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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을 설득하다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뜨고 이소연이 말했다. “이렇게 야한 드레스는 처음이에요.” 에디터는 그녀를 설득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미션 앞에 섰다. <br><br>[2007년 2월호]

UpdatedOn January 18, 2007

Photography 정재환 Editor 이지영 Hair 김설령 Make-up 홍명연 Stylist 이윤주

솔직히 에디터는 그리 강압적인 성격이 못 된다. 될 일은 웃는 낯으로도 해결되고, 안 될 일은 이마에 석 삼(三)자 그려봐야 안 된다는 주의다. 응할 일은 스스로 응할 것이요, 정 싫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데는 영 젬병이다. 반면 <아레나>의 편집 방향은 꽤나 까다로운 편이다. 어디서 나온 재주인지는 아직 모르겠는데, 가끔(아니, 거의 대부분은) 안 될 일도 되도록 만든다. 엄청난 재능이다. 이소연이 깊게 파인 옷을 보며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에디터는 대략 난감했다. 그녀는 이렇게 드레시한 옷은 처음 입어본다고 했다. 그녀는 ‘옷이 너무 야한 것 같다’며 낙담했다. 등이 시원하게 파인 홀터넥 드레스. 비쩍 마른 그녀가 반길 리 만무했다. 게다가 등만 파였겠나. 앞도 파였다. 그러니 그녀는 연신 벌어진 옷 틈을 손으로 끌어올리며 울상을 지었다. 아무리 양면테이프로 옷과 살을 밀착시켜도 소용이 없었다. 양면테이프의 성능이 고작 그 정도인지는 그날 처음 알았다. 방법을 바꿔 핀셋으로 집어올려 감싸봤다. 결과는 점입가경. 억지로 틈을 메운 드레스는 한마디로 흉측했다. 이를 어쩌나. 방법이 없을까. 그리고 과연 나는, 그녀를 설득할 수 있을까.
“이 옷 말고 다른 옷 입으면 안 될까요?” 드디어 그녀 입에서 내심 걱정하고 있던 말이 나왔다. 기분 나빠하는 말투가 아님에도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걱정돼서가 아니었다. 그저 또다시 설득의 벽 앞에 놓인다는 게 자신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바로 그때! 기특한 어시스턴트가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망사 슬리브리스를 잽싸게 건넸다. 맨살을 드러내기 정 민망하면 이거라도 받쳐 입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다. 이래서 하나보다는 둘이 나은 법이다. 결국 망사 슬리브리스와 홀터넥 드레스를 겹쳐 입은 그녀, 이제야 안심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런데 아뿔싸. 이번엔 포토그래퍼가 한마디 한다. “이거, 의상이 너무 답답해 보이는데요.” 그럼 그렇지. 적은 가까운 데 있는 법이라고 했다. 사실 테스트 컷을 찍어놓고 보니, 에디터가 생각해도 형편없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옷이 대체 왜 이래!”하는 편집장님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자, 이제 결정할 때가 되었다. 그녀를 설득할 것인가, 아니면 여러 사람을 혼비백산하게 만들 것인가.
그런데 의외로 이소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테스트 컷으로 찍힌 사진을 보더니 포토그래퍼의 설명을 귀 기울여 듣기 시작했다. “소연 씨, 아무래도 안에 입은 망사는 벗는 게 낫겠죠?” 그는 여자를 꾈 때도 그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득하곤 했을까. 포토그래퍼는 에디터를 대신해 그녀를 설득시켰다. 수긍한 이소연이 다시 탈의실로 들어간다. 비굴한 에디터. 다시 쪼르르 쫓아들어가 “그래, 소연 씨. 잘 생각했어!”를 연발한다. 아첨꾼의 어설픈 기질이 빛나는 순간이다. 드디어 그녀가 슬리브리스를 벗고 다시 맨 몸 위에 드레스를 걸쳤다. 벌어진 가운데 틈으로 그녀의 날씬한 배가 드러났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금세라도 가슴이 보일 것만 같았다. 양면테이프의 성능이 결국 빛을 발하지 못한 터다. “너무 빈약해 보이지 않을까요?” 계속 걱정하는 그녀. 에디터는 침을 한 번 꼴깍 삼킨 뒤 용기 내어 말했다. “소연 씨, 이 옷 절대 야한 거 아니야. 아마 사진 찍어보면 확실히 예쁠 거야.”
다시 카메라 앞에 선 그녀. 이왕 마음먹은 거 잘 해내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그녀는 포토그래퍼의 연유 같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주문에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포토그래퍼는 전생이 약장사였나 보다. 그의 달콤한 요구가 그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몸을 15도 각도로 비트는 것도 어색해하던 그녀가 시간이 갈수록 25도, 35도, 45도 각도를 연이어 보여준다. 표정도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어색함의 극치를 이루던 얼굴이 천 가지 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녀만의 색은 옆얼굴에서 나타났다. 타이밍도 참 잘 맞추지. 이쯤에서 포토그래퍼가 “옆선이 참 곱습니다.” 라며 한몫 거든다. 역시 그는 한 수 위다. “수고하셨습니다!” 에디터만 빼고 모두가 수고한 듯 보이는 가운데 드디어 촬영이 끝났다. 그런데 저기 멀리서 이소연이 학처럼 뛰어와 에디터에게 말을 건넨다. “너무 수고하셨어요. 휴대폰 주세요. 제 번호 찍어드릴게요. 다음에 만나서 수다 떨어야죠!” 굳이 이런 말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에디터가 인상이 참 좋다. 윽박지르지 않아도, 설득하지 않아도 배우가 나비가 되어 날아든다. 이소연도 그랬다. 우리는 나중에 술 한잔 하자고 약속한 뒤 헤어졌다. 사무실에 돌아와 이 얘기를 들려줬더니(물론 굴욕의 시간들은 모두 빼고) 앞자리에 앉은 남자 기자들이 엄청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본다. “뭐 이 정도쯤이야….” 에디터는 이소연과 무척 친해졌다고 자랑했다.

