 성혁진 감독의 말이다. 일상 속 수준 높은 문화 감성을 제시하는 정동 1928아트센터는 1800년대 말부터 1900년 초까지 근대 시대의 핫 플레이스였던 정동의 향수를 되새기고자 한다. “이곳은 상업적 복합 문화 공간이 아닙니다. 사회·문화 리더들이 모여 신문물의 의미를 찾던 정동에서 지역성을 살리는 문화 사업을 전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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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간에서 접하는 매거진 콘텐츠, 어반스페이스오디세이

중림창고가 환골탈태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약현성당 옆 골목, 1971년에 완공한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 성요셉아파트 맞은편에 위치한 오래된 판자 건물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깔끔한 건물이 생겼다. 서울시 도시재생 프로젝트 8곳의 앵커 시설 중 하나로 지정된 중림창고는 그렇게 복합 문화 공간 ‘어반스페이스오디세이(USO)’로 환생했다.

문화 기획자이자 USO의 편집장인 박지호는 “주변 낡은 건물과 대비되는 새 건축물이지만 기존 창고 시설 형태를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2층짜리 계단식 건물을 올려 저층 주택이 많은 주변과 조화를 이뤘고, 건물 안에는 각 공간으로 향하는 좁은 길목을 조성해 중림동 일대의 골목을 형상화했다. 콘크리트 대신 통유리로 벽면을 만들어 탁 트인 공간감을 제공한 이유는 동네 주민이 편하게 들어와 머물다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창문 너머로 창고의 느낌을 살린 플라스틱 공구함이나 무심한 듯 담백한 디자인의 목제 가구와 집기들이 어우러져 건축물의 감성을 극대화한다. USO는 영감을 주는 공간에 매거진의 감도 높은 콘텐츠를 3차원적으로 풀어놓았다. 매거진과 연결해 공간별로 콘텐츠를 소개하는 4개의 전시관이 메인이다. 첫 번째 전시로 어반북스가 발행하는 잡지 <베뉴> 1호 슬립리스 서울 편에 참여한 크리에이터 3인과 함께 전시 공간을 채웠다. 작가들의 작품을 감각적으로 세팅한 전시는 잡지 속 화보가 눈앞에 펼쳐진 느낌이다. 심야살롱 라운지에서는 문학, 교양, 이슈 등 화제가 되는 작가나 크리에이터와 토크를 나누는 ‘박지호의 심야 살롱’ 프로그램이 열린다. 지식, 취향, 라이프스타일을 차분하게 풀어내 참가자들에게 깊은 영감과 자극을 준다.

도시 서점은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상업적 기능을 갖춘 공간이다. 책과 굿즈, F&B 제품 등을 구입할 수 있는데, 병에 담긴 서울우유처럼 신선하면서 도시인의 미의식을 자극하는 제품이 주를 이룬다. ‘콘텐츠’라는 단어가 피상적으로 소비되는 시대, 어반스페이스오디세이는 콘텐츠 전문가들이 모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휘발되지도, 진부하지도 않은 공감각적 콘텐츠를 만들며 지역 상생을 위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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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상생을 위한 골목, 가로골목

가로수길과 세로수길을 잇는 골목이 하나 생겼다. 정확하게 말하면 골목이 아닌 건물이다. 부드러운 곡선의 새하얀 포치가 환대하는 ‘가로골목’이다. 건축은 더시스템랩 김찬중 소장이 맡았다. 독창적 스타일로 알려진 그의 포트폴리오와 다르게 화려하거나 눈에 띄는 외관은 아니다. 건물의 외적인 힘은 빼고 안팎의 콘텐츠를 제대로 즐기게 하기 위함이다. 깃발 형태의 대지에 들어선 이 빌딩은 과감하게 1층을 비우고 세로수길과 연결되는 통로 겸 광장을 조성했다. 리테일 시장의 최전선인 가로수길에서는 도전적인 시도다. “현재 가로수길의 건축물은 저마다 얼굴을 도로변에 내놓고 있고, 보행객은 좁은 보도블록을 이용합니다. 그 보행로와 연결되는 열린 광장을 만들어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싶었죠.” 기획과 운용을 맡은 베리앤머치 한기룡 대표의 말이다. 이런 공간이 있다면 단순한 상점 판매가 아닌 플리마켓, 공연, 팝업 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를 벌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가로수길을 지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빌딩숲 사이의 뻥 뚫린 공간으로 발을 들인다. 뚜렷한 목적이 없어도 어떤 곳인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기웃거린다.

