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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장자 사나이

On October 20, 2008

코리언 아메리칸 리더들이 <아레나> 카메라 앞에 섰다. “오 마이 갓! 이런 경험은 정말 판타스틱한걸요!” 아이처럼 좋아하는 그들이 백만장자 사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br><br>[2008년 11월호]

Editor 이지영 Photography 김지태 Hair 김원숙 Make-up 권호숙 Styling 서수경 Set Painting 김창규
cooperation 빨질레리, 비비안 웨스트우드, 에르메네질도 제냐, 본, 갤럭시, 보스, 타테오시안, 홀릭스, 돌체&가바나, 벨그라비아, 샌프란시스코 마켓, 란스미어, 던힐, 인터메조, 쌤쏘나이트

10월 5일. NetKAL(Network of Korean American Leaders) 멤버들이 서울에 도착한 날 순화동 프레져 플레이스 옥상에서는 웰컴 파티가 열렸다.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 그중에서도 한밤중에 먹는 떡볶이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소개가 이어질 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나열하는데 있어 동일한 음식은 절대 나오지 않았던 거다. 순대, 차돌박이 된장찌개, 호떡, 서울에서 두 번째로 잘하는 집에서 먹는 단팥죽, 할머니가 끓여주신 순두부찌개 등등. 어색한 한국어로 들리는 음식명은 차라리 매직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때 나는 이미 이들이 굉장히 구체적인 자기 표현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NetKAL은 미국 전역의 다양한 분야에서 선출된 1.5/2세 코리언 아메리칸 리더들이다(남가주대학교 아태리더십 센터 주관). 7백만 재외 한인 동포 중 최고 정예 2세 엘리트 리더로 선출된 이들은 10월 5일 세계 한인의 날에 맞추어 일주일간 서울을 찾았다. 일정은 숨 쉴 틈도 없이 바빴다. 청와대 예방, 국회의사당 방문 및 국회의원들과 좌담, 북한 개성 관광, 주미 대사와 한미 관계에 대한 인식과 협력 방안 논의 등등. 그러니 <아레나> 카메라 앞에 서기도 전에 이들은 이미 반쯤 지쳐 있었다.

“와우~! 이게 모예요? 이즈 디스 뎀뿌라?” 스튜디오에 준비해놓은 분식을 바라보면서 이들은 이내 두 눈을 반짝였다. 분명 외양은 한국인 그 자체이지만, 이들은 뎀뿌라를 처음 맛보는 코리언 아메리칸이었던 것이다. 자라온 땅에 대한 거리감을 멈추고 인터뷰와 촬영을 시작했다. “앗, 잠깐만요! 더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안경이 어색하진 않나요?” 아홉 명이나 되는 코리언 리더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조금 특별한 몇 가지를 느꼈다. 이들은 끊임없이 물어봐주기를 원하고 있었으며, 본인을 알리는 데 굉장히 적극적이었던 것이다.

겸손을 미덕으로 삼는 우리네 정서와는 전혀 딴 판이었다. 이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NetKAL 멤버가 되었다는 데 한없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으며, 멤버들 사이에서도 최대한 앞서고 싶어했다. 공통되는 생각도 몇 가지 눈에 띄었다. 이들은 대부분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겠다 말했으며(마흔까지만 일하고 그 이후엔 쉬고 싶다는 우리네 남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고 했다.

1.5/2세이기에 겪어야 할, 느껴야 할 고충도 거의 동일하게 겹쳤다. 아무래도 미국 내 한인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본인들을 이끌어줄 선배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을 거의 동시에 내뱉었다. 반면, 그런 이들이 꿈꾸는 미래는 사실 굉장히 소박하다는 점에 또 한 번 놀랐다. 개별 인터뷰를 진행하였지만, 거의 같은 대답이라고 느낄 정도로 이들은 ‘가족과의 단란한 한때’를 인생 최고의 목표라 말했다. 백만 달러 장자들의 대답치고는 어쩐지 작은 게 아닐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보다 더한 꿈은 사실 이 세상에 존재치 않는 것 같았다. NetKAL 멤버들의 거대한 인터뷰를 전한다.