머리카락을 무척 짧게 잘랐다.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나?
그냥 변화를 줘보고 싶었다. <아레나> 인터뷰가 머리 자르고 첫 화보다. 예쁘게 나와야 할 텐데 걱정이다.

헤어스타일 때문인가? 종전에 봐온 이미지와는 무척 다르게 느껴진다. 배우 이승연 씨 같기도 하고.
화장도 짙고 해서 더 낯설게 보일 거다. 앞머리 내린 게 너무 답답해 보이나? 그러면 이따 사진 찍을 때 조금 옆으로 빗어 넘기겠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촬영을 마칠 즈음 당신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당신은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볼살을 지닌, 여자가 아닌 소녀였다.
아, 기억난다. 그때 현재(조현재) 오빠랑 같이 인터뷰 사진 찍은 게 기억난다. 그때 현재 오빠는 꽃무늬 셔츠 입고 나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었던 것 같다.

맞다. 그때는 머리도 길었고, 지금보다 많이 어렸다.(웃음)
젖살이 많이 빠졌다. 그때 참 많이 순수했는데….(웃음) 이제 많이 찌들어서.

말 나온 김에 그때와 지금, 비교할 수 있겠나. 영화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천양지차일 텐데.
그때는 뭣 모르고 무작정 열심히만 했다. 아마 다시 되돌아간다고 해도 그때처럼은 못할 것 같다. 당시에는 작품 끝나고 나서 후회라는 걸 하지 않았다. 내가 최선을 다해 찍은 거고, 그거면 됐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이런저런 고민도 더 많아지고,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러나 당시에도 머릿속이 텅 빈 신인은 아니었다. 나는 당신을 말 잘하고 똑똑한 배우로 기억한다.
아, 그런가? 아무래도 생각을 많이 하지 않을 때니까 이런저런 얘기도 꺼내놓았을 것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좀 더 신중해졌다. 그때보다 계산을 조금 더 많이 하게 됐고, 그때그때 상황과 감정에 예민해졌다. 어찌 보면 그때가 더 좋았다.

<스캔들>로 데뷔했지만, 그동안 스크린보다 브라운관에서 더 자주 얼굴을 알렸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복면달호>는 꽤나 신중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을 것 같다.
사실 드라마에서 네 번 연달아 악역을 연기했다. 그러고 나니 어느 순간 선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 예전에는 인터뷰할 때 무슨 역할이든 다 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는데 이젠 달라진 거다. 질투, 분노 이런 감정을 표현하는 역할 말고, 착한 배역을 맡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복면달호> 시나리오를 읽게 됐다.

