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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변화하는 갤러리 풍경,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많다.<br><br>[2007년 4월호]

UpdatedOn March 20, 2007

Words 김현진(독립 큐레이터) Editor 이민정


필자가 미술 학교에 강의 나갈 때마다 하는 첫 번째 수업은 미술관, 갤러리, 대안 공간, 그 밖에 새로운 모델의 미술 기관들의 차이점, 그 활동의 내용들이다. 흔히 다들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실제 일반인은 물론이고, 준전문인이라고 할 수 있는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마저도 미술관은 비영리 공공기관이며, 갤러리는 작품 매매 등의 영리를 추구하는 상업적인 곳이라는 이 단순한 차이를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니, 미술관과 갤러리의 세부적인 차이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별해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미술관이 컬렉션과 대형 전시들을 통해 자신들 기관의 내용을 보여주고, 그 밖의 아트센터나 작은 미술 기관들이 기획 전시를 통해 보다 비평적이고 담론적인 장 내에서 내용적인 것을 만드는 곳이라면, 갤러리는 작업 판매를 통해 미술 시장을 형성하고, 그 상업적 활동을 통해 내용을 만들어가는 곳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비영리적인 기관이나 비평적인 미술 현장의 움직임과 갤러리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존재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작가들과 기관들은 보다 진보적이고 전위적인 담론과의 상관관계 내에서 빠르게 진화하는 반면, 갤러리와 컬렉터들의 변화와 쇄신은 이보다 느리기 때문이다. 또 적지 않은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국제 비엔날레 같은 글로벌한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국제적인 행보를 지속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작가들의 국내 미술 시장의 수용이나 갤러리와의 연계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필자는 최근 이러한 가운데서도 어떤 변화의 기조를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얼마 전 비디오 작품의 해외 배급을 맡아 기획할 일이 있었고, 그로 인해 그간 함께 일해왔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작가들과 접촉해 배급 계약을 추진할 일이 있었다. 이 와중에 적지 않은 작가들이 신예 갤러리들과 느슨하게 관계를 맺고 있거나 혹은 계약에 관한 말이 오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소문으로만 들려오던 신예 갤러리들의 출현 그리고 이들의 젊은 작가 기용을 짐짓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아직 구체적인 내용들이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우선 시장의 다변화라는 점에서 반가운 징조로 보인다. 더군다나 싱글 채널 비디오 작업을 프로덕션하거나 지원하는 방식인지라 페인팅, 사진 등의 평면 작업이나 오브제 조각, 공공 조형물의 편중에서도 점차 벗어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국내 갤러리 씬(Scene)에 어떤 변화를 가져온 것은 2년여 전 아라리오라는 기업형 갤러리가 20, 30대 젊은 작가들 10여 명에게 월급을 주면서 대거 전속시키고 독점적인 계약을 맺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 획기적인 전속 방식은 국내 미술계에 많은 관심 혹은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젊은 작가들의 전속 제도가 정착되어 있지 않은 국내에도 드디어 이러한 시스템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90년대 말 이후 비엔날레 등을 통해 국내 미술계는 보다 국제화되었고, 현대미술을 위한 미술 기관과 제도들이 마련되고 현대미술 전문 인력 등이 증가하면서 미술계 인프라가 어느 정도 구축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느리고 고루하기만 했던 국내 미술 시장의 변화는 요원하기만 했던 터라, 아라리오의 방식은 매우 획기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갤러리의 이 저돌적인 움직임에는 점차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포착되었다. 무엇보다 필자가 바라보는 실망은 그 내용적인 측면과 활동 방식에 있다. 아라리오는 작품 판매 외에 월급형 재정 지원과 같은 전폭적인 지원을 하면서 전시 기획도 직접 하고, 작가들의 전시 참여에 관여하면서 작가를 선점하고 독점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는 인위적으로 구속력과 소속감을 요구하기에, 작가 스스로도 자기 활동에 관한 자율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이미 계약과 동시에 갤러리에 귀속시키고 있다. 따라서 작가의 크고 작은 전시 참여는 모두 갤러리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거나 제약된다. 물론 갤러리와 한번 관계를 맺으면 작가들은 많은 일들을 갤러리와 상의하면서 진행한다. 그러나 전시는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문적이고 담론적인 장이기에 작가의 판단이 절대적인 부분이 있고, 갤러리들은 작가들의 이러한 선택을 지지하면서 서로 협력해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아라리오와 같이 초기부터 독점적인 계약을 하거나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갤러리의 예는 흔하지 않은데, 유럽보다는 영미권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유럽 내에서의 갤러리 활동은 비평적인 지점들과 접점을 이루고, 보다 전문적인 담론의 장 내에서 유기적이면서도 보다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에 비해, 영미권 갤러리들에게서는 자본주의적 전폭적 투자 방식, 스타 만들기 등 마치 주식과 같이 시장에서의 가치를 통해 작가에 대한 담론을 형성해낸다.