Jin PJ Kim 싱글스톱(Single Stop) USA 부사장

뉴욕시의 빈곤 퇴치 단체인 푸드체인지(Food Cahnge)의 소득정책 담당 소장. 빈곤층을 대상으로 미국 최대 규모의 무료 세금 보고 캠페인을 주도, 뉴욕시 전역에 걸쳐 4만3천여 명, 8천만 달러 이상의 소득세 공제 성과를 올렸다. 푸드체인지에서 근무하기 전에는 매킨지앤컴퍼니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정부정책학을 전공.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MBA 취득.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졸업 연설. 프린스턴대학 학부 재학 시 전체 학생회 회장. 남부 맨해튼을 대표하는 지역 사회 제1이사회 맨해튼 지부장을 역임했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미국 내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현재 무료 재정 서비스 기관과 합법적 카운슬링을 맡고 있다. 또한 건강보험을 제공하는 비영리 NGO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당신이 이룬 최고의 성과를 말해달라.
7만 명의 가난한 뉴욕 시민들을 도운 것. 그리고 작년에는 1억5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당신의 연봉을 말해줄 수 있나.
난 사실 하버드대학의 다른 친구들처럼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현재 값비싼 아파트에 살지 않는다. 대개 식사는 집에서 만들어 먹고 내 차는 없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중요치 않다. 그래서 내 열정을 따를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의 직업적 성공에 영향을 미쳤던 경험, 훈련, 교육은 무엇이었나.
난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했고, 하버드 비즈니스스쿨과 케네디스쿨을 졸업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내 학업적 배경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난 실제로 그렇게 성적이 좋은 학생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얻은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많은 이들과의 교류(상호작용)였다. 나는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대표로 뽑혔었고, 또한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는 졸업 연설을 했었다. 그러한 경험들이 나에게는 가장 값진 것이었다.

당신의 경쟁력에 위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있다면.
미국으로 이민을 결심한 부모님의 용기.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4명의 아이를 남편 없이 혼자 키운 할머니. 미국에서 시민 권리를 위해 살아온 마틴 루터 킹 목사.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들.

지금 나의(혹은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경쟁자가 있다면.
있다. 미국 정부. 하지만 나는 이 싸움에서 지고 싶다. 왜냐하면 미국 정부가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우리보다 더 좋은 직업을 일궈냈기 때문이다.

올해 어느 정도 결과를 성취할 거라 예상하나.
우리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뉴저지와 뉴멕시코에서 10만 명의 사람들을 돌보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5년 이내에 백만 가족들을 돌보아주는 게 목표다.

당신이 억만장자라면,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하겠는가.
그렇다. 하지만 집에서 덜 요리하고 레스토랑에서 더 많이 사 먹지 않을까.(웃음)

본인만의 장기가 있다면.
난 굉장히 음식을 빨리 먹는다. 그래서 난 빨리먹기대회에 참가한 적도 있다. ESPN Sports TV의 월드 챔피언이다.(웃음)

좌우명이 있는가.
‘말을 탈 때는 항상 경주에서 우승할 생각을 해야 한다.’

Ron Kim 데이비드 페터슨 뉴욕 주지사 보좌관

뉴욕 주지사 지역 담당 보좌관. 뉴욕시 평의회에서 인프라 정책 및 경제 개발을 담당하는 정책 전문가로 일했다. 또한 뉴욕시 건축사무국과 뉴욕시 중소기업 서비스부 내 블룸버그 집행부에서 일했다. 뉴욕시의 중소기업 서비스국의 애널리스트, 시카고 공립학교 수석 교육 담당국의 펠로를 역임했다. 뉴욕 클린턴에 자리한 래밀턴칼리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뉴욕 시립대 버룩칼리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뉴욕 주지사 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퀸스 지역에 5명의 동양인 보좌관이 있다. 시민들과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당신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
고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둔 적이 있었다. 오죽했으면 학교에서 ‘1년간 쉬는 게 좋겠다’는 진단을 했겠나. 그때 겪었던 밑바닥 체험이 어쩌면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싶다. 1년 후 다시 학교로 돌아와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치열한 삶을 살았다.