어떤 부분이 당신을 끌어들였나. 여배우에게 코미디 영화란 쉽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는데.
일단 코미디 영화임에도 시나리오가 굉장히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태현 오빠(차태현)가 주인공으로 확정된 상태였기에 믿고 가는 부분이 있었다.

회사에서 하라고 정해준 건 아니고?(웃음) 농담이다. 보통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배우들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본인은 어떤가? 작품을 선택할 때 스스로의 판단이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나?
30% 정도가 아닐까.(웃음) 나는 내 판단이 1백 퍼센트라는 생각은 안 한다. 그렇다고 회사 의견이 1백 퍼센트일 수는 없지만 회사의 판단을 믿는 편이다. 어쨌든 아직 내가 모르는 부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배우 5년차,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고민의 시기가 도래했다. 배우 이소연의 고민과 스트레스는 어떤 것이 있을까.
2003년에 데뷔했고, 몇 년 동안은 고민 없이 그저 열심히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계가 느껴지더라. 아무래도 시간이 갈수록 욕심이 많아지니까. 연기는 알수록 어려운 거라는 생각을 한다. 요즘은 어떻게 해야 좀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이소연은 악역에 어울린다든지 하는.
사실 <해피투데이 - 여걸식스>를 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그 프로그램을 하고 나서 시청자들에게 편안한 이미지로 다가갈 수 있게 된 것 같다.

아무리 봐도 못되게 생긴 인상이 아닌데, 이상하게 악역을 많이 했다. 눈이 째지거나 무섭게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런데 나처럼 생긴 눈이 한번 힘주면 진짜 무섭다고 하더라.(웃음) 눈이 커서 그럴 수도 있고.

인터넷에 당신의 열애 기사가 난 적이 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는 이름으로, 얼굴로 살아가는 기분은 어떤가.
돌아다닐 때 사람들이 알아보는 거, 불편하지 않을 사람 몇이나 되겠나. 하지만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쓴다거나 얼굴을 반쯤 가리는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지는 않는다. 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도 떨고,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본다. 열애 기사가 났을 때도, 그러려니 했다. 화가 치밀어오른다거나 과연 이 얘기가 어디서 비롯된 걸까 하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런 걸 보면, 나는 지금 이대로를 즐기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아마도 배우라는 직업이 잘 맞나 보다.
그렇다. 아주 잘 맞는다. 게다가 일 욕심이 많은 편이어서 오래 쉬지를 못한다. 이제까지 가장 오래 쉬어본 게 고작 두 달이다. 혼자서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지기보다는 일하는 시간을 즐긴다. 내겐 일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연기 말고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는 거의 다 봤다. <미녀는 괴로워>, <박물관은 살아있다>, <로맨틱 홀리데이> 등 거의 다 본 것 같다.

영화가 왜 그렇게 좋은가.
나는 영화를 볼 때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영화 속 주인공이 돼서 본다. 남자가 배신하고 떠난 뒤 남겨진 여자를 보면 진짜로 내가 겪은 것처럼 엉엉 울면서 본다. 저 배우는 저렇게 연기했는데, 나는 어떻구나 하는 생각도 하고.

만약 연기를 안 했다면 지금쯤 이소연은 무얼 하고 있을까. 당신은 보기에 밝고, 긍정적이고, 편하게 자란 것 같다.
아마 체육이나 미술을 하고 있지 않을까.(웃음) 어려서 기계체조, 첼로 등 안 배운 게 없다. 그중 가장 오래 다닌 게 연기학원이었고, 그게 직업이 됐다. 배우로서 산전수전을 겪어보지 않아 연기의 폭이 넓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되도록 다작을 하고 싶고 연기를 오래 하고 싶다.

세상에 여배우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배우 이소연만의 특징이 있다면?
촬영장에서 즐겁게 연기하는 배우, 그게 이소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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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Photography 정재환
Editor 이지영
HAIR 김설령
Make-up 홍명연
Stylist 이윤주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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