우리나라도 금권주의적 기반이 강력한 바, 아라리오의 이러한 방식은 미술계에서 윤리적인 논란은 있을지언정 적용이 불가능한 것은 아닌 듯하다. 아라리오는 특히 1990년대 급부상한 YBA(Young British Artist) 작가들을 대거 컬렉션하면서 부상한 영국, 특히 런던 갤러리들의 방식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듯 보인다. 때문에 아라리오는 10여 명의 작가를 유사한 세대, 어느 정도 같은 학교 출신을 바탕으로, 그리고 나아가 스스로가 컬렉터인 오너의 개인적 취향을 반영하면서 묶어냈고, 이 인위적인 결함을 명실상부한 YKA(Young Korean Artist)로 만들어내겠다는 야심을 비쳤다. 그러나 YBA는 작가들 스스로의 활동에 힘입어 이루어진 자율적인 씬으로 데미안 허스트가 스스로 작가이자 기획자로서 전시를 만들어내면서 미술계에 센세이션(이것은 바로 전시 제목이기도 했다)을 일으켰고, 차후에 시장에 의해 강력한 탄력을 받아 급부상했다. 즉, 여기에는 작가들의 유대나 내용적 연계, 비평의 뒷받침이 든든한 배경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아라리오 전속에 의거한 이 인위적 묶음, 그에 의한 작가군의 등장, 그들을 재료로 한 골리앗식 비즈니스는 또 하나의 한국적 사상누각을 보여주는 예는 아닌지, 미술계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암암리에 작가들의 국내 전시를 최대한 제한하는 이 갤러리 방침은 이미 이들에게 있었던 국내 활동 맥락을 미약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이들의 국제적 활동은 국내의 비평적 지지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국제적으로 상당히 뜬금없이 비쳐질 수 있다. 적절한 내부적 평가와 작업적 역량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미술계의 셀러브리티로 등장한 아라리오 작가들 역시, 이러한 갤러리의 행보 속에서 혼돈과 적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또 상당한 재정 지원을 받은 만큼 작품 판매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한다. 아라리오뿐 아니라 갤러리와의 전속이나 상호 활동에 있어서 작가들은 자기중심을 가지고 자신의 정신적 자유와 자율성을 침해받지 않는 한도에서 공동의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갤러리는 일종의 매니지먼트사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므로 금전적인 것 외에도 정신적 유대를 통해 작가들이 좋은 작업을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며, 작가들 역시 이러한 여건을 살펴 보다 책임감 있는 입장을 보여야 한다. 규모는 작지만 유럽 내에서 알찬 내용과 성과를 통해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젊은 갤러리들은 무엇보다 작가와의 동지적인 관계 속에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들 역시 이러한 신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얻은 지원을 갤러리와 함께 나누고 신뢰를 쌓아가곤 한다. 물론, 소위 ‘뜬’ 작가들의 갑작스러운 변심, 더 큰 갤러리로의 이동은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핵심은 종속 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 속에서 서로 건강한 내용과 공동의 성장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좋은 시장을 만드는 기본이 아니겠는가.
극단적인 예로 아라리오를 들어 보이고 있긴 하지만, 사실 국내의 많은 갤러리들이 여전히 그 내용적으로는 현재 미술적 담론이 진행되는 방향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고, 국제적인 인지도가 부족하여 여전히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컬렉터 역시 그 취향이나 안목에 한계가 많아 총체적인 업그레이드가 요구된다. 오늘날 현대 미술이 현실 비판과 자율성, 시각과 인식적 전환을 작품 속에 압축하면서 일신하고 있는 데 반해, 여전히 대중들은 예술에 대한 강한 환상, 페티시(Fetish)적 소유, 올드 스쿨 작가들의 신화에 의거해 작가와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갤러리는 미술관과 더불어 대중적인 매개 기능을 하는 곳이다. 즉, 소비자의 안목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곳이기에 이들의 부진 혹은 오도된 활동은 미술계 전반에 어떻게든 미치는 바가 크다. 이미 당장 닥친 자기 미래를 염려하는 미술 학교의 학생들은 종종 빠른 방법을 찾으면서 검은 신화들에 귀를 기울이거나 일부 학생들은 국내의 시장 분위기에 어필하기 쉽거나 대중 편향적 작업을 통해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아직도 많은 젊은 작가들은 일 년에 한 번 지원 기회가 오는 공기금과 대안공간에 기대어 미술계에 발을 내딛고 있다. 이들은 갤러리들의 지원 속에서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미술계 내에 다양한 모델, 또한 제대로 된 예의 등장은 절실하다. 기존 갤러리들은 보다 국제적인 안목을 갖춘 전문가들의 등용을 통해 질적인 개혁과 성장을 이루어야 하며, 비평적·담론적 현장과의 밀접한 협력 속에서 보다 단단한 미술계를 만들어나가는 의식 있는 갤러리들이 등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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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김현진(독립 큐레이터)
Editor 이민정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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