당신은 연봉이 어느 정도 되나.
아마도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웃음) 돈 생각을 한다면 아마도 정치 쪽 일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당신이 후계자를 선출한다면, 어떤 사람을 선택하겠는가.
집단의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 리더십이 뛰어난 사람. 미국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집단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우선이다.

본인만의 장기가 있다면.
역기를 남들보다 잘 든다. 3백50파운드를 드니까. 퀸스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해서 1등을 한 기록도 있다.(웃음)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당신이 꿈꾸는 미래는?
늘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 나는 친한 친구, 그리고 와이프, 아이들과 함께 근교에 소풍을 갔다. 아이들은 잔디밭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고, 나와 친구는 바비큐를 굽는다. 그리고 아내가 옆에서 그런 아이들과 나를 행복한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다. 내가 꿈꾸는 미래는 바로 이러한 그림이다.

Kevin Kim 게리 L. 애커먼 연방 하원의원 보좌관

민주당 뉴욕 롱아일랜드 퀸스의 게리 L. 애커먼 연방 하원의원의 지역 사회 담당관이다. 뉴욕 남부 지방법원 데니 친 판사의 연방정부 사법 사무관, 데이비스 폴크&워드웰의 기업 부동산 담당 변호사, 부동산 투자 및 관리회사의 법무팀 등을 역임했다. 스탠퍼드대학 아시아 태평양계 미국인 동창회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시민운동을 위한 한인리그의 자문위원회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다. 스탠퍼드대학 동아시아학과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법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현재 미국 연방 하원의원 게리 L. 애커먼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또한 MKTV의 TV 토크쇼 의 호스트로 활동 중이다. MKTV는 KBS 계열사다.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공무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이전에 기업 변호사로 있을 때보다 훨씬 적은 돈을 번다는 의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충분히 부자라고 생각될 만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미국에서 한국인으로서 성공하는 건 다르다고 느끼나.
소수 멤버로 살아간다는 것은 확실히 독특한 도전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은 누구나 열심히 일하며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의지만 있으면 무제한으로 기회가 제공되는 거다.

지금 나의 경쟁자가 있다면.
공화당 사람들?(웃음)

당신이 후계자를 선출해야 한다면 어떤 사람을 기용하겠는가.
무엇보다도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사람을 뽑을 것이다. 관용(인내)을 갖춘 사람, 가까이 하기 쉬운 인격을 갖춘 사람 등이 되겠다.

올해 나는 어느 정도의 결과를 성취할 거라고 예상하나.
민주당이 이번 11월 선거에서 이기는 것. 무엇보다 나의 보스가.

만약 여유 자금이 생긴다면 어디에 투자하겠는가.
공공 교육 부문에 투자할 것이다! 교사들에게 좀 더 많은 임금을 주어 학생들이 좀 더 양질의 교육을 받도록 하겠다.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있다면 어디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김해. 나는 좀 더 아버지의 고향에 대하여 알고 싶다.

좌우명이 있는지.
이따금씩 살면서 당신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What the Heck!!’ 할 말은 하자는 거다.(웃음)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라도 말이다.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내 가족의 건강과 행복에 대하여 꿈을 꾼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지역의 선거에 입후보하고 싶다. 뉴욕의 역사를 보면, 한국계 미국인은 단 한 번도 그 어떤 공식 부서에 뽑힌 적이 없다. 나는 그러한 역사를 바꾸고 싶다.