탁 트인 광장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작은 상점들이 이어진다. 가로골목은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지양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스몰 브랜드를 위한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이를 위해 공유 리테일 빌딩이라는 참신한 콘셉트를 내세웠다. 상점마다 보증금 없이 3개월씩 계약해 그 후엔 다른 상점이 입점하는 로테이션 구조다. 오프라인 접점을 찾는 젊은 창업자에게 좋은 환경이고, 늘 새로움을 갈구하는 소비자에겐 다채로운 경험과 콘텐츠를 제공한다. 공간 구조를 기획할 때도 이런 콘셉트를 고려했다. 갤러리 작품을 감상하듯 브랜드를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위층까지 올라가는 동선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계단이 아닌 슬로프 구조를 채택했다. 완만한 경사의 슬로프를 따라 상층부까지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 건물 안이 아닌 가로수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사방이 탁 트인 가로골목은 어느 층에서도 복도를 따라 올라오고 내려가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뒤섞여 정겹고 친근한 ‘진짜’ 골목길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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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예술과 지역, 사람을 잇는 교두보, 다이브인

연남동 세모길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름부터 생소한 세모길은 경의선 숲길 공원 끝자락과 경의중앙선 가좌역이 만나는 삼각형의 작은 골목이다. 몇 해 전부터 카페를 비롯해 가죽 공방, 테일러숍 같은 개성 있는 가게가 들어서며 조용히 부흥하기 시작했다. 낙후된 가로등, 허름한 빌라, 좁디좁은 길이 이어져 옛날 동네 느낌이 물씬 나는 이곳에 신개념 커뮤니티 아트 플랫폼 ‘다이브인’이 오픈했다. 오래된 3층짜리 연립 빌라 두 채를 개조해 주변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대신 창을 크게 내 동네의 정겨운 풍경을 액자처럼 담아냈고, 옥상에 ‘DIVE IN’이라는 간판을 크게 내걸어 낮은 건물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두 동의 빌라는 루프톱 공간을 연결해 하나의 건물처럼 유기적인 구조로 만들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 틈새 공간은 작품을 전시하는 스트리트 갤러리로 구성했다. 물리적 거리를 콘텐츠로 메운 셈이다. 왼쪽 동은 아티스트 아틀리에, 오른쪽 동은 아트 스테이로 운영한다. 아티스트 아틀리에는 다이브인에서 선정한 작가들의 작업실과 아트숍 등이 자리한다. 공예, 회화, 설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작업하며 대중과의 접점을 만들어가는 데 적극적인 작가들이 입주해 있다. 꼭대기 층에는 다이브인의 아이코닉 공간인 이너 스페이스가 있다. 커다란 캄포나무 테이블 양옆으로 삼베를 길게 늘어뜨려 장식한 아늑한 휴식 공간으로 요가와 티 클래스 등이 열린다. 아치형 창문으로 연남동 숲길을 내다보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고요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갤러리와 숍으로 구성된 복합 문화 공간은 많지만 다이브인이 특별한 이유는 아티스트 스테이에 위치한 숙박 시설 때문이다. “갤러리나 숍은 어디에나 있지만, 작품을 감상하고 나면 끝이 납니다. 작품을 직접 경험해보려면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죠.” 정창윤 대표는 2층과 3층에 두 개의 에어비앤비 공간을 마련했다. 국내외 고객은 하루 동안 머물며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조명, 나무 테이블, 심지어 향까지 모두 작가의 작품이라 예술을 향유하는 휴식이 가능하다. 1층은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갤러리로, 전시를 체험할 기회가 적었던 지역 주민에게 사랑받는 공간이다. 이방인에게는 예술가의 정취를 느끼며 하룻밤 묵어가는 곳으로, 지역 주민에겐 문화와 예술을 체험하고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그렇게 예술과 지역, 사람을 이어주는 교각 역할을 하는 것이 다이브인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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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신한 아이디어와 콘텐츠, 이색 건축 공간의 결합. 지금, 서울의 주목받는 실험적 건축을 모았다. 이들은 서울의 풍경을,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 생활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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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EDITOR
문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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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