Sonny Hong 새틀라이트 에셋 매니지먼트 포트폴리오 공동 매니저

조지 소로스의 종잣돈으로 뉴욕에 설립된 1백억 달러 규모의 헤지펀드인 새틀라이트 에셋 매니지먼트의 특수 상황 그룹 공동 프로젝트 매니저이자 시니어 투자 애널리스트로 재직하고 있다. 이전에는 뉴욕을 기반으로 한 70억 달러 규모의 헤지펀드인 새틀라이트 에셋 매니지먼트의 TMT 부문 수석을 담당했다. 또한 8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 매니지먼트 회사인 알리안스번스타인에서 근무, 기관투자 부문에서 2위에 랭크된 팀의 일원이었고, 애널리스트로 활약했다. 컬럼비아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 한인 학생회 회장을 역임했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MBA를 받았다.

당신이 하는 일을 설명해달라.
헤지펀드 포트폴리오 매니저다.

당신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은 무엇이었나.
나 자신을 여러 번 개발한 것이다. 전술 상담가에서 소프트웨어 중개업자로, 업계 임원으로, 헤지펀드 매니저로 난 늘 포지션을 바꿔왔다.

반대로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이었나.
내 커리어를 위해 너무 바쁘게 지내다 보니 결혼을 하지 못한 것.(웃음)

당신의 직업적 성공에 영향을 미쳤던 경험, 훈련, 교육 등은 무엇이었나.
컬럼비아대학 시절, 하버드 MBA 과정을 꼽고 싶다. 또한 일과 관련한 경험으로는 늦게까지 일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시간 동안 일한 게 날 성공으로 이끌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다양한 견해를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을 가진 것.

지금 당신의(혹은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경쟁자가 있다면.
Citadel Hedge Fund Investment Group, AK Hedge Fund, Och - ziff 캐피털 매니지먼트.

여유 자금이 있다면, 어디에 투자하겠는가.
긍정적인 영향력을 줄 잠재력이 있는 한국, 한국계 미국인들을 도와주는 것에 쓰고 싶다. 구체적으로 한국계 미국인 상원의원이 관직에 입후보하도록 지원하고 싶고, 뉴욕의 한국계 미국인들이 정치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을 돕고 싶다.

당신은 혹시 자기 계발을 하고 있나.
물론이다. DJ 수업을 받고 있고, 요리를 배우고 있다.

지금 관심을 갖고 있는 건 무엇인가.
한국계 미국인들이 정치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 한국인,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사회 환원 사업을 하는 것.

당신이 꿈꾸는 최종 목표나 희망을 말해달라.
내 소유의 헤지펀드를 시작하는 것과 헤지펀드 세계에서 유명해지는 것. 그리고 사회 환원과 관련해 두 번째 경력을 쌓는 것.

David Chu 이매지네시안 엔터테인먼트 Inc. 수석 부사장

아시아 및 아시안 아메리칸 콘텐츠의 홍보 및 배급을 장려하는 멀티미디어 회사인 이매지네시안 엔터테인먼트의 프로그램 및 제품 담당 전무. 미국 최초의 범아시안 및 아시안 아메리칸 종일 TV 방송사인 이매지네시안 TV의 프로그램 제작, 매입 및 기획, 프로그램 스케줄을 총괄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관련 법률 경력을 지닌 변호사이며, 뉴욕의 진프랭켈 극단과 스텔라 애들러 연기 컨서버토리에서 연기 수업을 받기도 했다.

당신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나는 현재 미국 내 최초의 아이사 팝 문화를 표방한 TV 네트워크인 이매지네시안 엔터테이먼트에서 프로덕션, 필름 배급에 걸쳐 두루 일하고 있다. 우리는 또한 범아시아 영화 극장을 뉴욕과 LA에서 시작하였다. 나는 최고의 필름 스튜디오와 일을 하고 있으며 미국 내에서 한국 텔레비전 네트워크 콘텐츠들을 보급(대중화)시키는 것을 돕고 있다.

당신이 이룬 최고의 성과는.
아시아인들과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주요 시청자로 타게팅하는 데 전념하여 미국 내 24/7 텔레비전 네트워크(24시간 7일 내내 방송하는 것)의 첫 시작을 도운 일.

당신의 연봉을 말해줄 수 있나.
‘여섯 자리 수’라는 것까지만 밝히겠다. 메르세데스-벤츠 SUV(ML500)를 타고, 뉴욕 소호에 살고 있다.

여유 자금이 있으면 어디에 투자하겠는가.
부동산. 왜냐하면 그건 실제로 만질 수 있는 것이니까!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있다면.
파리, 왜냐하면 파리는 양면의 동전과 같은 매력이 있다. 한 면의 아름다움과 한 면의 창백함, 아마 걸어다니기에는 세계 최고의 도시가 아닐까.

남들에게 없는 나만의 장기를 말해달라.
나는 차를 빠르게 모는 데 비범한 솜씨를 갖고 있다.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분명히 포뮬러 넘버원 카레이서의 삶을 좇고 있을 것이다.

좌우명이 있다면.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잘해주었으면 하는 만큼 그 사람들에게 잘하라.

당신이 꿈꾸는 본인의 미래는 무엇인가.
항상 내 실수에서 배우는 것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 날마다 일하는 면에서 좋아지는 사람이 되는 것.

Roy Choi 마스 엔터테인먼트 CEO

극영화의 한국 배급을 전문으로 하는 마스 엔터테인먼트의 CEO이자 인디레이블 레코드사인 미디아웍스의 대표. 미국 내 미디어에서 아시안 아메리칸들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단체인 컬래버레이션의 수석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매년 미국 내 4개 도시에서 개최되는 컬래버레이션 탤런트쇼는 젊은 아시안 아메리칸 공연자들이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디딤돌이 되고 있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말해달라.
좋은 영화를 한국에 배급하는 마스 엔터테인먼트의 CEO이다.

당신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은 무엇이었나.
결혼의 에센스를 이해하고, 결혼에 골인한 것!

살면서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이었나.
작은 위기는 있었지만, 아직 커다란 폭풍을 맞아본 적은 없다. 그런데 그러한 큰 위기가 앞으로 아마 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하려고 늘 준비하고 있다.

자기 계발을 하고 있는지.
매일 매일 운동을 한다. 결혼을 하고 나니 배가 나오는 게 아닌가!(웃음)

좌우명이 있는가.
매일 1분씩이라도 내 미래를 위해 쓴다. 매일 1분씩이라도 좋은 기억을 만든다!

억만장자가 되더라도 일을 계속하겠는가.
물론이다.

Stephen Suh 미 대통령 백악관 관리예산처 프로그램 검사관

백악관 관리예산처(OMB)의 프로그램 검사관으로 국토안전 관련 프로그램과 정책들을 총괄하고 대통령의 예산을 짠다 OMB에서 8년간 일하면서 국토안전부 창설 등 백악관의 여러 기획안들을 통과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워싱턴 DC의 저소득 어린이 및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및 보호시설을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인 유니크러닝센터의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UCLA에서 미생물학 및 분자유전자학 학사 학위를 받은 후, 미시간대학에서 공공정책 석사 학위, 메릴랜드대학에서 MBA를 각각 취득했다.

당신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백악관 예산관리국에서 일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미 정부에서 대량 살상 무기 반대 프로그램을 펼치려고 하는데 얼마를 배당할 것이냐 하는. 요즘은 특히나 펀딩 프로그램인 WMDS 카운터를 책임지고 있다. 백악관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건 없다. 다른 게 있다면 25달러 이상 되는 선물은 받지 못한다는 거?

혹시 연봉을 얘기해줄 수 있나.
11만5천 달러. 내 연봉은 인터넷 검색해보면 다 나온다.(웃음) 침실 3개 있는 집에서 아내,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으며 자동차는 Chevy Suburbon SUV를 탄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몇몇 장애물을 만나는 삶이다. 언제나 가장 큰 과제는 멘토를 찾는 것. 조언을 해줄 선배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한국계 미국인들과 커넥션을 유지하는 것이 성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인의 관습이 있는가.
학교의 이름만 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브랜드 네임을 위해 진학하는 행위는 바보 짓 아닌가. 학교의 특별한 커리큘럼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미시간대학을 나왔는데 그 대학이 경제 분야에서 특성이 강한 학교라는 걸 알고 진학했다. 학교를 고르는 데에는 이름뿐만 아니라 이유가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당신에게 충분히 투자할 만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좋은 사람 만나는 것, 기회를 포착하고 그 기회의 이점을 낚아채는 것!

만약 당신이 후계자를 선출해야 한다면 어떤 사람을 기용하겠는가.
공공 서비스에서 일하는 사람, 지성적 솔직함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사람, 새로운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

곧 다가올 미 대선은 당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새로운 대통령은 새로운 기회를 의미한다.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의 현안에 대한 권한에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정책들이 새롭게 발의되고 실행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
물론. 나는 언제나 공공 서비스 분야에 대한 경력을 쌓고 싶었다. 그것은 정부 내에서 일하는 것만이 아니라 항상 일반인들과 그들의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생활을 주기 위해 일한다는 의미다. 기회는 아직 많다. NGO나 심지어는 개인 기업들도 이러한 기능들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억만장자라면, 이 일을 계속하겠는가.
글쎄…. 분명한 건 하루 종일 놀고 있지는 않을 거다. 일은 할 것이다. 난 은퇴하기 싫으니까.

좌우명이 있는가.
‘나는 매일같이 명작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한다.’ 이 말은 유명한 농구 코치 존 우든(John Wooden)이 한 말이다. 소수 약자들을 위해 기부하고 싶고, 약자들을 위한 사회 정의를 만들어내고 싶다. 최종 목표는 미 재무부장관이다.

Tad Yo 타임워너 케이블 부사장

캘리포니아 주 데저트시티에 있는 타임워너 케이블 샌디에이고 지부의 부사장 겸 제너럴 매니저. 최근 인수한 데저트 스프링스 및 유카밸리의 아델피아 시스템 가입자를 포함, 17만 명에 달하는 지역 케이블 TV 시청자들의 관리 책임을 맡고 있다. 지금의 직책을 맡기 전에는 LA 지역 타임워너 케이블사에서 부사장으로 일했다. 덴버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대학에서 MBA를 취득했다. 또한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을 졸업했다.

당신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타임워너 케이블에서 부사장을 맡고 있다. 쉽게 말해 LA 지역에 초고속 인터넷을 보급했고, VOD 서비스를 실시했다.

당신 인생 최고의 실수는. 그리고 어떻게 극복했나.
2003년에 직원 한 명을 해고한 적이 있는데, 그가 자살을 했다.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그 다음부터는 누구에게든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연봉을 말해줄 수 있겠나. 그리고 당신의 생활 환경까지도.
여섯 자리 수라는 정도만 밝히겠다. 아무래도 고위 관리직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보상해주는 것들이 많다. 역시나 회사에서 마련해준 메르세데스-벤츠 E 클래스를 타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느끼는 장벽이 있는가.
물론이다. 때로는 흑인보다 불리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일단 비즈니스 역사가 짧기 때문에 스스로 우리의 길을 만들어야 할 때가 많다. 회사 승진에 있어서도 한계가 분명 있다. 보이지 않는 장벽이랄까. 그래서 한국계 미국인들은 회사를 다니기보다는 자기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는 바뀌지 않겠나. 이탤리언들도, 유대인들도 그랬으니까.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선택은 무엇이었나.
한 회사를 오래 다닌 것. 난 스물여덟에 입사해 서른여섯 이른 나이에 부사장이 되었다. 타임워너 기록이다. 벌써 부사장만 여섯 번째다.

만약 당신이 후계자를 선출해야 한다면 어떤 사람을 기용하겠는가.
비슷한 가치와 업무 윤리를 갖춘 한국계 미국인.

만약 당신에게 어마어마한 돈이 주어진다면 어디에 투자하겠는가.
굶주린 사람들에게 기부할 것이다.

좌우명이 있는가.
‘Work Hard, Play Hard.’

John Suh 리걸줌닷컴 CEO

미국의 선도적인 법률서류 작성 전문회사 리걸줌닷컴의 CEO이다. 인터넷상에서 광범위한 경력을 쌓은 사업가로 최근까지 6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부품 체인인 리앤풍사의 인터넷 계열사 CEO로 일했다. 소규모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부서를 만들기 위해 1백여 명의 애널리스트들에게 사업 설명을 한 지 48시간 만에 2백50만 달러를 모금한 일도 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조직행동학과 공공정책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고, 하버드경영대학원인 비즈니스스쿨에서 MBA를 받았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리걸줌닷컴(Legalzoom.com)의 CEO이다. 우리는 작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가족들에게 법률상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는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법률 브랜드 중 하나이다.

당신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가 있었다면.
실험적으로 여러 사업을 했는데 파트너십이 안 좋은 경우가 많았다. 같은 가치를 공유하기 힘들었다. 사업은 결혼과 같은 거라서, 생각이 맞아야 오랜 시간 유지될 수 있다. 결국 난 (그 사업 파트너들과) 이혼을 했다.

가능하면 당신의 연봉을 말해줄 수 있나.
삶은 꽤 좋은 편이다. 그동안 꿈꿔온 친환경 태양력 발전이 가능한 집에서 살고 있으니까. 또한 재미를 위해 아우디 RS-4를 갖고 있다.

미국에서 한국인으로서 성공하는 건 다르다고 느끼나.
전혀. 만약 인터넷 기업가로 지낸다면 성공은 오직 자기 능력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당신의 직업적 성공에 영향을 미쳤던 경험, 훈련, 교육은 무엇이었나.
하버드에서 공부를 한 것, 그리고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MBA를 딴 것, 매력적인 10대 인터넷 기업가가 된 것(그것도 엄청 빨리), 실제로 정말 도움이 되는 학업적 성공을 이룬 것!

지금 나의(혹은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경쟁자가 있다면.
셀 수 없이 많다. 수백 군데? 수만 군데? 경쟁자가 없는 회사는 작을 수밖에 없다. 나는 큰 회사를 더 크게 키우는 게 흥미롭다.

만약 당신이 억만장자라면,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하겠는가?
음… 난 이미 억만장자인데?

코리언 아메리칸 리더들이 &lt;아레나&gt; 카메라 앞에 섰다. “오 마이 갓! 이런 경험은 정말 판타스틱한걸요!” 아이처럼 좋아하는 그들이 백만장자 사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lt;br&gt;&lt;br&gt;[2008년 11월호]

Credit Info

Editor
이지영
Photography
김지태
Hair
김원숙
Make-up
권호숙
Styling
서수경
Set Painting
김창규
cooperation
빨질레리, 비비안 웨스트우드, 에르메네질도 제냐, 본, 갤럭시, 보스, 타테오시안, 홀릭스, 돌체&가바나, 벨그라비아, 샌프란시스코 마켓, 란스미어, 던힐, 인터메조, 쌤쏘나이트

2013년 05월호

이달의 목차
Editor
이지영
Photography
김지태
Hair
김원숙
Make-up
권호숙
Styling
서수경
Set Painting
김창규
cooperation
빨질레리, 비비안 웨스트우드, 에르메네질도 제냐, 본, 갤럭시, 보스, 타테오시안, 홀릭스, 돌체&가바나, 벨그라비아, 샌프란시스코 마켓, 란스미어, 던힐, 인터메조, 쌤쏘나이트